사라져 가는 것들
중년이 된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가 어린 시절에 쓰던 단어와 풍경이 많이 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고향은 부산, 그 곳에서 태어나 잔뼈가 굵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고향에서 쓰던 사투리와 풍경만은 아니다.
우리 어린 시절의 대표적인 일어(日語)잔재라면 "벤또"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당시 도시락이라는 우리말이 없어서가 아니었고, 친구들 사이에 도시락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잘 난 척 하는 것 같아 우리 어린 시절엔 "벤또"로 통했다.
그런데 지금은 도시락을 벤또라고 하는 사람을 보지 못 했다.
쇗떼(열쇠)를 기억하시는지, 그리고 색경(거울)은, 도랑(개울), 다망구(놀이), 시마깨기(비석치기), 시차기, 살구받기(공기놀이), 고무줄 뛰기, 그리고 그 당시 대중교통의 주역이었던 전차, 마이크로버스, 시발택시... 아, 모두 기억을 되살려 열거하자면 이 밤을 꼬박 세워도 모자라겠다.
명절 전날 목욕탕 풍경은 그야말로 적나라한 삶의 현장이었다. 숨을 크게 쉬어도 갑갑하기만 했던 열탕 속에서 머리만 내 놓은 채 다리도 펴지 못하고 앉아 있던 일, 종업원이 수시로 드나들며 물위에 둥둥 뜨던 하얀 이물질을 잠자리 채 비슷한 것으로 떠내던 기억도 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등받이 없는 길다란 나무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던 이발소 풍경은 또 어땠고, 튀김 그리고 전 부치던 기름냄새, 새콤달콤하던 작고 빨간 사과 '홍옥', 그리고 동네 아낙들이 떡 방앗간 밖에까지 길게 줄을 섰던 풍경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친구들 사이에 말썽꾸러기 한 두 명은 있나 보다.
국민학교 오 학년 추석날 밤 학교운동장에서 폭음탄을 터트리며 노는 친구들 속에 담배를 피워 우리를 놀라게 한 녀석이 있었다.
평소 어른들 문화에 호기심이 많았던 친구였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하여 지천명에 이른 지금껏 고향을 지키며 열심히 사는 걸 보면, 학창시절의 모범생만이 사회에 곧게 뿌리내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난 봄 고향에 다니러 갔다가 만났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적절히 자리 잡힌 눈가의 골 깊은 주름과, 탈모증으로 훤하게 넓어진 이마에서 우리 어린 시절 흔히 보던 마음씨 좋은 이웃아저씨와 다름 없었다.
검은 고무신, 하얀 고무신, 하얀 코에 노란 고무신을 기억하시는지. 여자아이들은 검은 고무신, 꽃 고무신, 그리고 집안 형편이 좀 괜찮은 친구들은 드물게 운동화를 신기도 했다.
하교길이면 친구들과 더불어 길섶에서 열심히 찾던 네 잎 클로버, 내가 좋아하던 소녀의 손가락에 끼워 주고 싶었던 풀꽃반지, 여름날 소나기가 내리고 나면 오륙도를 배경으로 어김없이 걸리던 고운 무지개, 또 걷고 싶은 추억의 영도다리.
아!
이 새벽 어디선가 고향으로 가는 열차의 기적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백야/임호길
(2002) 도서출판 엠아이지 수필집 동인지 "내 앞에 열린 아침"게재
첫댓글 추억이 있다는건 참 좋은 일이지요
옛 이야기 소리
정답게 들려 오는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