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꽂이]
열두시에 만나자던
브라보 콘의 밑둥을
잘라 세운 듯한 자세.
비오는 날,
얌전하게 문앞에 서서
손님을 맞이한다.
젖은 몸들,
작은 가슴 비집고
빗물 떨구어
발목까지 적순 뒤
떠날 때는 말이 없다.
비개인 날,
문설주 바라보며
나즈막이 외친다.
"나는 쓰레기통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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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김영로님.
'우산꽂이'는 겉으로는 단순한 물건이지만, 시로 들어가면 의외로 많은 길이 열립니다. 힌트는 너무 직접적이지 않은 정도로만 드리겠습니다.
기다림)
주인이 돌아오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자리.
비 오는 날만 분주하고, 맑은 날은 잊혀진 존재.
경계)
바깥세상의 비와 흙을 안에서 받아내는 문턱.
실내와 실외를 잇는 완충지대.
성격의 전시장
가지런히 꽂힌 우산들.
뒤엉켜 쓰러진 우산들.
우산보다 사람의 성격이 먼저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익명성)
모두 검은 우산인데도 주인은 자기 것을 용케 찾아갑니다.
이름표가 없어도 서로를 알아보는 이상한 세계.
빈자리)
우산이 모두 나간 우산꽂이.
혹은 하나만 남은 우산.
'부재'가 오히려 더 큰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시간)
젖은 우산은 마르고,
우산꽂이는 물방울만 남깁니다.
비는 지나가도 흔적은 남는다는 쪽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김영로님께는 한 가지를 더 권하고 싶습니다.
최근 작품들을 보며 느낀 점인데, 물건을 설명하기보다 그 물건이 사람을 드러내게 하는 방식이 김영로님의 시와 잘 어울립니다.
'돋보기'에서는 돋보기보다 '나'가 보였듯이, '우산꽂이'에서도 우산꽂이를 주인공으로 세우기보다 그 앞을 스쳐 간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주면 더욱 깊은 시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습작을 기다리겠습니다. 어떤 비가 우산꽂이에 꽂히게 될지 벌써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