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1877.7~1962.8)는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작가다. 부친이 선교사이고 어머니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부모가 그에게 종교적 의무감에 기초한 교육을 하고 신념도 강요하자 이에 반항했다.
그는 나치 치하의 독일 시절에 출판을 금지시켰던 유대인 작가 작품을 대중에게 알리며 나치즘을 비판하는 행보를 한 대가로 나치에 탄압도 당했다. 카를 구스타프 융에게 정신치료를 받았다.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가 겪는 정신적 체험들의 섬세한 묘사는 그의 이론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가족과의 불화라는 심적 아픔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우리 정서에 맞아 오랜 기간 한국에서 사랑받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어떤 짐승이나 사람이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로 향하게 하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기도 하지.-‘데미안’ 중에서
한 사내가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를 인터뷰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먼저 학교폭력에 지쳤던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딱히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며 자랐는데 부모님이 바란, 흔히 말하는 온화하고 질서 있는 삶이 어째 답답하고 싫었어요. 학교폭력을 일삼던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고부터 알게 된 새로운 세상이 좋아보였죠. 온실 밖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때 참 철이 없었어요.”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 호기심 어린 온실 밖 세상에 대한 동경의 욕망을 잠시나마 실현해줄 인물로 여겨졌다. 사내는 싱클레어에게 웃으며 물었다.
“누구나 조용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잖아요. 문제는 학교폭력 같은 사태에 물들면 사회에서 주홍글씨를 쓰게 되는 현실이 두렵고, 그게 화제잖아요.”
둘은 학교폭력의 대명사를 다루는 드라마 ‘더 글로리’ 이야기를 한참 한다.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 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 거야. 나는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거거든.” 잠시 드라마 속 학교폭력 피해자인 동은이 가해자 연진에게 하는 복수의 대사가 사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게요.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나 학교폭력 사태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아주 많은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나는 얼마 전 뜨거웠던 드라마 ‘더 글로리’의 송혜교가 연기한 동은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매일 생각했어. 연진아’라는 말이 유행했잖아요. 나를 악의 세계로 이끈 크로머는 생각하기도 싫어요. 여전히 내 우상은 성장의 의미를 가르쳐준 막스 데미안이죠.”
크로머의 협박과 공갈에 시달려 불안한 삶을 살아가던 싱클레어에게 전학생 데미안과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악의 수렁에서 건져준 구세주였다.
“자라면서 외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내적 성장은 인생의 멘토를 만나면서 이뤄졌죠. 그 첫 계기가 데미안과의 조우였어요. 삶은 대립되는 선과 악이 함께하는 세계 같아요. 안전하고 따뜻한 가정과 어둡고 위험한 바깥세상은 서로 대립하기도 하지만 결국 공존의 다른 이름이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데미안’ 중에서
삶은 그런 반목과 공생의 구성원리로 인간은 내면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반드시 올바른 것만 요구되는 게 아니라 옳지 못한 것에 대한 절제 기술도 필요한 것 같다. 싱클레어는 그런 측면을 강조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 성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장이란, 일생 동안 한 생명체의 세포 크기와 세포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사람의 삶에 적용한다면 끊임없는 성찰과 학습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말하지 않을까? 문득 사내는 싱클레어에게 성장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흔히 경제성장은 양적 성장을 말하며, 어제보다 오늘의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잖아요. 문제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삶의 질을 고려해서 발전하는 게 아니라면 그 성장 자체가 지닌 의미는 한계가 있다는 거죠. 옛날보다 먹고살 만해졌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데미안과 함께한 시간은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는 자신이 성장하는 데에 참 의미를 준 막스 데미안의 힘을 ‘행복의 전염 효과’에 비유했다.
“성장하는 사회는 개인의 행복과 집단의 행복이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에 주목해야 해요. 그 속에는 데미안 같은 행복전도사가 많아야 해요. 약자를 생각하는 포용적 성장은 데미안을 닮았어요.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어려운 사람이 많아요. 사회적 취약계층을 고려하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지향해야 해요. 공정한 기회 못지않게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사회계층에 제대로 배분되는 것도 중요하죠.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불행해져요.”
사내는 행복을 나눠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를 구성하는 게 뭔지를 생각해본다. 가진 자의 나눔과 기부 같은 배려와 함께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관계 지향성을 생각해본다. 초개인화로 파편화된 사회에서 사회갈등은 커지고 기댈 언덕은 줄어들고 있었다.
정부가 소득분배나 의료 문제처럼 집단과 조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행복 문제를 더 큰 차원에서 다루고 있지만 신문을 장식하는 가난의 사각지대로 어려운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데미안을 알게 된 후 나는 처음에는 그와 거리를 뒀어요. 크로머와 너무 다른 모범생이었거든요. 그는 나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나는 크로머로 인해 흐트러져 버린 내 일상의 삶을 제자리로 돌리는 게 우선이었어요.”
이후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가 됐고 싱클레어는 데미안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둘은 서로 다른 학교에 진학하고 헤어진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나는 새의 그림을 그려 데미안에게 보냈어요. 데미안의 메시지가 담긴 쪽지를 받았죠.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나는 압락사스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했어요.”
싱클레어는 압락사스는 ‘신’이면서 동시에 ‘사탄’이라고 말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세상에서 어떻게 성장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데미안이 가르쳐 줬다고 했다. 악을 물리치고 선으로 향하는 길을 위해서는 양적 목표에만 몰두하지 않고 사회가 약자를 생각하며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수라고도 했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성장이 중요한 것 같아요.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도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같아 좋아보여요. 유행인 ESG 경영도 경제 전반의 선순환고리를 키우는 ‘임팩트 경제(impact economy)’로 등장한 지 오래잖아요. 외적 성장 못지않게 내적 성장을 이루려는 지속 가능한 성장목표가 하나하나 실천되어야지 사회구성원의 갈등이 축소되고 신뢰가 쌓이는 걸 목격할 수 있지 않을까요.”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ESG 경영이란, 장기적인 관점에서 친환경, 사회적 책임경영, 투명경영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임팩트(impact)는 선한 영향력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일련의 경제활동 과정에서의 유·무형 가치를 모두 포괄한다. 사내는 싱클레어의 아픈 구석을 찌른다.
“당신은 성장의 멘토로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도 거론하지 않았나요. 연상의 여인을 사랑할 수 있지만 또래인 데미안의 어머니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나요?”
에바 부인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었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에게 어울리는 성숙한 청년이 되고자 더욱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었다.
“사랑에서 외관보다 중요한 게 내면이 아닐까요. 친구의 어머니를 사랑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이해되지 않는다고요? 젊은이의 사랑을 향한 집념과 열정이 정치에 대한 그의 열정으로 이어졌다면 과장일까요. 사랑은 그렇게 모든 것을 추진하는 열정의 힘으로 우리에게 새겨집니다. 사랑의 기술은 끌림을 넘어 헌신과 책임으로 우리 앞에 서 있어요.”
싱클레어가 사내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이 세상이 외적 성장에만 머물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친다면 행복과 동행할 수 있을 텐데요. 사랑을 믿는다면 그게 신뢰와 헌신, 책임의 목소리인지 수만번 점검해봐야겠지요. 드문 사랑이라고 매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는 그러고 나서 칼 마르크스의 사랑의 시를 들려준다. 칼 마르크스는 사랑하는 연인 ‘예니’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은 갈구하는 믿음에 기초하기에 자본에 상관없다. 주저 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자유가 허락돼야 한다고 그는 많은 이에게 조언했다.
‘받아주시오, 나의 이 모든 노래를 당신 발밑에서 애정을 갈구하는 내 마음의 노래들을 그곳 / 수금이 높여 부르는 가락 속에서 내 영혼 빛 속으로 날개를 펴고 나아가니 / 아, 할 수만 있다면 이 노래가 그대에게 전해져 달콤한 속삭임으로 그대의 갈망을 휘젓고 / 당신의 맥박을 열정 속에 뛰게 해 그대의 굳은 마음에 미동이라도 일게 했으면.’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세상을 떠나면서 한 말을 기억하며 사내에게 말했다.
“싱클레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어쩌면 다시 한 번 나를 필요로 하겠지. 하지만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난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땐 네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싱클레어는 어느새 자신이 동경하던 데미안과 꼭 닮아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경제학에서 효율성과 형평성은 오랜 기간 상충관계(trade-off)에 있다고 봤다. 실업률을 줄이고자 하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를 내리고자 하면 실업이 통상 는다. 고용과 물가상승의 관계가 대표적인 상충관계의 예다. 그런 상충관계가 제대로 먹혀들어가지 않는 시기가 늘고 있다. 미국은 물가를 잡고자 그렇게 금리를 올리는데도 높은 고용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금리가 상승하는 악순환에 취약계층은 아픔이 배가된다. 포용적 성장은 효율과 형평을 상충관계로 보지 않는다. 효율이란 외면과 형평이란 내면이 함께 잘 어울러져야 진정한 성장과 발전을 하는 것으로 본다.
사내는 싱클레어가 말한 데미안의 이미지에서 포용적 성장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무와 자아발견이라는 주제를 넘어서 행복과 성장의 동행을 생각해본다.
조원경 UNIST 교수 /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