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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흥미돋는글
볼프강 파울리는 양자역학의 세계를 지배하는 '파울리 배타 원리'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냉철하고 비판적인 지성의 소유자였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날카로운 비판을 두려워하여 '신의 채찍'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파울리의 인생에는 깊은 어둠이 존재했다. 어머니의 자살, 불행한 결혼 생활, 그리고 과학적 창의력의 고갈은 그를 극심한 신경쇠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내면은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혼란스럽고 비합리적인 꿈과 환상으로 가득 찼었다.
1932년, 절박한 심정의 파울리는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심리학자였던 칼 융을 찾아간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와 심리학계의 거장이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융은 파울리를 1934년까지 2년 동안 상담했다. 그러나 상담 이후에도 둘은 무려 1958년까지 활발하게 서신을 주고 받으며 교류를 이어갔고 이는 심리학과 물리학의 중요한 학제 간 연구가 되었다. 이 서신에서 융은 파울리가 제공한 400여 개의 꿈을 분석하며, 그의 무의식이 어떻게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집단 무의식의 원형적 상징들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탐구했다. 그리고 파울리는 융에게 물리학이라는 학문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둘이 서신을 주고 받으며 연구를 한 결과 '동시성 원리'라는 이론이 탄생한다.
동시성 원리는 융이 192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만든 개념으로, 인과적 사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의미'를 통해 깊이 연결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세계관은 '인과율'이라는 단단한 기둥 위에 세워져 있다. 모든 사건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원인과 결과라는 필연적인 사슬로 엮여 있다. A가 B를 낳고, B는 다시 C의 원인이 된다. 이 선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인과율은 과학적 사고의 근간이며,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융은 이 인과율의 힘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융은 인과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상의 나머지 절반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것이 바로 '비인과적 연결(acausal connecting principle)'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는 사건들이 '원인-결과'의 수평적 사슬이 아니라, '의미'라는 수직적 축을 통해 연결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아무런 물리적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사건들이 마치 하나의 보이지 않는 중심점을 향해 동시에 정렬되는 것이다.
융이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는 '황금 풍뎅이(scarab beetle) 일화'가 있다. 한 여성 환자가 황금 풍뎅이에 대한 인상적인 꿈 이야기를 융에게 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상담실 창문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융이 창문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그 지역에서는 매우 드문, 황금 풍뎅이와 가장 유사한 종류의 풍뎅이 한 마리가 있었다. 꿈속의 상징과 외부의 물리적 사건 사이에 어떠한 인과적 연결고리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두 사건은 환자에게 깊은 '의미'를 가지며 강력한 통찰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동시성의 핵심이다. 내적인 정신 상태(꿈, 생각, 감정)와 외적인 물리적 사건이 서로 아무런 물리적 영향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이 마치 하나의 계획된 각본처럼 의미 있는 패턴으로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융은 이러한 현상이 집단 무의식의 원형(archetype)이 활성화될 때 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원형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정신의 구조이며, 이것이 활성화되면 마치 자석이 철가루를 정렬시키듯 주위의 물리적 현실도 그에 상응하는 의미 있는 패턴으로 재배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볼프강 파울리는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이 개념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비결정성과 비국소성에서 동시성의 물리적 근거를 찾으려 했다.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 어떤 입자의 초기 위치와 속도를 알면 그 미래는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양자 세계는 다르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보여주듯, 우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으며, 그 행동은 본질적으로 확률에 의해 지배된다. 개별 양자 사건은 예측 불가능하며, 인과율의 사슬이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파울리는 이 예측 불가능한 틈(비결정성)이 비인과적 원리가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과율이 지배하지 않는 이 영역에서, 어쩌면 '의미'라는 또 다른 질서 원리가 작동하여 사건의 발생 확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대담한 가설을 품었던 것이다.
더욱 중요하게 파울리를 사로잡은 것은 '비국소성(Non-locality)'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 쌍으로 생성된 두 개의 얽힌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마치 하나의 시스템처럼 행동한다. 한쪽 입자의 상태를 측정하는 순간, 다른 쪽 입자의 상태가 즉각적으로 결정된다. 이 정보 전달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며, 두 입자 사이에 어떤 물리적 신호가 오고 가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 부르며 비판했지만, 여러 과학 실험은 이것이 실제 현실임을 반복적으로 증명해냈다.
파울리에게 이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은 동시성의 물리적 유사물(physical analogue)이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양자 입자들의 모습에서, 그는 인과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내적 상태와 외적 사건의 의미 있는 연결을 떠올렸다. 비국소성은 물리적 세계 자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개별적인 대상들의 집합이 아니라, 시공간을 넘어서는 깊은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볼프강 파울리는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를 정신-물질이라는 난제를 탐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핵심 열쇠이자 결정적인 개념적 틀을 제공하는 개념으로 여겼다. 보어는 양자 세계에서 빛이나 전자가 때로는 파동처럼, 때로는 입자처럼 행동하는 모순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상보성 원리를 제안했다. 파동과 입자는 서로 배타적인 속성이지만, 둘 다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실험 장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상이 파동 또는 입자 중 하나의 모습만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우리는 결코 동시에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관찰할 수 없다.
파울리는 이 상보성 원리가 단지 미시 세계에 국한된 물리 법칙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를 이해하는 보편적인 인식론적 원리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보어의 이 개념을 심리학의 영역으로 과감하게 확장했다. 그리고 칼 융과의 대화를 통해, 정신과 물질의 관계야말로 상보성 원리가 가장 극명하게 적용되는 영역임을 발견했다.
파울리와 융은 정신과 물질이 바로 빛의 파동과 입자 같은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근본적으로는 '하나된 세계(우누스 문두스, Unus Mundus)'에서 비롯된 두 가지 측면이지만, 우리의 관찰 행위(의식)를 통해 서로 배타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누스 문두스', 라틴어로 '하나된 세계(One World)'를 의미하는 이 용어는 칼 융이 16세기 연금술사 게르하르트 도른의 저작에서 발견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끌어온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볼프강 파울리와의 지적 교류를 통해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 즉 물리학과 심리학을 통합하는 거대한 이론적 토대로서의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우누스 문두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이원론적 세계, 즉 정신과 물질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세계 이면에 존재하는, 잠재적이고 통일된 실재를 가리킨다. 그것은 정신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지만, 정신과 물질 모두가 태어나는 근원적인 모태(matrix)이다. 비유하자면, 땅속 깊은 곳에 있는 하나의 거대한 뿌리와 같다. 이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 위로 솟아나 한쪽에서는 '정신'이라는 이름의 나무를, 다른 쪽에서는 '물질'이라는 이름의 나무를 자라게 한다. 우리는 땅 위에 드러난 두 개의 다른 나무만을 보지만, 그 근원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이다.
파울리와 융은 우리가 '의식'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 통일된 현실을 관찰할 때, 그것이 필연적으로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개의 상보적인 측면으로 갈라져 나타난다고 보았다.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물질의 세계가, 내성적이고 상징적인 렌즈를 통해 보면 정신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 두 세계는 서로 다른 법칙(인과율과 의미)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단지 분리된 관점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우누스 문두스가 우리의 경험 세계에 순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이 바로 동시성 원리라고 볼 수 있다. 평소에는 분리되어 있던 정신적 사건과 물질적 사건이 의미를 통해 연결될 때, 우리는 두 세계의 근원이 하나임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땅속의 뿌리가 순간적으로 지표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이렇듯 우누스 문두스는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비국소적 연결성과 심층 심리학이 발견한 동시성 현상이라는 두 개의 구체적인 경험적 사실을 동시에 설명하려는 대담한 과학적 가설이다. 이는 파울리와 융에게 20세기 과학이 잃어버렸던 '전체성'을 회복하여 우주가 단순히 무작위적인 기계가 아니라 의미로 가득 찬 유기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라고 볼 수 있다.
참고자료
https://en.m.wikipedia.org/wiki/Synchronicity?hl=ko-KR
https://www.themarginalian.org/2017/03/09/atom-and-archetype-pauli-jung/?hl=ko-KR
https://www.tetragrammaton.com/content/pauliandjung?hl=k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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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과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틀린 부분이 보이신다면 지적해주세요.
동시성 원리와 우누스 문두스에 대해 조사하면서 느꼈던 것은 이 이론들이 데이비드 봄의 홀로그램 우주론과 비슷한 점이 많아보였다는 것입니다.
둘 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과학계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시도하고 세상을 철학, 심리학, 종교 등 관점으로 보려고 했으며 현대인들에게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동시성이라는 개념이 이렇게 만들어진 거구나 넘 신기하다 과학과 비과학이 이렇게 연결되다니 ㄷㄷ
백프로 이해는 안되지만 재밌다,,
여시에서이런내용을보게될줄이야 고마워
ㄹㅇ 꿈이 문명보다 더 오래됐는데 꿈을 비이성적인 걸로 여기는 건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든 모든 것들이 이야기의 형태라서 그렇고 이야기의 인과적인 흐름을 이성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임 그래서 실제 세상은 인간의 생각과는 달리 원래 비인과적인 것
낼 아침에 정독해야지 나 융 좋아하는데 미쳤다 존잼각
뭐라고 말해야하지...옛부터 현자(위인)들이 말안 일원론과 관련이있네..최근에 연금술사라는 책을읽고있는데 여기도 연금술사가 나오니 신기하다. 그리고 심리학과 물리학의 결합이라니...양자역학, 동시성 참 이해하기 어렵지만 양자역학도 이게 설명이 안되는 영역아니야?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동시성도, 나이브하게 말하면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것과 관련 있잖아...두 세계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뿌리다...왠지 좀 무섭기도 하다. 의미로 가득찬 유기체...시크릿 책이랑도 닿네ㅠㅠ 너무나도 거대하고 소름끼치게 장엄하네ㅜ 심지어 세상 모든 것이 유의미하다는 것이 지금 읽는 연금술사랑도 이어짐 소오름..와
신기하다
낼 읽어봐야지!!
내가 로또당첨되면 아빠가 로또 당첨됐다고 말하고 다닐거라고 말했는데
며칠 뒤에 찐으로 아빠가 로또당첨됐다면
이것도 동시성인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