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물은 현실 상황과 무관하며 정치/윤리/도덕적 가치판단은 배제한채
전략게임이라는 한정된 관점에서 쓰여진 글임 양해주시기 바랍니다.
제2차 한국전쟁 - 2. 북한강 방어선
첫번째 공세 (7월 8일 ~ 7월 22일)
<첫 2주간의 진격 상황>
적의 전선을 돌파하는 것은 어느정도 가능했으나
제공권을 장악한 적공군의 폭격과 포격, 그리고 험난한 지형 때문에 진격은 매우 더디게 이루어졌다.
2주가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진격한 거리는 최대 100km에 불과했다.
이젠 더 이상 기습 효과도 바랄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전쟁의 승패는 시간에 좌우될것이라 예상했기에 느린 속도는 패배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춘천을 거쳐 원주로 향하기로 했던 중앙군은 북한강과 원주 중심으로 굳게 방어진을 치고 있는 남한3군에 막혀
쐐기를 이뤄야할 전선면이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북한강을 따라 넓게 퍼지고 말았다.
보다 적은 저항의 예상되던 동부군 역시 강릉에 주둔하던 남한1군의 방어에 4일간 발이 묶여 중부군보다도 더딘 진격속도를 보였다.
<북한강 앞에서 : 중부군 전선이 원주 방어군에 막히면서 북한강 하류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허나 북한강 상류쪽을 향한 820기갑군단의 이동은 춘천을 포위하기 위한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목포 해전 & 목포 방어전
목포 앞바다에서 1차교전 이후
해군 전함대를 기지로 복귀시킬것이냐 혹은 예상되는 적의 반격에 맞서 결전을 치루게 할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야했다.
아군은 이번 상륙 이후 더 이상의 해상 작전을 주도할 일이 없으며 현존함대로는 적의 해상작전을 저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현재 상륙한 부대가 순조롭게 광주로 향할 수 있도록 후방을 지원하는 것이
그나마 해군이 할 수 있는 가치있는 행동이라는 판단에 전함대를 그대로 목포에 주둔시키기로 했다.
이제 그들의 임무는 "움직이는 해안포"로써 목포항을 방어하는 것이다.
상륙 후 광주로 향하던 아군에게 적이 반격을 가해왔다.
미82공수사단과 미해병대을 중심으로 한 맹공에 아군은 목포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으며
바다에선 대한해협 근방 해상에 있던 미해군 태평양 7함대 소속의
항공모함 3척(키티호크, 링컨, 스테이니스)에서 출격한 백여기의 F18전투기가
목포항에 주둔 중인 아군 해군을 괴멸상태로 몰아넣었다.
함대 간의 근접전투였던 1차 교전에선 숫적우세를 앞세워 적함 7척을 침몰시키고 단 4척만의 피해만 입었던 것에 반해
적 항모와 400Km가 넘는 거리를 두고 이루어진 2차 교전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함을 향해 함포를 쏠 수도 없는 노릇,
100여척의 함대가 제대로 반격도 못하고 침몰한다.
가까스로 14척의 구축함이 살아남았지만 명령에 의해 퇴각이 아닌 목포에서의 결사항전을 치뤄야 했다.
이순신 장군이 11척으로 왜선 100척을 물리친 성과를 여기서 바라는 것은 과욕을 넘어 제정신이 아닌 바람이다.
결국 3차교전, 아니 두번째 학살 이후 목포항엔 단 한척의 배도 남아있지 않게된다.
몇백척이 있든, 공군 지원없이 근접전투함만으로 항모전단에 도발을 가하는 건 자살행위라는 걸 망각한
무능한 지휘관이 초래한 무의미한 희생이었다.
그전에 한미연합군과의 전쟁 자체가 자살행위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이러한 해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포에 상륙한 부대 역시 목포에서 포위된지 사흘만에 전멸한다.
<목포 상륙 작전 : 이 날은 북한 역사에 해군이란 단어가 사라지는 날이었다.>
해군 전함대와 특수부대를 희생해서 얻은 이득은
일본에서 도착한 미공수사단과 미해병대의 최전방 지원을 일주일정도 지연시킨 것 뿐이었다.
충남 게릴라 전투
목포에서 큰 성과없이 전멸한 상륙부대에 비해서 천안의 공수특전단은 그나마 끈질기게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보급도 화력도 빈약한 부대였기에 천안을 굳건히 사수하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적의 맹렬한 반격에 천안을 버리고 태안반도 방면으로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수도방어군단 소속의 예비군을 남쪽으로 끌어내리면서까지 천안을 수복한 적이었지만
최전방에서의 전투와 보급로 확보 외엔 불필요한 전투를 피하려는 듯, 다행히 서해안까지는 추격해오지 않았다.
태안에서 살아남은 병력을 추스리는 동안 정면 힘싸움은 무리라고 판단,
병력을 집중시켰던 초기 전술을 버리고 부대를 넓게 분산시켜 게릴라 전을 수행하기로 했다.
<천안 공수 작전 이후 : 일부 부대는 다시 천안을 재점령했으나 목포에서 전투를 마치고 올라오던 미공수사단에 의해 전멸한다. 분산된 다른 부대들이 대전을 향해 남쪽으로 이동한 모습이 보인다>
방어선 돌파 (7월 25일~ )
좋지않은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던 것은
조금씩이나마 분명 아군은 전진을 하고 있었고
적의 반격이 활발한 서부에 비해서 동부에서의 반격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전선 돌파를 위한 연이은 전투로 조직력이 와해된 중부군은 잠시 진격을 멈춘 기간 동안
춘천에 남아있던 적8군단 소속 10사단을 섬멸시켰고
운용가능한 기갑병력을 끌어모아 보다 더 동쪽인 북한강 상류 지역,
봉천강에 집중 도하시시켜 원주의 동쪽 측면을 노리기로 했다.
동부군도 때를 맞춰 기계화군단을 다시 재정비해 강릉을 공격하기로 한다.
<방어선 돌파 상황>
그렇게 이뤄진 두번째 공세는 초기 공세에 비해선 좋은 성과를 보였다.
적 역시 그동안 계속된 전투로 피곤할터, 아군의 게릴라 활동에 막혀 지원군 도착이 늦은 적군에 비해
아군 예비라 할 수 있는 425기계화군단과 8군단의 상대적으로 빠른 도착이 전선돌파에 적지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였다.
특히 영동에서의 진격이 탄력을 받기 시작해 지난 18일간 전진한 거리를 일주일만에 전진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에 확보한 영동고속도로는 그동안 보급에 어려움이 많았던 중부군에 숨통을 틔워줄 것이며 원주의 측면 공격 루트도 제공해 줄 것이다.
원주를 함락시키면 가까운 시일내에 충청북도 진입도 가능해진다.
<홍천강 도하와 강릉 함락 : 동부군의 선봉에 위치한 108기계화군단이 강원도를 거쳐 경상북도 진입 눈앞에 두고 있다.>
한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던 무렵 한가지 걱정거리가 머리 속을 괴롭혔다.
그것은 앞으로 누적될 피해로 인해 중부군과 동부군의 진격이 더디어질 경우
공세를 대신해서 지속해나갈 예비전력이 아군에겐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미 태평양 7함대 소속 핵항모 링컨함 : 키티호크, 스테이니스와 함께 북한 해군을 전멸시키는데 한 몫을 담당한다.>
첫댓글 왠지 이제 한계점인 것 같은데요.. 중공군이 나올까요?
이 게임은 전술부호가 많이 나와서 어렵게 느껴지는 게임이네요. 게임 자체는 어렵지는 않나요??
커맨드는 매우 단순한 편입니다. 이동&공격&방어의 연속
그러게요. 해보고 싶긴 한데ㅎ
슬슬 최전선 부대의 보급이랑 준비도가 노란색으로 되고 있내요.. ㅈㅈ ㅋㅋ
해보고 싶은데... 집에서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