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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3592년(1619) 중추절
산동성에 주둔중인 군대는 321기병사단과 331보병사단 341보병 지방군이 전부였으며
이들을 총지휘하는 산동군단 예하에 351포병여단이 추가로 있다.
전시나 계엄령하에는 군단장이 모든 군을 직접 지휘하지만 평시에는 341보 지방군은
지방 최고 행정수반에게 지휘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 그것은 지방군의 독특한 임무 때문에
비롯되었는데 그들은 실질적인 지방행정의 치안을 맡고 있었다.
경찰력이 미치는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에는 지방군이 그곳의 치안을 담당해야 했다.
기존 편제대로 한다면 산동성에는 이만명의 중앙군과 만명의 지방군이 항시 주둔중이여야 했으나,
321사단과 331사단과 포병여단의 주력은 산동성을 떠나 러시아로 이동중이었다.
총 21개의 대륙의 성중에서 10개 성의 병력이 각 주둔지에는 필요 경계병만 남겨놓고
러시아로 이동명령을 받았다. 321기병사단 사령부가 있었던 곳의 건물들은 텅텅비어 있었다.
겨우 대대병력이 흩어져서 주요 설비와 건물을 방비 했다. 경비대대는 중대단위로 흩어져 있었고
본부중대를 제외한 다른 중대는 소대단위로 흩어져 자신이 맡은 곳을 경비했다.
3소대 병력은 321사단 4연대의 지휘소를 맡고 있었는데 이곳은 하북성에 있는 324사단의 대대병력이
7일 후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빠져나간 곳의 힘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주변성에서 병력을 이동 배치
시켰어야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천군부에서 명령이 늦게 하달 되어 몇 달 동안 방치되다 시피 했다.
“좋구나. 달도 엄청 크네. 이럴 때 순대에 소주 한잔 먹으면 좋겠다. 야 손상병 숨겨둔 거 없냐 ? “
“없다 쨔샤. 그냥 손가락이나 빨아. 조금만 곧 교대시간이야. “
유상병과 마상병은 군대 동기다. 그들이 만주에 있는 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이곳에 온지도 벌써 일년 반이 넘었다.
어찌된 일인지 만주에 있어야 할 그들이 산동성으로 배치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만주 신병 사단 훈련소를 퇴소할 때 사단 전체가 산동으로 옮겨와 버렸다.
하지만 앞으로 한 이년만 하면 군생활 끝이다.
“이번에 러시아 가면 이쁜 아가씨 하나 꼬셔서 결혼이나 해야겠다.”
“어라 그럼 넌 군대에 말뚝박을려고 생각하나 보구나.”
“좋잖아. 먹여주지. 재워주지. 입혀주지. 꼴통 장교만 안 만나면 군 생활도 할 만하다구.
장군도 될 수 있다더라.”
“어느 세월에 짜샤. 니가 장군될려면 한 40년은 걸리겠다. 그나저나 안에 있는 놈들은
지금쯤 술판을 건하나 벌리고 있을 텐데 말야. 성주가 이번에 크게 한턱 냈다고 그러더라.”
“인간이 되었어. 산동성주는 말야. 중추절이라고 술을 열동이나 보내고 말야.”
유상병이 입을 쩝쩝거리며 연신 시계를 처다 보았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3소대 병력은 모두들 술에 취해 있었다.
성주가 보내온 술에 소대장이 또 한턱 낸다며 숨겨둔 술을 꺼냈다.
영내에서의 음주는 금지되었지만, 모두들 고향을 떠나온 장병들이고 때가 중추가절이라 그런지
소대장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성주가 보낸 술이 크게 작용했다.
보초를 서고 있는 초병들은 총을 옆구리에 차고 비스듬이 초소벽에 기대어 꾸벅 꾸벅 졸았다.
이제 겨우 자정인데도 그들은 술에 취해 있어서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 하는 듯 했다.
그들이 졸고 있는 사이 일단의 무리가 천천히 초소에 다가가고 있었는데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택동은 백련교의 외당를 맡고 있었고 왕명의 핵심부하다. 그의 부하들 수백명이 무리를 지어
321기병사단의 잔여병력을 섬멸하고 장비를 노획하기 위해서 작전개시 시간을 기다렸다.
그가 맡은 부대의 초병들은 낮에 배달된 술을 먹고 골아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듯
연신 초소에서 허우적 댔다.
“가자. 시간이 다 되었다. 소리나지 않게 조심하고 일시에 적을 섬멸한다.”
그의 명령에 수십명이 사전에 맡은 자리로 이동했다.
“누구. 헉 그르륵”
초병이 눈을 떴을 땐 이미 마택동이 칼로 초병의 목을 긋고 있었다.
간단히 두명을 제압하고 막사로 진입하기 위해 손을 들어 신호했다.
그의 신호에 달려온 부하들이 초병의 총과 무기를 들고 막사안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막사안에는 이십여명이 잠을 자고 있었고. 희미하게 불빛이 세어 나왔다.
아직까지 누군가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우선은 그를 소리없이 먼저 제거 해야먄 했다.
“탁. 탁.”
김동기소위는 사병들이 잠자리에 들자 1분대장과 함께 불침번을 자청했다.
마신 술에 아직도 정신이 해롱해롱했지만 소대장으로서 40명의 부하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술도 깰 겸 순찰을 한번 돌 생각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거 또 개병장이 지랄하는 거 아냐. 그새끼 가서 자라니까. 꼭 말썽을 피워요.”
초소 근무엔 언제나 열외였던 말년 병장 개병장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근무를 서겠다고 난리를 쳐서
막사에서 가장 가까운 초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놈이 애꿎은 부하를 달달 볶고 있는지 몰랐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탄대에 권총을 찬 후 막사 문을 열었다.
그가 막사를 비울 땐 구석에서 자고 있는 1분대장을 깨워야 했지만 그는 그러기가 미안해서인지
그냥 나갔다 오기로 했다.
막사 문을 열자 시원한 공기가 하얀 달빛을 타고 얼굴을 덮쳐왔다.
깊게 숨을 들이쉬며 두팔을 들어올려 기지개를 폈다.
“으윽 시원하… 억”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두꺼운 버선을 신은 그림자가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명 나라 전까지 장안으로 불린 서안은 주, 진, 전한, 수, 당나라 등 수많은 왕조의 수도로서
약 1천 1백 년 간 한족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섬서성의 성도이기도 했다.
중추절을 맞아 흥겹게 하루를 보낸 섬서성 성주는 자정무렵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다.
시원스레 일을 보고 침실로 돌아오던 길에 그림자가 자신의 방에서 비치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간덩이가 부은 밤손님쯤으로 생각한 성주는 소시적 자신의 무위를 믿고 방문을 열어 젖히며
호통을 쳤다.
“누구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하지만 당황하리라 생각했던 불청객은 침착하게 칼을 들어 성주를 베어왔다.
낮부터 마신 술에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허리를 비틀어 칼을 피하려 하였지만
이미 불청객의 칼이 가슴에 가까이 다가왔다. 불청개이 확인 사살을 하기위해
가슴을 한번 더 찌르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밖으로 사라졌다.
불청객이 완전히 사라지자 죽은 줄 알았던 성주가 힘겹게 기어가 책상밑에 있는 비상벨을 누르곤
쓰러졌다. 다행히 칼이 심장을 빗겨가 절명을 면했지만 상처가 워낙 깊어 살수는 없었다.
성주가 누른 비상벨은 성주를 보호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기병 중대에 바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것은 자동적으로 섬서성 군단 사령부 당직실로 연결되었다.
섬서성 성주의 죽음이 군단 사령부에 보고되고 3군 사령부에 알려지까지 딱 1시간이 걸렸다.
다음날 아침 3군 사령부와 대명부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산동성은 이미 영염이란자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고 아침까지 확인된 바로는 10명의 성주가 피살되었다.
주력이 빠진 중앙군은 하나도 빠짐없이 공격당한 것 같았다.
산동성과 산서성을 비롯한 5개의 성에 주둔했던 중앙군은 연락이 자정을 기해 끊어졌다.
“기어이 일이 났군. 이제 잘 처리만 하면 되는 것인가 ?”
명에서의 대규모 반란 사건을 접한 천군부장관은 느긋하기만 했다.
“장관님 예상보다 더 일이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조기에 수습하지 않으면 대륙 전체로 확산되어
제국을 크게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천군부의 모든 정보를 취급하고 있는 정보사령부 사령관은 조속한 진압군 투입을 종용했다.
벌써 반란이 일어난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천군부에서는 이렇다 할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다만 각 해군기지와 공군기지에 경계병력을 보강하고 각군에 일급 비상령과 심양과 대만에
중폭격기를 상시 대기하라는 명령만이 전달되었다.
“이번 일의 주모자들을 알아냈나 ?”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산동성주와 산동군단 지방군 사단장과 산서성의 일부 지방군,
고영상, 황도주, 유림과, 다수의 백련교도들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련자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럼 한족의 대부분이 가담했다고 봐야 되겠군. 거기다 일본 무사출신들이나 만주족장들도
한몫 거들고 있겠지. 자네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 했으면 좋겠나 ? 다 죽이는 게 좋겠나 ?”
“그렇다고 이렇게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 계획된 작전은 너무 위험부담이 큽니다.”
“자네도 이미 알고 있듯이, 이 일은 대명부와 3군에 일임했으니까 정보사에서는 요원들을
풀가동해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기만 하게. 우리가 너무 끼여들어도 모양새가 안좋아.
십년동안 만들어온 계획이 아닌가. 그들이 잘 처리하겠지. 재미있는 한 판 승부야.
한족과의 진정한 전쟁은 지금부터다. 이번에 우리가 압승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한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3군이 계획대로 움직이면 1군을 좀더 빨리 투입시킬 수 있겠어.”
“긴급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자정을 기해 산동성 성주인 영염을 비롯한 황도주등이
반란을 이르켜 산동성을 장악하고 많은 양민과 함께 중앙군을 사살했습니다.
그들은 현재 중앙군과 대치중이라는 사실을 대명부에서 공식 확인 했습니다.
또한 극소수의 백련교도들도 이번 일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들은 명황실을 복원하고 봉건군주제로 회귀하는 것을 목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 졌습니다.
이번 사건과의 관련여부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성의 성주들이 자객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피해는 아직 공식 확인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대명부에서는 즉각 반란군의 무장해제와 반란에 가담한 공무원들의 업무 복귀를
명했으며,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중앙군을 투입시켜 진압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아울러 이 시간부로 대륙소속 모든 성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일몰이후의 이동이
전면 금지되고 통행금지를 어긴 자는 경고 없이 사살할 수도 있으므로 대명부와 3군사령부에서는
이번 계엄령에 대명부에 거주하는 주민여러분의 협조를 바라고 있습니다.
대명부 공식 발표장에 나가 있는 이기자가 돌아오는 대로 발표문 원문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각 관청에서 내보내는 관보와 라디오 방송을 꼭 청취하시고
정부 정책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잠시후 대명부의 공식 발표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반복되어 대명부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은 중앙군이 습격당해서 많은 무기가 반란군에 넘어갔다는 사실만을 숨긴 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기 했다. 대명부 대변인은 반란군을 봉건군주제로 회귀하려는 수구세력으로 단정 지었다.
“라디오 방송국이 파괴 당해서 얼마나 소식이 전해질지 모르겠군. 일단 대명부를 관할하는
전파통제소에 연락해서 비행선 띄우라고 해. 무엇보다도 파괴된 방송국을 최대한 빨리
복구해야 되는데.”
한족 언론 플레이를 책임지고 있는 대명부 홍보국장은 차근 차근 수순을 밟아 나갔다.
국장은 대국민 홍보를 맡고 있는 각 과의 과장들이 모여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 나가는 모습을
둘러보았다.
“비행선은 격추될 위험이 있습니다만. 먼저 적들이 장악한 주요 통신시설을 되찾는게 급선무입니다.
아마 고립되어 있는 중앙군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과 연결되어야만 일이 좀더 쉽게 풀릴 텐데요.”
“비행선대에 조심하라고 전하게 적들은 신식 무기로 무장했다고 알려주고.
안전 고도 이하로만 내려오지 않으면 괜찮아.”
“3군에서 이미 산동성을 제외한 다른 성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특수여단이 산서성에 투입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몇 달 안으로 기다리던 소식이 올 것입니다.”
산에서 내려온 영염은 제남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성내로 들어섰다.
그는 성주로 있는 동안 선정을 배풀어 주민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번에 일으킨 반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사실 주민들은 누가 왕이 되던 상관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삶에 치정자들이 끼여들지 않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의외로 일이 쉽게 진행되었어. 그렇게 큰 피해도 없었고 말야. 다른 성 소식은 어떻게 되었나 ?”
영염은 왕명을 보며 마치 자신의 부하에게 말하는 투로 질문을 했다.
그런 말투가 귀에 거슬렸지만 아직은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적어도 열개성의 성주가 제거되었고, 각 성의 주요 기관을 습격하여 파괴시켰습니다.
통신시설과 주요 다리가 대부분 파괴되어서 저들이 움직이는데 많은 제약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 잘 되었군.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겠어. 이번 일에 백련교도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는
걸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그들을 잘 단속해야 돼. 백성들과 사소한 마찰이라도 생기면 안되거든.”
“잘 알겠습니다. 성주.”
“그런데 자네는 언제까지 날 성주라고 부를 생각인가 ?”
“네 ? 죄송합니다. 왕야.”
산동성주 영염은 반란 하루가 지나자. 나라 이름을 후명이라 정하고 태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지방군 이만을 중앙군에서 탈취한 무기로 무장시키고 대장군에 고영상을 임명하였다.
또한 황도주에게 중앙행정을 맡기고, 왕명에게는 대내외정보 수집 및 치안을 담당하게 했다.
그들은 조만간에 시작될 대한제국과의 전쟁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힘을 기르고
전국에 밀사들을 보내 숨어있는 뜻 있는 자들을 대업에 동참시켜려 하였다.
그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초기에는 제법 많은 효과를 거둬 대학사나 과거의 장군들이
후명에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화남지방에서는 우리에게 동조하는 세력이 없습니다. 영염 왕야가 한족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인사들이 우리와 힘을 합치길 꺼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를 제거하고 왕염을 내세울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지금 화북과 화중에서 보여주는 한족의 힘이 막강하기는 하나 영염왕야를
구심점으로 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듯 합니다.”
황도주는 공부에 모여 유림세력과 암중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곳에는 일전의 고승과 고영상도 참석하고 있었다.
“지금 왕염과 영염왕을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뒷 감당을 하기엔 아직 우리의 힘이
모자랍니다. 조만간 조선에서 청도로 총을 실은 배가 들어 올 것입니다. 그 무기로 공부에서
키워낸 우리군이 무장을 하게 되면 그 때가서 저들을 제거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와 제 수하들이 군을 장악하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영상은 조선 상인과의 연줄을 이용하여 조선의 무기를 수천정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 상인은 과거 사대부 집안이었으나, 천인의 집권으로 사대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상인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명을 사대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고.
아직도 그런 자들이 조선에는 많이 있었다.
“고대장께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청도에 있는 저들의 함대가 기지를 폐쇄하고 후퇴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희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점을 저로서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마치 산동성은 거의 포기한 듯한 모습입니다.
대한제국의 힘이면 벌써 큰 싸움이 나고도 남았을 텐데 말입니다.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시간을 주는 듯 하단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보에 의하면 대명부 3군의 움직임이 극히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지역방어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투 입니다.”
“도대체 저들이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
저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반란을 포기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똑 같은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
황도주는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이해할 수 없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주왕룡태자님은 찾아내셨는가 ?”
황도주가 화제를 돌려 고승에게 물었다.
“지금은 밝힐 때가 아닙니다.”
고승은 말문을 굳게 닫고 있었고, 황도주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허부장은 요즘 심기가 무척 불편했다. 거의 술잔의 원주인에게 다가가고 있었는데
내란이 발생하여 모든 발목이 잡혀버렸다. 물론 특수부야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이번 작전이 끝나기 전까진 자제해 달라는 천군부의 협조공문이 와 있었던 지라 움직이지도 못했다.
더군다가 지금 그가 있는 산서성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고영상을 따르는 무리들과
중앙군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서 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그래서 산서성 곳곳은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로 인한 민간이 피해가 급증하였다.
야음을 틈타 남의 이목을 속이고 청도항에 입항한 고려호가 급히 화물을 내리고 청도항을 빠져 나갔다.
고영상은 고려호에서 건네 받은 화물을 수레에 싣고 급히 자신의 부대로 이송하였다.
소총과 소총탄 그리고 몇몇 중화기를 확보한 그는 이제 이것들을 군사들에게 지급하여 훈련시킬
시간만 누가 벌어준다면 자신들의 거사가 성공할 수도 있다는 환상을 갖기 시작했다.
그가 확보한 무기는 그런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이 일이 누군가의 밀고로 영염에게 보고가 들어갔다.
“뭣이 고영상이 조선에서 무기를 들여와 어딘가에 숨겨놓았단 말이냐 ?”
“그렇습니다. 왕야. 지난 밤에 청도항에 입항한 선박에서 무기를 하역했다는 보고입니다.”
“아니 어째서 고영상이 나에게 고하지도 않고 그런 일을 벌였단 말이냐 ?”
“황공하옵게도 저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우리를 믿지 못한다. 그럼 저들이 반란을 준비중이란 말이렸다.
누구의 힘으로 지금까지 저들이 편히 살고 있었는지 정녕 저들이 잊어버렸단 말인가 ?
그럴리가 없다. 고대장을 불러 직접 물어봐야겠다. 당장 고영상이를 불러라.”
“예 왕야. 하지만 저들을 너무 믿지 마시옵소서.”
산동성 지방군중 한족들은 고영상에 의해 대부분 장악되었고, 영염의 부하들 즉.
여진족이나 왜인들은 새로이 조직된 왕의 내군에 소속되어 지방군에서 이탈하였다.
내군의 무장은 대한제국의 기병사단과 맞먹는 화력과 기동성을 갖추고 있었고.
지방군은 내군이 버린 구식 총이나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창이나 칼을 들고 있었다.
고영상이 영염왕의 불음을 받은 것은 신식 소총을 모두 안전하게 보관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 였다.
이 소총은 공부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들에게 우선 지급되고 나머지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지급될 것이었다.
“나를 찾으신단 말이지?”
고영상이 지금 영엄이 왜 자기를 부르는 지 알 수 없었다.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 일이 영염왕에게 들어갔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알았네. 곧 가지.”
고영상이 왕궁에 들어가자 주위가 살벌했다. 곳곳에 중무장한 군사들이 배치되어 주변을 경계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 주변에 군사들이 많습니다. 왕야.”
“그런가 ? 요즘 주변에 일어나고 일들이 하도 수상하여서 말야.”
영염왕은 우회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며 고영상의 표정변화를 찬찬히 살폈지만,
고영상은 심경의 변화를 얼굴에 비칠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무슨 일이시옵니까 ?”
고영상은 왕이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뭔가 불안해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지만 표정만큼은 태연했다.
“어제 자네가 조선에서 많은 무기를 들여왔다는 데 왜 나에게는 고하지 않았는가 ?”
무겁고 천천이 말을 하는 영염의 목소리엔 노기가 깃들어 있었다.
고영상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 놀랐다.
자신은 지금 호랑이 아가리 속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형국이었다.
말 한마디에 따라 자신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왕야. 이미 이 일은 일전에 고하였사옵니다. 다만 그때는 일의 성사가 불투명하여
크게 기대하지 않아서 깊게 말씀 드리지 못한 것이옵니다.
그리고 어제 밤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우선 급한대로 무기를 수령하였기에 미쳐 고하지 못하였나이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언뜻 그런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언젠가 조선에서 무기수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애기를
듣긴 했지만 당시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그 이후로 거론되지 못했다.
하지만 영염으로서는 이 일을 묵과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번 일로 그를 제거하자니 명분도 약했다. 무엇보다도 영염은 그의 재력이 필요했다.
“그렇군. 그랬었지. 내 내군을 내어줄 테니 그 무기들은 내군에게 주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왕야”
고영상은 쓰라린 마음을 진정시켰다.
수만금이 들어가면서 입수한 무기였는데 고스란히 영염에게 들어가게 생겼다.
호랑이에게 날개를 자신이 직접 달아주게 된 것이니 속이 탔다.
“하남성을 공격하는 것은 어찌되어 가고 있는가 ? 장군 ?”
“지금 준비중이옵니다. 끝나는 대로 이번에 입수한 무기를 지방군에게 지급하면
하남성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휘하에 신무기를 지급하려는 그의 의도는 영염에 의해서 묵살되었다.
“지방군에게 신무기를 지급하는 것은 잠시 보류하도록 하겠소.
언제쯤이면 출병이 준비 되겠느냐 이말이요 ?”
“이달 말 일경에는 출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영상이 알현을 마치고 나오자 등에 흥건히 벤 땀이 바람에 식으며 체온을 떨어뜨리자
온몸이 떨려왔다. 이미 내군들이 무기를 실을 마차와 병사들이 대기시킨 체
고영상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지 내군장이 달려와 고영상을 맞이했다.
“장군, 그만 가시지요”
고영상은 내군과 함께 자신의 본영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가깝게만 느껴졌다.
아직 저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벌서 본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동행한 내군이 200명 남짓하고 본영의 군대가 천명이 넘으니 숫적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이쪽에서 확실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들을 공격할 수도 없었다.
“일단 날도 저물고 했으니 오늘은 본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어떻겠나.?”
고영상은 같이 온 내군장에게 하룻밤 묵어가길 은근히 권했다.
“저야 그러고 싶습니다만, 왕야께서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돌아오라 하였으니
영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밤길은 위헙하지 않겠는가 ? 혹여 가는 길에 불상사라도 생기면 큰일이 아닌가 ?”
고영상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가며 그들을 묶어두고 싶어했으나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영염왕은 내군장에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수량을 확인하고 즉시 돌아오라는 명령을 강조했었다.
“정 그렇다면 내 더 이상 권하진 않겠네. 내 참모에게 일러 급히 준비하라 할 테니
그동안 병사들에게 저녁을 먹게 하게나.”
고영상을 어쩔 수 없이 모든 무기를 다시 마차에 실어 내군에게 내주어야만 했다.
“저들이 이 일을 어찌 알았을까 ? 혹시 우리 사이에 간세가 있는게 아닌가 ?”
고영상은 떠나가는 내군을 배웅하며 여간 속이 상한게 아니었다.
이번 일은 자신과 자신의 부하 몇 명과 조선에 있는 협조만이 알고 있는 일로 극비에 속했다.
이일에 투입된 병사들 역시 외부와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었다.
그런대도 영염이 이일을 알아 첸 것이다.
“장군 이대로 보내주실 것입니까 ?”
고영상의 심복이자 좌장을 맡고 있는 이자훈이 멀어져가는 내군의 수레를 아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수야 없지. 저들이 궁으로 무사히 들어간다면 우린 영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저런 오랑캐를 위해 이번 일을 준비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
저들은 궁으로 살아서 돌아가지 못 할 거야. 거사일을 앞당겨야겠어.
내궁에 신호를 보내 오늘이 그날이라고.”
“알겠습니다. 장군.”
영염은 방금 전 내군이 모든 무기를 회수하여 회궁한다는 전령의 전갈을 받자 기분이 좋아졌다.
다행이 우려하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고영상을 좀더 지켜볼 만 했다.
큰 근심거리를 덜자, 초선이와 같이 보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영염은 초선이 기거하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초선을 고영상의 집에서 처음 보았을 때 영염은 초선의 경국지색에 넋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방안에는 오늘따라 곱게 차려 입은 초선이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영염을 맞이했다.
“왕야 납시셨습니까 ?”
초선이 몸을 움직일때마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가슴선을 타고 흘러내려 허리에 닿았다.
사랑스러운 얼굴로 초선을 바라보던 영염이 서서히 다가가 살포시 껴안고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
홍조를 아직도 간직한 초선이 옆에서 자고 있는 영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어린아이처럼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그를 초선은 죽여야만 했다.
아니 이미 그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온 몸에는 달콤한 독약이 발라져 있었고, 영염은 그것을 열심히 빨아대었다.
해독약을 먹지 않으면 내일 아침이면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번 임무를 위해 아주 오래전에 고영상과 계약을 했다.
그의 가족들은 과거 고영상에게 목숨 빚을 지고 있었고, 아직도 가족들이 고영상에게 붙잡혀 있어서
이번 일이 실패하면 자신의 가족도 모두 죽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보고 있을 고영상의
부하들에게 촛불을 손바닥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가려서 자신의 임무가 완수되었음을 알렸다.
“내세에 소녀의 불충을 갚아드리겠나이다. 왕야”
두눈에서 떨어져 내린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초선은 옷깃을 단정히 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영염의 옆에 살며시 누워 잠을 청했다.
이미 자신도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애초에 해독약이 없는 독약이라 초선과 영염은 서서히 죽어갔다.
그들의 죽음은 다음날 아침에 시비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고영상에게 알려졌다.
밤새 자신의 군영에 대기명령을 내린 고영상은 군사를 몰아 왕궁을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왕궁과 내군을 접수했다. 몇몇 내군들이 반항하였으나 명령권자를 상실한 그들은 일단은
차기 명령권자의 명령을 들어야 했다. 고영상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영염이 죽은지 사흘만에 서둘러 장사를 지낸 고영상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처리를 해나갔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영염왕야의 죽음을 대한제국의 소행으로 몰고 나간 일이다.
“영염왕야는 대한제국군에 의해 암살당했다.”
“영염왕야의 원수를 갚자.”
“한족의 기개를 보이자.”
이와 같은 소문이 산동성내로 퍼지면서 평소 왕야를 흠모했던 주민들이
대거 반란군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한 방에서 소근거리는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초선의 가족들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없애버리는 것이.”
“초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러는 것이 훗날을 위해 좋겠지요.
최대한 신속하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해 주십시오.”
“그분은 지금 어디에 기거하고 계십니까 ?”
“조만간에 저희들 앞에 나타나시게 될 것입니다.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이야 말로 정통 후계자라 할 수 있지요. 지난 날 천운으로 목숨을 부지하시고
지금까지 숨어 지내셨지요. 거기에는 고승의 노고가 컸습니다.”
“명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였습니다.”
“….”
“그나저나 왕명을 어찌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완전 계륵입니다. 그려.”
“그 점은 왕야께서 알아서 처리 하실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내군 중 많은 군사들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들이 어떤 의도로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걱정거리가 하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한족들이 한 쪽 구석에서 자신들의 음모를 모의하고 있을 때,
일단의 무리들 역시 왕명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염왕의 죽음이 이상합니다. 그리고 그가 마치 그날 죽으리라는 것을 알기라고 했다는
듯이 고영상이 일처리를 해버려서. 우리들은 끼여들 틈도 없었습니다.”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헌데 지금에 와서 그걸 뒤집어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설사 영염왕이 그놈들에 의해 독살당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실을 지금 밝힐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끌려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우리는 兎死狗烹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누가 명분을 얻느냐가 중요하지요. 영염왕의 왕자들은 어찌하고 있습니까 ?”
“지금 내군에서 보호중입니다만,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린 끝장입니다. 각별히 신경써 주시고,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많이 모아놓으세요. 특히 내군 출신 군인들을 포섭하시고. 암중으로 영염왕의 죽음에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의 소문을 내 보시죠. 무엇보다도 사라진 내군장군과 일단의 병사들을 찾는게
급선무 입니다. 왕야가 죽기 전날 고영상을 따라간 후 모습이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청도항에 물건을 내리고 대금으로 황금을 싣고 오는 고려호 선장은 희희낙락이다.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는 일이라며 잔뜩 겁을 먹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너무도 수월했다.
그 많던 해군이나 해경 함정은 단 한척도 보이지 않았고 날씨도 화창해서 오히려 다른 항차보다도
쉬웠다. 이번 건 같은 것 두어번만 하면 자신의 인생은 활짝 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선주는 간이 몸밖으로 나왔는지 모르지만, 들통나면 패가망신할 불법행위를 자신에게 지시했다.
물론 그에 따른 상당한 보너스를 지불할 것도 약속했다. 조선이 다 아는 거부인 송상목이라곤 하나
대량으로 무기를 밀거래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상식에서는 말이다.
거기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듯 보였다.
사실 모든 무기는 아주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천군부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고,
하루에도 두번씩 그 수량과 성능을 점검해서 점검대장에 기록해야만 했고,
노후되어서 폐기되는 무기들의 유출을 막기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했다.
하남성 성도가 개봉에서 정주로 바뀐 건 작년이었지만, 정주 역시 예전부터 알려진 큰 성이다.
정주는 황하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옛날부터 화북과 화남을 맺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온갖 산물이 집중되는 집산지이도 했다.
난리가 일어난 후 정주는 연일 혼란스러웠는데 근래에 들어 더욱 혼잡스러웠다.
반란군이 상구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곳에 전해지면서 부터는 더욱 심해졌다.
“대명부에서는 섬서성으로 이동하라는 명입니다.
아무래도 대명부에서는 산동과 하남 산서성을 포기하듯 보입니다. “
하남성 성주가 피살당하자 임시로 성주를 겸하고 있는 하남 지방군 사단장이
정주에서 하남성 주요 공직자 회의를 주관했다.
하남성에는 불과 자신의 지방군 이만과 중앙군 1개 대대만이 주둔하고 있었고
지방군은 그 무장이 빈약하여 숫자만 많았지 반란군을 진압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왜 천군부에서는 1군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까 ?
아니 하북성과 강소성에 있는 중앙군 만으로도 충분히 진압하고 남을 병력이 아닙니까 ?
왜 우리가 이렇게 쫒겨가야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라도 싸우겠습니다.”
농민출신으로 개봉부의 장에 오른 등소평이 소리치며 울분을 토했다.
“자중하십시오. 대명부에서도 무슨 고초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의 병력으론
반란군에 대적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를 피한다 생각하시고 백성들을
잘 추스려 섬서나 호북성으로 피난 길에 오르라고 하십시오.
반란군이 상구를 통해 하남에 들어왔다면 이미 동부는 저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봐야 합니다.
대부분 평지이고 그들을 막을 만한 병력도 보낼 수 없으니 서두르지 않으면
호북성으로 가는 길이 막힐 것입니다.
일단 관부와 군은 섬서성으로 움직이고 민간인은 호북성으로 움직이게끔 유도합시다.”
3952년(1619) 늦가을
하남성 중부와 동부는 대부분이 평원이어서 들판에는 농부들의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들이
황금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남성주 명의의 대국민 소개령이 내려졌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들판의 곡식을 버려두고 갈 수 없었고 더군다나 같은 한족인
그들이 자신들에게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소개령에 응한 사람들은 조선에서 건너온 사람과 도시의 몇몇 사람이 전부였다.
산동성을 나선 왕명이 이끄는 군대가 개봉에 들어선 것은 1619년 10월이었고, 정주를 거쳐 낙양에
이른 것이 11월 이었다. 하남성 대부분을 장악한 왕명의 군대는 산동성에서 나올때가 채
이만이 되지 않았으나 11월에는 십만이 넘어 있었다.
물론 그의 군대는 대부분 백련교도들로 이루어져서 각 고을을 지날 때마다 왕명의 부대에 합류하였다.
고영상의 지휘를 받는 또다른 부대가 하북성의 남단을 지나 산서성으로 들어갔다.
산서성에 주둔하던 군대들은 섬서성과 호북성으로 도망을 갔고 산서성 역시 무혈입성하게 되었다.
반란군은 거의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3개성을 장악하는 듯 보였다.
하남성 남동쪽에 위치한 주구라고 불리는 주변에서는 그래도 제법 큰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대대로 한수강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었고 대한제국이 대륙을 통치한 이래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올해도 농사가 잘 되어서 마을 전체가 풍요로웠다.
“촌장님. 반란군이 저희 마을 가까이 까지 오고 있다는데 저희들도 잠시 마을을 피해 있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
마을의 청장년층은 반란군이 오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에 노인들은 반란군을 반란군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고 그들을 명의 충신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 청년의 말에 촌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반란군이라니 저들은 명나라를 다시 이르키기 위한 군대다.
그들을 환영하지 못 할 망정 도망이라니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란 말이냐 ?
정정 한족이기를 포기했단 말이냐 ?”
촌장의 말에 다른 청년이 벌떡 일어났다.
“명나라를 다시 이르켜서 누구 좋은 일 시켜주려는 것입니까 ? 촌장님은 벌써 잊어 버리셨습니까 ?
저놈들은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고 사는 놈들입니다. 명황제가 다 무엇입니까 ?
다 자기들 호의 호식하려고 난리를 일으킨 족속들이 아닙니까 ?
백성을 위한다는 저들이 난을 이르킨지 채 3달이 지나지 않아서 이미 많은 산동성 주민들이
겨울 걱정을 하고 있답니다. 대한 제국이 10년간 공들여 만들어 놓은 것을 저들은 석달이 안되어서
망쳐 놓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네 이놈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말버릇을 배웠느냐 ? 당장 그치지 못 할까 ?
너는 도데체 누구냐 이놈아. 그래 넌 저 오랑케놈이 그렇게 좋단 말이냐.?
어디서 되먹지 못한 사람을 현혹시키는 천주학에 머리가 완전히 돈 놈이로다.”
“그럼 촌장님은 저 간신 왕윤의 조카가 좋단 말입니까
아님 여진족장 영염의 아들이 좋단 말입니까 ?”
또다른 청년이 반박하자 촌장은 잠시 말문을 닫았다.
그때 한 아이가 헐래벌떡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헥헥 거리며 숨을 골랐다.
“무슨 일이냐 동동아 ?”
할아버지는 동동이라 불리는 아이가 방안으로 들어오자 인자한 촌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의 물음에 동동이 촌장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저기 마을에 군인들이 와서는 할아버지를 찾고 있어요.”
아이의 말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황급히 아이가 말한 곳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이 도착한 마을 앞 공토에는 몇십명의 기병대가 무기를 꼬나들고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고 놀란 아이들이 엄마품을 찾아 들었다.
“제가 이곳 촌장입니다만 무슨일 이신지요 나리님들.”
“우리는 후명군이다. 왕명 대장군의 명을 받아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해 왔다.
내일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백미 백석을 마련해 놓도록 하여라. “
“알겠습니다. 나리.”
“그리고 우린 군사가 부족하니 운반을 해줄 일꾼도 준비하도록 하여라.”
“네 나리.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촌노는 연신 굽신거리며 왕명군에게 대답하였다.
보기에도 너무 굽신거려서 마을 젊은이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우리가 왜 백미 백석을 당신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
한 마을 청년이 당당히 나서며 소리치자 군관이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등을 돌리며 군사들을 인솔해 마을을 떠나갔다.
“내일 아침 일찍 올 터이니 준비해 놓도록 하여라.”
겨울이 다가오자 후명국이라 개국을 한 반란군은 군량미 비축과 군세 확충을 위해
그동안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걷지 않았던 세금을 걷기 시작하였다.
고영상이 내놓은 재산은 이미 다 소진되었고, 먹이고 입힐 군대가 십만이 훌쩍 넘어 버리자
후명국은 군대를 유지하고 보급품을 마련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어쩔수 없이 부자들에게 관직을 강매하였고, 관직을 산 부자들은 자신의 잃어버린 부를
찾기 위해 다시 백성들의 세간살이를 세금이란 명목으로 걷어들였다. 백성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거기에는 대명부의 오랜 공작이 주효했다.
대명부에서는 난리가 나자마자, 온갖 매체를 동원해서 반란군의 정체를 봉건 회귀주의로 몰아세웠고
그에 대한 폐단을 엄청 과장하여 선동하였다. 거의 매일 뿌려지는 라디오 전파와 전단지들은
오늘은 어디 마을이 반란군에 의해 완전 쑥대밭이 되었다느니, 어떤 마을은 한사람도 살아남지
않았다는 둥 반란군에 대한 악선전이 계속되었다. 물론 그들 중 태반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되었지만 가끔은 사실이기도 했다.
이번에 발생한 주구마을 학살사건은 대명부에 엄청난 여파를 남겼다. 주구마을에 있던 오백여명의
마을 주민이 대부분 학살되고 마을은 전소되어 사라져 버렸다. 자세한 경위를 알 수는 없었지만
반란군과 주민간의 마찰이 만들어낸 비극일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했던 것이 잠입 취재 중이던
기자에 의해서 천신만고끝에 찾아낸 생존자의 증언을 곁들인 자료가 수집되어
11월 10일 최초로 라디오 전파를 탔다.
황립 라디오 방송국 정오 뉴스 진행자는 작성된 원고를 격양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에 잠입기자가 작성해온 기사에 따르면 왕명의 지시를 받고 있는 일단의 군대가 평화로운
한 농촌을 습격하여 거주하고 있던 농민 500여명을 학살하고 약탈했으며 모든 가옥에 불을 질러
한 마을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그들은 차마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잔인하게 주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이런 만행은 지금도 하남성 대 평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 대명부와 천군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잠시 대명부 청사에서 있었던 대변인의 공식 기자 회견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잠깐 동안의 시차를 두고 녹음테이프의 재생음질이 흘러 나왔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희 대명부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천군부에 중앙군을 투입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대명부에도 3군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반란군 진압에 투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3군은 지역 방어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그들을 투입하면 각 지역 치안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투입할 수가 없습니다.”
“천군부에서 중앙군을 투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천군부에서는 제국 내부 소요에 천군을 투입할 수 없다는 방침입니다. 천군은 제국민을 상대로한
작전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기자양반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 내부 소요는 전적으로
천인단 관할 사항이며 대명부에서 자체 해결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대명부에서는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내란의 확대를 막기 위해 지방군 병력을 화북3성 주위에 배치하였으며
반란군이 장악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화북 3 성을 떠나 인접 성으로 이동하길 권유하고 있습니다.”
“너무 소극적인 대처가 아닙니까. 대명부의 소극적인 대처로 지금도 화북 3성의 많은 선량한
국민들이 적들의 총칼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만, 저희 대명부와 3군에서도 이 사태를 조기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지지지”
테이프가 다 돌아갔는지 더 이상 음성이 들리지 않자 진행자가 말을 이었다.
“방금 들으신 바와 같이 현재 대명부와 천군부에서는 화북 3성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극히 자제하고 있으며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미 고영상을 비롯한 반란군 수괴들은
후명국이라는 이름으로 개국을 선포하였으며, 우리의 선량한 제국민들을 착취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천군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대명부에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의용군을 모집한다고 밝혔습니다.
의용군에 참여를 희망하시는 대명부 국민들은 각 지방 관청에 신고 하시기 바랍니다."
라디오를 듣고 있던 모택동은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해 피를 토했다. 그의 고향은 이번 사건이
벌어진 주구였는데 잠시 고향을 떠나 상해에 와 있었다. 화북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천군부에서 알아서 진압하려니 생각했었는데 일이 전혀 엉뚱하게 번지고 있었고 자신의 마을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라디오는 그의 부모 가족 親舊들이 모두 죽었음을 거의 확신했다.
“여기서 이렇게 있을 수 만은 없다.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 꼭 복수 해야 한다.”
대명부에서 의용군을 모집하기 시작할 무렵 반란 주모자들은 마침내 영염왕의 모든 친족을 죽이고
주왕룡을 자신들의 황제로 등극시켰다. 주왕룡은 만력제의 아들로 지난날의 여러 번의 난을 피해
겨우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왕룡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자신이 명의 정통 계승자임을
만천하에 선포했다. 주왕룡은 청의 태조로 등극하자 마자 대한제국에게 화친의 뜻을 여러 차례
보내왔지만 대한제국에서는 청이라는 나라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주왕룡의 등극소식에 많은 한족사회가 일순 당황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숨어지내던 많은 명의
충신들이 화북 3 성으로 이동하기 시작 했다. 다시 한번 한족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향수를 간직한 자와 과거의 암울함을 간직한 자간의 분열이 대명부 전체로 번져나갔다.
“드디어 숨어 있던 놈들이 다 나온단 말이지. 이번 기회에 완전히 말살 시켜버려야돼 한 놈도
남김없이. 언제나 우리 뒤통수를 노릴 놈들이였지.”
천군부장관은 화북 3성을 장악한 저들을 돕기 위해 과거의 명 충신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10년 계획이 차근 차근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언제쯤 1군을 투입하실 생각 이십니까 ? 장관님.”
“아직은 때가 무르 익지 않았어. 저들을 좀더 쥐어 짜야겠지. 무기 판매는 잘 되고 있나 ?”
“네 만여정이 팔려 나갔습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수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아마 저들은 그 자금을 만들어 내느라 등골이 휠 것 입니다.”
“그렇겠지.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에 대한 환상이 깨질때까지 게속해서 몰아 붙여야되.
이번 겨울이 고비겠군. 특수부대를 투입시켜서 적들의 식량창고를 없애라고 전하게.
그리고 3성의 경계를 맡고 있는 부대에 작전 개시전에 인원을 보충하여 작전이 시작되면
한 사람도 빠져 나오지 못하게 철통같이 방비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그럼 내년 5월이면 딱 좋겠습니다. 장관님.”
“그렇지 그 정도가 좋겠지.”
3952년(1619) 겨울
제 5 특수여단 소속 병력이 잠수함을 이용하여 해안가에 통해 내륙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들은 오달산 자락에 위치한 곡물창고를 태우기위해 파견된 제 3팀원들로 오늘 밤중으로
일을 해치우고 귀환해야만 했다.
지도를 꺼내보던 팀장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자 서쪽으로 길을 잡고 달려 나갔다.
일당 백이라는 전사 7명이 오달산을 향해 밤길을 달렸다.
해안가에서 거의 두시간을 달려오자 목표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 30분간 휴식후 바로 작전에 돌입한다.
나는 박중사와 주변정찰을 하고 오겠다. 모두 장비 점검을 마치고 기다리도록.”
팀장이 박중사와 사라지자 남은 대원은 각자 방위를 점하고 짧은 휴식에 들어갔다.
그들의 입에서는 뜨거운 입김이 연신 흘러 나왔다.
“죽갔구만.”
최고참인 이상사가 한마디 했다.
그에게는 한시간에 10킬로미터의 강행군은 무리인지 호흡이 가장 거칠었다.
“어제밤에 무리만 하지 않았어도 이러지 않을 텐데.”
“그러게 작전 전날 누가 술을 그렇게 진탕 마시랍니까 ?”
옆에서 최중사가 핀잔을 줬지만 그 역시 힘겹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적진에 들어와서도 이렇듯 여유로운 것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과 적들에 대한 무시가
합쳐져 있었기 때문이였다. 두런 두런 애기를 나누는 사이에 정찰을 나간 팀장과 박중사가 돌아왔다.
팀장은 팀원들을 부르고 정찰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창고 주위에 막사가 여럿 있는 것으로 봐서 최소한 대대급이 주둔하고 있는 것 같다.
창고도 한두개가 아니야. 아무래도 우리 힘만으론 쉽지 않겠어. 모두들 단단히 마음 먹으라고.”
“대대급이면 어떻습니까 ? 우린 일당 백이지 않습니까 팀장님.”
“그렇다. 지금부터 2인 1조가 되어 움직인다. 각 전초들을 제압하고 건물에 폭탄을 설치한후
빠르게 이동한다. 제 합류 지점은 이곳이다. 06시 전까지 오지 않으면 잠수함은 떠난다. 이상. “
보급창 주위에는 청군 한 개 대대 주둔하고 방어하고 있었지만 전시라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군대에 와서 제대로 된 전투를 치러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사격 훈련이 그들이 받은 훈련의
전부였고 신식무기에 적응한 전략 전술을 만들기엔 장군들의 지식이 많이 모자랐다.
“꽝 꽈광”
곤히 잠들어 있던 보급창 경비대대장은 한밤을 흔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대대장이 급히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주위에는 온통 화염에 휩싸여 있었고
병사들은 불길을 잡기 위해 허둥댔다.
“부관 무슨 일인가 ?”
헐레벌떡 뛰어온 부관이 상황설명을 했다.
“아무래도 대한제국군이 침투해서 불을 지르고 도망간 것 같습니다.
현재 거의 모든 창고에 불길이 치솟고 있습니다.”
“적은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당장 추격대를 선별해서 보내”
경비대장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의 머리가 잘릴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침투한 적을 찾아내야만 했다.
“네 알겠습니다.”
“땅, 퍽”
그때 대대장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잠시 후 경쾌한 음의 단발의 총소리가 들려왔다.
“자식 불옆에 있으니 잘 보이는데. 저놈이 대장이면 좋겠는데 말야. 휴”
총을 내려 놓으며 박중사가 한숨을 쉬었다.
“가자.”
주왕룡은 청의 태조로 등극한 후 모처럼 편안한 잠자리에서 깨어났다.
그의 옆에는 예쁜 시비가 앉아서 주왕룡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고
침실은 단아하게 꾸며져 있어서 그의 단아한 품성을 대변하는 듯 했다.
“상쾌한 아침이구나”
“기침하셨습니까 폐하.”
“그래 항아야. 오랜만에 잘 잤구나.”
항아는 다른 시비에게 물을 떠오게 하여 주왕룡을 씻기고 옷을 입혔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주왕룡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왕궁을 산책하기 위해 방문을 나섰다.
찬 공기가 불어왔다.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구나. 온 천지가 새 하얗다.”
그가 눈을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자 고영상이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인고 ? 행여 전쟁이라도 난 것이 아닌지.”
마음속에 이는 불안을 애써 잠재운 주왕룡은 고영상이 다가오자 맑은 미소로 그를 대했다.
“대신께서 무슨 일이시길래 이른 아침부터 출행이시오 ?”
“페하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
“그렇소 모처럼만에 단잠을 잤더니 온몸이 한결 가볍구려. 그래 무슨 일이 생겼소 ?”
“폐하 황공하옵게고, 각지의 부대장들에게 연락이 왔사온데 어제밤 정체불명의
집단의 기습을 받아 손실이 있었사옵니다. “
“뭐라고요. 기습이라고. 아니 정체불명이란 또 무슨 말씀이시오.”
“소수의 인원이 부대내로 들어와 보급품들을 불지르고 약탈했습니다. 경비대장은 장렬히
전사했다는 보고이옵니다. 대한제국군으로 사료되옵니다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폐하.”
“큰일이구려. 지금 당장 어전 회의를 소집하시고 대신은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오도록 하시오.”
“네 폐하.”
고영상이 급히 멀어져 갔다.
“그래 기어이 사단이 났군. 대한제국이 가만히 있는 놈들이 아니지.
지금까지 기다린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쉽게 지지만은 않는다 이놈들.”
긴급 소집된 어전회의에는 주요 대신과 장군들이 대부분 참가 했다.
“어제밤 대한제국의 기습으로 우리가 보유한 보급 기지중 반절 이상이 불에 타 버렸습니다.
수십만섬의 곡식이 사라졌고 그 외 많은 무기와 의류품이 유실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위장교 20여명이 전사했다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입니다”
고영상은 짤막하게 지난밤에 있었던 일의 개요를 늘어놓았다.
“애석하게도 적들은 한사람도 잡지 못했습니다. 경비를 맞고 있는 책임자를 문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왕윤은 간접적으로 고영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고영상의 군대가 모든 보급품의 보급과 보관을
책임지고 있었고. 왕윤은 보급품의 조달을 책임졌다. 백성들의 원성을 들으며 보급품을 조달해
주었더니 고영상이 하룻밤 사이에 홀라당 태워버린 것이다. 열불이 날 만도 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와 식량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지키지 못한 것은 군법으로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여진족출신 장군이 왕윤을 거들고 나셨다.
“자자. 그만 하십시오. 물론 책임자들을 문책해야겠지요.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향후 대한제국과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논의해야 합니다.
고영장대신은 이번 일이 대한제국이 우리 청국을 침략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생각하십니까 ?”
회의가 이상하게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왕룡이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저들의 술책은 우리의 식량을 없애고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저희 모두 전쟁을 각오해야만 할 것입니다.”
“고영상 대신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량으로 얼마나 버틸수 있을 것 같소.
내년 가을 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냔 말이요.?”
왕윤은 책임자 처벌이 논외로 밀려나자 말을 돌렸다.
“삼십만군을 먹이기에는 부족하지 않소. 조선에 있는 우리 협조자들의 도움으로 무기도 많이
사 모아두었으니 대한제국군과 한번 싸워볼만 합니다. 내년에는 호북성을 치고 나가야 합니다.
지금도 각지에서 저희 청나라를 돕기 위해 충신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고영상을 큰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내심 불안했다. 자기가 보기에 군량미는 충분했으나
백성들이 겨울을 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모든 물산의 흐름이 막히자 청나라는
물자부족을 심각하게 겪고 있어서 예전의 대한제국시대의 생활에서 20년은 후퇴하여 있었다.
그러자 자연히 백성들의 불만이 생겨났다. 하지만 오랑캐의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모두들 꾹 참고 있었고, 그러는 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청국으로 넘어 오고 있었다.
3953년(1620) 봄
만주에 대기중인 1군 기계화 군단 예하 부대들이 사격연습을 일제히 실시했다.
열흘 계획으로 세워진 이번 연습에서는 개인당 천발이 넘는 훈련탄이 지급되었다.
“백사로 바, 이백사로. 이백오십사로”
사격통제관이 연신 마이크를 잡고 떠들어댔다. 그의 목소리에 수십명의 병사들이
사격을 일률적으로 실시했다. 만주벌판은 온통 총소리로 가득찼다.
“오늘은 야간 사격훈련이 있다. 모두들 좋은 성적을 내길 바란다.”
통제관이 주간 할당량을 다 끝내자 사격 훈련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고는
통제관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가 내려가자 각 소대별로 집결한 부대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전쟁터에 끌려가는 거 아냐 이거 ?’
갑자기 늘어난 사격훈련에 우병장은 잔뜩 겁이났다. 얼마 있으면 제대인데 전에 없던 야간 사격훈련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군대 짭밥에서 오는 경험으로 언제나 전쟁터에 투입되기 전에 사격훈련이 연일
계속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병장이 염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사냥꾼처럼 총을 어깨에 맨
우병장이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앞으로 뛰어나가 소대장옆으로 다가갔다.
“소대장님, 우리 부대가 전쟁터가 투입되는 겁니까 ?’
“왜 겁나나 ?”
우병장이 쪽팔림을 무릅쓰고 그렇다는 표정으로 소대장을 쳐다보았다.
“낸들 아나. 나 같은 일개 소위가 뭘 알겠냐 짜샤. 잡생각 집어치우고 오늘밤 훈련이나 신경써.
이번에도 우리소대가 일등하면 단체 외박은 내가 책임진다.”
소대장의 호언장담에 일순 소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제자리로 돌아온 우병장은 여전히 찜찜했다.
거의 확실했다. 천발이 넘는 자유사격은 평시에는 생각도 못하는 호강이었다.
더군다나 기계화 사단병이 이런 훈련을 받은 적은 없었다.
화북3성의 주민들에게는 십년만에 최악의 겨울을 보냈다. 심각한 물자부족과 식량부족으로
굶어죽는 이가 생겨났다. 겨우내내 계속된 천군부 특수여단의 공격은 청군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대한제국에 대한 공포심을 안겨주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그들을 잡기 위해 수천명이
동원되어 주변을 포위했지만 그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곤 했다. 백성에게나 청군에게나
가장 힘든 겨울이 지나고 대지에 봄이 찾아왔다.
“우웅웅웅웅웅”
“야 천조다 천조 !”
어린아이들이 하늘을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길가던 행인들이 모두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비행기 4대가 저공으로 날아가며 뭔가를 뿌리며 지나갔다.
하얀 눈송이처럼 날리던 것이 지면과 점점 가까워 지더니 종이쪽지로 변해 흩날렸다.
한 행인이 그걸 주어 들었다.
“대한제국민에게 고함
대명부에서는 반란군에게 자진 해산을 수백차례 권고하였으나 그들은 살길을 버리고
곳곳에서 잔악한 살생을 저질렀으며, 선량한 백성들을 착취하였다.
이에 대명부 백성들이 저 간악한 반란군에게 더 이상의 관용을 배풀지 말고 처단하길 원하니
대명부에서는 5월 1일부로 화북3성으로 진입할 것인 즉 모든 선량한 백성들은 4월 30일까지
화북 3성을 떠나기 바란다. 그때까지 남아 있는 자들은 모두 반란군에 가담한 것으로 알고 처벌하겠다.
혹 사정이 있어 떠나지 못하는 자들은 이 쪽지를 간직하고 도시나 마을을 떠나 숨어 있다가
천군에게 보여주면 선처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모두 처벌 할 것이다.
대명부 총리 마 한 길.”
똑 같은 내용의 글이 한글과 한자로 양면에 인쇄된 수천 백만장의 종이가 화북3성 곳곳에 뿌려졌다.
고영상은 전단지를 주어들었다. 그는 하늘을 나는 천조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것들이 천조에서
떨어져 내렸다면 큰일이었다. 그가 아는 바로는 대한제국의 봉황전부였고 그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놓고 있었지만 천조가 있는 지는 몰랐다. 자신들의 무기론 저 천조를 상대할 수 없었다.
만약 천조가 종이 쪼가리 대신 폭탄을 이렇듯 뿌려댄다면 자신들의 군대는 있으나 마나 였다.
“이 일을 어찌 할꼬.”
그는 뜻하지 않은 대한제국의 신무기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겨울동안 그는 조선에서 소총을 만여정이상 들여왔고 장인들을 고용하여 자체 생산한 것이
3천정이다. 그리고 대한제국군의 포를 본떠 대포도 수십문 만들어 시험하고 있었고,
앞으로 수백문까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올해에 안휘성을 공격하자고 했던 것은 이 대포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미처 천조를 생각하지는 못했다. 사실 천조의 존재는 진작부터 소문으로 떠돌고 있었지만
대명부에서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대한제국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고영상은 전단지의 내용보다는 전단지를 뿌린 물체에 대해 더 신경을 쓰고 있었서 전단지의 내용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간과해 버렸다. 4월 30일이 가까워 지자 몇몇 농민들이 화북 3성을 떠나기
시작했고 도시민들 역시 3성을 떠나기 시작했다. 점점 3성을 떠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청조정에서도 부랴부랴 그들의 이탈을 막으려 주요 길목에 군사를 배치하였지만 이미 상당수의
백성들이 빠져나간 뒤였다. 그렇지만 여진히 천만에 가까운 한족이 3성에 남아 있었다.
4월 20일
“이제 토끼 몰이를 시작해 볼까?”
요동성에 집결해 있던 1군 기계화 군단 사령관인 유금필 중장은 천군부에서 날아온 전문을
읽고 난 후 참모에게 작전명 토끼몰이 개시 할 것을 명령했다.
그의 명령에 휘하의 자동화 사단 3개와 한 개의 천포사단 그리고 독립기갑대대가 이동을 시작했다.
자동화사단은 모든 장병이 장갑차로 이동되며 각 사단마다 600대의 장갑차를 보유했다.
천마-3으로 명명된 장갑차는 200마력 엔진에 시속 50킬로를 낼수 있고
12.5미리 기관총 2정을 장착하며 완편 1개 분대를 수송할 수 있다.
천마-3의 장갑은 10미리 강판으로 소총탄과 소구경 기관총탄을 방어할 수 있다.
천군부에 두 개있는 기계화 군단은 모두 1군 소속이다.
제 1 기계화 군단은 만주에 제 2 기계화 군단은 조선에 각각 주둔하고 있었다.
모든 병력이 차량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신속한 진군이 가능했고 종심타격전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열흘 안에 하북성의 공격대기선에 도착한 후 5월 1일 0001시에 일제히 자동화사단
선서성, 하남성, 산동성을 공격하게끔 되어 있었다.
“작전참모 우리도 가지.”
유금필 중장은 군단 지휘부를 석가장으로 이동시킬 것을 명했다.
그는 앞으로 지휘차에서 밖으로 나오기 힘들 것 같았다.
그의 지휘차는 커다란 트레일러에 의해 운반되어지고 있었고 안에는 온갖 시설이 다 갖춰져 있었다.
군단 지휘부는 천군부에 3개밖에 없는 천마-10로 무장한 독립기갑대대가 호위를 맡았다.
천마 10은 최초의 전차로 105미리 포를 장착하고 30미리 장갑을 둘렀으며 천포 이외에는
적이 없는 무적의 기갑차량이다. 아직 생산량이 많지 않고 그 성능이 천포에 비해 월등하다고
볼 수 없어서 개량이 계속 진행중이다.
111사단은 대동으로 들어가 산서성을 공격하고 113사단 석가장을 출발하여 안양에서 하남성을
115사단은 덕주에서 산동성을 공격하기 위해 각 단위부대에 지정된 공격대기 지점으로 이동했다.
유금필 군단의 이동은 주야를 가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어서 그들이 각 성을 공격하기 위한 지점에
다다라 있었을 땐 청국의 수도 제남성에도 대한제국의 침공 사실이 알려졌다.
“사령관님 1기계화 군단이 토끼몰이에 들어갔습니다. 때를 같이 해서 화북 3성의 경계에 있던
의용군들이 토끼몰이에 합류합니다. 심양과 대만에 집결해 있던 천붕이 이륙을 시작했습니다.”
3군 사령관은 눈을 감고 이번 작전에 죽어갈 한족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였지만, 한족들에게 대한 제국의 힘을 확실히 보여주고
명 황실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알려줘야만 했다.
“유금필에게 적당히 하라고 해. 어차피 이번 작전은 기한이 올 말까지 않는가 ?
이번 기회에 새롭게 개발된 신무기를 시험하고 투입된 부대들의 실전 경험을 쌓으면 좋겠군.
저들이 되도록 오래 버텨줘야 할텐데 말야.
천군부에서는 화북 3성을 신무기 시험장과 병사들의 실전 훈련장으로 사용할 요량인 것 같았다.
아울러 몇 년 후 있을 유럽 침공에 대비하여 공군의 폭격 훈련도 겸하고 있어서 공군이 보유한
모든 항공기가 이번에 동원될 예정이었다. 육군은 공군의 뒤처리만 해줄 공산도 컸다.
“장관님 하지만 너무 많은 인명이 살상될 것입니다. 더구나 저들은 민간인 들입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저들은 우리의 적이야. 탄탄한 제국의 건설을 위해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우린 저들에게 화북 3성을 떠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그들 자의에 의해 그들은 남은 거야.
그 대가를 치뤄야겠지 이제는 말야. 자네는 그런 것 보다 어떻게 하면 한족이 명황실에서
완전히 멀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정신을 집중하도록 하게.
지금 내가 살인마처럼 보이겠지만 저들은 우리 조선인에게 그보다 더한 짓도 했던 놈들이다.
우리라고 못 할 것 없잖아. 너무 자책하지 말게나. 대한제국에 굴복하면 행복이 불복하면 불행이야.”
심양공군기지를 출발한 천붕-2 100대는 편대를 유지한 체 산서성 성도 태원으로 향했다.
그들은 태원을 지도에서 지워버리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5월의 푸른 하늘을 우아하게 날아다녔다.
전장 40미터에 4 개의 엔진을 장착하고 각 엔진당 2000마력을 내는 천붕-2는
각각 20톤의 액화폭탄과 폐기처분 직전에 온 구식폭탄으로 무장했다.
공군 1사단 소속 천붕 100여대가 심양을 이룩한지 5시간만에 태원 상공에 도착했다.
“사단장이다. 목표 상공에 도착했다. 이번 임무는 대단히 쉬운 임무이지만 다음 작전부터는
각 편대별로 정밀 폭격에 투입될 것이다. 작전의 성과에 따라 여러분의 진급이 결정될 것인즉
후배에게 추월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 알겠나.”
사단장이 공격 명령에 앞서 대원들을 격려했다.
“네 알겠습니다.”
통신기를 통해 100여명의 대원들이 일제히 대답을 했다.
“좋다. 1대대부터 상공에 진입하여 폭격에 임한다. 후위 편대는 주위를 선회하다
폭격을 마친 대대가 공역을 빠져나가면 진입하라.”
사단장의 명령에 1대대 10기가 태원상공에 200톤의 각종 폭탄을 떨어뜨렸다.
불과 1분도 안되어서 장착한 무기를 다 투하하고 상공을 양보하자
다음 대대가 들어와 폭탄창을 열었다.
천붕의 폭탄창을 떠난 폭탄들이 자유낙하를 하여 태원성 주변과 성내에 떨어지며 폭발하기 사작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지상은 불천지가 따로 없었다. 액화폭탄과 고폭탄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불의 향연은 지상의 모든 것들을 불로 태워버릴 기세였다.
아마도 개미새끼 한마리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또하나의 불지옥도가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만에서 출격한 공군 4사단의 천붕-1들이 정주를 공격했다.
정주역시 한줌의 잿더미로 산화되어 갔다.
3953년(1620) 5월
제남은 벌집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혼란스럽게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제남에 태원과 정주의 비극이 알려지자 제남성민들은 너도나도 피난 보따리를 싸서 성밖으로
나가려 하였으나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은 성문을 굳게 잠근 체 성문 근처로의 접근을 막았다.
“폐하. 대한제국이 마침내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그리고 우려하던 천조가 나타나 태원성과 정주성을 불태웠다는 비보이옵니다.”
고영상이 부복한 체 눈물을 흘리며 고했다.
“고정하시오. 이미 예견된 일 아니요. 이제 우리의 모든 힘을 쏟아 적들을 막으면 될 것 아닙니까?
우리 군대는 과거 명의 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해지지 않았습니까?”
주왕룡은 대신들을 격려하며 지금 사태를 긍정적으로 끌고 나가야만 했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아직 우리 군대는 건제합니다. 지금 적들은 군사를 나누어 3성을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이때 적들과 마주치다가는 각계격파 당할 수 있으니 차라리 군대를 모아 하북성을
치고 올라가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입니다.
우선 산동으로 들어온 적을 물리치고 하북성의 천진과 북경을 함락시키면 산서성과 하남성에 들어온
적과 석가장에 있는 적은 배후가 염려되어 더 이상 진격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의용군들은 크게 걱정할 것이 못됩니다. 그들은 무장도 빈약하고 급조된 군대라 군대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집단입니다.”
산동군을 맡고 있는 하후돈이 오히려 하북성을 공격하고자 나섰다. 그의 전술은 그럴싸하게 보였고
어찌보면 지금 청군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기도 했다.
“종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장군께서는 적의 천조를 어찌 해결하실 생각이십니까.
천조에게 걸리면 몰려있는 우리군은 몰살당할 수 있습니다.”
고영상이 하우돈의 전술에 보충설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가 하북성에 들어가 적들과 섞여있으면 적들은 함부로 천조를 사용하지 못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천조는 하루에 한번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전 첫날을 제외하고는
대규모의 천조가 나타났다는 보고도 없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가 천조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하나같이 정오때 나타났다 바로 사라졌습니다. 하루 종일 천조가 나타나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때만 피해 다니면 천조는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하우돈의 계속되는 설명에 모두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렇담. 청군이 성도를 비운 후 남쪽에서 올라오는 대명부 소속 군대를 막을 방도를
마련하기만 하면 되겠군요 ?”
“것은 왕윤대장군께서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왕윤장군이시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안그렇소 장군?”
주왕룡이 왕윤에게 묻자 왕윤이 급히 대답하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신명을 받쳐 받들겠습니다.”
“좋소. 그럼 고영상 장군은 제남군 이끌고 나가 덕주로 들어온 적을 물리치고 하북성 석가장으로
바로 진격해 가시오. 그리고 각 성의 군대에게 명하여 대한제국 군과 교전을 회피 우회하여
석가장으로 모이라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제남 주위에 포진했던 제남군 소속 부대가 지휘부와 함께 우성으로 향했다.
“하우돈장군 고당쪽으로 가라. 그곳에서 하북성으로 들어가 적의 후위를 교란하고 조민 장군은
우민쪽으로 돌아가라. 모두 덕주에서 만나자. 이 시간 이후부터는 독자행동에 들어간다.”
“네. 장군”
고영상의 명령에 대략 5만의 병력이 평원과 덕주를 향해 사방으로 흩어져 움직였다.
좁은 땅에 너무 많은 병력이 움직였다. 대한제국군의 115사단 병력 1만에 5배나 많은 병력이
115사단을 포위하기 위해 그물 망을 쳐왔다.
“청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유금필 중장은 석가장에 마련된 상황판에 기록되는 적군의 이동상황을 바라보았다.
“칼을 뽑았군. 다른 두성을 포기하는 건가 ? 바로 하북성으로 몰려올 생각인가 본데
115사단이 꽤 힘들어 지겠군. 115사단을 도와줄 예비대를 찾아봐”
“고성에 338사단 3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위수에 359포병여단소속 포대가 하나 있긴 있습니다만
보유장비가 구식입니다.”
“그거라도 출동시켜서 115사의 후위를 보호하도록 해야겠군. 하북 군단에 협조 좀 요청하지.”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참모장이 하북군단 사령부와 통화를 시도하는 사이 유금필은 115사단을 호출했다.
“115 사단을 불러라 통신장.”
“네 군단장님.”
통신장이 115사를 호출하자 금방 사단장이 연결되었다.
“나 유금필이야”
“충성”
115사단장 김호태 소장이 경례로 답했다.
“김호태 장군. 자네 앞에 5만정도가 깔린 것 같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말고 평안까지만 갔다가
여의치 않으면 덕주로 후퇴해 오도록 해.”
“문제 없습니다. 5만정도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적들도 만만하지만 않아. 천군부에서 무슨 생각으로 저들에게 소총을
판매했는지 모르지만 신깃 무기로 확실한 무장을 하고 있다. 매복에 걸리면 아무리 장갑차라도
당할 수 밖에 없어. 조심하라고”
“잘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자신만만하게 김호태 소장이 큰소리를 치자 유금필은 피식 웃었다.
아직 김호태는 전쟁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조금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릴 사람이었지만,
쉽게 패하지는 않을 거란 믿음도 있었다.
“자넨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우린 주공이 아니야 그냥 바람잡이라고. 잘 알고 있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잡이도 싸울 땐 싸워야죠 ?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하하하”
유금필은 호탕하게 웃고는 통신을 마쳤다.
하우돈의 부대가 고당에 도착할 무렵 115사단은 평원에 도착했다.
115사단은 평원까지 오면서 보이는 모든 마을은 모조리 불사르고 초토화 시켰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청군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115사단의 진격을 막는 것은 청군이라기 보다는 산동성북부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하천이다.
“부관 천마가 도하 가능한 수심이 얼마나 되나 ?”
“대략 일미터가 되지 않습니다.”
“장마가 오면 천마는 꼼짝달싹 못하겠군. 그전에 끝내야 할 텐데.”
김호태 소장은 몇 킬로 진격하면 나타나는 하천 때문에 고심이었다.
하천을 도하하는 중에는 기동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천마속의 부대원들을 하차 시킬수 없었다.
이럴 때 적의 공격을 받으면 상당히 위험했다.
“적들은 무거운 철마를 움직이고 있다. 하천을 넘을 때 상당히 곤란할 것이다. 우리가 적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면 싸움이 되지 않지만 지형 지물을 잘 이용하면 우린 승리할 수 있다.”
하우돈 장군은 이동중에도 어떻게 하면 대한제국군을 맞서 싸울까 그 생각 뿐이었다.
“장군. 전방에 대한 제국군이 나타났습니다.”
115사단의 좌익을 담당하는 한 개 대대병력과 하우돈 부대의 전초가 부딪혔다.
“적은 얼마나 되나 ?”
“철마가 약 50대정도 입니다.”
“철마 50대라 많군. 전초부대는 ?”
“전멸했습니다.”
“음. 각 부대장들 모아라. 2개 대대를 전방에 깔아서 적 철마의 이동을 지연시키라고 해.
한번 부딪혀보자. 도대체 어떤 괴물인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아둬야 하겠다.”
“적들은 이 길로 곧장 와서 우성으로 들어갈 공산이 크다. 우린 이곳에 매복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적을 잡는다. 포대가 없는 게 아쉽지만 충분히 적 선봉을 깰수는 있다.
하우돈이 지도를 짚어가며 각 제대별 위치를 정해주자 각 부대장들이 각자 부대를 통솔하여
본대를 빠져 나갔다.
115사단 1여단 3대대장은 청 기병 20기를 만났으나 간단히 전멸시키고 계속 남진을 해 나갔다.
대대장은 자신의 대대 전면에 기병 일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단지 우성으로 115사단 본대가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진격해야만 하는 시간과의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어서 20기의 기병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대장은 그들을 주변을 지키고 있던 지방관원 쯤으로 생각했다.
3대대 병력이 넓게 산개하여 일시에 작은 하천을 도하하기 시작할 무렵
하우돈 기병대가 반대편 언덕에 나타났다.
“전방에 대규모의 적 기병대 출현
하천을 먼저 넘어 주변의 위험요소를 정찰하던 정찰소대가 적 기병의 출현을 알려왔다.
그들의 보고가 없어도 이미 주위엔 기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대대 즉시 후퇴하여 전개한다. 정찰소대는 즉각 응사하라.”
정찰소대 천마 3대가 12.5미리 기관총을 난사했다. 천마에서 하차했던 대원들이 전방을 향해
총을 쏘면서 다시 천마주위로 몰려들었다.
“드드드드드 타타타타타탕”
하우돈의 기병대는 전방에서 교란하는 부대를 제외하고는 위 아래로 멀리 돌아
3대대의 옆구리를 치기위해 매복중이었다.
“전원 승차하라”
정찰 소대장은 적 기병대가 속도를 내어 접근해오자 신속하게 대원들을 승차시키고
천마를 돌려 하천을 다시 건너갔다.
“특특특특”
적 기병대가 쏘아대는 총탄이 장갑에 맞아 흉측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하천의 물이 얕아 건너는데 별 무리가 없었으나 그것은 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최고 속도로 밟아”
정찰소대가 하천 중간에 다다를 무렵 대대본대는 이미 건너편으로 후퇴하여
병사들을 풀어 강을 건너오는 정찰 소대를 엄호했다.
“대대 일제 사격”
47대에서 하차한 600여명의 대원들이 소총과 기관총으로 강을 건너오는 기병에게 난사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타 펑”
하우돈장군은 자신의 두개 대대가 적들에게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가 오른 손을 들자.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길게 울려 펴졌다.
그것을 신호로 사방에서 3대대를 공격하기위한 기병대가 몰려들었다.
“대대장님 완전히 포위당했습니다. 진지를 변환해야 합니다.”
“후퇴해야 합니다. 대대장님.”
대대장은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하 중 당한 기습으로
제대로 된 진지 구축이 이뤄지지 않아서 효과적인 전투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천마를 엄폐 삼아서 최대한 적의 접근을 막아라. 통신병 통신병.”
대대장은 급히 통신병을 찾아 여단 본부와 통신을 시도했다.
“여기는 3 대대다. 적의 기병대에 포위되었다. 구원 요청바란다.”
“여단장이다. 지금 위치가 어디인가 ?”
“고당에서 서쪽으로 30킬로미터 지점이다.”
대대장은 너무 급한 나머지 경례하는 것도 잊어 먹고 통신에 열중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로 상대방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지금 당장 평원으로 후퇴하라.”
“후퇴할 수 없다. 주위에 온통 적뿐이다. 지금 움직이면 전멸이다.
급히 구원군을 보내달라 얼마 못 버틸 것 같다. 이상.”
“잠시만 기다려라. 다시 연결하겠다.”
그 말과 함께 여단장은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었다.
통신이 끊기자 대대장은 머리를 숙이며 자신의 천마에서 나와 직접 기관총을 잡았다.
“다 죽어라”
그의 귓가에 적들이 쏜 총알이 휙휙 지나갔다. 작전에 투입 되기 전 상당수의 적들의 자동소총으로
무장했다는 이야길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자신들이 적을 향해 발사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적의 총탄을 경험해보니 겁이 덜컥 났다. 연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적은 일차 공격에서 무수한 사상자를 내고도 계속해서 밀고 들어왔다.
저들을 다 죽이기 전에 먼저 총알 떨어질까 걱정이었다.
“핑핑”
유탄이 날아다니고 적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점점 대원들이 적들의 총탄에 쓰러져 갔다.
전투개시 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몇 시간은 흘러간 것 같았다.
“오른쪽 측면이 심각한 피햬를 입고 있습니다. 이미 적들이 방어선을 돌파했습니다.
대대 작참이 시시각각 지원을 요청하는 중대장들의 고함소리에 대답하느라 역시 고함을 치고 있었다.
“3소대를 오른쪽에 보내고, 누가 저 기관총좀 잡아”
대대장이 가르키는 천마위에 있던 기관총 사수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펑펑펑”
연신 슈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적들이 다가와 있었다.
1여단장은 3대대의 소식을 접하자 잔여 여단 병력을 즉각 고당으로 몰아갔다.
150여대의 천마가 평원을 빠져 나왔다.
“이럴 때 제비라도 날리면 좋았을 텐데”
1여단장이 아쉬워 하는 제비라는 무기는 경항공기를 의미했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라 항속거리가 짧아 기체 테스트중 인데, 하북성 보정에 몇 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3대대가 위기에 처하자 1여단장이 급히 제비편대 출격을 요청했지만
3군사령부에서 승인을 하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1여단장의 생각과는 다르게 경비행기로는 기대할만한 충분한 화력을 지원해 줄 수 없다.
기껏해야 기총탄 천여발을 탑재하는 제비로는 5분도 적을 붙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전군 최고속도로 이동한다. 전방은 1대대가 맡는다.”
그로부터 두시간후 1여단 병력이 3대대가 전투를 치뤘던 하천가에 다다랐다.
3대대는 만신창이가 된 천마 40대와 함께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청의 기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주인 잃은 말들만이 주변을 서성이며 돌아다녔다. 주위에 청군으로 보이는 시신들 사이로
대한제국군의 시체들이 보였다. 청군은 야비하게도 대한제국군의 의복을 모조리 벗겨갔다.
팔백여명의 시신이 벌판에 알몸으로 그렇게 버려져 있었다.
3대대 천마는 온통 총탄의 흔적으로 장갑이 죽은 깨 같은 구멍이 빽빽했다.
1여단장은 3대대의 전멸을 군단 사령부에 어떻게 보고해야 될지 눈물이 앞을 가렸다.
“3대대가 전멸했습니다. 천마 9대가 적의 수중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
김호태 소장은 1여단장의 보고를 받고는 가슴이 미어졌다.
3대대와 교신이 끊어지자 어느정도 예측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천마 50대로 구성된 대대가
전멸을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사단장의 말이 들려왔다.
“전투를 하다보면 죽을 수도 있다. 우선적으로 천마를 회수하라.
여의치 않으면 파괴하고, 전투 지역을 보존하도록”
사단장의 명령에 여단장이 발끈했지만, 지금은 전쟁중이었다.
그는 급히 한 개 대대를 주변 정리에 투입하고 하우돈 기병대를 찾아 나섰다.
용케 찾으면 3대대의 복수를 해줘야 했고 무엇보다도 3대대가 잃어버린 천마를 회수해야 했다.
하우돈은 철마를 9척이나 노획하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하여 척살했다.
철마는 시속 50킬로라는 속도로 움직였고 말은 시속 60킬로로 달렸다.
하우돈은 시체와 말들의 사체들이 어우러진 참혹도를 바라보았다.
“전장을 정리하고 부상당한 말들에게 고통을 덜어줘라. 살기 힘든 자들도 고통을 덜어줘라.”
하우돈의 명령이 있기 전에 이미 곳곳에서 장병들 임의로 말들과 부상자들에게 죽음을 내리고 있었다.
주위에서 단발의 총성이 간혈적으로 들려왔다.
대충 전장정리가 마무리 될 무렵 전방에 나가 있던 부대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장군. 또 다른 철마 부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적어도 50대가 넘습니다.”
하우돈은 전령의 보고를 받으며 순간 당황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각 부대장은 부대원을 통솔하여 대한제국군의 옷을 벗겨라.
급히 이곳을 이탈하여 하진으로 이동한다. 서둘러라.”
기병의 장점인 탁월한 기동력을 살려 하우돈 부대는 1여단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그곳을 떠나 있었다. 그들은 하진에서 강을 건너 하북성으로 넘어가 다시 덕진의 후미를
칠 생각이었다. 무거운 철마를 끌고갈까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115사단은 평원에 도착한 후 한 발짝도 전진을 하지 못했다.
무너진 좌익을 1여단이 다시 복구하긴 했지만 그 틈을 타고 적 기병이
이미 후방으로 들어와 설치고 있었고 우익의 3여단도 대규모 병력과 대치중이었다.
언제 평원으로 적들이 몰려올지 몰랐다.
“군단사령부에서 덕주로 후퇴하길 권고하고 있습니다. 338사단이 고성으로 이동중이고
3연대가 고성에서 출발하여 덕주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지금 덕주로 이동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작전참모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표시한 상황판을 직시하며 사단장에게 후퇴하기를 재촉했다.
후방에 침투한 기병대의 추정 위치가 무성을 가르켰다. 무성은 고성의 바로 남쪽이여서
그들이 338사단보다 먼저 고성을 점령하면 115사단은 덕주로 후퇴하기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언제 저렇게 많은 무기가 청국에 넘어간 거야. 1여단이 조우한 병력이 모두 제국의 무기로
무장해 있고 3여단과 대치중인 적도 제국의 무기로 무장해 있다면 적어도 몇만정이
청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인데.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군.”
김호태소장은 일이 이지경이 되도록 만든 천군부가 이상했다.
이런 대량 유출은 천군부에서 묵인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마에 총안구를 임시로 설치할 수는 없나 ?”
“가능은 합니다만 그러면 하천을 도하할 수가 없습니다.”
“젠장. 우리 사단은 전격전에 어울리는 사단인데 처음부터 발이 묶이다니.
역시 숫자로 밀어붙이는 데에는 별수 없군 아무리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말야.
전군에게 덕주로 후퇴하라고 해. 3여단이 후위를 맡는다.
1여단은 지금 위치에서 무성을 거쳐 덕주로 오라고 하고 신속히 후퇴한다.”
“너무 심려마십시오 사단장님. 우리 사단이 적의 주력을 이곳에서 붙들고 있는 사이
다른 사단이 하북과 산서성을 초토화 시키고 있습니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청군의 대부분이
산동에 몰려있어서 111과 113사단은 큰 피해 없이 작전을 수행중입니다.
지금쯤이면 의용군으로 구성된 대명부 직속 부대들도 성 경계를 넘어
장악전을 펼치고 있을 것 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후퇴하는 사단과 진격하는 사단은 나중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
장병들에게 미안하구만. 그만 가자.”
338사단 특임대대가 고성에 도착한지 채 5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하우돈의 기병대가 고성을 공격했다.
고성은 그리 큰 고을이 아니라서 이렇다 할 방패막이 없었다. 대대병력이 고성에 도착해서 주변을
정리하고 뒤따라올 사단병력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수천기의 기마병이 나타나
특임대대를 공격했다. 창졸지간에 당한 특임대대병력이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타타타타 드드드드”
“탕탕탕”
말발굽과 마상에서 쏘아대는 총소리들이 사람들이 내지르는 고함소리를 묻어버렸다.
“338 나와라, 338 나와라 지금 적기병에 기습을 당하고 있다. 지원바란다.”
“지원바란다.”
338사단장은 지원을 요청하는 특임대대의 무전을 마지막으로 대대와 모든 통신이 끊어지자
안달이 났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고성에 도착하여 정지작업에 들어간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통신이 끊어졌다. 115사단 3대대와 마찬가지로 거의 전멸한 것 같았다.
특임대의 구원요청을 들은 1여단이 무성에서 고성으로 긴급히 이동했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적들은 사라지고 약 천여명의 시체들만이 1여단을 반기고 있었다.
1여단은 벌써 두번째 지옥도를 경험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봉황을 투입하는 것이 좋겠어. 적의 기습을 너무 자주 허용하고 있어서 손실이
예상외로 크군. 그런데 그놈들은 어떻게 이동하길래 우리 눈을 피하는 걸까 ?”
유금필장군은 338사단의 특임대 전멸에 상당히 곤혼스러웠다.
특임대의 전멸도 전멸이지만 적의 기병대가 고성까지 올 때까지도 그들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역시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봉황은 적의 공격에 취약합니다.”
작참이 사령관의 명령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봉황의 투입은 불가피하다. 항공대에 연락해서 봉황을 띄우라고 해.
무기 탑재를 포기하는 한 이 있더라도 밑에 장갑을 달 수 있으면 달라고 하고.
1군에 공문을 넣어서 요동에서 대기중인 136사단의 지휘권을 넘겨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3군에서는 아직 소식없나 ?”
자신의 군단이 움직이면 3군에서도 토끼몰이를 시작하기로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개전 5일 지났는데
3군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직 없습니다. 아마도 투입군의 선별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만간에 섬서성과 호북성에서 성 경계를 넘을 것이라는 전문입니다. 영화와 신양을
시작으로 지방군의 진입이 시작되면 산서성과 하남성은 한달 안에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덕주에서 적 주력을 상대하고 좌우로 338사단과 136사단을 배치한다.
136사단이 도착할 때까진 잠시 공격을 멈추고 방어전에 임한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 하우돈이 잘 하고 있군 적 이천여명을 사살했다지.
주왕룡은 산동북부에서 전해지고 있는 전황을 듣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하옵니다 . 폐하. 지금 대한제국군은 덕주로 후퇴하였고, 고영상장군이 이끄는 군과 대치
중이라 하옵니다. 하우돈장군은 적의 진공을 격퇴하고 하북성으로 넘어간다는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
“잘 된 일이야. 하우돈 장군이 적의 보급을 확실히 차단만 해준다면 고영상장군이 덕주의 적을
물리치고 석가장으로 들어갈 수 있겠군. 우리에게도 대한제국군이 사용하는 무전기가 많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왕명대신. 섬서성과 하북성은 어떻소 ?”
왕명은 말하기 난처한 듯 잠시 뜸을 들였다.
“아뢰옵기 황공하옵게도. 그 쪽은 거의 가망이 없사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로는
산동성을 지키기에도 버거운 실정입니다. 대한제국군이 지금 양 성 백성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겁먹은 백성들이 산동성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신식무기는 다 산동군에 지급되었으니. 창칼로 어찌 대한제국군과 맞서 이길 수 있겠는가 ?
통탄할 일이로다. 산동성으로 오는 피난민들에게 잘 해주시구려 그들도 다 가여운 백성이 아니요.?”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조만간 산동에서 대포가 만들어지면 적들도 함부로 산동으로 들어오지
못 할 것이옵니다.”
왕윤과 주왕룡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든 사이였으나,
대한제국이라는 외적 때문에 서로 암묵적으로 과거를 묻어두기로 했다.
115사단이 덕주에서 고영상 군대에게 거의 포위당해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하우돈의 기병이
덕주와 위수를 연결하는 왕동이라는 곳에 나타나 석가장에서 위수를 거쳐 덕주로 가는 보급부대를
급습하여 일종 보급품인 음식과 이종 보급품인 생필품류 일개 대대분을 강탈했다.
열흘사이에 3번씩이나 보급부대가 공격당하자 유금필은 펄펄뛰며 3군 사령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후방을 교란시키는 적을 섬멸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달라고 매일 항의 서한을 보냈다.
3군에서는 하북 군단 전 병력을 하북 남단으로 이동시키고 3군 휘하의 봉황 6대를 급파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종적은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공군에서는 매일 200여기의 폭격기가
출동하여 하루에 50개의 도시와 마을을 폭격하고 다녔고 때론 밀을 심어놓은 밭에 액화폭탄을
떨어트려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다.
전쟁중이라는 상황에 걸맞지 않게 오수를 즐기고 있던 유금필장군은 부관이 황급히
잠을 깨우는 바람에 잔뜩 찡그리며 전화통을 붙들었다.
“원정 위원회요. 수고가 많소 장군. 115사단과 338사단에 하북군단의 기병사단까지 투입하고도
덕주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뭔가요 장군 ?”
개전 이십일이 지났음에도 산동으로의 진입이 사실상 막히자 원정군 위원회에서
직접 유금필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아직 후방에 침투한 적 기병대를 섬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우기철이기 때문에
7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 군단의 임무는 이런 것이 아니였습니까 ?”
유금필이 작전을 상기시켰다. 자신의 부대는 결코 주공이 아니였는데
지금은 마치 주공처럼 싸우고 있었다.
“장군은 왜 포병자산을 아끼는 지 모르겠소 ?
포병이 제때 투입되었으면 평원에서 후퇴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소.”
“위원장님. 이번 작전의 요체는 토끼몰이에 있습니다.
포병사단을 투입하면 애써 몰아놓은 토끼를 흩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좋소 여름이 지나면 장군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바라오.
1군의 손실은 곧 우리 한민족의 손실이요. 그 점 명심해주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유금필은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부관 앞으로 30분후에 작전회의를 연다. 참모들을 모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도데체 기병사단은 뭐하길래 맨 날 하우돈이 꽁무니만 쫒아다니는 건가 ? 응”
대뜸 유금필은 참모들이 모이자 화부터 냈다.
“하우돈인 귀신이야 뭐야. 어떻게 수천명이나 되는 놈들을 못 찾아낸단 말야 ?
어이 정보참모 뭐 할말 없나 ?”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하우돈이는 아마도 밤에만 기동하는 듯 합니다.
아시다시피 밤에는 봉황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
“그건 그렇다 치고, 그놈들도 먹고 잘 거 아냐. 뭘 먹고 버티는 거야. 이거 환장하겠네.
무슨 대책을 마련해야 될 거 아냐 ?”
“그래서 새롭게 개발된 육상용 청음장치를 하북성 남부에 뿌리고 있습니다.
청음조에 하우돈이가 걸려들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아서 해. 장마철이 오기 전에 하우돈이를 석가장으로 잡아와.
안그러면 자네들 다 군복 벗을 생각해.”
유금필은 하우돈이라는 게릴라전의 명장 때문에 제1기계화군단 체면이 깍이자
자존심이 상해 마음이 이만저만 상한게 아니었다.
3953년(1620) 6월
개전초기에 태원과 정주를 폭격한 공군은 매일 한 차례씩 출격하여
하남성과 산서성의 도시를 폭격하고 다녔다. 개전 몇 달이 지나자 두성에 온전히 남아있는
도시는 하나도 없었고 농촌 마을 역시 성한 곳이 없었다.
무차별 폭격은 경작지에도 행해져 민간인들이 그래도 안전한 산속이나 산동성으로 흘러 들었다.
수십만의 유민은 점점 불어나 산동성의 주요 도회지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식량사정이 악화되어 민심도 점점 흉흉해져 갔다.
“청국을 지원하고 있는 한족들의 명단은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고 있지 ?”
대명부에서는 산동성북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보다는 대명부에 깔려있는 청국의 조직망과
자금책을 색출하는데 더 관심을 쏟았다. 토끼몰이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이번 작전이
실질적이 토끼몰이의 주공이었다. 청국의 재정을 압박하기 위해서 청국에 무기를 판매하고
식량사정을 고의적으로 악화시키는 등 비 인도적인 공격도 과감히 시행했다.
대명부를 책임지고 있는 서종호는 냉혈한 같은 인물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한번 그의 눈밖에 난 사람이나 지역은 그걸로 끝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잔정이 많고
책임감도 투철해서 좀처럼 냉혹한 면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대명부를 떠나 동남아나 호주로 이동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특수부 직원이 모두 이일에 투입되어 있고, 군부에서도 인력을 지원 받아 명단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대명부 전체에 걸쳐서 대략 삼만명의 명단이 작성되어 있고, 조선부나
일본부에서도 청국을 원조하고 있는 인물이 신분을 이용하여 숨어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들의 소재를 잘 파악해 놓도록. 조만간에 일망타진할 수 있도록 말야.
이번 기회에 뿌리채 뽑아버려야겠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이번 일을 책임지고 있는 대명부 총경이 자신감이 있게 대답했다.
3953년(1620) 8월 하순
고영상을 비롯한 청군은 덕주를 거의 포위한 체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나마 하우돈의 기병대가
적 후방을 교란하고 있어서 청 주력군은 큰 어려움 없이 대치상황을 지금까지 끌고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자신들만 불리해 질 수 있어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당초대로 지방군이 석가장을 공격했으면 적들도 어쩔 수 없이 퇴각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석가장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던 지방군은 대부분 대한 제국의 공습이나 제국군에 걸려
각계 격파 당하고 말았다. 신식 총으로 무장한 부대라고는 일개 소대도 안되는 그들이
구식포와 화살로 맞서기에 대한제국군의 철마는 무적이었다.
“점점 산동성 사정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백련교도를 비롯한 숨어있는 인사들의 도움도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백련교도 내부에서도 반란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각성에서 피난 오는 피난민들이 엄청난 양의 식량을 충내고 있어서
내부 치안이 불안해 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청군의 우익을 맞고 있는 조민은 덕주를 공격하길 강력히 주장했다. 청군이 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덕주를 쳐서 하북성으로 진격하는 것 뿐이었다. 언제 하남성과 강소성에서 적군이 치고 올라올 지
몰랐다. 지금은 가만히 있지만 적의 강력한 해군이 등장 할 수도 있었고, 그보다 먼저 식량난으로
인한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렇습니다 장군. 이미 제남에서 온 신식포병도 배치가 다 끝났습니다.
이쯤에서 치고 올라가야만 합니다.”
여기저기서 고영상에게 덕주를 공격하길 권했다.
“알겠소. 나도 이제 그만 적을 몰아내야겠다고 생각했소. 하우돈이 그동안 잘 해주어서 적들도
보급에 상당히 곤란한 지경일 것이요. 그리고 확인된 바로는 적들은 포병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은 오로지 천조밖에는 없습니다.”
마침내 고영상 총사령관이 덕주를 공격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들이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청군의 약점인 포병을 보충하기 위해서 였으며, 제남과 가까워 보급이 용이했고, 적을 방어하기는
쉬워도 공격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북성 남단에 광범위하게 뿌려놓은 청음기에서 수집한 소리는 중간중간에 있는 집합소를 거쳐
석가장에 있는 청음소에 모였다. 청음기는 석가장에서 덕주를 잇는 도로 축을 중심으로 집중되었고
남쪽과 북쪽에도 넓게 듬성듬성 뿌려져 있었다. 하나의 청음기는 반경 백미터의 소리를 수집했다.
“따분하구만. 미치겠네.”
하루종일 귀에 수신기를 꽂고 있는 정보대 요원들을 바라보는 청음대 대장인 나가미 중령은
보급부대가 계속 공격 당하자 청음대가 투입된 후부터 낮과 밤이 바뀐 생활에 모두들 지쳐있었다.
낮에는 정찰임무를 봉황에게 맡기고 청음대는 3직제로 운용하고 있었고, 밤에는 전 요원이 투입되었다.
나가미 중령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를 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해가 떠오르고
오늘 밤도 아무런 소득 없이 밤을 세운 것 같았다.
“대장님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요. 북경어같습니다.”
“그래 어디야.?”
하품을 길게 하던 나가미 중령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부른 요원에게 다가갔다.
새벽4시에 돌아다닐 주민은 없었다.
“진주 근처입니다.”
“어디 줘봐.”
나가미 중령이 요원의 수신기를 잡아 들었다.
“같이가자고/쉿 조용/누가 듣는다고 그래/말도 못 들었냐/ 적은 우리말을 다 듣는다고/
그걸 자네는 믿나. 어떻게 우리가 여기서 하는 말을 듣는단 말야/….”
더 이상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가미 중령이 급히 수신기를 벗어 주인에게 돌려주고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전화기를 들었다.
“나 나가미중령이다. 진주를 중심으로 반경 50킬로미터에 정밀 탐음을 실시한다.
이분마다 보고하도록.”
그의 명령은 각 지점에 설치된 청음소에 전달되었고, 정밀 탐음 지역의 청음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석가장에 주둔중인 군단사령부에도 비상이 걸리고 5분 대기조들이 출동태세를
마쳤으며, 석가장에 들어온 2318사단에 총원 전투 배치명령이 하달되었다.
2318사단은 2군소속 보병사단으로 중화기를 많이 보유한 사단이다.
그들은 분대지원하기로 12.5미리 기관총과 단발형 유탄 발사기를 보유했고, 각 중대에는 별도로
중화기 소대가 편성되어 있어서 추진탄 4발과 박격포 2문을 보유했다.
사단에는 별도의 추진탄대대 와 다연장포대 그리고 비조포대로 구성된 포병연대도 있었다.
2318사단이 보병사단에 걸맞지 않는 화력을 보유한 것은 이 사단이 새로운 무기를 시험하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일단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고 일정 수준의 실험을 통과하면 이 무기는
2318사단에 지급되어 일년동안 전술훈련을 받게 되고 훈련을 바탕으로 개량되어 각 군에 보급된다.
그 임무의 성격상 이 사단은 전원이 하사관이상이며 기술자였다. 그리고 인원도 소수였다.
나가미중령은 추가로 적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고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은 바라보았다.
허탈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명령으로 거의 만명에 가까운 장병이 새벽에 일어나
비상 경계 태세에 들어갔지만 소득이 없었다.
“수고들 했어. 3직제로 돌리고 봉황에게 어제 지점을 통보하라고.
그리고 주변에 더 많은 청음소를 설치하고. 오늘 밤에 기필고 적을 잡고 말겠다.”
나가미소령이 청음대를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그가 나가자 여기저기서 요원들이 한 숨을 쉬며 널부러졌다.
또 하루를 시작하는 밤이 왔다. 청음조들은 피곤한 얼굴로 수신기를 귀속에 집어넣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소리와의 전쟁이 점점 극을 달해 치달렸다. 나가미 소령은 어제의 아쉬움을 뒤로한 체
한성주보를 펼 쳐들었다. 대명부내란 소식과 러시아에 신항구가 건설중이라는 내용,
수에즈 운하 건설 현장에 사고가 있었다는 둥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로 신문을 가득 메웠다.
“대장님.”
나가미는 급히 신문을 접고 자신을 부른 요원을 바라보았다.
“뭔가 ?”
“드디어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낮에 뿌려놓은 새로운 청음기가 효과가 있었던지 자정이 다 될 무렵 꼭꼭 숨어있던 놈들이
청음조에 걸려들었다.
“3번도 포착”
“19번도 포착”
“저들의 포착지점을 지도에 표시해봐”
요원들이 포착된 청음기 위치를 지도에서 찾아 표시하자. 그들의 이동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뭔지 모르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약간 서두르는 듯 보였다.
그들은 최초 발견 지점인 진주에서 동쪽으로 한참이나 지난 신집 북쪽을 지나 위수와 무읍사이를
지날 것 처럼 보였다. 그들은 관도가 아닌 소로를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무슨 일이지 ! 이놈들이 이상하군. 다른 쪽은 조용한가 ?”
“아닙니다. 그동안 잠잠하던 곳에서도 징후가 포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에 발견된
집단과는 이동경로가 확연히 다릅니다. 이동 속도가 상당히 느립니다.”
“그래. 그 놈들은 또 뭐야. 어디로 움직이나.?”
“그것이 아무래도 석가장이 목표인 거 같습니다.”
한동안 나가미는 어이가 없었다. 기병은 동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보병으로 추측되는 집단은
석가장을 공격하기 위해 온다.
“어디가 진짜 그놈들일까 ? 일단은 계속 주시하고, 특이사항 발견시 보고하도록.
아무튼 대단한 놈들이야 이곳 지리를 손바닥 보듯이 꿰뚫고 있는 듯 하군.
저렇게 돌아 다닌 데도 지금까지 발견이 안되다니 존경심이 절로 생기는군.”
“꽈광. 꽈과과광”
참호선에서 한참 별을 세고 있는 병사가 날아오는 포탄에 지격탄을 맞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청군의 포대가 쏘아올린 포탄들은 대부분 고폭탄이 내재된 포탄이어서 대한제국군이 웅크리고 있는
보병들에겐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청군의 강력한 포격입니다. 거의 모든 참호에 포탄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공격할 모양입니다.”
한밤의 포격에 놀란 115사단 사령부는 사방에서 들어오는 통신을 제어하는 소리로 가득찼다.
“현재까지 아군의 피해는 ?”
“참호선에 투입된 338사단에 피해가 우려됩니다만 아직까진 큰 피해가 없습니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순 없지. 사단의 모든 천마를 출동시켜 적들을 공격한다.
각 천마당 1개분대만 탑승시키고 나머지는 정면을 지원한다.”
김호태의 출동명령이 떨어진지 30분만에 천마들이 주둔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적들이 몰려온다. 적들이 몰려온다.”
고성에서 처음으로 보병들이 얼굴을 맞대고 사격을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전체 전선에 걸쳐 적의 공격이 시작 되었다.
“사격개시”
“타타타타타타타탕”
“울타리다. 포격지원은 언제나 가능한가 ?”
“조금만 기다려라. 간다.”
“조명탄.”
대대에서 보유중인 박격포용 조명탄이 하늘높이 올라 빛을 뿌리며 천천히 하강했다.
338사단이 방어하는 참호선 앞에는 개미떼처럼 청군이 몰려왔다.
“집중사격”
곳곳에서 사격이 계속되고 청군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적들은 거의 죽음을 각오하고 오직 돌격을 위해 조직된 군대 같았다.
워낙 많은 수가 한꺼번에 밀고 들어오자 곳곳에서 방어선이 뚫리기 시작했다.
한번 뚫린 방어선으로 청군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
“제 2선으로 긴급 후퇴.”
중대장의 지시에 338사단의 한 중대가 제 2선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늦으면 포위된다. 빨리 후퇴하라.”
중대장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병사들의 후퇴를 독려했다.
“꽈과광 꽈 과과과과광”
청군의 포탄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포탄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사 359포병여단이 사격을 시작했다.
조명탄과 함께 발사된 모자탄은 지면의 모든 생명체를 휩쓸어갔다.
수차례의 포격에 적들이 우박맞은 수박처럼 머리에 구멍이 뚫리거나 팔다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갔다.
“적의 주공이 어딘지 확인되었나 ?”
김호태소장은 주공을 찾아 허리를 양단하고 적을 섬멸하고자 했다.
“정진에서 막고 있는 아군이 상당히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고성쪽과 정면은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적의 주공은 정진쪽 이라 생각됩니다.”
“그쪽은 기병사단이 빠져있으니 당연히 힘겨운거고 거긴 주공이 아닌 것 같단 말야.
너무 뻔한 수작이야. 이렇게 하지 그럼 확실히 알 수 있겠지.”
잠시후 115사단이 천마를 두패로 나누어 고성과 정진쪽으로 향했다.
“적 철마가 정면을 비워두고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고영상은 용정차를 마시며 전황을 보고 받았다. 고성쪽에 보낸 총알받이들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정진에서는 꽤 성과를 거두었다.
“앞으로 30분 후 총 공격을 실시한다. 각 부대는 공격 중지 명령이 없으면 예정대로 공격하도록.”
말을 마치자 그는 다시 찻잔을 들어올렸다.
“하우돈과 조민에게 이번 전투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 그들이 잘 해야 할 텐데…”
덕주 외곽 진지에 투입된 115사단 잔여병력은 자신들이 알보병처럼 남겨지자 투덜댔다.
“뭐야 이거. 천마를 타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완전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임무에는 3자 들어가는 사단이 제격인데.”
고참병의 말에 후임병이 맞장구를 쳤다.
“조용히해. 누가 최전방에서 떠드는 거야. 그럴 시간 있으면 전방 주시나 똑바로 해.”
분대장이 한 소리를 하며 막 참호로 들어섰다.
“조명탄과 지뢰선은 잘 연결되어 있는 지 확인해봐”
“이상없습니다.”
후임병이 잔뜩 쫄아서 대답했다.
“누구나 죽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덕주로 들어오는 길은 평지여서 주변에 산이 없었다. 그래서 야간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고
파악하기 위해 군데군데 참호를 파고 참호 주변을 경계했고 참호 주위에는 지뢰지대를 조성했다.
그러나. 좀전에 있었던 적의 포격과 한차례의 공격으로 전방에 깔아놓은 지뢰지대가 파괴되
다시 깔아야만 했다.
“피우우우우웅”
“엎드려”
노련한 분대장의 명령에 주위의 모든 병사들이 고개를 처밖고 몸을 웅크렸다.
곧이어 굉음이 들려왔고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고개를 들자 철모에 쌓인 흙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미치겠네 이거. 우리 포병대는 뭐하는 거야.”
“359포병여단은 다른쪽에 있지 않습니까 ?. 이곳에는 몇문 없다 던데요.”
떨어지는 포탄속에서 악을 쓰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전방에 심어놓은 조명탄이 터지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들어 전방을 살폈다.
“우아 개떼들이구만, 사격개시”
“타타타타타타탕”
“여기 삼넷공 전방에 숫자미상의 대규모 적 접근중. 지원 바란다.”
“삼넷공 적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
“모르겠다. 엄청 많다. 수천은 되는 것 같다.”
“최대한 저지한 후 2선으로 물러나라.”
“알았다”
통신기를 내려놓자 마자 욕부터 튀어나왔다.
“개새끼들. 지원을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저 새끼들은 전술을 아는거야 모르는거야?
미친놈들”
청군은 아군 보병들이 몰려오는데도 계속해서 포탄을 날리고 있었다.
아무도 포병을 제어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는 사이 궤도를 벗어난 포탄이 청군 중간에 떨어져 터졌다.
모르긴 몰라도 수십명이 그 자리에서 쓰려졌을 것 같은데 아무일 없다는 듯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상구야 지뢰 터트리고 2선으로 존나게 튀자.”
분대장의 말에 인계선을 연결하고 신호만 기다리고 있던 박상구 병장이 격발기를 힘껏 눌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일어나야 할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중간에 인계선이 끊어졌거나 무슨 이상이 있는 듯 했다.
박상구는 서너번 더 연결을 확인하고 눌렀으나 여전히 지뢰는 폭발하지 않았다.
“니기미. 그냥 튀자.”
분대원이 참호를 빠져나가자 분대장이 참호에 뭔가를 떨어뜨리고 잽싸게 분대원들을 쫒아 갔다.
이상하게도 뒤쪽에서는 총알이 날아오지 않았다.
참호에 들어온 청군들이 갑자기 폭발한 지뢰에 발목을 붙잡고 쓰려졌다. .
“대한제국군이 덕주 성벽까지 몰리고 있습니다. 전방에 내세운 부대의 피해가 막심합니다만
우리의 주력군은 아무런 피해 없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청군은 적의 방어선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수만에 달하는 지원병에게 칼 하나만을 달랑 내주고
돌격을 명령했다. 그들은 청국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대한제국의 총탄이 난무하는
최전방을 온몸으로 뚫었다.
10킬로미터를 전진하는 사이 수만의 병력이 몇천으로 감소하였지만 고영상은 개의치 않았다.
청국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병력이 많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여차하면 다시 수만의 지원병을 총알받이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조민군은 어디쯤 도착했나 ?”
“방금전 정면을 우회하여 덕주로 향한다는 연락입니다.”
어렵사리 구한 무전기는 겨우 50대가 넘지 않아서 최상급부대 부대에만 지급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조금 있으면 건전지가 없어서 나가서 더 이상 사용 못할 것 같았다.
“덕주 정면이 뚫려서 성벽까지 후퇴했답니다. 군단사령부에서 긴급히 통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통신장교의 외침에 김호태소장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외 모든 회선이 강제로 단절되자
한결 주위가 조용해졌다.
“김호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병력을 뺀거야. 지금 위치가 어디야 ?”
유금필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3347/2137 지점에 있습니다.”
“멀리는 가지 않았군. 거기서 지금까지 뭘 꾸물거린거야.
당장 덕주로 돌아가, 정면이 거의 뚫리기 일보직전이야. 잠깐 지금 위치가 어디라고 했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유금필중장은 통화중에 말을 끊었다.
전화선 반대쪽에서 뭔가를 논의하는지 시끌 벅쩍 거렸다.
“지금 위치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우회에서 덕주로 귀환해.
그 쪽에 일단의 기병이 나타났다니까. 뒤에서 뭉개버리고, 지금쯤 적 포병도 움직이고 있을 테니
그놈들도 처리해. 덕주에서 해뜰때까지만 버텨.”
“알겠습니다.”
김호태소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사단전체에 무선을 연결했다.
고성과 정진쪽으로 향했던 부대는 정면에서 그리 멀리 가지 않고 노랗게 익어가고 있을 밀속에
숨어 대기중이었다. 김호태소장은 적의 주공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을 기만하고
적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덕주를 미끼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제 적의 주공이 들어 난 이상 뒤에서 차근차근 밟으며 지나가면 되었다.
“전 사단은 현 지점에서 다시 돌아간다. 보이는 모든 적을 섬멸하라. 기다리던 복수의 시간이다.
적들에게 우리 사단의 무서움을 보여주기 바란다. 앞만 보고 달린다. 가자.”
사단장의 명령에 고성쪽으로 움직인 천마 삼백대가 합류하길 기다렸다가
10열횡대로 넓게 포진하며 덕주로 달려나갔다.
황하 북쪽은 대부분 평원지대라 천마가 움직이기에는 안성맞춤이었고
더군다나 경작지도 천마의 기동에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굳어있었다.
“차간 간격을 50미터 내외로 하고 전진.”
덕주성 바로 밑까지 밀고 들어온 청군은 잠시 공성전을 위해 진영을 가다듬었다.
후미에 있던 포대들이 이동해와 방열을 시작했고, 전방 돌격을 맡은 부대원들이 준비를 했다.
“조민군이 정진을 함락하고 적 기병대와 대치중입니다.
하우돈 기병대가 30분후면 조민군과 합류할 것 으로 보입니다.”
고영상은 거의 이번 전투를 승리한 것이라 생각했다.
적 철마는 고성과 정진에서 조민군의 뒷꽁무니만 쫒아 다니고 있을 것이고, 덕주가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돌아올 때쯤이면 이미 덕주는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전투개시 후 지금까지 청군 삼만이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소모품이었다.
“포대가 완료되었습니다.”
전령이 와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100문의 포대가 덕주성을 향해 불을 뿜을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대한제국의 포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꽤 쓸만한 포여서 사거리가 무려 오천보나 되었고
고폭탄을 쏟아 낼 수 있었다.
“시간에 맞춰서 방포하라고 해.”
115사단 부사단장은 어서 사단장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금 전방에는 족히 수만은 되어 보이는
청군이 기관총사거리 밖에서 공격을 위한 진영을 갖추고 있었다. 더군다나 적에게는 포병이 있었다.
지금 덕주에 있는 포병은 불과 359포병여단의 한 개 포대밖에 없었고 그나마 조명탄을 쏘아
올리기에도 바빠서 전방을 지원해 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다시 후미에서 기병사단이 적과 조우하여
전투에 들어갔다. 덕주는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듯 보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단장은 한시간만
버티라고 주문했다.
“피우우웅 꽝꽈광”
적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적 포탄은 처음에 성벽을 때리더니 점점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터졌다.
“최대한 엄폐하라. 사젹 명령이 있을 때까진 절대로 발사하지 마라. 탄약을 아껴라.”
일선 중대장들은 각 소대를 하나하나 호출하여 챙겨나갔다. 지금 덕주를 지키고 있는 병력은
잔여 115사단병력과 338사단의 2개 대대가 전부였다. 지금까지 병력소모는 많지 않았으나
탄약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었다. 청군은 인해전술을 구사하며 대한제국군의 총알을
기하급수적으로 소모시켰다.
“치이치치치치”
적의 포격이 계속되는 와중에 하늘에서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조명탄이 천천히 낙하되었다.
“봉황이 왔다. 봉황이 왔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렸다. 지금 떨어지고 있는 조명탄은 분명히 봉황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분명했다. 야포에서 쏘아올리는 조명탄은 이런 밝기를 낼 수 없었다. 일순 전방이 환해졌다.
낙하산을 매단 조명탄이 서서히 낙하하며 주위를 밝혀주었다.
“포대에 연락해서 조명탄 빼고 산탄으로 교체해서 대 포병사격을 요청해.”
부사단장의 명령에 부관이 급히 포대를 호출해 대포병 사격을 요청했다.
봉황에서는 자신이 떨어뜨리고 있는 조명탄 때문에 아래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적 포병의 위치는 발사섬광으로 정확히 집어내 포대에 좌표를 불러주었다.
“피우웅 꽈 광 꽝”
고영상은 갑자기 들려온 포탄소리에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자신의 포대가 위치한 곳으로 탄이 유폭을 이르켰는지 연속 폭발음이 들렸다.
“적에게 포병이 없다하지 않았나 ?”
“그렇습니다. 지금 쏘는 포병은 소규모입니다. 보십시오. 달아오는 포탄의 수가 상당히 적습니다.
아마도 4문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이대로 가다간 우리 포대가 다 날아가겠다. 아무래도 좀더 뒤쪽으로 빼야되겠어.”
“지금 포대를 이동시키면 돌격을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또다시 포탄이 날아와 청군의 포대 한 개를 날려버렸다.
“잠시 늦춘다. 빨리 포대를 사거리 밖으로 이동시켜.”
청군의 포병대는 진지 변환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머뭇거리면 언제 적 포탄이 날아와 자신을 덮칠지 몰랐다.
하지만 청군이 돌격을 잠시 미루고 포대를 뒤로 후퇴시킨 후 다시 포격을 시작했을 땐,
115사단 천마 육백대가 청군의 후미에서 20로미터지점을 막 통과하고 있었다.
불과 30분 거리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
“돌격대 돌격.”
청군의 돌격대가 덕주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모하리 만치 죽음을 불사하는 청군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대대 사격하라. 사격하라.”
적이 400미터 안으로 들어오자 대한제국군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
적진지에는 포탄이 떨어져 내렸다. 덕주성도 청군의 포탄에 성벽이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었다.
“지독한 놈들. 아예 시체로 방벽을 만들면서 오는구만.”
“탕. 또 한놈 넘어온다. 탕”
이미 청군은 성벽앞까지 다다라서 성벽을 타고 넘기 직전이고, 성벽에 배치된 병력이 뒤로 후퇴했다.
“꽈꽈꽈꽈꽈꽈꽈꽝”
그때 작은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성벽 밑에 깔아놓은 지뢰가 터졌다.
청군의 포탄에도 살아남은 지뢰들이 청군의 돌격대에게 피해를 입혔다.
“슈류탄 준비. 투척”
다시한번 성벽 밑으로 수백개의 슈류탄이 굴러 떨어져 내렸다.
언이어 폭음이 들리고 성벽아래에는 시체로 가득 찼다.
“타타타타타타타.”
다시 무너진 성벽을 확보한 대한제국군은 청군의 총알세례를 받아냈다.
적의 주력이 드디어 모습을 나타낸 듯 보였다.
“사격하라. 사격하라.”
여기저기서 장교들이 사병들에게 사격을 명령했다. 주위로 총알이 스치듯 지나쳤다.
불과 이십여분만에 돌격대 대부분을 소모한 청군은 전장에 정규군을 투입했다.
그들은 돌격대가 피로 만들어 놓은 개척로를 따라 돌진해 들어갔다.
청군들이 사격을 하며 돌격하자 적의 사격이 뜸 해졌다.
순식간에 500미터를 달려온 그들은 성벽으로 치달리기 위해 잠시 숨을 골랐다.
그들 주위로 여전히 대한제국군의 포탄이 간헐적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위협을 줄 만큼
위력적이지 못했다. 주위의 어둠이 약간의 위협마져도 가져줬다.
“돌격.”
한 장교의 외침에 엎드려 있던 청군 병사들을 몸을 세우고 달려 들기 시작했다.
“젠장 사격”
이미 양군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이미 빠른 곳은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월등한 숫자를 앞세운 청군이 노도처럼 밀려들어왔다.
“덕주가 함락 직전입니다. 3연대가 성벽을 넘었다는 보고입니다.”
고영상은 보고를 들으며 흐믓해 했다. 잘하면 적 2개사단을 전멸시킬 수 있을 것 처럼 보였다.
이미 퇴로는 조민 기병과 하우돈 기병이 차단하고 있었고 대한제국군은 덕주성 시가지에서
시가전으로 맞섰지만 대세를 바꾸기에는 힘들어보였다.
그들이나 자기나 마치 항복을 모르는 전멸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었다.
“장군 큰일 났습니다. 포병대가 적에게 전멸했습니다.”
갑자기 뛰어든 전령이 온몸에 피칠을 하고 막사에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야 적이라니. 뭐 전멸이라고.”
“그렇습니다. 후미에 철마부대나 나타났습니다. 수천대는 되어 보입니다.”
제대로 셈을 하지 못하는 전령은 셀 수 없이 많은 수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으나 그 의미가
와전되어 청군 지휘부엔 말 그대로 후방에 수천대의 철마가 나타났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로 수천대가 나타났단 말이냐 ?”
“포병대가 제대로 반항 한번 못하고 순식간에 전멸당했습니다.”
동문서답을 한 전령이 쓰려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적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포병대가 전멸하였고, 후위에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쿠쿠쿠쿠쿠쿠”
디젤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저새끼들 미친 거 아냐.?”
석가장을 지키고 있는 2138사단장은 청음조에서 보내져오는 적의 위치를 보고 받으며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겁도 없이 청군이 자신들 정면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연장포대에 알려서 적 후미를 날려버리라고 해”
사단장의 간단한 명령이 즉각 다연장포대대에 하달되자 포대가 보유한 다연장포 25대가 지정좌표로
200미리포탄을 날렸다. 15킬로를 날아간 200발의 포탄이 석가장으로 몰려드는 날파리들의 머리위로
떨어져 주변을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해가 나올려면 얼마나 남았나 ? 부관 ?”
상황판 조작에 여념이 없던 부관은 사단장의 고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해뜨는 시간말야.?”
“네. 앞으로 한시간 남았습니다.”
“한시간이라 한시간만 잘 버티면 되는 건가 ? 덕주가 위험하다던데….”
“전진, 전진 주위를 둘러볼 것 없다. 계속 전진.”
115사단 소속 천마가 적의 포병대를 완전히 뭉개 버리고 덕주 성벽을 타고 넘었다.
3킬로미터정도 펴져서 청군의 후미를 뚫고 진격한 천마가 시가전을 벌이고 있는 청군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나온 곳에서는 아직도 청군이 몰려들었다.
“사단장님. 유금필 사령관님이십니다.”
한창 신나게 지휘차를 이끌며 시간전을 하고 있던 김호태소장이 급히 수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충성”
“좋았어 잘 하고 있구만. 조금 있으면 해가 뜰 테니 잔여병력을 태우고 위수로 후퇴하도록하게.
전방에 적 기병대가 지키고 있으니 기병사단과 협조해서 잘 빠져 나오도록.
해뜨기 전에 덕주를 빠져나와야되. 명심하게 통구이 되지 않으려면.”
3953년(1620) 가을
“관제탑. 1번기 준비완료. 2번기 완료”
“오른쪽 1번기부터 출격하라.”
충청도 공주에 있는 비행장이 여명이 밝아 오기전 부터 굉음을 울리며 창공으로 비상하는
천붕들로 부산했다. 간밤에 있었던 덕주 전투로 가장 가까운 공주비행장에 비상이 걸리고
공주비행단소속 조종사들이 완전복장으로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
동쪽하늘이 밝아오지도 않았는데 성급한 관제탑은 비행단의 출격을 지시했다.
우아한 천붕들이 땅을 박차고 열개의 정상 활주로에서 떠올랐다.
몇 분안에 50대의 공주비행단소속 비행기들이 떠올라 상공에서 편대를 유지하지도 않고
서쪽으로 향했다.
“비행단장이다. 황해를 넘는다.”
2138사단의 비조포대가 비조를 날리기 위해 어둠속에서 바삐 움직였다.
비조포대와 추진탄포대에서 보유한 무기는 모두 장사정 로켓트탄이다.
비조가 좀더 멀리 날아가는 개령형이다.
비조가 날렵하게 생긴 것에 반해 추진탄은 볼록하게 생겼다.
탄 안에는 수백개의 자폭탄이 들어 있어서 넓은 지역에 화력을 투시하기에 적합했고,
비조는 주요 목표지점을 공격하기에 적합했다.
지금 비조포대가 목표로 하는 것과 같은 임무는 추진탄포대에 안성맞춤이었지만 사거리가 모자랐다.
“거리와 풍향 잘 계산하고 예상 탄도비행거리를 뽑아서 가져와.”
포대 대대장은 각 포반장들이 제출한 것을 꼼꼼히 검토한 후 몇몇을 수정하여 보냈다.
“준비 완료 되는 대로 보고해.
대대장의 검토를 거친 용지를 들고 반장들이 자신의 포대의 각을 수정했다.
각 포대의 발사대가 수분만에 발사준비를 마치자 차례대로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대대장은 발사전 사령부로부터 발사명령을 재확인 한 후 외쳤다.
“발사 5분전.”
거리가 워낙 멀어서 얼마의 오차가 발생할지 아무도 몰랐다.
상공의 바람은 수시로 바뀌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탄착점이 바뀔 여지는 많았다.
동쪽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고, 덕주는 이미 해가 뜰 시간이었다.
오를 듯 오를 듯 하던 태양이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려는 듯 떠올랐다.
“발사.”
그의 명령에 비조 20발이 발사대를 벗어나 동쪽에 떠 있는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비조 20발은 비조 포대가 보유한 모든 비조였고. 다시 비조를 날리려면 보급을 받아야 했다.
이미 비조는 떠났고 더 이상 자신의 할 일이 없어진 대대장은 약간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잘 가는구나. 발사대를 접고 철수한다.”
하북의 기병 사단은 하우돈사단을 맞아 숫적 우세를 앞세워 전선을 유지했었다. 하우돈사단의
진행은 이미 알려졌기 때문에 그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지만 조민 사단은 그렇지 못했다.
조민 사단이 우측을 파고들자, 하북 사단이 차츰차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야간은 기병대에겐 보병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동성은 전투에서 변수가 되지 못했다.
“사령부에서 후퇴하랍니다. 115사단과 혼성으로 후퇴하라는 전문입니다.
이미 고성에서는 후퇴가 시작되었답니다.”
사단장이 한창 적들의 침입을 막느라 정신 없을 때 사령부에서 후퇴명령이 떨어졌다.
그들 후위는 이미 적에게 유린당하고 있었고, 전방은 적 기병대가 길목을 차단하고 버티고 있었다.
“어디로 후퇴하라는 거야 ?”
“왕동으로 후퇴하랍니다.”
“어디 ?”
“확인합니다. 왕동입니다.”
“그게 후퇴인가 ? 돌격이지 !”
사단장은 어이가 없었다. 왕동을 가려면 적 기병대를 뚫고 가야만 했다.
그들에게 후퇴란 돌격 명령과 같은 의미였다.
“20분후 115사단 병력이 3290지점을 통과합니다. 서둘러야 우리도 115사단과 합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오인사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작전참모가 서둘러 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하우돈 부대원들은 모두 대한제국 복장을 하고 있었고 무기도 같았다.
하우돈의 부대와 처음 마주쳤던 하북 기병 사단의 한 개 중대가 이 사실을 알아내는데 소모되었다.
“전 병력은 즉시 전투를 중지하고 3290지점으로 신속히 이동한다.
예비대는 먼저 이동하여 지점을 확보하도록.”
115사단이 사단 잔존세력과 338사단 병들을 태우고 급속히 덕주를 빠져 나와
기병사단과 합류예정지점으로 달려나갔다. 덕주 시가전에서 제법 많은 병사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죽어서인지. 천마 수용 공간은 여유가 있었다.
“피우우웅”
115사단 머리위로 비조들이 날아가 덕주에 떨어져 내렸다. 곧이어 폭발음이 들리고 땅이 흔들렸다.
“빨리 가자. 저 놈들은 눈먼 봉사야.”
비조가 연이어 날아오자, 사단장은 이동 속도를 더욱 높혔다. 얼마나 비조가 날아올지 몰랐지만,
지금 자신의 위치가 결코 안전거리를 확보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천마의 강력한 맷집도
비조에 대하면 종잇장처럼 아무것도 아니었다.
천마들을 뒤쫓던 청군들이 때아닌 폭격에 발걸음을 멈추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115사단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밤새 진행된 전투에서
한번도 보급을 받지 못한 것이다. 덕주에 있던 무기고며 유류고는 고스란히 청군들에게 넘어갔다.
“차장님 기름이 얼마 없습니다. 기관총탄도 얼마 없습니다.”
“아껴 써 임마. 왕동까지만 가면 된다. 기름 떨어지면 걸어서라도 가야한다.”
왕동에 도착하기전에 몇십척의 천마가 기름부족으로 정차해 버리자.
병사들이 천마를 파괴하고 걸어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산동반도를 넘어온 공주비행편대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덕주로 향했다.
앞에 비행단장과 선도기를 내세우고 8렬로 편대를 이룬 50기의 천붕이 빠르게 서쪽으로 날아갔다.
심양과 대만에서 천붕이 출격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들이 올때까지 적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봉황나와라. 봉황나와라. 공주비행단이다.”
수십번 호출에 봉황이 나왔다.
“지옥에 온걸 환영한다. 봉황이다.”
“우린 동쪽에서 진입한다. 공역을 지정해 달라.”
“공주비행단은 090에서 진입하여 110으로 380/289지점에서 기수를 바꾼 후 폭격코스로 들어가라.
땅개들이 엄청 우굴 대고 있다. 싹 쓸어버려라.”
“알았다. 이상”
자신의 포위망을 벗어난 대한제국군을 쫒고 있던 하우돈은 자신이 큰 실수를 범한 걸 깨달았다.
이미 주위는 환하게 밝아 있고 하늘엔 봉황이 떠서 자신들을 내려다 보고있었다.
이젠 숨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서둘러 대한제국 기병대와 섞이던가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밤새 달려온 자신의 부대는 지칠 대로 지쳐 있어서 어느것 하나 여의치 않았다.
주위엔 자신의 부대와 조민 부대를 숨길만한 산도 없었다.
“우우우우웅 쇄에엥.”
갑자기 하늘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커다란 천붕이 내리꽂아 내리더니
갑자기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뭔가를 떨어뜨렸다.
“꽈과과광”
순식간에 하우돈의 부대 선두에 떨어진 폭탄에 수십명의 병사와 말이 함께 날아갔다.
곧이어 다른 천붕이 똑 같은 방향으로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렸다.
“흩어져라 뭉쳐있으면 죽는다.”
청군 기병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대한제국군은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살아보겠다고 난리를 치는 구만. 대충 시간을 벌어준 것 같으니 뿌리고 돌아가자.
흘린 놈들은 심양 편대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비행단장은 편대를 고공으로 올려 폭탄창을 열고 일시에 모든 폭탄을 떨어뜨렸다.
40여대가 한꺼번에 폭탄을 떨어뜨리자 사방으로 흩어지던 청군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만 가자”
공주비행대가 서해를 건너고 있을 무렵 심양편대가 봉황의 유도에 따라 적 기병대를 추적하여
공격하였다. 그들은 거의 속수무책으로 쓸어져 갔다. 심양편대보다 한시간 가량 늦게 도착한
대만 편대는 덕주에 들어온 적 주력 머리 위에 폭탄을 퍼부었다. 덕주의 폭격으로
대한제국군이 미처 파괴시키지 못하고 남겨둔 탄약고와 유류고가 폭발하여 주변을 삼켰다.
“정말 엄청난 놈들이었습니다”
조민장군은 새벽녘에 있었던 적의 공격에 치를 떨며 하우돈장군과 함께 터벅터벅 말을 끌고
덕주성으로 향했다. 그들 주위엔 성한 병사가 하나도 없는 듯 보였고 숫자도 많이 줄어 있었다.
덕주성에 들어간 본대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침이 오니 몹시 허기가 졌다. 밤새 전투할 때는 몰랐는데 이겼는지 졌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전투가 끝나고 나자 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들은 덕주가 자신들이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음날 왕동에서 한 숨을 돌린 제1기계화 군단은 제115사단과 338사단을 후방에 남겨놓고
그 자리를 2138사단에 맡겼다. 아울러 화북 3성의 경계성과 화남성에서 조직된 의용군을
전면에 배치했다. 청군은 덕주에서 오만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고 진격을 멈추었다.
제남에 있는 군대를 동원하면 적을 추적할 수 있을 지 몰랐으나
산동에 연일 가해지는 천붕의 폭격으로 군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일년여 가까이 자신의 기항을 잃어버리고 황해 함대 모항인 상해에서 더부살이를 하던
청도분함대소속 전 함정이 해병사령부 소속 함대와 함께 청도 앞바다에 나타났다.
해병사령부는 마땅한 상륙훈련처를 모색하다가, 육군도 도와줄 겸해서 청도를 훈련장소로 택했다.
이번 훈련에 참가한 해병 3사단은 실전과 같은 화력 지원속에서 청도항 시설을 온전히 접수해야만 하는
난제를 부여 받았다. 모조리 부수고 빼앗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부수지 않고 적 군항을
접수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침투조들은 적 해안포대의 위치를 완전히 파악하여 보고했나 ?”
3사단장은 하나 하나 훈련상황을 확인해 나갔다.
훈련은 이미 5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5일전에 3사단소속 수색대대가 청도에 투입되어
적 진지와 예상이동로를 사전 답사하고 항공폭격과 함포를 유도하기 위해
분주히 좌안과 우안을 돌아다녔다.
청도항은 호로병 모양을 하고 있는 천연의 항구로 입구를 출입하는 수로가 협소한 반면
안에는 상당히 넓은 해수호를 연상케하는 지형을 가졌다.
하지만 강력한 함대가 입구를 지키고 있으면 단 한 척도 항구를 빠져나갈 수 없는 약점도 있었다.
“항공폭격 요청.”
해병사 소속 비행기가 함대를 선회하다 지정된 위치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지나갔다.
양안에 동시에 불기둥이 연이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상륙해안으로 다연장포 발사.”
갑판에 거치된 다연장포가 발사되고 다시 해안가가 불타 올랐다.
“1여단부터 상륙을 시작한다.”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는 양안을 향해 전장 200m, 폭 32m, 높이 20m, 최대 적재 흘수 6.5m,
만재량 이만톤에 팔천마력 엔진 4개를 장착하고 20노트의 속도를 자랑하는 수송함이 활발히 움직였다.
일만 마일을 항해할 수 있는 해병사 최고의 자랑인 장갑수송함 서울급 1번함인 1121함에서
천마한대와 병력 15명을 싣고 나온 소형 수송정이 롤러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바다에 빠졌다.
금방이라도 침몰할 듯 불안하게 몇번 휘청거리더니 복원성을 회복하곤 해안가를 향해 나아갔다.
200대의 천마가 1121함을 다 빠져나오자 이번엔 천포가 빠져나올 준비를 했다.
병력수송함인 183함에서 빠져나온 병력을 가득채운 수송정이 해안가에 먼저 다다르기 시작했다.
“연막탄 발사.”
이번 함대의 기함인 547전투함의 함교에서 상륙을 지휘하며 전방을 망원경으로
응시하는 장교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1298지점에 적 화력점 포착. 지원바란다.”
이쪽에서 연막탄을 뿌려대고 있을 때 우안으로 접근하던 병력이 적의 해안포 공격을 받았다.
물론 가상이였다. 청군이 아직까지 남아있을 지 의문이었다.
“1298지점으로 1분간 포격.”
함장의 명령에 547전투함의 포가 분당 3발의 포탄을 지점으로 날렸다.
잠시후 관측병이 적 포대가 제압되었음을 알려왔다.
“1여단이 해안가에 도착합니다.”
청도를 수비하고 있던 수비병력은 원래 대대급이었나, 덕주 전투의 피해를 보충하기위해
두개 중대가 착출 되어서 겨우 2개 중대가 청도 반도를 관할했다. 급히 민병을 모아
대대급의 인원을 채우긴 했지만 화기를 보유한 부대는 본부 중대가 유일했다.
그것도 채 100명이 되지 않았다. 대대장 황용구는 대한 제국 함대가 청도 앞바다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급히 대대에 전투준비를 시켰다. 아주 짧게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남으로 전령을 보냈다.
전화를 이용하면 좋으련만 전신/전화 시설은 진작에 파괴되었고
청국에는 파괴시설을 복구할 기술자가 없었다.
“대대 출동준비가 끝났습니다.”
부관이 들어와 보고했다. 그의 얼굴도 상기되어 있었다. 원래 대대 주둔지는 고밀이라는
곳이었으나, 대한제국군과 전쟁이 벌어지면서 적의 함대가 청도로 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청도에서 가까운 교주에 대대본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적절한 배치였지만, 주둔군이 너무 적었고 무기도 빈약했다.
“얼마나 많은 제국군이 쳐들어 온 것인지 ? 적의 의도가 뭐라고 생각하나 ?”
“거대한 철선 수십척이 목격되었다면, 족히 만명은 넘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우리 병력으론 어림없는 일이지.
우린 저들에게 길거리의 돌부리 역할도 하지 못할 거야. 안그런가 ?”
“그렇지만 달리 수가 없지 않습니까 ?
명령도 없이 후퇴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
황용구는 의미 없는 죽음이 싫었다. 부관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에게는 후퇴명령을 기다릴만한
시간이 없었다. 일단은 청도로 가면서 생각하기로 하고 황용구는 말에 올라탔다.
“가자”
황용구를 선두로 대대원이 질서 정연하게 길에 들어서 해안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황용구가 주진지에서 불과 100미터 전진했을때 공기를 가르는 총성이 들려왔다.
“텅텅텅텅텅”
다섯발의 총성과 함께 황용구를 비롯한 부관 그리고 선두에서 말에 올라탄 사람들이
뒤로 허리를 꺽으며 확 넘어졌다. 황급히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연사음이 들려왔다.
“타타타타타타”
총알이 땅바닥을 헤집고. 청군의 몸통을 꿰뚫었다.
그들은 매복해 있던 수색조에 걸려 우두머리를 모두 잃어버렸다.
제남은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다. 덕주성을 되찾았다곤 하지만 수만명이 다쳐서 불구가 되거나
죽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는 천붕 때문에 산동성은 전체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계속된 전쟁으로 산동성의 경제는 파탄 나고 식량부족이 갈수록 심화되어
하루에 한끼 먹기도 힘들었다. 들판에는 한창 수확하는 농부들로 가득찰 때지만
노랗게 익어가던 농작물은 천붕의 폭격으로 불타 버린 지 오래였다.
공부 안채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군의 후속부대가 산동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하고, 청도가 이미 적들에게 넘어갔습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를 뒤에서 도와주던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황도주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공부에 모인 황도주 일파는 청국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청국의 사정은 그들의 역량을
벗어나 있었다. 이미 고영상의 재산도 탕진되었고 주왕룡이 가져왔던 보물들도 식량과 무기를
구입하는데 다 소모했다. 청국은 이제 빈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그나마 외부에서 도와주는 힘에
의해 근근히 버텨가고 있었는데 그것 마져도 힘들어지고 있었다.
“대한제국의 천붕이 또다시 대량으로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대한 제국민으로 돌아오라는 회유를
권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매일 정오에 우리에게 무조건 항복하라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항복한다고 해도 저들은 우리를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모양이 우습게 되었습니다.
당초목적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너무 쉽게 화북3성을 얻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었지요.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황도주는 1억 한족의 마음에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한 목숨희생 하기로 한 초심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건 이제 어려운 일입니다. 저들이 지난 일년동안 얼마나 우리를 비방했습니까 ?
실제로 그렇기도 하구요. 이제 백성들은 우리를 믿지 않을 것 입니다. 우리가 백성들에게 해준 것이
고통과 배고품을 빼면 무엇이 있습니까 ? 민란이 일어나지 않은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죠.”
지방의 행정관들을 감독하는 감찰사를 맡고 있는 공밍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사동하나가 급히 들어왔다.
“몸을 피하십시오. 천붕이 이리로 날아옵니다.”
천군부에서는 미뤄온 공부와 공묘, 공림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한족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
이곳만은 후대에 남겨두려 하였으나 생각을 바꿔 곡부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기로 한 것이다.
곡부마을 위를 한차례 선회한 편대가 액화폭탄을 떨어뜨리곤 북쪽하늘로 사라졌다.
총 8개의 폭탄이 지상 40미터상공에서 외피를 걷어내곤 고농축 액화가스를 공중에 뿌렸다.
미세한 분말이 연무처럼 마을 전체와 공부, 공림 주위를 감돌더니 순식간에 화마로 변해 주변을
휩쓸어버렸다. 목조건물에 불이 옮겨 붙어 활활 타올랐다.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으나
온통 불바다여서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11월초에 유금필장군은 자신휘하의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제남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2138사단과 115사단이 덕주를 공격하자 때를 같이하여 하남성에 집결해 있던 의용군 이만명이
유성을 거쳐 제남을 향해 동진을 시작했다.
이 의용군은 과거 개봉시 시장을 했던 등소평이 맡고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하남성을 떠나온 그가
복수의 칼날을 휘드르며 하남서과 산서성을 휩쓸어 버리며 마침내 산동성으로 진입했다.
그는 한족이면서도 누구보다도 명황실과 그에 빌붙어 살던 대신들을 미워했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농민들, 후명과 청의 폭정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 또는 대명부에서 제안에
혹해 모여든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선발된 의용군 이만명은 후미에 강력한 장갑사단의 지원을
받으며 제남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에게는 청의 왕과 청에게 협조한 자들을 잡아들이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한족들로 한족의 반란을 진압한다는 대내외 선전 효과를 노리는 노림수로 천군부에서는
의용군을 이용했다.
이번 작전은 지난번과는 다르게 단시일 안에 제남을 함락시키기 위해 기동성을 최대로 발휘해
각 부대는 산동성 경계를 넘은지 단 이틀만에 제남 외곽까지 111/113사단 병력이 의용군과 함께
달려왔다. 그들의 진격을 막는 자들은 왕윤의 부대가 전부였으나 천마들은 그들을 무시했다.
그들이 진격에 방해를 받은 것은 오히려 하천이었는데 만약 호북성과 호남성에 있는
공병단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면 몇 일이 걸렸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내일 아침 0600까지 천포사단의 모든 화력과 2138사단이 보유한 포대를 총 동원하여
제남을 포격할 준비를 완료하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라고 해.”
유금필중장은 제남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야전 군단사령부에 옮겨진 지휘차량에서
천천히 저녁을 먹었다.
“아무래도 항복요구를 요청하는게 어떻겠습니까 ?”
내일아침에 일어날 대량 학살을 막기위해 참모가 적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지만
유금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받은 명령은 포로획득이 배제된 토끼사냥이었다.
“저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내버려 둬. 작참은 야간 기습에 신경 써 경계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포격이 끝난 후 바로 의용군을 투입시킨다.”
“네 알겠습니다. 장군님.”
제남성주위는 각지에서 몰려온 군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몰려 있었지만 밀려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도
날려버릴 듯한 포격이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꽈 꽈 꽈 광”
천포에 이어 2138사단의 포대에서도 사격을 시작했다.
천포가 청군의 방어선에 집중되었다면 2138의 포대들은 제남성 깊숙한 곳으로 탄을 날렸다.
새벽녘에 아침을 든든히 먹은 대한제국군에 비해 아침준비도 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포탄을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청군들의 다리에 힘이 빠졌다.
대한제국군의 포격은 처음 일제 포격이후 10문씩 짝을 지어 거의 점심때까지
산발적으로 계속되었다. 의용군이 아직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봉황에서 알려주는 좌표대로 쏟아지는 포탄 때문에 청군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쉬지않고 계속되는 포격은 천붕의 폭격보다 더 큰 공포를 불러이르켜 청군을 거의 반 미치게끔
만들었다. 그들은 반격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덜덜 떨면서 구석에 쳐박혀 죽어갔다.
청국 왕궁 상공에서 추진탄 대여섯발이 터졌다. 그 속에 있던 자탄 수천발이 지상으로 쏟아지면서
주위를 초토화 시켰다. 공중폭격탄과 위력이 거의 비슷한 추진탄은 사거리 30킬로미터를 자랑하는
장사성 로켓탄이다. 다연장보단 길고 비조보단 훨씬 사거리가 짧았다.
이번 공격에서 비조포대보다는 추진탄포대가 훨씬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이 추진탄은 이번 임무를 끝으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천군부에서는 비조의 생산과 개량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위해서 어정쩡한 추진탄은 이번에 제고를 다 소모하기로 한 것이다.
“이걸로 청국도 개국 일년만에 끝나는 것인가 ?”
주왕룡은 지난 일년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난날 명이 망하고 다시 명을
재건하기위해서 산속을 누비고 다녔던 옛 동료들은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다.
왕명, 여진족장의 몇몇 후예들과 대신들이 천도를 주장하며 부복하고 있었지만
그는 또 한번 패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 이제 오십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다시 훗날을 기약할 기력도 시간도 없었다.
청나라의 개국은 명의 충신들을 한곳에 모아 고스란히 대한제국에게 받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난 일년동안 청의 대신들은 대한제국의 충실한 꼭두각시 놀음밖에
한 것이 없었다. 통탄할 일이었다.
“부끄러워 하늘을 볼 수 없구나. 명의 열성조들을 죽어 어찌 뵈옵는단 말인가 ?”
주왕룡이 굵은 눈물을 흘렸다.
“폐하 소신들을 죽여주시옵소서.”
무릎 꿇은 대신들이 목놓아 소리쳤지만 주왕룡에겐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그대들은 각자 살길을 모색하라. 저들이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니 어서 나가도록 하여라.”
“폐하. 아직 끝난 것은 아니옵니다. 아직도 우리를 믿는 백성들이 있고 피해를 입지 않은 군대가
건재하옵니다. 잠시 몸을 피하신 후 후일을 기약하시옵소서.”
왕명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고하자. 모든 대신들이 그러기를 간청했다.
“그러하시옵소서 폐하.”
“이보시게 대신들. 내 어찌 그대들의 충정을 모르겠는가 ? 하지만 무엇으로 저들과 싸운단 말인가 ?
우리는 시기를 잘못 선택했네. 대신들은 각자 살길을 찾고 훗날을 기약하게.
그때는 우리 후손들이 우리들이 저지른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
그럴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살아 남아 한족의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단 말이네.
그래서 50년, 100년 아니 300년 후에라도 다시금 일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야.
시간이 없으니 어서들 어서들 떠나시게. 저들은 날 필히 잡으려 할 것이야.
난 그대들을 위해 저들의 미끼가 되겠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게나.
이제 우리 한족은 깊은 잠에 빠져들거야 그리고 언젠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오늘의 비극을 잊지 않도록 해주시게나. 이것이 내가 그대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네.
주왕룡은 이 말을 끝으로 대전을 나갔다. 궁 이곳 저곳이 불이 붙어 불타고 있었고,
하늘은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찼다. 그는 잠시 어디로 갈까 망설였지만 이제 마땅이 갈 곳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이리라.
‘만약 자식이 있었다면,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천대를 받으며 일생을 불행히 살았을꼬’
“그래 저자거리로 가서 백성들에게 내가 있음을 보여주자.
그들에게 우리 한족의 기상을 그들의 아이들에게 자자손손 전하라 하자.”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자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명의 재건이라는 무거운 짐과 삶에 대한 애착을
벗어버린 주왕룡은 청태조이자 마지막 왕이 되어 제남성 저작거리에서 백성들과 함께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 궁을 나섰다.
등소평 부대는 111사단 소속 천마의 지원을 받으며 마침내 제남성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아침나절부터 시작된 포화에 성내 곳곳은 화마가 휩쓸고 다녔다.
“가자. 이 잡듯이 뒤져 청국 대신들을 잡아들여라”
제남성에 들어온 이만의 의용군이 각 소대로 흩어져 성을 훑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민들이 자신들에게 고개만 들어도 가차없이 베어버렸다.
반항하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았다.
주왕룡이 왕궁을 나가 본 것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들이 나타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십여명의 의용군들이 집집마다 들락거리며
선량한 백성들을 시뻘건 칼을 들고 쫒아다녔다. 주왕룡의 눈에 핏물이 흘러내렸다.
“뭣들하느냐 1소대는 저놈들을 당장 척살하라”
주왕룡을 늘 곁에서 보호하는 왕궁 경비 중대장 마소량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왕명이 없었음에도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의용군을 향해 발포를 명령했지만,
주왕룡은 그를 나무랄 겨를이 없었다.
“탕탕탕”
수십발이 총탄이 날아가 십여명의 의용군과 길거리의 백성들을 뚫고 지나갔다.
“윽. 적이다. ”
약탈에 정신이 팔려있던 의용군은 자신들의 몸이 총알에 관통되고서야 적이 나타난 것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몸을 숨길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마소량의 중대에서 날아오는 일제사격을
견디지 못하고 쓸어졌다.
“가자. 적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고 죽는다.”
마소량이 부대를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주왕룡은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의용군과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한족이었으나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시대에 태어나 같은 자리에 누워 있었다.
“마소량. 내게 총한자루만 빌려달라. 내 죽어서 갚으리다.”
주왕룡이 마소량을 불러 세우자. 마소량이 자신의 총을 내밀었다.
총을 받아든 주왕룡은 개머리판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색실들을 뜯어냈다.
그러자 대한제국 마산 총기창에서 만든 것임을 알리는 ‘마총’ 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들어 났다.
“가자”
등소평은 자신의 부대가 청 왕궁으로 다가가는 길목에서 적의 치열한 저항에 부딛쳐
한 발작도 전진하지 못하자 울화통이 치밀었다. 이제 조금만 전진하면 제남성 전체를
장악할 수 있었는데 적 잔당들이 왕궁을 중심으로 몰려 있어서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우회해 간 놈들은 어찌되었나 ?”
“연락이 안됩니다. 막 왕궁에 접근한다는 소식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항상 등소평을 따라다니던 통신병이 소리쳤다.
“이백명이 몰살당했다는 거야 ? 저들은 그럴만한 병력이 없다. 계속해서 불러”
“응답이 없습니다. 수십번 불렀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등소평은 그 쪽에 뭔가 있다는 직감이 몰려왔다. 이미 적들은 제남성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의용군 이백명이 몰살시킬만한 병력이 아직까지 성내에 남아있다면
분명히 뭔가가 그곳에 있었다.
“군단 사령부를 대라”
“네 사령관님”
잠시후 군단 사령부 지휘부가 연결되고 유금필 장군이 통신망에 들어왔다.
등소평은 얼른 통신기를 붙들었다.
“충성. 등소평입니다.”
“수고가 많소. 그래 무슨일이요”
“아무래도 천마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현 위치로 천마 한 개 중대만 보내주십시오
전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조심하게”
“충성”
통신을 마친 등소평은 자신의 부대중 가장 훈련이 잘되고 무장도 확실한 예비 대대를 이끌고
아군 몰살지역으로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이 직감이 지금처럼 요동친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대어를 낚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왕궁을 향해 달려오던 의용군 이백명을 순식간에 전멸시킨 마소량중대가 성 중앙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주왕룡이 함께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여기저기서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던 패잔병들이 하나둘 모여서
순식간에 병력이 오백이 넘어서고 있었다. 마소량은 갑자기 늘어난 부대를 재편하고 임시로 중대장과
소대장을 임명한 후 성내로 들어온 의용군소대들을 하나씩 제압해 나갔다.
“멈춰라”
왕궁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제남성 대로를 따라 전진하던 마소량부대가 등소평대대와 정면으로
부딛혔다. 등소평의 고함소리에 전진하던 마소량부대가 순식간에 주변으로 흩어졌다.
등소평은 적의 숫자가 많음에 일단 놀랐고 그들중에 주왕룡 있음을 알리는 왕궁기가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등소평은 더 이상 무모한 싸움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가 확성기를 들고는 소리쳤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항복하라”
“네 이놈 너는 한족이면서 어찌 오랑캐 편에 서서 우리에게 총칼을 겨누느냐 ?
대세가 기울었을 지 모르나 한족은 영원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무릎을 끓고 너의 용서를 빌어라 이놈”
주왕룡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져써 주위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집어삼켰다.
“하하하 너야 말로 한족의 역적이 아니더냐 네 이놈 주왕룡아 그래 네가 세우고자 했던 나라가
고작 이런 것이더란 말이냐?. 그 잘난 너희 놈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굶주림에 고통받다 죽
어갔는지 아느냐 ?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너희 그 잘난 놈들 입맛을 맞추려고 죽어갔는지 아느냐
말이다. 긴말 필요 없다. 순순히 항복하면 목숨만을 살려주겠다. 당장 무릅을 꿇고 항복하라”
주왕룡의 목소리에 지지 않으려는 등소평은 목소리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집어 넣었다.
주왕룡과 등소평의 대화속에서도 양편의 병사들은 서로를 겨눈 채 사격명령을 기다렸다.
“민족을 배신한 저놈을 내 기필코 죽이리라. 사격 개시”
“사격개시”
마침내 마소량이 휘하 병력에 사격을 명하자 양쪽에서 거의 동시에 총탄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마소량이 가지고 있는 총알이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미 제남은 115사단 천마가 난입해 들어와 점점히 저항하던 청군들을 차근차근 밟고 다녔다.
“폐하. 더 이상 총알이 없사옵니다. 여기서 그만 생을 마감할 가 합니다.
못다한 충성 내세에서라도 마치겠나이다.”
마소량이 무릅을 끓은체 울음을 터트렸다. 주왕룡이 마소량을 이르켜 세웠다.
총격전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저쪽에서 쏘지 않으니 등소평도 사격중지를 명령했다.
어차피 시간은 등소평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곳에 가만히 있어도 적들의 후미엔 이미 천마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어서 저들이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우린 최선을 다했소. 난 부끄럽지않소. 이제 여기서 이만 끝냅시다.”
“들어라. 충성스런 청의 군사들이여. 우린 열심히 싸웠다. 난 항복하여 개처럼 사느니
적들의 총탄을 하나라도 더 소모시키고 여기서 죽겠다. 나와 같이 죽을 자는 나서라”
“제가 같이 가겠나이다. 폐하”
주왕룡의 말이 끝나길 기다린 마소량이 소리쳤다. 그러자 마소량의 부하들이 모두 소리치기 시작했다.
“고맙다. 가자. 돌격”
“와아아아아아”
“탕탕탕탕”
제남성에서 마지막까지 대한제국에 저항하던 주왕룡을 비롯한 마소량중대는
단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그렇게 죽어갔다.
대로를 가득 메우며 달려오던 그들은 길을 붉은 피로 물들이며 쓰러졌다.
“지독한 놈들”
“가서 주왕룡의 시신을 잘 수습하거라. 그래도 일국의 왕이셨던 분이시다.”
등소평은 왠지 모를 씁씁한 감정에 휩싸여 죽어있는 오백여명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첫댓글 감사해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