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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 때 서울광장 사용에 영향력 미쳤을 개연성 매우 커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법적 투쟁의 선봉에 서 있는 동성애자 김조광수 감독(51, 청년필름 대표)과 임종석 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각별한 운동권 선후배 관계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 행보가 주목받게 됐다.
한국교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에 열린 동성애자와 동성애지지세력들의 퀴어축제에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하고 이를 철회하지 않고 버틴 배경에 임 부시장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을 개연성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는 심증이 설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조광수 감독은 현재 헌법에 명시된 양성 위주의 전통적 결혼관을 무너뜨리고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하기 위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지난 7월 6일 첫 재판이 열렸다. 김 감독의 법적 싸움에 동성애자들과 진보측 인사들 특히 인권 변호사들이 단합된 힘을 보태고 있어 현재 진행 중인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결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위키백과에 소개된 김조광수 감독의 이력 ⓒ위키백과 캡처 |
2015년 6월 27일자 위키백과 사전에 소개된 김조광수 감독의 본명은 김광수. 51세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김 감독은 학창시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문화국에서 활동했다. 당시 한양대 총학생회장이자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종석 전의원(새정치민주당, 현 서울시 정무 부시장)과는 이 때 엮어진 각별한 선후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감독과 임 부시장과의 관계에 대해 위키백과 사전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85년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 그는 시위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감옥'이냐 '군대'냐의 선택을 강요당했고 끝내 입대를 택했다. 그는 "군대 시절은 운동의 휴식기이자 성적 에너지가 분출해 동성애적인 성향이 만개한 시기"라 한다. 배속지는 최전방이었던 강원도 철원군 6사단으로 게이 성향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여자가 없는 군대는 그에겐 오히려 '천국'이었다. 졸병 시절, 자신과 성적 취향이 비슷한 하사, 병장과 '삼각관계'를 맺기도 했다 한다.
1988년 28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으며, 1988년 복학하였다. 89년 그는 인문대 학생회장이 됐고, 이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한양대 지회의 간부가 되었다. 당시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이자 전대협 의장인 임종석의 별명은 '임길동'. 그는 임수경의 방북을 진두지휘할 만큼 정부를 골탕먹였다. 수배령이 내려지고 귀신 같이 숨어 다닌 임종석을 잡지 못하자 경찰은 인문대 학생회장인 김조광수를 '거물'로 착각하고 체포에 혈안이 됐다. 이때 김조광수는 잠적한 임종석을 대신해 기자회견을 준비하다가 그는 끝내 경찰에 붙잡혔다. 결국, 판사에게 장문의 반성문을 제출하고 풀려났다. 이후 10년만인 1998년 졸업하였다. 풀려난 이후 영화제작소 청년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린 것은 1994년으로 영화제작소 청년에 있으면서 후배들에게 "난 동성애자야"라고 털어놨다. 그러자 "형, 원래 그거 아니었어"라며 오히려 알고 있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피터 김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도 한 김 감독은 2004년 7월 3일자 <오마이뉴스>에 임종석 의원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형식의 글을 게재했다. 이 편지 글에서 김 감독은 먼저 자신에 대한 소개와 임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띄우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저는 <청년필름>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광수라고 합니다. 제가 임종석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띄우는 것은 전대협 3기 의장이었던 임종석 의원이 더 이상 불의의 편에 서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임종석 의원이 한양대총학생회장을 역임하였을 때, 한양대 인문대학생회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대협 6기 문화국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임종석 의원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투쟁했던 한 사람으로써 임종석 의원이 정의의 편으로 돌아오길 기대하면서 그리고 이런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공개편지를 띄웁니다. 이글은 단지 임종석 의원 개인에게만 전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전대협 출신' 혹은 '386출신' 국회의원들 중에서 파병에 찬성한 분들 모두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그분들이 다시 '우리의 동지'로 돌아오길, 부끄러운 국회의원으로 남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랍니다.”
편지글에서는 김 감독은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임종석 의원을 향해 “사랑하는 후배 종석이에게” 라는 표현을 쓰며 선배가 후배에게 따끔한 충고와 사랑의 권면을 하는 막역한 관계임을 나타냈다. 김 감독이 쓴 글을 소개한다.
사랑하는 후배 종석이에게
종석아. 15년 전, 넌 구국의 강철 대오 전대협의 의장님이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많은 국민들과 백만 청년학도가 너를 아끼고 존경했으며 나또한 그랬다.
기억하지? 밤새워 토론하고 학생회관 구석에 쪼그리고 잠을 청했던 수많은 날들을 말이야. 전대협 의장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뛰어 다니며 백만 청년학도의 가슴에 투쟁의 불길을 지펴 올리던 너의 모습이 선하구나.
나는 네가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너무 기뻤다. 진심으로 기뻤다. 나뿐만 아니라 너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기뻐했고 축하를 해주었지. 너는 나의, 아니 너를 믿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너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훌륭한 국회의원이 되어 “역시 전대협 의장이야”라는 칭찬을 받기에 충분했다.
특히 네가 이라크에 전투병을 보낼 수 없다며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며 단식농성을 했을 때는, 안쓰러운 얼굴을 보는 건 가슴 아팠지만 정말 뿌듯했었다.
그런데 오늘 난 너에게 독한 말을 해야겠다. 이건 나의 후배 종석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열린우리당의 대변인인 임종석 의원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
종석아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만큼은 막아내자. 명분 없는 침략 전쟁에 우리 군인들을 보내지는 말자. 지금 이라크에서 미군과 연합군이 벌이고 있는 수많은 만행을 알고 있잖니?
이라크인 민중들의 절규는 우리가 한 목소리로 외쳤던 “반전반핵 양키고홈”과 다르지 않고, 베트남전쟁에서 한국전쟁에서 미군에 의해 학살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와 같아.
종석아. 난 너를 믿는다. 너의 조국과 민중에 대한 사랑, 반전 평화 정신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월요일 뉴스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 반대는 물론이고 파병 철회를 위해서 뛰고 있는 너의 모습을 기대할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그런데, 그런데 만약, 네가 최근에 보여준 모습처럼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파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한다면 난 너를 계속 지지할 수 없다. 아니, 너와 싸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나라와 이 나라의 민중들, 그리고 이라크민중들 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동지 임종석에게 다시 한번 간절하게 바란다. 네가 우리와 같은 편에 서서 정의를 위해 싸워주기를 말이야. 훗날 우리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너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줄일게.
2004년 7월 3일. 임종석을 사랑하는 선배 김광수
김 감독의 편지글의 영향 때문인지 임 의원은 석달 후인 10월 19일 "전투병 파병이 가져올 감당할 수 없는 국가적 재앙을 막기 위해 미력하지만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밝히고 “정부가 대규모 전투병 파병을 결정하고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면서 파병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었다.
▲ 김조광수 감독이 임종석 당시 국회의원에게 보낸 편지 ⓒ친구사이 캡처 |
임 의원의 이와 같은 행동은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 그리고 소신에 따른 행동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김 감독의 편지글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 감독의 이념과 사상, 가치관이 임 의원과 서로 처한 상황은 달라도 보이지 않는 어떤 선으로 연결고리를 갖고 있으며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해 보인다.
이처럼 김 감독과 막역한 선후배 관계인 임종석 부시장은 지난 2000년에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성동구 지역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국회에 첫발을 내디딘 후, 새천년민주당 청년위원장과 제17대 대통령선거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이어서 제17대 국회의원에 재도전하여 당선된 후 열린우리당 대변인,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 열린우리당 간사,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대통합민주신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에 실시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통합민주당 후보로 세 번째 도전장을 냈으나 낙선함으로 국회의원 빼지를 반납한 후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을 잠시 맡아 수행하다가 지난 해 6월, 박원순 서울시장에 의해 서울시 정무부시장 자리에 앉게 되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발간하는 신문인 <노동과 세계>는 지난 해 6월 12일자 보도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석인 정무부시장에 임종석 전 의원을 내정했다.”면서 “임 부시장은 당시 6.4 지방 선거 때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에서 총괄팀장을 맡아 활동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무부시장은 시장을 보좌해 국회·시의회·언론·정당과 서울시의 업무를 협의하는 직위로, 시장이 임명하는 지방정무직(차관급)이라고 동 신문은 설명했다.
이는 박 시장과 임 부시장과의 관계가 어떠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임 부시장의 직위와 그 직위에 따른 역할로 인해 갖는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정계와 의회 언론 그리고 서울시 업무를 아우르는 마당발 역할을 하도록 임 부시장에게 권한이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7월 3일자 <뉴스1> 보도에 의하면 임종석 부시장은 현재 서울과 평양간의 소통을 위해 종합적 남북간 도시교류 정책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경평축구나 서울시립교향악단 평양 공연 등 문화체육 이벤트를 넘어선 폭넓은 내용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여기서 임종석 부시장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건을 하나 소개한다.
임 부시장이 전 열린우리당 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A 씨가 2005년부터 삼화저축은행에서 매달 3백만 원씩 3년간 1억 원 가량을 받은 사실로 인해 검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이때 임 부시장은 “지금껏 저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지만 저로 인해 빚어진 일인 만큼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 팩트(사실)를 속일 의향도, 방법도 없다.”며 관련 사실을 시인한 후, “제 보좌관이 그 돈을 받아 전당대회(2006년) 등에 사용했고 그가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를 지낸 사실도 들었다.”며 “A 씨는 1원 한 푼 다른 곳에 쓸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모두 저의 책임”이라고 A 씨의 문제를 자신이 끌어안고 A 씨를 감싸며 두둔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의 보좌관 A 씨는 임 부시장의 학생운동권 선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임 부시장의 인간성에 비추어볼 때 지난날 전대협에서 함께 학생운동을 펼쳤던 김조광수 영화감독과의 친밀한 선후배 관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학창시절부터 맺어온 두 사람의 이와같은 친밀한 선후배 관계는 메르스로 인해 대부분의 행사들이 취소되던 상황 속에서도 6월 9일 서울광장에서의 동성애 퀴어축제 행사가 승인되도록 한 요인으로 작용되었지 않았겠냐는 의혹의 눈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퀴어축제행사 시 문영란 서울시 인권위원장의 노골적인 동성애지지 발언 역시 문 위원장의 친동성애적 소신과 함께 임 부시장과의 인간적인 관계들로 엮어진 요인들도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퀴어축제 행사와 퍼레이드를 강행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김조광수 감독과 연결된 이와같은 인맥들의 영향이 없었다고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한기총(대표회장 이영훈 목사)과 한교연(대표회장 양병희 목사)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퀴어축제 행사를 보이콧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던 박원순 서울시장 뒤에는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문영란 서울시 인권위원장, 그리고 임 부시장과 친밀한 현역 의원들과 동성애를 지지하는 언론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국교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지지 행보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박 시장 뒤에 버팀목처럼 서 있는 임종석 서울시정무부시장과 문영란 서울시인권위원장 같은 사상적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지난 6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동성혼 심문기일이 끝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조광수 감독은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리미티드 파트너쉽>에 대해 언급하며 “영화 속 동성부부가 합법적 부부가 되는 데까지 37년이 걸렸다. 반동성애 단체에서는 동성애자의 수명이 평균 30년이 짧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에게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면서 “내가 죽기 전에 합법적인 부부가 되도록 힘써 달라.”고 호소했다고 <시사타임즈> 권은주 기자가 전했다.
권 기자는 김조광수 감독과 동성부부라는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도 “법정에서 성소수자로 살면서 힘들었던 것을 증언하면서도 힘들었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22번째로 동성결혼이 합법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내용을 함께 보도했다.
두 사람의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동성혼 합법화를 위한 두 사람의 의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동성혼 합법화라는 두 사람의 강력한 희망과 이를 위한 투쟁은 동성애 지지자들과 인권단체들은 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오랫동안 이념적 사상적 공유를 함께 나누어온 학생운동권 동지들의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어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지지세력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오랫동안 전략과 전술 등을 온 몸으로 단련된 숙달된 조교들이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아마추어적 사고방식이나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는 이른바 냄비근성으로 접근했다간 크게 후회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지난 5월 23일자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이 떴었다.
“막장도 이런 막장드라마는 없다. 전대협 출신이자 임수경을 북한 김일성에게 보낸 국가보안법 위반자이자 전국 수배범이었던 임종석이 서울 부시장이고, 임수경은 민주당 (비례)국회의원이다.”
그렇다. 비록 세월은 흘렀어도 지난 날 “군부독재정권과 제국주의자”의 타도를 외치며,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외세 배격, 독재 종식, 평화통일, 민중과의 연대, 학원 자율화 등을 천명하며 온 몸을 불살랐던 이들이 지금도 포기하지 않은 사상적 토대 위에서 공동의 어떤 목적을 향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에게 부여되어진 힘을 전략적으로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본다.
그 한 예가 현직 국회의원에게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라며 언론을 통해 노골적으로 압박한 김조광수 감독과 이를 온 몸으로 실천해 보인 임종석 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사례이다. 이는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닌 사상적 동지로서의 특별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둘의 막역한 선후배 관계는 동성혼 합법화를 위한 김조광수 감독의 투쟁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 김조광수 감독의 소송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차세대바로세우기 학부모연합 |
아울러 김조광수 감독과 학창시절부터 이념과 사상을 함께 공유해온 동지들과 김 감독 주변의 인물들, 그리고 임종석 부시장과 임 부시장과 친분을 맺고 있는 일부 인사들이 잠재적 동성애지지 세력으로 함께 동참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론은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동성혼 합법화를 위한 김조광수 감독이라는 거함이 이러한 지지 세력을 등에 업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해 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이 싸움에서 한국교회가 얼마나 이를 잘 막아낼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임종석 서울 정무부시장에게 사실 확인을 위해 전화를 했으나 회의중이라며 문자를 달라하여 취재취지와 통화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기다렸으나 답이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임 부시장의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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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자녀들에게 영원까지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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