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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조차 기도로 들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시2-107)
2026년 5월 5일 (화요일)
찬양 : 목마른 사슴
본문 : 시 107:1-43절
☞ https://youtu.be/mX54CBM3VgM?si=8yR4rSt7ElEHytzt
오늘은 어린이 날이다. 다음 세대의 자녀들이 여호와를 알고 찬양하는 세대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또한 우리 자녀들이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경건한 자녀를 낳아 세워가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부터는 시편의 5번째 책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제 5권은 '포로 귀환 이후의 회복과 찬양'에 초점이 있다. 그 첫 번째 시작인 시편 107편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자들이 각기 다른 고난의 현장에서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네 가지 상황을 들어 설명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감사하라고 요청한다.
첫 번째 고난은 이렇다. 4-5절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두 번째 고난은 이렇다. 10-12절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려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세 번째 고난은 이렇다. 17-18절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네 번째 고난은 이렇다. 26-27절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이렇게 고난을 기술하며 각 단락은
<여호와의 인자하심(헤세드)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라는 후렴구로 끝내고 있다.
이것은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보다 강할 수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맨 마지막 절은 이렇게 마친다. 43절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내 눈을 멈추게 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이 네 가지 고난의 다양함과 다르게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전에 이들이 보인 공통점이다.
6, 13, 19, 28절이 그것이다.
<근심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고 그들 모두가 부르짖었다는 고백이 나온다.
우리 말로는 동일한 단어이지만, 본문의 히브리어로는 이 단어들이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6절과 28절로 여기는 ‘차아크’라는 히브리어로 광야에서 길을 잃었을 때와 바다의 광풍을 만났을 때 사용된 단어다.
이 단어는 <비명 지르다, 울부짖다>란 의미로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원초적인 외마디 비명과 같은 소리다. 하나님은 이런 소리조차도 인자하심으로 기도로 들으신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13절과 19절은 히브리어 ‘자아크’다.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다른 단어로 이것은 흑암에 갇혔을 때와 죄악으로 병들었을 때 사용된 단어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공적으로 호소하다’란 뜻이다.
그러니까 앞의 단어가 본능적인 비명이라면, ‘자아크’는 공적인 도움의 요청이란 말이다. 왕에게 도움을 청할 때 사용하거나 재판관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때 사용한 단어다.
그러므로 두 번째 단어는 자신의 고통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외침이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를 전혀 다르게 보지 않으시고 비명을 지르든, 공식적인 호소든 즉각적으로 건지셨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비명같은 기도를 들으시며 그 인자하심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시편 107편 9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9절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시편 기자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분이라고 먼저 고백한다.
여기 사모한다는 것은 광야에서 길을 잃은 자들이 물을 찾아 헤매는 절박한 갈망을 말한다.
이들은 신앙적 자격이 있는 자가 아니라
갈증을 견디다 못해 비명을 지르며 하나님밖에 찾을 길 없어 외치는 자들이다.
이들을 만족하게 하시는 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란 고백이 오늘 아침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사모하는 영혼이란 더 잘하고 더 간절한 영혼이라는 추측성 해석을 했던 나다.
말씀을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내가 하나님을 오해했음을 회개하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자격없는 자가 외치는 부르짖음에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말씀한다. 겨우 살려달라고 외쳤을 뿐인데 하나님은 영혼의 깊은 갈망을 아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 즉 구약의 핵심인 헤세드의 실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기도를 요청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어떻든 진실로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의 눈물을 닦으시며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분이심을 이 아침 묵상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좋은 것은 인간이 소망하는 그것이 아닌,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선한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인도하시며 그 쓰심에 합당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주님을 부르지 않는 자들 즉 주님이 필요하지 않고, 자기의 욕망을 따라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40-41절
‘여호와께서 고관들에게는 능력을 쏟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시나 궁핍한 자는 그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을 양 떼 같이 지켜 주시나니’
우리 하나님은 시편 107편 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달아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된 삶으로 살아가라 하신다. 혹 그 일로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어떤 말 못할 상황이라도 비명이라도 부르며 하나님을 찾으면 그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들으시고 건지시겠다고 하신다. 할렐루야 ~
이 아침, 겸손히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랑, 그 긍휼하심, 그 능력, 그 지혜 ~
나를 돌아보는 아침이다. 나의 부르짖음은 목사로서 더 나은 기도, 더 간절한 기도, 더 많은 기도가 되려고 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율법적으로 쌓여져 버린 내 모습을 발견하며 어린아이처럼 그저 주님을 찾는 그런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된다. 주여, 이 종의 비명을 들어주소서.
한줄 묵상 :
<비명을 지르는 내 속의 외침도 듣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라.>
적용 질문 :
1. 당신의 인생에서 '세련된 기도'가 아닌, 물에 빠진 자처럼 터져 나왔던 본능적인 비명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나요?
2. '사모하는 영혼'이 '열심히 하는 영혼'이 아니라 '갈급하여 헤매는 영혼'이라면, 현재 당신의 영적 갈증은 어떤 상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