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영화에서 인생을 배운다. 지금도 종종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본다. 함께 갈 때는 재밌는 영화지만 혼자 보는 영화는 주로 독립영화다.
오늘은 예전에 본 <길>이라는 영화를 회상해 보련다. 세 명의 노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노년을 살아 가는 일상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김혜자, 송재호, 허진,,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모두 명배우다. 한 명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극중에서 이름이 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송재호는 첫사랑을 못 잊고 노년에도 그 애틋한 추억을 자주 회상하는 역이다. 빵집을 하면서 보청기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한다.
허진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사는 낙을 잃었다. 틈틈히 약국에서 수면제를 사서 모으며 죽을 궁리를 하는 할머니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배우는 김혜자다. 배우의 우열이 아니라 오늘 내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김혜자는 70대 노인으로 생활고와는 거리가 먼 부자다. 당연 노후 걱정은 없고 매일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가 걱정이다. 자식들은 모두 외국에 있어 고급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특별히 속을 썩이는 자식도 없는 평온한 노후다. 행여 자식이 보고 싶어 꾀병으로라도 아들, 나 몸이 안 좋네, 하면 다음 날 비행기로 득달같이 달려올지도 모르는,,
그녀는 심심해서 하루가 길다. 주변 사람을 만나도 별로 재미가 없다. 우아한 삶을 살았기에 섞이고 싶어도 수준이 맞지 않아 금방 싫증이 난다.
연락 오는 곳은 없지만 스마트폰을 자기 몸의 일부처럼 끼고 산다. 방금 본 손주 사진을 또 보고, 몇 번을 들어 갔던 사이트(카페?) 다시 들어가 물끄러미 바라 본다.
느리게 가는 하루를 위해 혜자는 매일 가전제품 하나씩을 고장 낸다. 어제는 세탁기, 오늘은 에어컨 이런 식이다. AS 기사가 오면 시종 말을 건다.
가전제품을 수리하러 온 젊은 기사가 혜자는 너무 반갑다. 혜자는 계속 말을 건네고, 듣고만 있기 미안했던지 기사가 예전의 경험담으로 무심코 말을 한다.
"접때, 할 일 없는 노인네가 말이죠." 이렇게 말해 놓고는 총각은 아차 한다. 수습할 방법이 없어 난감한 기사에게 혜자는 상냥하게 말한다.
"맞아요. 할 일 없는 노인네라 그러는 거예요." 혜자는 극구 사양하는 기사에게 밥을 먹고 가라며 기어이 밥상을 차린다.
별 수 없이 젊은 기사는 밥을 먹으며 할 일 없는 혜자의 말동무가 된다. 기사가 생일이라는 걸 알고 케이크까지 내온다. 마치 준비한 것처럼 외로움 달래는 방법이 철저하다.
기사는 빨리 먹고 다음 장소로 가야 하는데 혜자는 맞은 편에 앉아 이것도 먹어 봐라 이 반찬 정말 맛있다 등 신이 나서 떠든다.
기사가 돌아 가고 혜자는 다음엔 무슨 가전제품을 고장 낼까 궁리를 한다. 이 행동에 대한 내 생각은 추한 외로움보다 맑은 외로움 쪽으로 기운다.
혜자는 인터넷 검색을 한다. <가전제품 고장 내는 방법>,,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혜자의 일상은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평소 갖고 있던 노인에 대한 생각을 젊은 기사가 무심코 내뱉은 말처럼 혜자는 정말 할 일 없는 노인네인가.
나처럼 먹고 살기 위한 노동으로 하루가 모자란 삼류 인생은 그렇다치고 늙을수록 뭔가에 빠지거나 중독된 취미가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혜자처럼 산다.
흔히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문장을 긍정 쪽으로 해석한다. 지 잘난 맛에 살다 보면 그 잘난 맛이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을까.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으면 어떤가. 이루지 못할 것을 꿈만 꾸다 가면 또 어떤가. 이렇게나 할 일이 많은 인생인데,, 혜자는 할 일이 있는 노인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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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수록 혼자 노는 방법을 훈련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먹지만 나이 드는 방법은 훈련이 필요하지요.
모쪼록 일상을 잘 추스려서 즐거운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놀수있는
공간을 만드는것도
개인의 능력이 아닐까 싶네요
맞는 말씀입니다.
세상 이치라는 게 내가 만들어야지 가만 있어도 저절로 찾아오는 경우는 없지요.
사람 관계도 그렇지 않던가요.
내가 마음을 열지 않는데 상대가 먼저 찾는 경우가 드물 듯이요.
좋은 밤 되시길,,
딱 저 애기를 하는것 같습니다
노년에 심 심할 새가 어디있나요
젊어서 못했던 일이 너무나 많은데요~
네, 제가 님의 마음을 훔쳐보고 쓴 글입니다. ㅎㅎ
젊어서 못한 일이 많고도 많은데 심심할 새 어딨냐는 말씀이 확 닿습니다.
나중 심심하다는 친구에게 함 써먹겠습니다.^^
나는 매일 우리 아파트 주변과 정원의
쓰레기나 줍는
할 일 없는 노인네인가?
죽기 전, 무엇인가 뜻 있는 일이라도
하면서 지나온 인생을 성찰하며
반성도 하는 늙은이인가?
둘 중에 답이 있을 겁니다.
아뇨! 님은 할 일 없는 노인네가 아니라
할 일 있는 팔팔한 중년이십니다.
쓰레기 줍는 것도 근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다리 떨리고 무릎 구부려지지 않는다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안 그래요? 민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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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손을 다치셨다면서 이곳까지 나들이를,,^^
평화님의 충만한 노년은 이미 예약이 되어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김혜자는 전원일기 때부터 울 엄니가 좋아하는 배우였지요.
봉준호 감독 영화 마더에서 본 김혜자 연기는 소름이 돋습니다.
詩와 영화 이야기라면 저는 1박2일 잠을 안 자도 버틸 수 있다는,,^^
네~
아프지만 않으면~
시간 많아서 좋지요~
평생공부도 있고
유튜브도 있고
카페도 있고
알바로 4시간정도 일해도 좋고~
가끔 손주들 놀러오고
요새는
책보다 카페 삶이야기
아주 좋아요~^^
네, 맛난 사탕처럼 달콤하면서 똑부러진 댓글입니다.
님처럼 부지런히 사시면 시간도 잘 가고 얼마나 멋진 노년인까요.
그러나 생각보다 이렇게 보내지 못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이곳 카페에서 늘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작년엔 바리스타ㆍ요양보호사
자격증취득하고 한땐 파골 ㆍ지금은 자전거에 ᆢᆢ
시간이 넘 없습니다
할게ㆍ배울게 넘 많음요
좋은글에 머물다갑니다
많은 메세지가 있습니다
어휴!! 바리스타에다 요양보호사까지
자격증도 자격증이지만 그걸 따기까지의 과정 중에
얼마나 부지런히 살아야 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님처럼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배울 게 많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요.
멋저부러~~ ㅎㅎ
네 ~시간을 배우럽니다.
네~ 저도 시간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무얼해도 호젓한 시간이 되면 우울합니다 종일 바쁩니다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내 아니면 할사람이 없는 일이라 해야 합니다
저녁이 되어 내방에 들어 오면 별 기대없는 내일을 생각하기 싫어 얼릉 잠들길 원하지요
나대면 추하게 보이고
웅트리고 있으면 그나마의
존재감 조차 사라질까 겁나는
노년의 시간을 어찌할지 괴롭기만 할뿐입니다.
누구든 말로는 행복하다 하면서도 뒷면에 우울한 그림자가 있기 마련 아니던가요.
제가 다소 염세적인 사람이라 그 증상이 확실한 표본이기도 한답니다.
운선님은 든든한 동지들이 있어서 저보다는 낫다는 위로를 보냅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