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1일 목요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장에 가다가
별이 초롱초롱 밝은 여름밤이 되면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리고, 모기가 앵앵거리며 성가시게 굴면 모깃불을 놓고 큰 부채질을 하면서 할머니의 얘기에 넋을 놓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누구의 얘기인지 언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할머니께서 내가 몸이 약하다고 큰 잉어를 사서 어머니를 시켜 고아 놓고, 마시게 하시면서 들려주신 얘기가 생각납니다. 손자를 무릎에 뉘시고 맞장구를 치는 재미로 세상을 사는 지혜를 가르쳐 주시던 얘기는 제목이 “장에 가다가”입니다.
“아버지가 장에 가시다가 엽전 한 닢 주웠네. 주운 엽전 버릴까? 안 버릴까?” “안 버려요.” “그래 아깝지, 그러면 주운 엽전 가지고 쇠전 갈까? 바늘 전 갈까?”(쇠전은 소를 팔고 사는 장이고, 바늘 전은 바느질 용품을 파는 상점이지요.) “바늘 전 가요.” “그래, 바늘 전에 들러서 그냥 갈까? 무얼 살까?” “바늘 사야지요.” “그래 바늘 하나 샀단다. 산 바늘 버릴까? 무얼 만들까?” “왜 버려요. 무얼 만들래요.” “그래, 바늘 하나 가지고 대장간에 들렀네, 그냥 나올까? 낚시를 만들까?” “낚시 만들어요." "그래, 바늘로 낚시를 만들었네, 만든 낚시 버릴까? 말까?” “버리면 안 돼요.” “그래, 그러면 낚시를 가지고 금강 갈까? 한강 갈까?” “한강으로 가요.” “그래, 한강으로 가서 그냥 올까? 낚시를 띄울까?” “낚시를 띄워야지요.” “띄운 낚시 버릴까? 물고기 잡을까?” “잉어를 잡아요.” “정말 낚시에 잉어가 물렸네. 물린 잉어 버릴까? 집에 가져올까?” “집으로 가져와요.” “그래, 집으로 가져와서 고양이 줄까? 지져 먹을까?” “지져요.” “그래 지져서 누구랑 먹을까?” “할머니랑, 아버지랑, 고모랑, 삼촌이랑, 엄마랑, 나랑 먹지.” “그래, 맛있게 냠냠 먹자! 우리 아가!!”
어려서 이 얘기를 재미있게 들고 맞장구를 치면서 웃고 말았는데 이제 그 얘기를 이렇게 묵상에서 소개하면서 보니까 삶의 철학이 가득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황당한 얘기 속에는 경제 원칙도 들어 있고, 부가가치의 창출도 들어 있고, 생산성의 얘기도 들어 있으며, 효율성도 강조하고 있고, 철저한 고객 만족과 감동을 주는 마케팅도 들어 있습니다. 특히 공동체의 나눔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으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은 없으며, 내가 주인인 것은 정말 없습니다. 다만 잠시 관리하고 있을 뿐인데 그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모든 것이 정말 꿈처럼 그렇게 내게 주어졌지만 불평하고 불만으로 가득 차 이미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없다지만 갖고 싶은 것을 너무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것을 나 혼자 가지고 기뻐하고, 만족하고, 자랑하고, 뽐내며 살았을 뿐입니다. 내게 주님께서 무엇인가를 주실 때에는 잘 활용해서 더 많은 것을 새롭게 만들도록 주셨는데 나는 그 것을 잊고 더 많이 가지려고 몸부림 칠 뿐입니다.
문득 나도 모르게 제자들처럼 참으로 많은 것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줄 수 있는 능력을 나도 모르는 새에 받았고 수학능력 시험을 보지도 않고, 수업료를 내고 의과대학을 다니지도 않은 채 사람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치유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 것도 수술도 하지 않고, 화학 약품도 먹이지 않고, 병을 고칠 수 있는 고도의 능력을 전수 받았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의 묘약으로 완치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빛을 싫어하는 나병환자를 빛이며 생명이신 주님께로 인도하고, 주님의 은총으로 깨끗하게 할 수 있는 특별한 은총도 받았습니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며, 피고름으로 악취가 나는 더러운 몸을 주님은 가득 안으시고, 당신의 고운 손으로 일일이 씻어 주시고, 안수해 주셔서 깨끗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기회를 엿보는 악마의 유혹도 물리칠 수 있는 지혜도 주시고, 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용감함도 주시며, 매 순간 천사와 성인들을 통해서 당신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이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받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장에 가다가 엽전을 주운 것처럼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주시는 대로 챙겨 받아서 부자가 되었는데도 내 안에 품을 줄만 알았지 그걸 나눌 줄 모르고 살았답니다. 그래서 내 쪽으로 오그라든 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향할 줄 모르고 있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주님의 말씀은 귓가를 맴도는 빈말처럼 느껴진답니다.
<내 마음이 미어진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1-4.8ㅁ-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2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축일7월 11일 성 베네딕토 (Benedict)
신분 :수도원장, 설립자
활동 지역 :누르시아(Nursia)
활동 연도 :480?-547년?
같은 이름 :베네데토,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2월 10일)는 그의 쌍둥이 누이동생이다. 그는 청소년기에 로마(Roma)에서 수학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분열과 갈등을 겪는 교회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도시 생활의 윤리적 타락과 유혹에 환멸을 느껴 고향 근처의 고요한 광야를 찾아갔다. 그는 500년경 로마 동쪽 내륙의 엔피데(Enfide)라는 작은 산골 마을로 가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준비 없는 독거 생활이 영성 생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동방교회의 사막 은수자처럼 살기 위해 장소를 찾다가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수비아코(Subiaco)의 한 동굴에 정착하게 되었다.
성 베네딕투스는 3년 동안 그 동굴에 살았는데, 자신을 그곳으로 인도한 로마누스(Romanus)라는 은수자가 가끔 밧줄에 매달아 내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고독 속에서 철저한 금욕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온갖 육신의 유혹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그는 온전히 독수자가 되어 기도와 성경 말씀으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의 성덕과 엄격한 생활이 주위에 널리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이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비코바로(Vicovaro)에 있는 한 수도공동체에 알려져 그들로부터 원장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성 베네딕투스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해 마침내 그를 독살하려고까지 하자 다시 수비아코의 동굴로 되돌아왔다.
그 후에도 수많은 제자가 그를 찾아 몰려왔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원장의 지도하에 있는 12개의 수도원을 조직하고 일과표의 하나로 육체노동을 실천하도록 했다. 수비아코는 곧 영성과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자 인근 본당의 사제인 플로렌티우스가 그의 활동을 시기해 죽이려고 하자, 그는 다른 수도자들의 안전을 위해 몇몇 제자들과 함께 수비아코를 떠나 529년경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이주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폴로 신에게 헌정된 이교도의 신전을 파괴하고 우상 숭배에 물든 인근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서방교회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인근 피우마롤라(Piumarola)에 여자 수도원을 설립하고 쌍둥이 여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초대 원장의 직분을 맡겼다.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계속 퍼져나가면서 또다시 많은 제자가 몰려왔다.
그는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흐트러진 수도 생활을 바로잡고 서방교회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 올바른 금욕생활 속에서 기도와 독서(Lectio Divina) 그리고 노동을 실천하도록 한 명의 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규칙서를 썼다. 이렇게 해서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 생활 정신을 온전히 담아 서방교회 수도 생활의 기초가 된 “수도 규칙”(Regula Monachorum)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가 만든 “수도 규칙”은 순종과 정주 그리고 신심을 강조했는데, 이후 서방교회에 새로 설립되는 수많은 수도원의 규칙에 적용되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수도 생활의 모토를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로 정해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기도와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수도자들을 지도하고 교황의 고문을 담당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도 힘썼다. 또한 동고트족 토틸라(Totila) 왕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롬바르디아(Lombardia)를 재건하는 데 정열을 쏟았다. 한번은 그의 명성을 듣고 토틸라 왕이 그를 찾아와 먼저 신하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들여보냈지만 단번에 그가 가짜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성 베네딕투스는 토틸라 왕에게 전쟁을 멈추도록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는 547년경 3월 21일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에서 선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선종하고 얼마 후에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는 6일 전에 미리 무덤의 문을 열어놓도록 했다. 그리고 선종 당일 마지막 성체를 영한 후 두 수도승의 팔에 의지해 양팔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선 채로 선종하였다. 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21일이 사순시기와 겹치는 관계로 이미 8세기 말부터 여러 지방에서 7월 11일로 옮겨 축일을 기념해 왔다. 그리고 1969년 전례력 개정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보편 전례력에서 7월 11일로 확정되었다. 동방정교회는 3월 14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성 베네딕투스는 1964년 10월 24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수도 규칙서나 그를 독살하려 했던 일을 상징하는 뱀이 들어 있는 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그리고 독이 든 빵을 물고 있거나 날아가는 까마귀와 마귀를 물리치는 십자가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는 베네딕토 형제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