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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중세 유럽 비잔티움제국의 영원한 라이벌 사산조페르시아
비잔틴제국의 후예 추천 0 조회 1,379 07.11.22 13:43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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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1.22 14:55

    첫댓글 영원한거 치고는 800년이나 일찍 망했습니다.

  • 07.11.22 15:54

    게이볼그//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네요;;;설명좀.,..

  • 07.11.22 16:17

    비잔틴제국보다 사산조 페르시아가 800년 일찍 망했다는 뜻 아닌가요 ? ;;

  • 07.11.22 16:47

    호스로 2세때 순식간에 그 넓은 영토의 상당수를 뺏긴 안숩 포함

  • 07.11.22 16:59

    이슬람의 먼치킨정신으로 인해 무너진국가중 하나 ㄷㄷ;;

  • 07.11.22 17:26

    역시 이슬람은 페르시아를 거진 날로 먹었다는 표현밖에는 ㅡ,.ㅡ;;;;

  • 07.11.22 18:42

    역시 알라다........ㄷㄷㄷ;;;

  • 07.11.22 22:11

    그놈의 모래폭풍만 없었어도 비잔틴 간지는 그대로....

  • 07.11.23 02:35

    모래폭풍이 없었더라도 비잔틴은 이미 전투에서 털리고있었습니다. 전투경과는 게이볼그님의 글을보시면 잘나와있습니다. 사산조페르시아와 비잔틴은 서로 전쟁을 치루면 치룰수록 무장이 더 두꺼워졌는데요 이게 바로 이슬람에게 밀린 가장큰 이유입니다. 빠른기동력을 바탕으로 가벼운무장을한 이슬람군을 페르시아나 비잔틴은 따라잡지를 못했죠. 물론 따라만 잡는다면이야 순식간에 격파했겠지만 문제는 따라잡을수가 없다는것입니다. 이슬람군을 잡으려고 기진맥진한 두제국군은 지쳐버린타이밍을 노려 총공격하는 이슬람군에게 당해낼수가없었던거죠. 또 이슬람군은 할리드같은 명장들덕분에 단결도잘되고 부족한훈련과 무장을커버했죠

  • 07.11.23 03:20

    이슬람 보병 같은 경우는 상당히 중무장했습니다;; 군대에도 기병보다 보병이 많아서 전술적인 기동이 비잔티움보다 뛰어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워낙 보급품이 적은데다 낙타를 대량 운용해 전략 기동력은 상당했습니다. 야르무크 전투도 이슬람 군대가 기병의 기동력을 이용하긴 했지만, 히트 앤드 런 작전이 아니라 보병이 버티는 사이에 매복, 우회기동에 의한 측면 공세, 최후의 예비대로 활용되었습니다. 결정적인 나흘 째 전투에서는 우회기동에 의한 측면 공세로 별로 전의가 높지 못했던 비잔티움 아랍 동맹군 기병대를 탈주시키는 역할을 맡았지요.

  • 07.11.23 23:39

    비잔틴제국과 사산조제국은 서로 전쟁을 치르면서 장갑을 계속 두껍게 만들어 헤라클리우스대엔 두제국다 엄청나게 무거운 중갑을입고 전쟁을 벌였다알고있습니다. 서로 엄청난 중무장을한 두제국이 붙었을때에는 그냥 맞붙는것 밖엔 방법이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장을한 이슬람군에겐 쥐약이 되었다는거죠...맨처음 정면충돌을 피하며 약을올리다가 너무나 무거운 무장으로 인해 쉽게 지쳐버린 제국군을 총공격해서 격파하는 방법으로 큰전과를 올리게 되었지요. 한예로 이런식의 전술로 발린 아이즈나딘전투에서 비잔틴군은 만5천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지만 이슬람군은 수백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 07.11.24 10:03

    중무장 경무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슬람군도 그당시 상당한 중무장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헤라클레이오스의 기동을 보면 무장이니 뭐니 말할정도가 아닙니다-

  • 07.11.24 14:52

    아이즈나딘 전투는 단체 일기토(duel)에 이은 라인 배틀이었습니다. 그것도 첫 날 전투에서 승부가 나지 않자 다음날까지 계속되고, 장군이 죽은 후에도 상당히 지속된 전투입니다. 이 때도 이슬람 기병은 최후의 예비대로 지친 비잔티움군을 압박하여 패퇴시키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오히려 초반에 비잔티움 군대가 스커미싱을 걸 때 할리드는 반격하지 말 것을 명했죠. 물론 기병 무장은 비잔티움이 더 무거웠던 것으로 보이나, 6~7c에 비잔티움 군대에서 궁병의 비중도 상당히 높은데, 이런 적에게 히트 앤드 런 작전을 썩 효과가 높은 전술이 아닙니다.

  • 07.11.25 20:47

    전술적인 기동은 뭐고 전략적인 기동은 뭔가요? 또 낙타를 대량 운용했다는건 기병이 많다는 거 아닌가여?

  • 07.11.25 22:24

    전술 기동은 해당 전장에서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느냐의 여부, 즉 궁기병이 중기병을 속도로 농락하는 것이 이에 해당하며, 전략 기동은 거시적인 입장에서 행군의 기동을 의미합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전략단계에서(TW의 맵 이동) 이슬람 군대는 보급품을 낙타에 싣고 움직이거나, 혹은 보급품이 적어서 비잔티움이나 페르시아 군대보다 재빨리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장에서는(TW의 전투 장면) 상당수의 보병의 존재로 빠른 전술기동을 펼치는데에는 문제가 있었지요. 낙타는 보급품 수송용이지, 전술 기동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 07.11.23 02:28

    그리고 무엇보다 긴싸움으로 지친두제국은 엄청난단결력과 열망을 지닌 이슬람에게 정신적으로 밀렸으니 너무 허무하게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산조페르시아는 이미 헤라클리우스황제에게 수도근처까지 공격을 당해 싸그린털린상황이었구요..수도마저도 콘스탄틴노플만한 방어력을 전혀갖추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지역은 사산조제국의 기병들에게 털릴때 이미 무장해제당해버린상황이었구요 중요한것은 이슬람의 공격을 막아줄만한 강력한 요새가 있어야했는데...사산조제국은 털릴때로 털리고 수도는 그런방어력이 없었으며 비잔틴제국은 팔레스타인지역과 이집트지역이 털려버리고 콘스탄틴노플밖에없었다는거죠;;결과는..지도가바뀌죠;;

  • 07.11.23 09:19

    정신적으로 밀렸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뭣보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단성론파 지역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부를 단념하고 이슬람을 지배자로 선택했다는 게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이슬람측이 유달리 근성이 강했다기보다는 비잔티움 측 내부 투쟁이 더 영향력이 강했다고 봐야죠. 비잔티움의 아나톨리아 지역에는 그들의 근성이 전혀 먹혀들지가 않았습니다. 여전히 완강하게 이슬람측이 환장할 정도로 저항했죠. 사산조가 망한 것은 삼중 성벽이 없어서가 아니라 체제의 내적 저항력이 비잔틴보다 허약했기 때문입니다.

  • 07.11.23 23:48

    물론 마법의활님 말씀도 옳습니다. 당시 단성론이었던 이집트지역부근에서는 콘스탄틴노플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아서 사산조제국이 처들어왔을대는 사산조제국을 환영했고 이슬람이 처들어왔을때는 이슬람을 환영했죠. 허나 이미 사산조에게 한번 털릴때 방어력은 엄청나게 약화되어있었고 이문제가 후에 비잔틴제국이 이지역을 회복하고 난뒤 이슬람이 쳐들어올때까지 지역의 방어력을 회복하지 못한이유가되어 너무나 허무하게 밀리게 된것이지요. 물론 비잔틴은 멸망할때까지 언제나 문제였던 종교적인 문제가 내부단결력을 흐렸고 사산조제국은 후계자문제로 시끄러워서 아랍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지요.

  • 07.11.23 23:15

    또한 사산조제국의 수도인 크테시폰은 콘스탄틴노플처럼 장기적으로 버텨줄만한 방어력이 전무했습니다. 비잔틴제국이 아랍의초기공격에서 버텨낼수있었던점은 콘스탄틴노플이 버텨주었기에 가능하였던것이지요. (이는 사산조제국과 아바르족의 공격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하지만 사산조제국은 수도인 크테시폰이 버텨주지를 못하자 순식간에 와해가 되었것이구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있겠지만 가장큰이유는...그야말로 어부지리...둘이 신나게 치고박다가 자멸한격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 07.11.23 02:37

    당시 중동이 돌아가는꼴을 아주 잘표현해주는 사자성어가 동양에 있습니다. '어부지리(漁夫之利)'

  • 07.11.23 09:21

    히틀러짱/ 옳은 말씀입니다.'어부지리' 분명 비잔틴과 페르시아가 소모성 다툼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슬람이 그렇게 흥기할 수가 없었겠죠. 하지만 비잔틴과 페르시아가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 더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 07.11.23 13:53

    그러고보니 이란의 이슬람화가 비교적 천천히 이루어졌다던데.

  • 07.11.23 21:44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보기에는 좀... 사산조가 비잔티움보다 800년이나 빨리 멸망했는데.

  • 07.11.24 09:01

    비잔틴제국,사산조 페르시아 두국가의 멸망중 가장큰 원인은 내부 분열이 아닐까요? 아무리 적의 침공에 큰타격을 입거 국가의 군대가 모조리 와해 되었다 하더라도 그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일치단결했더라면 그 국가의 멸망까지 초래했을까요? 물론 전투적인 성향으로 볼때 정규군이 많은 적의 군대가 유리하겠지만 국가를 지키겟다는 지도층과 백성들간의 의견이 서로 일치단결해서 결사항전으로 버텼다면 얘기가 달라질거 같은데요? 그래서 제말은 비잔틴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원인은 내부분열이라 생각합니다.

  • 07.11.24 10:06

    내부분열 보다는 그냥 전쟁으로 인한 약화입니다 ㅡㅡ; 당장 비잔틴의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만 해도 사산조에게 10여년간 빼았겼다가 탈환한지 얼마 안된 지역이었죠- 사산조의 경우는 조로아스터교의 성지까지 털리고 니네베전투에서 참패했던지라 ㅡㅡ; 뭐 그래도 비잔틴의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쪽은 분열도 심했다고는 봐야합니다- 유태인이나, 기독교 단성론자들 때문이죠-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너무 오랜 전쟁으로 인한 전력의 약화입니다- 당장 이슬람의 침공이 5~10년만 늦었어도 비잔틴을 정복하기 쉬웠을까? 하면 뭐라 답하기가 힘들어지죠- 물론 헤라클레이오스가 정신 오락가락하고, 그 이후도 별로 좆친 아니했지만

  • 07.11.24 13:12

    오히려 헤라클리우스 때의 상황이 포카스 때보다는 양호한 상태였죠. 문제는 이미 시리아 - 이집트의 신민들이 아주 제국을 단념했다는 데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페르시아가 그 지역들을 먹어놓고도 뱉었던 이유는 헤라클리우스의 선전도 크지만, 페르시아 역시 개판 오분전의 통치를 하여 해당 지역들의 신민들이 비잔티움 쪽에 붙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의 침공이 설령 늦었어도 제국은 그 단성론파 지역들을 끝내 지키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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