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두 번 째 만남
2 : 0 0 라디오
4 : 0 0 잡지 표지 사진 촬영
6 : 0 0 케이블티브이 음악 프로그램 녹화
1 1 : 0 0 용평 리조트에서 겨울특집 라디오 공개방송
나와 윤주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윤주네 집에서 지수오빠의 홈 페이지에 접속해서
그 날의 스케줄을 알아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주칠 기회는 케이블 티비 녹화가 끝나고 나올 때 정도?
녹화가 6시로 나와 있어서 9시가 되어야 끝나겠지 하는 생각에
윤주와 난 맘을 편하게 먹고 베니건스에서 배를 채우고
피씨 방에서 ‘한 게임 빙고’를 한 시간 정도 한 다음,
압구정동 현대 백화점에서 두 시간 정도 쇼핑을 하고 나서 방송국으로 향했다.
방송국에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7시 56분, 방송국 앞.
녹화가 있는 케이블 티브이 방송국은
논현동 가구골목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었다.
작년에 내 침대를 바꿀 때,
아빠와 얼마 전 아빠와 헤어진 약사 아줌마와 온 적이 있어서
가구 골목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 곳에 방송국이 있다는 것은 몰랐던 터였다.
택시에서 내렸다.
방송국 앞엔 중, 고등학생 여자애들과 남자애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일정한 무리마다 다른 색의 풍선을 들고서
이 곳 저 곳에 모여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무슨 데모라도 하는 듯 했다.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갔다.
나와 윤주는 은근 슬쩍 이지수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무리 속으로 끼어들었다.
“여기로 안 나오는 거 아냐?”
나는 불안하게 윤주를 보며 말했다.
“야. 이 방송국은 다른 데로 나가는 문 없데. 걱정하지 마”
윤주는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라고 하지 근데?”
“그것도 생각 안 했어?”
윤주가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언제 나오지? 오래 기다리긴 싫은데”
“너 잘되면 모른 척 하기 없기다?”
윤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미소의 의미를 금세 알아 차렸다.
윤주는 지수와 아주 친한 것으로 알려진
저스틴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저스틴은 제법 인기 있는 댄스그룹의 리더였다.
저스틴하니,
설마 금발에 푸른 눈동자가 깊숙이 패인 멋진 백인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저스틴의 본명은 임영구.
본명이 이 정도 된다면 나라도 이름을 바꿀 것이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얼굴도 미남이라고 정말 잘 생각한다면 봐 줄 수 있고
무엇보다 입심이 아주 좋아서 온갖 오락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는 가수였다.
윤주의 심뽀는 한 마디로 자신은 뒤에 얌전히 있고
날 내세워 혼자 재미 좀 보겠다는 것.
윤주가 얄밉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 그거 따질 때야?
무슨 어떻게 만날지도 막막한데
이렇게 사람 많은데 나온다 해도 앞줄에 어떻게 가니?
가다가 재들한테 밟혀서 죽을 지도 몰라?”
난 약속을 회피했다.
“그래 다 맞는 말인데, 아직 결정적인 대답을 안했어 너”
윤주의 눈빛이 빛났다.
“응 뭐가?”
“나 그냥 간다. 혼자 만나든지”
윤주가 뒤로 몸을 돌렸다.
내 손이 빠르게 윤주의 팔을 잡았다.
내 얼굴의 가식적인 미소가 돌아서 나를 보는 윤주를 반겼다.
“아 앙. 윤주양 약속할게. 오늘 도와 줄 거지?”
한 시간 경과.
한 시간이나 서 있자니 너무 다리가 아팠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에
‘그만 돌아갈까?’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윤주가 말했다.
“우리 여기 있어 봤자 아무것도 안돼”
“응?”
“따라와”
내 손을 잡아끌고 가는 윤주.
빌딩 지하의 주차장.
과연 방송국 주차장답게 여느 주차장과 달리
소위 연예인 차의 대명사인 스타 크래프트들이 빽빽이 들어 서 있었다.
난 그 차들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마치 ‘나 연예인이니 길을 비켜라!’하고
말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잘 봐. 저기”
난 윤주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스타 크래프트 한대가 서 있고
얼마 전 도착한 여자가수와 그녀의 코디들과 매니저들이 짐을 내리고 있었다.
여자가수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몇 번인가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인이었다.
여자가수는 차에서 내려서부터
엄마로 보이는 아줌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아줌마는 강남 날날이 아줌마의 전형적인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떨려하는 딸만큼이나 걱정스런 눈빛으로 딸을 보고 있었다.
“난 또 지수오빠 아니잖아”
“그거 말고 저거 봐. 저기 코디 언니들 우리랑 다를 게 없잖아?”
나는 윤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윤주와 난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것처럼
은근히 스타 크래프트에서 내린 가수 일행의 뒷 열에 합류했다.
드디어 건장하고 보기만 해도
답답함이 밀려드는 사무적인 얼굴을 한 사내들이 막아선 입구.
결과는 무사통과.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난 윤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끈이 자꾸 풀려지잖아. 다른 의상 없어?”
“다른 의상이 어딨어? 막 달려오느라고 정신없어 죽겠는데.
끈 안 풀려지게 핀 같은 걸로 고정시키면 되.”
코디와 매니저들은 자기들 얘기 하느라 바빠서
윤주와 나의 존재에 대해선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공식적인 방송국의 외부인 두 명이 방송국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