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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누이戰 - 공순이의 내력
유현덕 추천 3 조회 428 22.07.23 18:09 댓글 3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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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7.23 19:16

    첫댓글 불우햇던 유년시절
    엿군요. 누이는 그 시대의
    희생물처럼 애처럽게
    보여지기도 하구요.

    인생을 살면서 어떤
    계기가 큰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희비가
    엇갈리기도 하는데 그런게
    운명처럼 흘러가더군요.

    누이도 그렇구 현덕님도
    저도 그랫던거 같네요.

    글이 원체 부드럽게 막힘
    없이 쓰여져서 단숨에 읽어
    내려 갓네요.

    정리도 아주 깔끔하게
    하신거 같고요.아름문학상
    에 한번 올려보셧음 좋겟네요.

  • 작성자 22.07.23 23:12

    금박님처럼 저도 살아오는 동안 희비가 엇갈리는 전환점이 여러 번 있었지요.
    다행히 바닥을 길 때면 누군가 나타나는 운명적 만남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글이 막힘 없이 매끄럽게 읽힌다면 오직 PC로만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제게 스마트폰은 문자나 카톡 외에는 전화 통화 용도밖에는 사용할 줄 모르거든요.
    제 글의 힘은 폰맹인 아날로그 정서에서 나온다는,,^^

  • 22.07.23 18:55

    그이도 어릴적 참
    고생을 많이하고 자랐지요
    청도 골 깊은 골짜기에서요
    님의 글 읽으면서
    읽어 주었습니다
    진학을 못할만큼은 아니었지만
    큰시누님의 고생도 컸었는데
    작년 돌아가시고ㅠ.ㅠ
    그시절 돌아보면
    아플것 같은데
    담담히 풀어내는 능력이 참 대단하세요
    맞춤법 하나하나 잘못된것도 없이 정갈한 느낌을 받습니다
    누이이야기 이후도 기다리겠습니다

  • 작성자 22.07.23 23:14

    고생하신 옆지기의 아픔을 잘 이해하고 계시는 정아님의 착한 마음씀이 전해옵니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는데 저는 상처 많은 사람에게 늘 마음이 먼저 갑니다.
    맞춤법은 쓸 때부터 신경을 쓰지만 올리고 나서도 한번 읽으면서 폭풍점검을 하지요.
    그래도 나오는 오타는 어쩔 수 없다는..^^

  • 22.07.23 19:03

    가난 때문에 국민핵교만 나와
    17살에 식모살이까지 했던 내 누나 역시

    18살부터는 수원으로 가서 '선경합섬'에 다니며
    공순이로 통했지요.

    그 누님이 내 중학교 학비를 대 주어서
    저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는 내 스스로 벌어서(아르바이트)
    다녔지만
    가난은 숙명처럼 나를 따라다녔지요.

  • 작성자 22.07.23 23:16

    님에게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순탄치 않은 길을 잘 헤쳐왔기에 지금의 님을 있게 했을 겁니다.
    가난이 숙명처럼 따라 다녔다는 말에 왠지 동지 만난 기분이 듭니다.
    동병상련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요.^^

  • 22.07.23 19:56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일은 아니고
    단직 불편할뿐입니다
    그래도 어릴때 읽으셨던 여러가지 책들이 정신적인 성장을 쑤욱 만들지않았나
    싶어요
    흔히 있었던 일이나 새롭게 오버랩 되는 어린시절의 아픔 이 저려옵니다
    그러나 역경을 딛고 더 굳세어진 결심들이 지금 우리를 더욱 용맹스럽게 살아가게했고 지금도 살아가고있지요
    지금 은 불행히도 가난이 대를 물리는건 큰 슬픔입니다
    우리 세대가 그 나마 회복할수있었던 시절이였죠
    댓글이 길어졌습니다
    글을 잘 쓰시네요 천부적이십니다

  • 작성자 22.07.23 23:18

    아침구름님 말씀이 맞습니다.
    가난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자랑할 일도 아니지요.^^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이 제 정서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때 저를 채용했던(?) 그 삼촌이란 분과의 만남을 운명이라 생각하네요.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지만 저는 용이 되기보다
    개구리처럼 열심히 뛰면서 살려고 합니다.
    님의 댓글이 길어서 저의 답글도 길어졌습니다.^^

  • 22.07.23 20:20

    가슴아픈 이야기를
    다 풀어내는 유현덕님의 글에
    한 참을 서성입니다


  • 작성자 22.07.23 23:19

    어쩌다 신내림 하는 무당처럼 술술 풀어놓게 되었습니다.
    잘 하면 작두 타는 일도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2.07.23 23:21

    20달러 가지고 이민 간 모자의 고생에 비하면 저의 고생은 새발의 피네요.
    저도 한때 이민자의 몸이었기에 정착한 사람들 사연을 들으면 눈물겹더라구요.
    배부르게 먹기 위해서였다는 말에 가슴이 턱 막힙니다.
    행여 나도 나도 하면서 공감하는 분이 있다면 글 쓴 보람이 있겠네요.^^

  • 22.07.23 20:51

    아 슬픔이 오네요.

  • 작성자 22.07.23 23:21

    네, 슬름은 오기도 하기만 왔다 그냥 가기도 한답니다.^^

  • 22.07.23 21:21

    그시절 그때가 생각나
    가슴이 아리네요~~

  • 작성자 22.07.23 23:22

    누구나 돌아보면 지난 세월은 가슴이 아리지요.
    그 시절은 모두가 가난했기에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22.07.23 21:48

    어쩌면 슬프기도 아련하기도
    담담히 써내려간 지난시간들
    우리들의 자화상 같은 이야기
    공감 입니다 ^^

  • 작성자 22.07.23 23:24

    공감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어쩌면 그 아련한 슬픔이 우리를 살게 하는 에너지원이 되기도 합니다.
    다음 이야기 잇기 위해 부지런히 작두 타도록 하겠습니다.^^

  • 22.07.23 22:26

    위에 금박사 말처럼 글이 막힘없이 읽혀지는 놀라운 필력인 현덕님 잘읽었습니다

    그 시절 비슷하게 연명해 왔던 삶의 모습 닮은 듯 다른 가난의 모습 심하게 공감됩니다.

  • 작성자 22.07.23 23:27

    놀라운 필력은 천부당만부당입니다.
    오랜 기간 써온 일기처럼 그저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썼을 뿐입니다.
    힌국이든 아프리카든 사람 살아온 내력은 다 비슷비슷하겠지요.
    단 눈물 묻은 빵을 먹어본 자만이 더 깊게 공감한다는,,

  • 22.07.24 05:10

    솔직담백한 글 만남이 저의 행복입니다~
    그시절 우리나이의 선후배님들 절반이상이 겪었을 일들이라 공감백배
    동병상련 맞습니다..

  • 작성자 22.07.24 22:59

    제 글이 무거운 주제인데도 담백하게 읽고 행복하셨다니 다행이네요.
    함께 겪은 일이 많을수록 동병상련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법이지요.
    제가 카페 앱을 깔지 않아 댓글 반응이 많이 늦습니다.
    행여 영영 반응이 없더라도 양해를,,^^

  • 22.07.25 00:26

    @유현덕 우리집도
    저 초등시절 큰언니는 입줄일라구 월급도 없는 식모살이 갔어요.
    바로 위언니는 초등학교졸업후 청계천 옷공장 시다일해서 겨우 우리집 밥굶는것 면했어요.
    언니도 나도 초등학교 육성회비 못내서
    쫒겨왔고 저는 중학교도 수업료 못내서 쫒겨다녔고요..
    제경험도 있어서 담백하다 했습니다~
    상처로 가지고 있으면 부모님 원망하게 되고....
    아버지 중풍으로 빚만. 남겨놓으시고 나 10살때 6남매 두고 돌아가셨으니
    그 어려운 가운데에도
    고아원이나 남에게 버리지 않으신것만으로도 어머님께 감사하지요~^^
    동병상련 느낄만 하겠지요....

  • 22.07.24 10:19

    이야기는 그시절을 격은 농어촌 출신 사람들이 함께 격은 공유기억이죠.
    밥 먹고 살기위해 국민학교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도시로 가서 고생을 했으나
    그중 똘똘하고 성실한 아이들은 야학으로 학교도 다니고 성공의 기회도 잡기도 했죠.
    진솔한 글 고마워요.

  • 작성자 22.07.24 23:01

    네, 제 어릴 적에 야반도주하는 동네 형과 누나들이 종종 있었지요.
    그분들이 열심히 산 덕에 지금의 한국이 있다고 봅니다.
    유곡가인님도 그 사람들 중 한 분이라는,,^^

  • 22.07.24 12:12

    만나면 싸우는 콩가루 집안 빼고는 돗진갯진입니다. ^^
    누나들이 보내주는 달력으로 교과서 책 표지 감싼 아이들이
    부러워서 서울 간 누나에게 달력을 보내달라고 떼를 썼지요.
    달력은 지금도 함부로 버리지 못 합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해묵은 달력인데도 말입니다.

  • 작성자 22.07.24 23:02

    저는 달력도 없어서 책표지를 신문지로 싸서 사용했었지요.
    가끔 손에 까만 신문 잉크가 묻어나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22.07.24 19:45

    막힘없는 글의 흐름에 순식간에
    글을 읽었습니다
    다음편이 기다려지네요
    그때는 왜그리도 가난했을까요
    시골은 더 가난했지요
    마음이 아려옵니다

  • 작성자 22.07.24 23:05

    막힘 없이 순식간에 읽으셨다면 님의 글 읽어내는 실력 때문입니다.^^
    저는 부자가 망해도 삼 년 간다는 속담을 믿지 않습니다.
    몇 년 사이 그 많던 전답과 기와집까지 아버지가 탕진함으로 실력파였음을 증명했으니까요.
    제가 써 놓은 것을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편은 가능한 빨리,,^^

  • 22.07.24 22:00

    국민학교만 마치면 서울로 서울로......
    식모살이로 공장으로......
    그시절 시골에서 자란 가난한집 아이들의 이야기......
    공돌이 공순이......
    글을 참 잘 쓰십니다~~~~

  • 작성자 22.07.24 23:08

    시골에서는 중학교 나오면 그런대로 지식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더군요.
    그 사람은 공장 취직도 쉽고 일자리도 편한 부서에서 할 수 있고,,
    저도 한때 공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했기에
    공순이 공돌이에 관한 이야기를 쓰자면 끝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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