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에서 최고의 신랑감 1위로 펀드매니저가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뜨거운 펀드 열풍 속에 국민들의 계좌를 쑥쑥 불려주는 펀드매니저는 말 그대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차갑게 식어버린 펀드 가입 열풍이 이웃나라 중국에서 휘몰아치고 있다. 펀드매니저 개인을 추종하는 팬클럽이 생겨나고, 가입 수요가 높아 하루 만에 매진되는 펀드가 속출하고 있다. ‘하루 만에 매진된 펀드’라는 의미로 ‘르광지(日光基)’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중국의 유명 운용사인 이팡다의 경우 목표액이 150억위안인데, 단 하루 만에 15배 많은 2300억위안이 몰리면서 중국 금융시장 역사상 신기록을 세웠다.
이종훈 삼성자산운용 팀장은 “한국은 펀드를 대신하는 대안상품, 가령 상장지수펀드(ETF), 자문사 랩, 심지어 해외주식 직접 구매까지 다양해졌지만 중국에선 펀드 외엔 딱히 투자할 상품이 없다”면서 “중국 증시는 다소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이어서 펀드매니저 역량에 따라 수익이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1000억위안(약 17조원) 넘게 굴리며 스타 펀드매니저로 떠오른 장쿤. 그의 팬클럽 회원 수는 1만5000명이 넘는다. ‘쿤쿤(장쿤의 애칭)은 늙지 않아, 죽는 날까지 블루칩이야' ‘쿤쿤 용감하게 날아, 이쿤(장쿤의 팬클럽)은 영원히 함께 할게‘라는 문구가 적힌 그의 사진에 빨강 하트가 잔뜩 박혀 있다./웨이보 캡처
◇8년 800% 찍은 ‘경이로운 펀드매니저’
중국 증시에서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은 바로 장쿤(張坤)이라는 젊은 펀드매니저다. 최근 8년간 800%의 수익률을 올리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같은 기간 상하이지수 상승률과 비교하면 11배에 달한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그의 팬클럽도 만들어져 있다. 그가 굴리는 자금은 1000억위안(약 17조원)이 넘는다.
장쿤은 특히 마오타이(귀주모태주), 우량예와 같은 중국 전통술 회사를 펀드에 많이 담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마오타이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찍는 등 중국 전통술 회사들의 주가가 고공행진 중인 것도 장쿤의 영향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칭화대 생명공학 석사 출신인 그는 워런 버핏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그가 마오타이에 투자한 것은 8년 전인데, 그 동안 마오타이 주가는 2000% 뛰었다.
운용업계 고위 관계자 A씨는 “장쿤은 워런 버핏식 투자로 마오타이 같은 가치주를 발굴해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과거 롯데그룹주가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0년 초반부터 장기 상승해 100만원대 황제주로 오른 것과 견줄 만하다”면서 “중국엔 상대적으로 저평가 주식이 많이 있어서 이런 추세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종훈 삼성운용 팀장은 “중국인들은 특히 메가플랫폼(텐센트, 알리바바, 징둥닷컴 등)이 포진해 있는 홍콩H증시에 투자하겠다는 욕구가 강하다”면서 “중국 정부도 지나친 위안화 강세를 막기 위해 중국인들의 홍콩 증시 투자를 암묵적으로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안화 강세는 곧 중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나빠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증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자금이 몰리고 있다. 증권가에선 올해 중국 내수 회복이 본격화해 추가 성장 여력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흥분한 부추 자금... 남은 총알 1조위안
‘5년 만에 부추(중국의 개미 투자자를 뜻하는 말)들이 돌아왔다.’
최근 중국 상하이 증시에선 5년 만에 돌아온 부추들의 컴백이 화제다. 중국에선 증시에 뛰어드는 소액의 개인 투자자를 생명력이 강한 식물에 비유해서 부추라고 부른다. 기관 투자자들에게 털리고 당하면서도 월급을 모아서 다시 증시에 뛰어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5일 펀드평가사 제트벤어드바이저스에 따르면, 지난 달 중국 현지인들이 펀드에 넣은 자금은 4148억위안(약 71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전체 펀드 유입액의 16%가 한 달 만에 몰렸다.
이 같은 부추들의 진격에 힘입어 긴 춘절 연휴를 앞둔 지난 10일, 상하이종합지수는 3655선을 돌파하며 5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 부부장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3% 플러스 성장한 중국은 올해는 8%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되고 있다”면서 “MSCI 차이나 지수는 여전히 미국 S&P500보다 PER(주가수익비율, 낮을수록 저평가)이 낮아 중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국 시장에 대한 관심은 뜨거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춘절에 모인 중국 가정에선 아마도 펀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고 있을 것”이라며 “1월에 이어 2월에도 뜨거운 펀드 열기가 예상되는데, 중국 현지에선 대기 자금 규모를 1조위안(약 172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눈치 빠른 스마트 자금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석 달 동안 중국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10일 기준 5818억원에 달한다. 연일 상승랠리 중인 북미펀드도 같은 기간 4000억원 유입에 그치는 등 주요국 펀드 중에선 가장 많은 금액이다.
40대 투자자 이모씨는 “중국인들이 펀드 가입에 열 올리는 모습을 보니 지난 2007년 한국의 펀드 광풍이 떠오른다”면서 “중국의 투자 열기를 놓치긴 아쉬워서 한동안 멀리 했던 중국펀드에 500만원을 넣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