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염동원
인생의 긴 행로에서 어느 날 불현 듯 나타나 지워지지 않는 연민을 깊게 새겨 넣은 어린 애기가 있다. 그로 인해 항상 나를 돌아보게 되고, 수십 년 세월이 지났어도, 초조함과 한숨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작은 벌레가 지나가도 그 생명의 귀중함 때문에 비켜 가게 되고, 어느 장소에나 아이 의 울음소리에 민감하게 된다. 기억 속 그 애기는 외롭지 않게 잘 지내는지, 항상 염려가 된다.
젊은 시절, 남편의 사업체가 영등포에 있어서 가까운 곳에 전세를 얻었었다. 골목을 지나가면 큰 시장이 있었다. 새벽 네 시쯤엔 어김없이 이웃 사람들의 단잠을 몽땅 깨우는 꼭 박격포 터지는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가 한 바탕 동네를 누비고 지나간다. 새벽을 여는 분주한 삶의 현장은 늘 긴박감이 흘렀었다. 부지런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운기는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고, 우리네 서민들의 애환이 여러 형태로 노출된 시장은 항상 시끌시끌한 인간 극장였다.
첫 딸 애기가 막 돌을 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겨울이었다. 방문한 친구를 배웅 하고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옆집 대문 앞에 수십 명의 아이들과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무엇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도 무심히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유난히 추운 날씨였는데, 어린애기가 얇은 포대기에 싸여 버려진채 파랗게 떨고 있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너무 울어서 지칠 대로 지친 애기를 나는 덥석 안았다. 시리도록 아픈 슬픔이 가슴을 휩쓸었다. 이럴 수가……. 버려진다는 것은 이 애기의 책임은 아닌 것이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하늘이 준 고귀한 생명은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숭고한 보배인 것이다. 누구나 이세상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이 애기에게 이런 혹독한 시련이 있단 말인가, 우선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풀잎처럼 가벼운 애기를 안고 황급히 집으로 들어왔다.
애기가 입은 옷 속에선 구겨진 종이에 애기 부모는 다 돌아갔고, 할머니마저 병고로 곧 돌아갈지 모르니, 가엾은 손녀를 잘 부탁 한다는 짧은 글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다.
여자 애기는 여러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입과 코속이 다 헐어서 물도 못 마실 정도 였다. 팔과 다리는 가엾게도 마르고, 신열로 초점 잃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여러 날 병원에 다녀서 겨우 완쾌시키고, 여러 가지 영양을 보충해 주었더니 얼굴에 화색이 도는듯했다. 애기는 우리식구들이 눈에 익기 시작했는지 울음을 점점 그쳐가면서, 맑은 눈엔 웃음이 깃들고, 순진한 모습은 앞날에 환한 봄날만이 있을 것 같은 평화가 보였다.
그 무렵 남편의 사업이 위기에 있었던 관계로, 의논 끝에 입양을 물색했다. 마음 같아선 딸 쌍둥이 처럼 기르고 싶었지만, 막상 다른 가정에 보내기로 결정하니, 측은한 마음 때문에 우울했다. 영아원으로 돌려보내면 쉬웠지만, 차마 마음이 허락하질 않아 아는 친지들에게 수소문으로 입양을 주선 했으나, 살기 어려운 시절이라서 쉽지가 않았다.
돌이 막 지난 애기는 아장아장 마른 다리로 위태롭게 걸었고,모든 행동들이 앞으로 세상 살이의 시작이라 생각하니, 안타깝고 가슴이 저려 왔다. 유순했던 우리아이는 질투를 내지 않고 잘 따라주었기에 천만 다행으로 돌보는 일은 수월했었다.
대부분 가정들은 아들을 원했기에 어려움이 많았었다. 드디어 친지가 다리를 놓아서 입양 의사가 있는 어느 가정을 소개 했다. 결혼 한지 십여 년이 넘도록 자녀가 없어 기다리다 입양을 결심한 경우라서, 믿고 안심이 되어 아기를 보내기로 했다.
보내는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초조하고 안쓰러운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마음 약한 나를 보는 남편은 별 말이 없었지만, 아마 자기도 마음속에 애처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애기가 떼도 쓰고 울기도하고 인형 같은 장난감도 좋아하며 노는 모습은,시간이 지날 수록 서로 허물없는 정만 쌓여 갔다.
나는 애기에게 새 옷을 입히고 예뿐 모자도 씌워서 모양을 내고, 측은하고 서글픈 이별의 순간을 맞으며, 새 엄마에게 보내는 순간, 내 품에서 떨어지질 않고 울기 시작 했다. 꼭 붙잡은 나의 옷을 차마 뿌리칠 수 가 없어서, 달래 보았으나 나의 옷을 더욱 힘있게 잡고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헤어진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 어리석음에 당황하고 더욱 죄책감이 들었었다. 나는 오래도록 안아주었다. 이 애기에게만은 세상의 모든 행운과 아름다움만이 있기를 기원했다. 그 부인도 기다려 주고, 인내하는 부모이기를 속으로 바랬다.
낮선 사람의 품으로 떠 날 때 오래도록 울며 떠난 그 애기의 울음소리는, 긴 세월이 지나도록 나를 괴롭게 했다. 더구나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손을 억지로 뗀 기억은, 두고두고 나를 아프게 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영국의 희극 배우 채플린은 말 했다. 이젠 그 애기에 대한 기억도 젊은 날의 수채화처럼 그려 있을 뿐 이다. 끝 까지 지켜 주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그 애기는 나의기도 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염원이 되어 내 영혼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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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영국의 희극 배우 채플린은 말 했다. 이젠 그 애기에 대한 기억도 젊은 날의 수채화처럼 그려 있을 뿐 이다. 끝 까지 지켜 주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그 애기는 나의기도 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염원이 되어 내 영혼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