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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성도들의 만남 12:13~19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교만한 헤롯의 죽음 12:20~25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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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베드로는 형제들에게 주님이 자신을 구해 주신 일을 알리고 떠납니다. 헤롯은 베드로를 지키던 파수꾼들을 죽이라 하고 가이사랴로 갑니다. 헤롯이 연설할 때 백성이 ‘신의 소리’라 외치는데, 그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아 주님의 사자가 치니 벌레에 먹혀 죽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더 흥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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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성도들의 만남 12:13~19
기도 응답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도들은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이 그렇게 빨리 응답해 주시리라고는 믿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다고 전하는 로데의 말에 그들은 “그의 천사라”(15절)라고 말합니다. 이는 일부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수호천사 사상을 반영합니다. 결국 모두가 베드로를 보고 놀랍니다. 베드로는 옥에서 나오게 된 기이한 기적을 전한 후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17절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헤롯은 베드로가 없어진 일로 인해 크게 진노하며 파수하던 자들을 죽입니다. 기도 응답은 성도에게는 구원과 기쁨이지만, 대적에게는 패배와 분노입니다.
●더 깊은 묵상
살아 있는 베드로를 만나고 성도들이 받은 위로와 기쁨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을 의심하지 않고 계속 기도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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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헤롯의 죽음 12:20~25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을 매우 노여워했는데, 성경은 그 이유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은 블라스도를 통해 헤롯과 화목하기를 청합니다. ‘침소 맡은 신하’는 왕의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 왕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정해진 날에 헤롯이 위엄 있는 모습으로 연설하자, 사람들은 그에게 아첨하며 환호합니다. 교만한 헤롯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이에 진노하신 하나님이 그를 치십니다. 벌레에 먹혔다는 표현은 내장에 회충과 같은 벌레가 들어가서 병을 일으킨 상태로 봅니다. 교회를 박해하고,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감금했던 헤롯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격려하시고 방해 세력을 제거해 주시면서 말씀이 널리 전파되게 하십니다.
●더 깊은 묵상
교회를 박해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은 헤롯의 최후는 어떠했나요?
복음 전파를 막고 교만하게 행하는 이의 결국은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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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도로 단련된 리더
경건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는 그가 책임졌던 신학교에서 두 부류의 학생에게는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부류는 모든 일에서 성공만 해 왔던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탓에 온 힘을 다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목회도 성공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그들의 사역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부류는 목사가 되기 전에 하는 일마다 실패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목사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하는 모든 일마다 실패하게 하셨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스펄전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목회를 해도 실패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은 교만해서 실패하는데, 그러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라면 늘 기도의 능력에 힘입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나, 크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리더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강력한 믿음의 리더를 필요로 합니다. 매일 믿음의 기도로 사는 것은 모든 신자의 책임입니다.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 / 박대영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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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사도행전12장 24절
교회 부흥의 열쇠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 말씀은(엡 6:17) 영혼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부흥시키며 지역 사회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교회는 살아납니다. 개인의 신앙 성장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열쇠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참된 부흥은 '더 높은 숫자'가 아니라 '더 깊은 말씀'에 의해 좌우됩니다.
기도는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보이자 않는 것을 붙드는 담대한 행위다. - 앤드루 머리
오늘의 기도
하나님, 핍박 중에도 복음 행전을 이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기류가 거센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절대 진리인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믿음을 주소서. 복음을 대적하는 힘보다 더 강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복음의 흥왕함을 보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5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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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든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홀로 높임을 받으셔야만 하는 하나님입니다.-
막상 베드로가 나타나 문을 두드리자, 베드로가 왔다고 하는 여자아이의 말을 믿지 아니하고 베드로의 천사라고 말한다.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한다. 그런데 기도하고도 될까? 들어주실까? 의심하거나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기도는 하지만 믿음이 부족한 때도 있다. 오늘 마리아의 집에 모든 여러 사람들처럼.
아버지는 기도한 것은 반드시 응답해주시고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바라는 방향과 다르게 이루어주실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해주신다.
이러한 확신을 두고 기도하는 하루가 되자. 기도는 이루어진다. 아버지는 응답해주시는 분이시기에 그렇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 모든 영광과 찬송을 온전히 주님께 올려 드리고, 모든 결과와 결실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늘 잊지 말도록 하자
- 주님만이 홀로 높임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잊지 말고,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늘 겸손하게, 늘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하자
-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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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지속적으로 교회를 핍박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우리가 이룬 것처럼 자신을 드러내며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심지어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자를 통해서, 가장 연약한 지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이루신 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의 도전 속에서 나의 연약함이 드러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승리를 믿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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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계획이 틀어진 후로도, 헤롯의 교만이 극에 달하자 주님은 헤롯을 심판하십니다. 이와 달리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은 교회는 더욱 번성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3,24절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헤롯을 심판하십니다. 헤롯이 자신을 신으로 추앙하는 목소리를 그대로 취하자, 하나님은 그의 왕좌는 물론 목숨까지도 한순간에 취하십니다. 반면 숱한 박해 속에서도 교회를 보존하시고 말씀이 번성하도록 이끄십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사는 길은 은밀한 중에라도 자기 영광에 빠지지 않고 교회의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8,19절 하나님이 베드로를 구출해내심으로 헤롯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분을 이기지 못한 헤롯은 죄수를 놓친 간수들을 즉시 처형합니다. 로마법 규정상 죄수를 놓친 간수는 죄수에게 매겨진 형벌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16장 27절), 유대의 분봉 왕으로서 자국민에게 아무런 관용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도,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깨달음도 없는 악한 왕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것에만 분노할 뿐, 자신의 인생이 뒤틀린 위기 상황은 알지 못합니다.
20~22절 경제적으로 유대에 의존하고 있던 두로와 시돈은 헤롯의 환심을 사기 위해 왕의 신하를 통해 자리를 마련합니다. 식량을 얻기 위한 무역 협정이 성사된 날, 한껏 차려입은 헤롯을 향해 각종 아첨의 말을 쏟아내며 신으로 추앙합니다. 우리 역시 부와 권력의 양극화가 심각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과 양심, 진심을 저버린 관계나 지위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25절 바나바와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마무리한 후, 오는 길에 요한 마가를 합류시킵니다. 교회에 불어닥친 박해에도 공동체는 서로를 돌아보며 짐을 나누어 졌고, 사역자를 발굴하는 데에도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부흥하는 공동체는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도, 서로를 세워가는 방식도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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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은 베드로를 지키지 못했던 병사들을 죽이고 가이사랴로 떠났습니다. 당시 헤롯은 두로, 시돈 사람들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두로, 시돈 사람들은 곡물을 얻기 위해서 곡물 수출을 금지한 헤롯의 환심을 사야 했는데, 이것이 20절의 배경입니다. 헤롯은 어느 날 그들에게 연설을 했고, 그들은 이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라고 헤롯을 한껏 치켜세웠습니다. 이것이 신성모독임을 모를 리 없었던 헤롯은 닷새 후에 죽었고(요세푸스가 자세히 기록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은 그를 하나님께서 치신 것이라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3. 사도의 첫 순교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흥왕하여 힘을 더해갔습니다(24).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한편 바나바와 사울은 부조를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마가 요한(마가복음의 기록자, 바나바의 조카, 베드로의 제자)을 데리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사도행전의 무대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옮겨집니다.
4.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흥왕합니다. 이를 대적하는 모든 세력은 결국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을 사도행전은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주님의 핵심 제자 그룹(베드로, 요한과 야고보)인 베드로나 요한에 비하면 적게 알려진 야고보는 사도들 중 첫 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했습니다. 한편 당대 최고 권력자 헤롯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쉬지 않고 행하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빈번한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게 하옵소서. 강단마다 말씀의 능력이 살아나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강단마다 흥왕하여 든든히 세워지는 역사를 허락하옵소서.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스스로 영광을 취하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깨달아 주께만 모든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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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헤롯의 포악함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베드로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아무 잘못도 없는 파수꾼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헤롯의 입장에서 죄를 물어야 한다면 천사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무슨 죄가 있습니까? 결국 책임 전가는 전형적인 죄의 속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20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두로와 시돈은 무역을 하는 도시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홍콩과 싱가포르와 같은 자유무역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농사를 지을 만한 충분한 땅이 적었기에 헤롯 왕국의 갈릴리에서 생산된 곡식을 공급받아 맨 했습니다. 헤롯이 무엇 때문에 노여워했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권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를 억압하려는 시도를 했음이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무역에서는 오히려 경제적인 득을 보았지만, 오히려 중국과의 교역에 있어서 많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체제가 아닌 국가에서 통제하는 무역과 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중국 기업과 국가의 조직적인 방해로 우리나라의 많은 기술을 중국에 빼앗기고 많은 분야에서 중국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조선, 철강은 빼앗긴지 오래고, 이제는 반도체와 핸드폰 시장마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제와 안보를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와 안보를 누구보다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역사를 운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악인의 형통함을 통해 확장되지 않습니다.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21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택한 날은 로마 황제 글라디우스의 생일이었습니다. 헤롯은 두로와 시돈의 사절들을 정식으로 접견하기 위해 온통 은으로 만든 찬란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헤롯이 연설을 한 후에 심한 복통으로 쓰러져 왕궁으로 호송되었지만 닷새 만에 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서 주의 사자가 곧 쳐서 벌레가 먹어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왜 죽었는지 당시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이처럼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공식적으로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심판에 대한 계획을 계시하시기도 하지만 정확한 때를 알려주시거나 어떤 공식으로 드러내시지 않는 것은 우리의 나태함과 교만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에 대한 심판이 지연되거나 악인의 형통을 보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악인의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아무튼 헤롯이 죽은 이후에 유대는 로마 총독의 지배하에 있게 됩니다. 결국 복음을 방해하는 교만한 세력은 무너지고 초기에 기독교에 대해 큰 반감이 없었던 로마 총독의 지배하에 있게 됨으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기반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방해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개개인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면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성령께서 알아서 우리를 인도하실까요? 물론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자녀들의 길을 목적하신 대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결국 산 넘고 물 건너 돌고 돌아가는 인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소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시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최근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살의 원인이 80% 우울증인데, 결국 우울증은 살 소망이 없기에, 즉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기에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돈 많고 인기가 많은 유명 연예인이 무엇이 부족해서 우울증에 걸리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99%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1%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은 1%의 문제 해결을 위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을 바라보아도 환경은 절대 변하거나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고 있는 99%를 가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즉 천국에 소망을 두는 자는 살아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비록 환난 중에 있더라도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롬 12:12).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오직 소망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24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세상은 변하지 않더라도, 경제는 어려워지더라도, 때론 자식이 속을 썩일지라도, 오직 여러분 마음 가운데 말씀이 흥왕하여 더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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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의 교만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세상권세
헤롯은 당시 로마 황제와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지역의 많은 부분을 다스릴 권리를 얻었습니다. 할아버지 헤롯대제 때의 영토 대부분을 통솔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이 교만하였습니다. 그의 교만을 더욱 부채질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Ac 12: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마음에 들지 않아했는데 두로와 시돈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양식을 유대지역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화해하기를 원하였습니다.
한 연회를 정하여 헤롯이 그들의 청을 들어주기로 정하였습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Ac 12:21–22) 은으로 만든 화려한 왕복을 입고 사람들에게 연설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쩌면 두로와 시돈에서 파송한 사람들일 수 있고 아니면 그들을 포함하여 가이사랴에 있는 사람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 입장에서는 헤롯에게 잘 보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헤롯의 연설을 듣고 환호하였습니다. 말하기를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로마 황제는 스스로 황제라 칭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헤롯도 그런 칭찬에 취해 있는 것입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면서 가이사랴에서 신이라 칭함까지 받으면서 교만스럽게 있는 모습이 참으로 죄스러웠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Ac 12:23) 하나님이 그를 치셔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을 이 땅에서 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헤롯을 치신 것 또한 맞습니다. 심판은 마지막에 하늘에서 있지만 때로는 이 땅에서도 죄에 대해 심판하실 때도 있습니다. 헤롯의 창자에서 벌레(기생충?)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허무하게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세상 권세가 그러합니다. 권세를 가지고 있을 때는 사람들이 아부하고 자신도 무엇인가 대단한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권력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떠납니다. 권력이 떠나면 그 사람의 비참함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권세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2.교회권세
세상 권세인 헤롯의 교회 핍박 이야기의 결국은 24절로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Ac 12:24) '말씀의 흥왕'은 개인 안에서 흥왕할 수도 있고 또한 더 많은 사람들 안에 흥왕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둘 다를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인 헤롯이 교회를 핍박하였을 때 그로 인하여 교회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흥왕하였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은 조금 더 줄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핍박에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임이 더욱더 드러났습니다.
교회의 권세는 세상 권세와 다릅니다. 교회의 권세는 누르는 힘이 아니라 영원토록 빛나는 진리요 말씀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붙잡고 있으면 권세가 있는 것이요 말씀을 놓치면 권세를 잃은 것입니다. 구원하는 권세는 누르는 힘이 아니라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교회권세가 말씀이 흥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권세를 닮은 권세일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권세를 좇아가면서 그것이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권세는 결코 교회권세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권세를 탐하고 좇아가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세상권세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권세를 탐하는 탐욕자들로 인하여 교회가 오염되고 교회권세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권세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권세는 없을지언정
교회권세(말씀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복됩니다.
헤롯의 세상권세가 가득하였지만 아주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권세에 의해 핍박을 받고 흉년에 의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교회는 말씀의 흥왕으로 그 권세가 이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곳곳에서 세상권세와 교회권세가 혼동되는 것을 봅니다.
번영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말하는데 결국은 세상권력을 말하지 교회권세가 아닌 것을 봅니다.
교회권세는 세상권력과 분명히 다릅니다.
교회권세는 무엇보다 말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진리가 드러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말씀을 제대로 다 전하지 못하고, 말씀을 쉽게 한다고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전하는 것으로 이룬 부흥은 교회권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들어온 세상권세입니다. 세상 권세의 허무함과 오직 복음(말씀)으로 구원함에 이른다고 가르치면서 어느새 교회가 세상권세의 중심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가진 세상권세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교회는 세상권세를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교회권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권세는 무너지며 오직 교회권세만이 구원함에 이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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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은 사도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베드로를 죽이고자 하다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더구나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헤롯을 심판하심으로 사도들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친히 싸우십니다.
[헤롯과 화목을 청한 시돈 사람들]
20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였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대와 두로와 시돈의 관계가 안 좋았습니다. 두로와 시돈 지방의 사람들은 이스라엘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와 외교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헤롯에게 나와서 왕의 침소 맡은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헤롯과 화목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신의 소리라고 하는 사람들)
21,22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았습니다. 두로와 시돈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과 화목하고자 하였습니다. 헤롯은 백성에게 연설을 하였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모인 백성들이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헤롯의 소리는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헤롯에게 최고의 아부를 하였습니다. 아부는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헤롯은 온통 은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나와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이제부터 당신을 신으로 섬기겠노라고 아첨하자, 헤롯은 그 신성모독적인 말을 모른 체하여 유대인들로부터 반감을 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한다고 기독교회까지 핍박한 헤롯의 신앙은 거짓임이 드러난 셈입니다. 라 로슈푸코라는 왕에게 넘치는 찬사를 바치는 것은 처벌을 받지 않으면서도 왕을 몰락시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헤롯이 들은 찬사는 그의 인격과 덕 때문이 아니라, 오직 폭군의 권세를 두려워한 거짓과 아첨이었습니다.
(교만한 헤롯의 죽음)
23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헤롯은 자신을 신이라고 할 때 나는 신이 아니라고 하고 옷을 찢어야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소리를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헤롯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사단과 같이 교만하였습니다.
주의 사자가 헤롯을 치셨습니다.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그는 로마 황제의 생일을 맞아 가이사랴 극장에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함께 모아 놓고 연설을 한 후 닷새 만에 죽었다고 합니다. 연설을 하던 중 자신의 머리에 올빼미가 앉은 환상을 본 후 배가 아프다고 하며 계속 심한 복통에 시달렸다고 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강한 권세자들도 당신의 영광과 섭리를 대적하고 회개치 않으면 하룻밤 사이에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 있습니다. 벌레 한 마리로 몰락시킬 수 있으십니다. 그는 ad44년에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가둔 헤롯을 심판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인 자를 심판하셨습니다.
(흥왕한 하나님의 말씀)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교회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베드로를 구하셨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헤롯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흥왕하여 갔습니다. 결국 야고보 사도의 순교와 베드로 사도의 고난을 일으킨 헤롯 아그립바 일세의 죽음은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더하는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스스로 달음박질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욱 줄기차게 널리 퍼져갔습니다.
(예루살렘을 부조한 바나바와 사울)
25절을 보십시오.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에서 세계선교를 힘있게 섬기고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로 예루살렘을 다녀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마가라는 요한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바나바의 생질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온후에 생질 마가를 다시 발탁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는 후에 베드로의 제자가 되고 마가복음을 저술하는 저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사도바울의 동역자가 됩니다. 이후후터는 예루살렘 교회가 중심이 되다가 13장부터는 안디옥교회가 중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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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 베드로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안에서는 사도들과 여자아이가 실갱이하는 장면으로, 베드로가 아니라 그의 천사라는 말입니다. 많은 고대 히브리인들은 각 사람을 지키는 천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천사는 자신이 지키는 사람과 같은 용모, 동일한 음성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아이가 베드로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니 그의 천사라고 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네가 미쳤다’라고 핀잔을 준 것입니다. ‘미쳤다’는 말은 정신이 나갔다는 말로, 제 정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왔는데도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기도한 대로 베드로가 무사히 그곳에 당도했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정신 나간 사람들이 제 정신인 사람을 나무란 것입니다. 무지한 육신입니다. 사돈 남 말할 필요가 없으니, 실은 베드로도 매 한가지입니다. 감옥을 나와 시내에 이르자 그제야 천사를 천사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천사를 따라가면서도 그는 생시가 아니라 환상인줄 안 것입니다. 뼛속까지 육신으로 찬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의심하는 그들을 자신의 모습으로 투사하여 그 점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단 번에 일으킨 베드로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속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심지어 그는 죽어 있어 다비다에게 명령하여 그 영혼이 돌아오는 기적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작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능력의 보유자가 제 정신이 들자 한 말이 겨우 그 말입니다.
아무리 큰 기적과 이적 그리고 능력을 경험한 사람일지라도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인간일 뿐 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영과 육을 훈련해야 합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몸을 단련하듯이,
육신을 쳐 영을 살려야 전인적으로 건강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훈련으로 몸을 단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은 육신의 본성대로 따라가려는 속성이 있어 우리를 육으로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곧 육신에로의 회귀본능이지요. 막아야 합니다. 육신의 길은 필경 사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하늘에 닿을 수 있는 찬양으로 우리 몸을 업 시켜야 할 것입니다.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는 분의 귀에 들리도록 전심으로 기도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말씀이 단 한 순간이라도 떠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방심으로 인해 어느새 육신의 생각에 젖어 들지 않기 위함으로, 영과 육의 싸움에서 육신이 우리를 점령케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프로선수라고 하더라도 며칠만 쉬면 몸에 표시가 난다고 합니다. 몸이 그의 상태를 알려주기 때문이지요. 영적인 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싸움은 평생 해야 하는 과제로 우리의 숙명과 같습니다. 영과 육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몸을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그 싸움에서 양보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는 우리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라고 합니다. 실전 같은 훈련을 한 병사가 싸움터에서 강한 법입니다.
7월18일 청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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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베드로를 옥에서 건지시는 놀라운 기사를 베푸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던 마가의 집으로 갔습니다
베드로가 문을 열어 달라 하니 로데가 그 음성을 알아 듣고 너무 기뻐서 뛰어 들어가 어른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기도는 했지만 정말로 옥에서 나올 줄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옥에서 나오게 하신 일이 있긴 했습니다(행5:18~19)
그러나 경비가 강화되어 군인 넷씩 네개 조가 윤번으로 전담하여 지키고 있었고,
두 쇠사슬에 매여 있었는데,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옥에서 걸어 나오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실 베드로 자신도 너무 놀라워서 환상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행12:9)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꿈 같은 놀라운 일들을 많이 행하십니다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사64:4)
그때에 우리는 기뻐서 놀라고,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행12:16),
저들은 당황하여 놀랄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행12:18)
베드로는 놀랍게 건지시니 생명 길을 갔고,
원수 헤롯은 놀랍게 치시니 벌레 먹혀 죽었습니다
참으로 주께서 우리를 모든 눌림에서 놓이게 하시는 꿈 같은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126:1)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그때에 주께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실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살후1:10)
그러므로 우리에게 기적을 행하시는 주를 찬송하기 원합니다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시107:8)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놀라우신 주님을 영원히 찬송하기 원합니다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욜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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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샤랴는 사마리아 해변 지역에 헤롯 아그립바의 조부인 헤롯 대왕이 당시 로마의 황제 시저의 이름으로 건설된 화려한 왕의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아그립바는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자신의 세상적 권세로 압박하여 그들이 화친을 청하기 위에 찾아오게 만들었고 화려한 모습으로 연설을 할 때 거짓 존경과 신적 존재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벌레, 곧 원어적으로 세균 감염으로 죽음의 심판에 놓이며 한낱 먼지와 같은 존재로 사라지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가이샤랴 빌립보, 즉 분봉왕 헤롯 빌립이 세운 또 다른 왕의 도시에서 세상적 권세에 주눅 들어 있는 제자들을 향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물었고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라는 고백을 듣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의 열쇠를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화려한 왕의 도시에서 세상적 권세를 자랑하는 이들의 교만한 입술 위에 결국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임하였습니다. 세상 가운데 초라하고 쫓기고 핍박당하며 유리방황했던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고백을 통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치 않는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구원의 복된 소식의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역사 가운데 새겨 놓으신 은혜와 섭리를 깊이 돌아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그 놀랍고 신비로운 주님의 뜻이 드러나고 증거 되는 오늘 하루의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갈라디아서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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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그 때는 최소한 바나바와 바울이 부조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출발하기 전 일 것입니다. 따라서 아직 헤롯왕이 통치하고 있었던 시기일 것입니다.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교회를 흥왕 시키며 승리하고 있을 무렵 예루살렘에서는 또 다른 박해의 조짐이 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헤롯은 모두 다섯입니다.
첫 번째 헤롯은 예수님 탄생하실 때 유아 살해 명령을 내렸던 소위 대 헤롯입니다.
두 번째는 헤롯 아켈라오로 대 헤롯의 뒤를 이어서 6년 동안 왕 노릇 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 헤롯이 헤롯 안티파스로 세례요한의 목을 벤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 아그립바입니다.
본문의 헤롯은 로마 황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성장했으면서도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 때 투옥되기도 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유대와 사마리아의 통치권을 받게 된 것은 A.D.41년 폭군 칼리굴라(Caligula)가 암살당한 후 글라우디오(Claudio)가 황제로 즉위할 수 있도록 공헌한 데 대한 대가였다고 합니다.
아주 지극히 정치적인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욕망이 남달리 강한 사람입니다.
정치적 생존 능력을 갖춘 인물입니다.
그는 친유대교적인 정책을 펴면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헤롯은 행26:28절에 나타나는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가이사랴에서 사도 바울을 재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것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그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에 노심초사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설명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는 로마사람들에게 충성하기를 원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권좌가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욕망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사람의 목숨까지도 가볍게 취급할 수 있도록 최면을 걸어오는 것이 권력이요 욕망입니다.
아마 여러분 스스로에게 이 부분을 물어보시면 쉽게 대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헤롯의 죽음(20-23절)
그러자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블라스도를 통해서 아첨을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솔로몬 시절부터 예루살렘에서 양식을 수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갈릴리 산 옥수수를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궁의 침소를 맡은 시종인 블라스도에게 뇌물을 주고 중재를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헤롯이 온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아부가 심했겠습니까?
요세프스는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갑자기 복부에 강한 고통을 느꼈고 5일간을 앓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헤롯 아그립바는 54세의 일기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애썼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 헤롯 보다도 넓은 영토를 글라우디오 황제로부터 하사 받고 역대 헤롯 가운데 가장 큰 권세를 행사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자신을 신이라 부르는 소리에 교만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을 가졌던 헤롯 아그립바 역시 하나님의 심판 앞에 하릴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 어떤 학자는 아마도 기생충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전후 정황으로 볼 때 하나님이 그를 징계하셨으며 징계의 방법이 기생충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이것이 영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욕망의 말로입니다.
헤롯은 천년만년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다만 현재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충실하게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가진 정치력과 힘을 모두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가볍게 취급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부하들까지도 말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분에 넘치는 찬사를 들으면서 금으로 몸을 치장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욕망의 말로는 어이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베드로가 감옥에 없는 것에 화를 내며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로마법잉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는 동족에 대한 자비나 긍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베드로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숨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엉뚱한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탐욕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54세의 한창 나이에 주의 사자가 그를 치니 벌레에 먹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흥왕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방인들을 향한 전도 여행이 시작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을 일컬어 아침안개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솔로몬은 이런 모든 부귀영화를 누려 보았더니 헛되더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의 영감 된 저자들의 이런 증언에 귀를 기울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다시 욕망이라는 전차에 몸을 싣고 앞에 부딪혀 오는 장애물들을 격파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럴수록 비극은 더 커집니다. 지켜야할 것이 많은 사람은 늘 노심초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헤롯 아그립바는 주의 사자에게 하릴 없이 죽었고 그가 박해하던 교회는 오히려 흥왕하고 기쁨이 가득합니다. 헤롯의 죽음은 탐욕스러운 인생이 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삶을 탐욕에 노예가 되어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는 신생 교회로서 예루살렘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하고 사울은 바나바와 함께 성공적으로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방인을 향한 사도 바울의 시대가 곧 펼쳐질 것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마가 요한의 등장은 곧 이어질 바나바와 사도 바울의 결별을 예상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네 인생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억척스럽게 움켜쥐려는 인생보다 주님의 말씀에 충실한 인생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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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에도 불구하고 흥왕해 가는 하나님 나라...-
감옥을 빠져 나온 베드로를 찾지 못한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처형하라고 명한 헤롯은 가이사랴로 내가 갑니다. 헤롯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왕의 소리가 신의 소리라며 아부를 합니다. 헤롯은 교만에 빠지고, 결국 주님의 심판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반면에 박해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흥왕해 갑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요한을 데로 예루살렘에서 돌아옵니다.
_ 헤롯은 자기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18~19절).
정제되어 나오지 못한 나의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로 남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베드로가 사라진 일에 대해 헤롯은 어떤 행동을 보였습니까?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상처를 준 일은 없습니까?
_ 헤롯은 자기 영광에 취하여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20~23절).
(23절).교만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달콤한 유혹의 손길이 나에게 다가올 때, 그 자체를 과감하게 뿌리칠 수 있도록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신적인 존재로 추앙을 받은 헤롯은 어떠한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신앙적 양심을 버리면서까지 내가 바라는 것을 취해 본적은 없습니까?
_ 외부의 박해가 아무리 심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나라는 흥왕해 갑니다(24~25절).
세상의 박해가 거세게 교회를 위협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더욱 강한 팔로서 교회와 성도들을 붙드십니다(24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교회와 성도들 핍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더 흥왕해 갔습니다. 새로운 일꾼들이 세워지면서 하나님 나라의 전파는 더 큰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25절).
아무리 세상은 교회를 비판하고, 믿는 성도들을 욕하더라도 그래서 복음의 진행이 어둡게만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는 결코 멈춰 서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더욱 믿음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수 많은 박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도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세상 가운데 보일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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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증거하는 일이 꺼지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 되며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오늘도 원하고 또 구합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이 심령 가운데 새겨지고
담대하게 세상 가운데 그분을 증거하는 복된 제자로
살아가도록 성령충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의 증거로
나아가는 선교사님들의 발걸음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자연재해로 고통받고 눈물로 신음하는
이들을 찾아가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도록 선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