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행 버스를 탔다. 서너 정류장 째쯤에서 젊은 엄마가 두 딸을 데리고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내 앞좌석에 앉았다.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딸은 엄마 옆에 앉히고, 5살쯤 되어 보이는 큰딸은 오른쪽 옆 좌석에 앉혔다. 엄마는 앉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전화하기 시작했다. 통화내용을 언뜻 들으니 소아과에 가는 중인 것 같았다. 한참을 가는데 엄마 옆에 앉은 작은아이가 이리저리 뒤척이기도 하고 가끔은 일어섰다 앉았다 하기도 했다. 엄마가 말했다. “똑바로 앉아!” 아이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좀 더 크고 거칠고 짜증난 말투였다. “똑바로 앉으라니까!” 그러자 아이가 바른 자세를 취했다.
얼마만큼 가는데 이번에는 옆 좌석에 앉은 큰아이가 앞좌석의 뒷부분에 두 발을 올리고 그림을 그리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엄마가 말했다. “발 내려!” 큰아이 역시 엄마의 첫 번째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발 내리라고 했지!”하고 손바닥으로 딸의 무릎을 내리쳤다. 순간 아이는 놀란 듯 발을 내렸다. 그러나 곧이어 두 발로 앞좌석을 두어 차례 툭툭 찼다. 엄마가 명령하고 때린 것에 대한 화를 푸는 듯했다. 그리고 한참동안을 시무룩했다.
부모의 바람을 자녀에게 말하고자 할 때 위의 엄마와 유사한 방식을 사용하는 부모도 상당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두어 차례 경고한 후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왜 말을 안 들어!”하며 느닷없이 손이 올라가기도 하고, 한번만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위협하기도 한다. 하던 행동을 멈추도록 하나, 둘, 셋, 셋의 반, 셋의 반의반을 세기도 한다. 두 세 살 된 어린 자녀가 울면서 무엇인가를 요구하면 “왜 울어? 말로 하면 되지.”하고 짜증 섞인 말을 하며 노려보기도 한다.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왜 울어? 말로 하면 되지.’라고 말하는데 바로 그 말이 해답이다. 명령하거나 다그치거나 짜증난 말투로 하지 않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면 된다.
“오래 앉아 있으려니 답답하지? 그런데 공원이나 운동장 같은 곳에서는 마음대로 뛰놀아도 되지만 버스 안이나 전철 같은 조용한 곳에서는 떠들거나 앞에 있는 좌석을 발로 차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 그러니까 자리에 예쁘게 앉아 책을 보거나 창밖의 멋진 풍경을 보면서 가면 돼.” 또한 울면서 무엇을 요구할 때에도 “그럴 땐 울지 말고 ‘엄마 00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돼”라고 말해주면 된다. ‘엄마한테 한번 말해 볼래?’라고 실습까지 시켜주면 더욱 효과가 크다.
사실 아이들은 버스나 전철 등에서 오랜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렵다. 그뿐 아니라 장난을 친다거나 앞좌석을 발로 차는 일이 잘못된 일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떤 식으로 요청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실습을 시켜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부모와 자녀 간에 좋은 관계가 형성됨은 물론 아이가 자기표현능력을 갖게 되는 등 이중, 삼중의 효과도 따른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배우자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할 때 대개는 다짜고짜 “이렇게 바쁜데 안 보여요?”라고 불평을 하거나 심하면 “당신이 그렇지 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또한 스스로 알아서 도와주기를 바라다 자신의 바람대로 되지 않으면 서운한 감정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다른 일이 터지면 그때 가서 과거사를 들추며 싸잡아서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서서히 앙금이 생겨 마음을 닫게 되고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렇다보면 별 일 아닌 것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되어 악순환이 이어진다.
배우자에게도 자신의 바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된다. “여보, 혼자 해내기가 많이 힘들어. 좀 도와줘야겠어.” “혼자 하기가 많이 힘든데 시간 좀 어때요?”거기에다가 애교까지 덧붙이면 효과는 한결 커질 것이다. “당신이 도와줘야 내가 오래오래 살지. 좋지요?” 배우자의 욕구나 바람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배우자가 욕구나 바람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비난이나 조롱, 짜증 등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함으로 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부모든, 배우자든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어려서부터 그런 식으로 말해왔기 때문이다. 한 논문(2005, 김홍란)에 의하면 조부모 의사소통유형과 부모의 의사소통유형이 같고 다시 부모의 의사소통유형과 자녀의 의사소통방식이 동일한 가족은 총 89가구 중 69가구로 77.5%로 나타났다. 말을 하거나 듣는 방식의 약 80%정도가 부모를 보고 자연스럽게 익힌다는 것이다.
어려서 부모가 배우자나 자녀에게 자신의 욕구나 바람을 차분하게 표현하지 않고 짜증을 내거나, 공격적으로 표현하거나, 마음에 품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시키는 것을 봄으로써 그 방식이 몸에 배어 자신도 모르게 그 같이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원가족(친정이나 본가)에게서 배운 의사소통방식이 명령, 위협, 짜증, 비난, 조롱 등 역기능적이라면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차분하게 표현하는 기능적 의사소통방식을 연습하면 된다. 사고와 감정 그리고 행동 등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이 경험과 반복에 의해 형성되었듯 새로운 삶의 방식 또한 반복적인 훈련에 의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방법으로는 실연기법이 있다. 실연기법이란 앞으로 예상되는 일을 상상하면서 혹은 말하기 전에 미리 자신의 욕구를 차분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을 말한다. 또한 실패했을 경우에도 혼자서 그 상황을 떠올리면서 다시 시도해보는 것을 말한다. 모방기법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TV나 주변 사람 중 자신의 욕구를 잘 표현하는 사람을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을 익혀나가는 방법이다. 생각만으로 연습하는 것도 조금은 효과가 있지만 직접 말을 하면서 연습하는 것이 효과가 더욱 크다. 버스에서 본 두 아이가 환경을 잘 극복하며 멋지게 자라 이 사회를 위해 귀한 일 하기를 기도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