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여행] 산내면 지리산 와운리 천년송 ...........95
[남원시 여행] 산내면 지리산 와운리 천년송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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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천과 만수천이 만나는 대정리 사과나무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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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산내면 와운리,지리산 천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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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밖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첩첩산중(疊疊山中) 산골 깊
은곳이 삼척 덕풍계곡을 비롯하여 몇군데가 있는데 있다. 그중 한곳이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이다.
고목이 하늘로 빽빽이 치솟아 해와 달이 보이지 않던 곳이 이제 관광 명소가 되어 세상과 소통을 하
고있으니 세상 참 좋아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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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기지개를 켜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던 지리산은 이제 온 산자락에 녹음이 짓어지고 상큼한 바
람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뱀사골 입구에 있는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뱀사골 입구 반선마을에 차
를 주차하고 반선교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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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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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 아래로 뱀사골과 달궁계곡의 물길이 만나며 만수천을 이룬다. 함양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의
수계를 이루는 물길이다. 오늘은 ‘와운 옛길’을 거쳐 산중 깊숙한 곳에 있는 와운마을을 들렀다가, 탐
방로(뱀사골 신선길)를 거쳐 반선으로 내려서는 왕복 약 6km에 이르는 길을 둘러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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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하늘에 떠 다니는 마을(浮雲:부운)에서 구름도 누워가는 마을(臥雲:와운)을 다녀가는 코
스이다. 뱀사골 계곡을 따라 나 있는 ‘뱀사골 신선길’로 들어서자, 산자락에서부터 줄곧 따라 다니던
산멀미 같은 설레임에 계곡의 짙푸른 물빛이 더해지며 걸음은 점점 더디어지는 산자수명(山紫水明)
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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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를 피하게 해주는 사무실의 에어컨 바람도 때론 질식할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럴 때마다 유랑자는 산과 계곡, 강과 바다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떠나곤 한다. 그중에서도
언제나 한결같이 어머니의 품으로 유랑자를 맞이하는 지리산의 심산유곡(深山幽谷)인 뱀사골 계곡은
일상의 피로와 고민을 잠시 내려놓기에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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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것이 뱀사골 계곡물은 잠깐만 손을 담가도 경기(驚起)가 날 정도로 시리고 차갑다, 유랑자
는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오룡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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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대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전을
위해 설치한 울타리로 인해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지만, 우거진 수목 사이로 조망하는 바위의 모습은
웅장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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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청록(靑綠)의 숲과 계곡 풍경에 이끌려 자연관찰로를 따르다 보면, 어느새 길은 계곡과 멀어
지고 산허리를 두르며 나있는 옛길을 걷게 된다. 와운(臥雲)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옛길의 일부 구간
을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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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반선을 따라 3km 들어간 곳에 위치한 와운마을은 도로가 생기기 전엔 생필품을 구하려면 꼬
박 하루를 걸어야 할 정도로 외진 곳에 위치한 오지중 오지 마을이다. 그러나 그길은 모처럼 한 여름
의 숲에서 만나는 힌꽃여귀, 도라지, 금강초롱 등 풀꽃들에 눈길을 주며 걷는 천상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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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광해3), 여름 휴가철이 되기전 때인 음력 3월 29일(양력 5월 11일), 지리산 유람을 나선 남원
부사 유몽인 일행은 다음날 이곳을 들어선다. ‘길을 가다보니 푸른 소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철쭉은
불타듯 붉게 피어 있었다.’라며 풍경에 취한 채 반선 인근에 있었던 내원암에 들어선 후, 계곡을 거슬
러 올라 정룡암이란 암자에서 하룻밤을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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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뜻밖에 이곳에서 조선중기의 청백리 옥계 노진의 흔적을 만나는데, 유몽인은 그의 유두류산
록에 ‘정룡암 북쪽에 한 채의 집이 있었는데. 이 암자의 승려가 말하기를, “이곳이 바로 판서 노진의
서재였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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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옥계 노진 선생이 자손들을 위해 지은 것이다. 선생도 봄날의 꽃구경과 여름엔 옥계(玉溪)에서
더위를 피해가고, 가을날의 단풍놀이를 하러 왔으며, 흥이 나면 찾은 것이 여러 번이었다’라고 기록
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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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한 가지 연결고리가 발견된다. 1580년 4월 초순, 옥계 노진의 문하생으로 임진왜란 때 의
병장으로 활약했던 도탄 변사정은 만수천변 도탄에 살다가, 역시 후일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우는 김
천일, 정염 등과 함께 이곳을 거쳐 지리산 유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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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천왕봉이나 쌍계사로 바로 들어서는 유람길을 택하지 않고, 깊숙한 뱀사골로 들어와 산자
락을 에둘러 다시 함양 마천으로 내려선 후, 천왕봉으로 오르는 특이한 코스를 택한 것이다. 아무래
도 유몽인은 변사정의 유람코스를 따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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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할머니 당산나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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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몽인은 다음날 ‘새벽밥을 먹고 월락동(月落洞)을 거쳐 황혼동(黃昏洞)을 지났다. 고목이 하
늘에 빽빽이 치솟아 올려다봐도 해와 달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밝은 대낮 일지라도 어두컴컴하기
때문에 월락동, 황혼동이라 부른다’는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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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그이처럼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치 숙제라도 내듯 몇 곳의 이름을 툭 던지고 있다. 아직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으나 변사정과 유몽인의 동선으로 볼 때, 아마도 오늘 유랑자가 지나가는
옛길 어딘가를 그렇게 불렀을 것으로 추측(推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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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북두재를 넘어 와운마을로 들어선다. 한때 깊은 산속 별유천지 무릉도원을 이루었을 마을
은 이제 뱀사골 관광의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고, 마을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더욱
애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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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뒤 수호신처럼 서있는 당산 소나무 ‘천년송’을 둘러보기 위해 유랑자도 올랐다, 해발 800m의 아
늑한 지리산 기슭에 둥지를 튼 와운마을은 1595년 국난을 피해 찾아든 영광 정씨와 김녕 김씨 일가가
정착하며 일군 마을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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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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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30여 가구가 모여 살았는데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이제 8가구만 남아있다. 또한 빨치산과 토벌
대의 싸움에서 희생된 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는 이 마을은 1950년대 까지만 해도 낮이면 토벌군에, 밤
이면 산사람(빨치산)에 시달려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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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산길에서 등산객들을 상대로 간단한 음식과 술을 팔
거나 양봉을 하고 나물을 뜯어 팔기도 했다. 그러다가 노송 하나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
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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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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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운마을이 유명한 것은 이 마을에 있는 천년송 때문이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424호로 마을 사람
들은 해마다 정월 초사흘이면 여기서 제사를 지내며 태평을 기원한다. 본시 와운마을 일대는 지리산
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인 지난 1970년대에만 해도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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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화전을 일군 까닭에 비가 조금만 와도 산사태가 일어나고 불어난 물에 사람이 쓸려 내려가
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마을이다. 그래서 일까 주민들은 예전에는 겨울이면 산 아래로 내려
가 살다가 봄이 되면 다시 들어 왔는데 이제는 겨울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바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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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송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수령은 500여년으로 추정 된다는 학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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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종착점인 와운마을은 삼정 능선을 비롯한 주변 산세에 폭 감싸인 고즈넉한 마을. 마을을 찾아오
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식당과 카페가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
들은 시끌벅적하다, 코로나19가 무색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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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와운마을은 산중에 파묻힌 신식 마을의 느낌이다. 소나무,전나무 너와집이나, 돌 너와집이나
샛집등 산골마을의 전통적이며 예스러운 고즈넉함 같은것을 찾아볼수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물
론
주민들의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겠지만,.지리산만의 전통 가옥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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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당산나무
천년송 소나무는 20여m의 간격을 두고 있으며. 각각 할머니(천년송) 소나무와 할아버지(위쪽소나무)
소나무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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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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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지사 개방되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배려한 관점에서 흥미를 느끼고 전통 가옥들을 살려 놓았으
면 어떨까?. 요즘은 지자체들이 먼저 나서 지역 특색에 맞는 볼거리들을 조성하고 개발하는 관광 콘
텐츠를 만들어 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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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도 적극 실시하고. 관광객 편의 도모를 위한 고품질 관광 서
비스 구현에도 힘쓰고 있는 세상이다. 남원시내 광한루만 왔다가는 그런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는 적
극적인 마케팅으로 운봉에 와서도 하루밤 묵고가는 그런 콘텐츠를 개발 해야하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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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상태는 매우 건강하며. 2000년 10월 13일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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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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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그나마 안타까움을 상쇄시켜주는 것이 바로 와운마을의 ‘천년송’이다. 임진왜란 전부터 자
생해 왔다고 알려져 있는 천년송은 마을 북쪽의 언덕에 서서 마을을 지키듯이 굽어보고 있는 천년송
소나무는 20여m의 간격을 두고 있으며. 각각 할머니(천년송:500여년) 소나무와 할아버지(위쪽소나
무:300여년) 소나무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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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토벌작전이 한창일 때 지리산 산골마을들은 무수히 화를 입었다. 와운마을에는 큰 산불이 났
는데, 다행이도 소나무 두 그루는 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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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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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험한 기운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사흘에 할머니 당산 나무에 제사를 지낸다. 오
랜 연륜이 느껴지는 소나무 두 그루는 힘들게 오라온 유랑자에게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늠름한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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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그 아름다움에 크게 감탄한다. 나무 상태는 매우 건강하며. 2000년 10월 13일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수령은 500여년으로 추정 된다는 학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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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다시 추적추적 이슬비 내리는 길을 따라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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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LKz0/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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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산내면 와운길 249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산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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