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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지시 13: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구브로 전도 13:4~12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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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성령이 안디옥 교회 선지자들과 교사들 중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그들이 금식 기도 후 두 사람을 안수해 파송합니다. 두 사람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구브로로 갑니다. 바보에서 그들을 대적하던 엘루마가 바울의 말대로 맹인이 된 것을 보자 총독 서기오 바울이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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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지시 13:1~3
안디옥 교회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입니다. 그곳에는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 등의 사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인종, 여러 지역 출신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섬기며 금식할 때, 성령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바나바와 사울에게 어떤 일을 시키실 것인지, 어디로 보내실 것인지 미리 알려 주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분이 시키시는 일을 위해 둘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사역자들은 금식하며 기도한 뒤에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성령의 지시에는 온전한 순종과 담대한 믿음이 요구됩니다.
● 더 깊은 묵상
성령이 안디옥 교회 사역자들에게 지시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이해할 수 없는 성령의 지시하심에 나는 온전히 순종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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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브로 전도 13:4~12
1차 전도 여행이 시작됩니다. 바울(사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갑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입니다(4:36). ‘마가라 하는 요한’이 수행원으로 동행합니다(5절; 12:12). 그들은 구브로 동쪽 끝 살라미에 이르러 유대인 회당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알고 있어 복음 전파에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리가 약 140km에 이르는 지역을 가로질러 서쪽 끝 바보에 이릅니다. 바보에서는 마술사가 복음 전도를 방해합니다. 성령 충만한 바울이 그의 속임수와 악행을 꾸짖자 마술사는 그 자리에서 맹인이 되고, 총독 서기오 바울이 주님을 믿습니다. 전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성령의 권능과 권위로서 사탄의 방해를 물리치면, 복음은 힘 있게 전파됩니다.
● 더 깊은 묵상
성령 충만한 바울이 복음 전도를 방해하는 마술사를 꾸짖자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영혼 구원에 따르는 영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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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 길을 묻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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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 :사도행전13장 2절
제자들이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성령께서 그분이 시키실 일을 위해 두 사람을 구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길 사람을 세우는 하나님의 방신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외적 조건은 자랑거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맞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면(삼상 16:7), 사람을 세울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금식과 기도입니다.
매 순간 진리를 믿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일하는 것이야말로 복음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 스티븐 퍼틱
오늘의 기도
선교하시는 하나님, 때가 차매 안디옥 교회를 통해 세계 선교의 막을 여신 하나님을 높입니다. 하나님 선교에 수종 들 사람을 부르실 때 저와 우리 가정이 주저함 없이 순종하게 하소서. 선교가 필요한 곳을 알게 하시고, 할 수 있는 사역을 신실함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502 빛의 사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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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시고,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도록 하자!!!
-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 되고, 나눔과 섬김을 실천해 나가도록 하자!!!
-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도 공용어로, 그리고 마을의 언어로 주님을 증거할 수 있을 정도까지 연습을 해 나가고, 그들과 주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나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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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속에서 바울처럼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능력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의 능력으로 자신을 자랑하고 있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 선지자처럼 복음을 방해하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져서 서기오 총독이 예수를 믿었던 것처럼
우리의 입과 삶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것을 기억하시길 소원합니다.
7월19일 인천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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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 유대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의 정체를 폭로하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거짓과 악행이 가득했다는 말은 그 안에 갖은 속임수와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바울에게 지식의 은사가 사용된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곧 영 분별을 한 것이지요. 아울러 바울이 그를 가리켜 마귀의 자식이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총독은 그 섬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그가 주님을 믿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그것을 훼방하였으니 그 행동 자체가 마귀인 셈이지요. 바울은 마술사를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이 모두 성령 충만해서 이루어 진 것입니다. 바울이 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성령께서 친히 행하신 것이지요. 최초의 이방인 교회, 안디옥 교회에서 역시 최초로 파송한 선교사가 나오니 바로 바나바와 바울입니다. 그들이 최초로 만난 대적이 있으니, 바로 유대인 거짓 선지자입니다. 본격적인 사역을 하기도 전에 최초로 도전과 시험이 온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 충만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몸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죄성이 남아 있고, 더불어 알게 모르게 세상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에 정화작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계속하여 거룩한 영이 유입되지 않으면 우리도 썩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령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붙들림을 받는 것으로, 사람의 지, 정, 의 그리고 말과 행동 전부를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사람의 뜻과 의지를 무시하고 억지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인격적인 분이라 그렇습니다. 다만 성도가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따를 때 즉, 인격적으로 반응할 때 역사하시지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개인의 죄성을 초월하여 영적 전사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그를 위하여 성령께 온전히 지배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의 선교 길을 제일 먼저 맞은 것이 사악한 마술사입니다.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를 그는 성령으로 물리칩니다. 그러자 총독이 믿고 그 지역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사역하기 전에 할 일이 있고, 전도와 선교 이전에 먼저 선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단지 인간의 일일 뿐입니다. 바울이 선교사의 길을 개척한 것은 오직 성령으로 무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살면 좋겠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성령 충만하기를 사모합니다.
7월19일 퇴근후 부평구청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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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시고 구브로에 가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로마의 식민정부가 있는 수도 바보에 가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만났는데, 그는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옆에는 바예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가 바로 적그리스도와 짝하여 나타날 그 짐승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계13:11)
그렇다면 이는 누굴까요?
첫째는 매우 경건해 보이는 자입니다 바예수는
"여호수아의 아들", "예수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외모를 보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학력, 경력, 배경 등 모든 조건을 갖춘 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속임수로 현혹하는 거짓 마술사에 불과합니다
둘째는 매우 권력지향적입니다 그는 구브로의 최고 권력자 총독 곁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항상 종교와 정치의 협력을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권력을 탐하는 거짓 선지자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사람들로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자기를 믿게 하고, 진리를 믿지 못하게 합니다
"믿지 못하게 힘쓰니"(행13:8)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가 짐승의 영으로 행하니, 우리는 성령으로 행하면 됩니다
"성령으로 행할지니"(갈5:25)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행하여 승리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행13:9~11)
이에 총독이 모든 된 것을 보고 믿었습니다 성령께서 다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빌1:19)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8:26)
우리가 주 안에 있음을 아는 것도 인지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4:13)
그러므로 오직 성령으로 기도하며 주의 긍휼을 참아 기다리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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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바나바의 고향이었던 키프로스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고 마가도 동행하였습니다.
그 섬을 가로질러 바보(Parphos)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총독으로 근무하고 있던 서기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바나바와 바울을 자신에게로 초대하였습니다.
그 권력에 기생하여 이득을 취하던 ‘바예수(Bar-Jesus)’라 불리던 마술사 및 거짓 예언자가 그들을 대적하자 성령으로 충만했던 바울은 그를 저주하며 눈이 멀고 어둠에 갇히도록 선포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고 여겼던 그가 누구보다 어리석고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게 됩니다.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핍박하고 자신의 의를 강조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3일간 앞을 못 보는 존재가 되어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이 연약하고 어리석어 그리스도 예수 없이는 하나님의 높고 깊고 크고 넓으신 사랑과 계획을 알지 못하고 그 십자가의 대속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그 나라를 들어갈 수 없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고 주님의 자녀로 사랑하며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성령이 주도하시는 세계 선교” 김승수 목사
안디옥교회가 이방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어 바나바와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과 사울 등 다양한 민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교사들과 주축이 되어 교회를 부흥시킵니다.
안디옥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민족과 신분을 뛰어넘어 하나가 된 성령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속한 모든 교회가 안디옥교회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선교를 위해 파송하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의 순종으로 이방선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의 2차 선교여행이 시작됩니다.
성령님께서 사도바울과 바나바를 부르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도 성령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들은 처음 구브로에 도착하여 여러 회당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사도바울이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총독에게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이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꾸짖자 총독은 맹인이 되고 여러 해 동안 앞을 보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과 대적하여 승리합니다.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믿음으로 담대히 악한 영과 싸워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총독이 문이 멀고 앞을 보지 못하자 놀랍게 여깁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담대하게 믿음을 증거 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운전한 순종으로 반응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시는 곳곳으로 나아갈 때 복음이 전파되고
어둠이 떠나가며 영혼들이 살아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역사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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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최초의 선교사로 말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에서의 바울과 바나바의 역할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에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파송하게 됩니다. 안디옥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들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온전히 성령님의 도우심에 철저하게 순종하였기에 최초의 선교 역사가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역은 환경에 매이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인가?
2.사단의 방해
선교사로 파송 받은 바울과 바나바가 바보 지역에 갔을 때 바예수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가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건이 생깁니다.
결국 바예수 엘루마는 바울 사도에게 책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소경이 되는 일이 생깁니다. 바예수는 자신의 자리가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이들을 방해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말씀을 방해하는 행위는 아주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방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엘루마가 소경이 되는 사건을 통하여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묵상하기
복음의 길에 사단의 방해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함을 확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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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명령을 따라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두 사람은 첫 행선지를 구브로로 정하고 이방인 선교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성령님은 어떤 분입니까?-
1~3절 이제 복음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베드로에게서 바울에게로,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팔레스타인에서 지중해로 이동하는 분수령을 맞습니다. 성령은 이방인 선교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안디옥을 선교의 중심으로 삼고, 안디옥 교회의 핵심 사역자이자 이방 지역 출신인 바울(다소)과 바나바(구브로)를 선교사로 파송하십니다. 계획과 준비와 파송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성령께서 주도하셨고, 교회는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선교는 교회를 향한 성령의 지상명령입니다. 온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있어 이 사명에 한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절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인종과 출신, 신분이 모두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복음의 전진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동역합니다. 그들의 다양성은 그들이 수행할 선교의 포용성을 예고합니다. 혹 우리는 ‘차이’를 ‘차별’로 바꾸어 서로 거리를 두고 공동체적 사명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7,12절 복음을 사이에 두고 ‘바울’과 ‘바울’이 만납니다. 한 사람은 성령께서 세우신 이방 선교사였고, 또 다른 (서기오) 바울은 전도여행 중 만난 최초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 새 인생을 시작한 사도 바울은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총독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의 회심을 이끕니다. 오늘 내가 복음을 사이에 두고 만나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과거 회심에 대한 기억이 감격에서 사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8~11절 생계의 위협을 느낀 마술사 바예수는 총독이 예수의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바울 일행을 방해합니다. 그의 아람어 이름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돕는 ‘구원의 아들’이었지만, 실제로 그는 다른 이의 구원을 막아선 ‘마귀의 아들’이었습니다. 결국 욕심에 눈먼 바예수는 실제로도 눈먼 자가 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성도의 삶이 내게도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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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었더라.
1. 이제 사도행전의 무대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베드로의 사역에서 바울의 사역으로 그 중심을 옮겨갑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 사도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확장되게 되었습니까? 먼저 안디옥교회의 다섯 지도자의 이름이 소개됩니다(1). 바나바와 바울을 제외한다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지만 니게르는 그가 흑인임을 짐작하게 하고, 루기오의 고향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도시이며,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형제나 친구) 마나엔 등은 이들의 다양한 배경을 보여줍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라는 말은 이 지도자들이 기도와 금식으로 교회를 섬겼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이렇게 섬기는 교회는 얼마나 복 될까요! 그들이 이렇게 섬길 때 성령님께서는 특정한 일을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2). 지도자들은 다시 금식하고 기도했고 성령님의 지시대로 두 사람을 안수하여 이방인의 전도자로 파송하였습니다(3).
3. 이렇게 이방인 전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어느 교회의 선교위원회나, 어떤 지도자가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1차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구브로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유대인 마술사요 거짓 선지자인 바예수를,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책망하자 그의 눈이 멀게 되고, 총독은 이렇게 된 일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겼습니다(12). 때때로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을 성령께서는 이렇게 무섭게 다루실 때가 있습니다(10). 그러나 이것은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통제 하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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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에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는 훌륭한 일꾼을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보내주신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꾼은 수평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서 길러지고 세워지는 것입니다. 양육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여기저기서 사람을 끌어모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온전하며 완전하며 성숙된 복음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온전하고 완전한 것은 일시적이 아니라 계속적인 것을 통해 가능합니다. 착하고 선한 그리스도인은 많이 있는데 복음인은 없습니다. 착한 사람은 세상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인은 그 성품이 착함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 문화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문화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어느 곳에 갖다 놓아도 중심 축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문화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는 바로 교회를 통해서 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성도 각자가 세상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선도한다는 것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성경의 가르침과 복음인의 양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잘못된 것에 대해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세상의 부정부패와 잘못된 관행에 대해 눈감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차가운 세상에 모닥불과 같이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입니
그렇습니다. 세상을 선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처럼 세상 가운데에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작은 일, 따뜻한 선행이 어두운 이 세상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90% 이상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트 챈들러 목사는, 오늘날 교회는 도시를 정복하는 복음인으로 가득 차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시를 정복하는 사람의 특징은 사람과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고 복음에 흔들리지 않는 자들입니다. 항상 원칙적으로 그 자리에 있는 자들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세상의 문화와 관습이 어떻든, 서로 먹고살기 바쁠지라도 항상 복음의 자리에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에 훌륭한 복음인들로 채워주신 이유는 그곳이 바로 복음의 전초기지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파송한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전주에 안디옥 교회가 있습니다. 재정의 60% 이상을 선교비로 지출하는 교회입니다
주님의 교회로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18)"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리디머 교회의 팀 켈러 목사는 28년동안 부흥시킨 리디머 교회를 6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임하면서 세개의 독립교회로 분리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메가처치(대형교회)가 아니라 가족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어야 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4~12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안디옥의 많은 그리스도인 중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선교사로서 선택을 받았습니다. 교회 역사에 있어서 초대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첫 선교에 대한 소명은 성령으로부터 왔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사역에 대한 부르심, 즉 소명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금식을 할 때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현상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성령의 계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 생각이 없을 때나, 할 일이 없어 방황하고 있을 때 성령의 부르심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역자들에게 초대교회처럼 성령의 분명한 메시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명을 받기 위한 준비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주시는 힘으로 한다는 것에 마음의 위로와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확신이 들었습니다.
4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사도행전의 별명은 성령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의 시작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사도들의 모든 사역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울과 동행하며 선교의 현장에 있었던 누가는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일의 중심에 성령의 역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눈으로 목격하고 직접 들은 이야기의 핵심은 모두 성령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성령께서는 다양하게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문제는 사역자들이 성령을 간구하고 의지하는 데 있어서 오히려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성령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정신나간 말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다고 성령의 은사 중 일부를 부인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성령께서는 어떤 때에는 불처럼 임하시고, 또 어떤 때에는 세미한 음성으로 혹은 따뜻하게 마음을 만져 주시며, 지혜를 주셔서 모든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하려 하기 때문에 성령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거나 임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은 빈 마음에 오시지 자아로 가득한 마음에 절대 오시지 않습니다.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던 바울의 겸손함에 성령께서는 더욱 강력하게 임하셨습입니다.
C.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보면 마귀가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성령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문득 하나님을 생각하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 올바로 정립하고자 할 때 마귀는 우리에게 불현 듯 당장 할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길을 걷다가 ‘오늘 나의 삶에 어떤 말씀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면 곧 마귀는 ‘이봐, 점심시간이야 일단 먹고 생각하자고’라고 말합니다.
잠을 자기 전에 ‘오늘 나는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나?’라고 생각하고 돌아보려고 하면 ‘이봐, 몸이 너무 피곤하지 않아? 일단 자고 나서 생각하자고. 더 늦게 자면 내일 몸이 버텨내지 못 할 거야’라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이렇듯 우리가 영적인 일을 생각할 때 언제나 그럴싸한 세상의 생각을 주입해 우리가 신경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방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강한 바람과 지진과 같이 임하시기도 하시지만 세미한 음성으로도 임하십니다(왕상 19:11-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삶에 집중하던 자신을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본향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의 복잡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수록 더욱 그렇게 하십시오.
5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살라미는 구브로의 항구로 가장 큰 도시였으며, 유대인들이 많이 살아 많은 회당이 있었습니다. 당시 바울의 전도는 항상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먼저 가까운 사람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에게는 동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동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한 것은 일단 복음이 전해지면 가장 큰 동역자나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가족이나 형제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첫 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마가라는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습니다
일부 학자에 의하면 수행원의 임무는 개종자들에게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선교의 핵심은 복음 전파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복음으로 무장되는 것입니다.
7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바보는 구브로의 수도로써 당시의 총독은 서기오 바울이었습니다. 공화정 시기의 로마는 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1년 임기의 집정관 두 명을 뽑아 행정과 군사 업무를 보게 했습니다. 로마는 속주의 총독을 그런 이들 가운데서 임명했습니다. 누가는 서기오 바울이 총명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인물이니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서기오 바울을 보좌하고 있던 바예수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마술사였습니다. 당시 통치자들은 수행원으로 마술사와 점성가들을 데리고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통치자라도 불확실한 현실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때 두려움과 황당함이 앞설 수 있기에 상황을 판단하고 결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통치자들은 늘 마술사와 종교인들에게 의지하곤 했던 것입니다. 총독 역시 바예수를 곁에 두고 가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자문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총독이 바나바와 사울을 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자 바예수가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총독이 그들의 말에 넘어갈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입니다. 그때 바울이 전면에 나섭니다.
10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성령에 충만한 바울은 마술사를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바울은 당시 총독의 신임을 받고 있던 바예수에 대하여 마귀의 자식이라고 단호하게 외칩니다. 평소 온유하고 조용한 사람이라도 악한 영을 대하면 단호해지는 것입니다.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주장하시기에 거룩한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귀신을 쫓아내실 때 단호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이 시대에 성령 충만한 사람을 보기 힘든 것은, 부정부패를 보고도, 악을 보면서, 사회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의분을 일으키기니는커녕 동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하고(분당우리교회 J목사),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페미니즘에 편승하고, 국가의 안위를 흔드는 정책을 지지하는 한심한 것에 분노하기는커녕 외면하거나 심지어 지지하는 자에게 어떠한 영이 들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에 동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에 따라서 악의 기준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적용 기준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교만이 악을 낳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처럼 하늘의 권세까지 내려놓은 겸손은 모든 악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악에 대해서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즉 가정과 일터에서 겸손함을 실천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악을 물리칠 수 있는 작은 날개 짓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거룩이라는 작은 기도의 날개 짓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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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교회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 이야기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교사 명단
오늘 안디옥 교회 이야기는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명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해 보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안디옥 교회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1) 바나바 - 바나바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관찰한 바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그가 구브로 출신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왜냐하면 바나바와 바울의 첫 번째 선교지가 구브로이기 때문입니다.
2) 시므온 - 이 시므온에 대해서는 정확치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영광을 얻었던 구레네 시몬이 아닌가 라는 추측을 합니다. 그런데 그가 그 사건으로 인해서 주님을 믿고 로마서 16장 13절에 등장하는 루포의 어머니와 결혼해서 알렉산더와 루포를(막15:21) 낳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이 사람이야말로 억지로 십자가를 졌을 지언 정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본문의 니게르라는 말은 영어 표현으로 Negro입니다. 그래서 그는 흑인이었으며 아프리카 출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미 인종간의 벽이 허물어진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루기오가 흑인이라는 것에서 확인됩니다.
3) 루기오 - 이 루기오는 북아프리카 사람입니다. 위의 시므온과 이 루기오는 아마도 행11:20절의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이지요. 참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들이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바나바와 사울이 교사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교사의 명단에 처음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4) 마나엔 - 이 사람은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헤롯은 헤롯 안디바입니다. 그의 젖동생이라는 말은 친동생이라는 말이기보다는 함께 자랐고 아주 친한 사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어쨌든 이 사람은 귀족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5) 사울 - 이제 이 사울은 13장에서부터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이름을 헬라식 이름인 바울로 바뀌어서 불려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는 다소 출신의 사울, 구브로 출신, 아프리카 출신, 예루살렘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 무슨 인종적, 혹은 지역감정 같은 것이라고는 아예 전조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좋은 교회란 이렇게 다양성과 하나 됨이 공존하는 교회입니다.
구약의아바드(td'bo[}})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 주로 봉사를 의미하는 단어
안디옥 교회가 주를 섬겨 금식하면서 기도할 때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님의 지시는 안디옥 교회가 인간적인 측면에서 생각할 때 유익한 일이었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다분히 인간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의 입장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전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분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교회를 교회되게 성장시킨 사람들이 바로 바나바와 바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을 따로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안디옥 교회에 매어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해서”입니다. 믿음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성숙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순종하기 쉽지 않은 요구사항입니다. 주님은 바나바와 바울뿐만 아니라 함께 동역하고 있는 모두에게 도전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방인의 사도로서 본래적인 바울의 부르심이 이제 실천되고 있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순종했습니다. 이제 복음은 전 세계를 향해서 퍼져 나가야할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바나바와 바울 보내기를 싫어했더라면 그래서 불순종했더라면 예루살렘의 핍박과 같은 박해가 또 일어났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순종했습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내적인 요청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역사적인 사건입니까?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보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은 13:4-14:2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안디옥에서 첫 번째 선교사로 파송 받아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실루기아를 거쳐(13:4), 구브로(13;4)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살라미(14:5)를 거쳐 바보(14:6)에서 전도활동을 하게 됩니다. 살라미는 구브로 섬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바보는 구브로 섬의 수도입니다. 밤빌리아버가(13;13), 비시디아 안디옥(14:14), 이고니온(14:51), 루가오니아(14:6), 루스드라(14:8), 더베(14:20)를 기점으로 돌아오는데,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14:21), 밤빌리아(14:24), 버가(14:25), 앗달리아(14:25), 안디옥(14:26)으로 옵니다.
이 1차 전도여행의 기간은 약 일 년 사개월 정도가 걸렸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자세한 전도 과정을 기록한 곳도 있고 어떤 곳은 간략히 지명만 언급한 곳도 있습니다.
이제 함께 바나바와 사도 바울, 그리고 마가가 함께 하는 전도 여행길에 우리도 함께 떠나 보겠습니다.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4절)
우선 전도 여행에 동참하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13:2절에서도 언급된 내용입니다.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라고 말씀합니다. 분명히 이들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들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들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안디옥 교회 역시 성령의 보내라고 하심을 받아서 파송했고 가는 사람들도 성령께서 가라 하시기 때문에 갔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강권하심을 느끼면서 전도 여행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기쁜 걸음이었겠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 인한 충만함이 이들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문제는 성령의 보내심을 받기는 받았는데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개입되는 시점입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실제로 우리 삶에 어디로 갈 것인가의 문제는 얼마나 심각합니까? 다르게 말한다면 어떤 교회를 선택할 것이며,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이며, 어떤 차를 살 것이며, 어떻게 검소하게 물질을 사용할 것인가 등등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아마 바나바와 사울은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첫 번째 선교지는 구브로가 되었습니다.
왜 구부로입니까?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행4:36절에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전도의 전초기지를 삼은 것은 회당입니다. 이미 회당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교로 인해서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가는 곳마다 회당을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바울이나 바나바보다 먼저 정착해서 생활했던 유대인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바로 이들을 주된 전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왜냐하면 말이 통하고 그러면서도 현지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모범이 되는지 모릅니다.
굳이 말한다면 관계 중심의 전도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접촉점을 잘 찾았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아무나 그저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소리치면서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비록 구약이기는 하지만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전도하면 그곳에 선교사를 파송해 놓고 돌아오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첫 번째 전도지역에서 거짓 선지자 박수 엘루마를 만났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침노한다는 표현을 써야 했는가를 이해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근본적으로 세상은 복음의 진리를 만나기 전까지 모두 이런 마술적이고 매혹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탄에게 장악되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1장이 증거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선택한 대체 신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이 침범 당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마치 주님 이 땅에 오셔서 참된 진리를 선포하실 때 자신들의 설자리가 좁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군중들을 선동했던 바로 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엘루마는 지금까지 자신의 위세의 근원이었던 총독이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듯하자 마음이 타는 듯합니다. 그래서 힘을 다해서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힘쓰니” 그랬습니다. 이것이 박수 엘루마로 지칭되는 세상정신과 유사종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엘루마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대하는 가를 보십시오. 우선 이름이 바울로 바뀌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동안 저도 사울과 바울을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만 누가는 이 뒤로부터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울과 바울은 히브리식 표현과 헬라식 표현이라는 차이 밖에는 없습니다. 도마의 히브리식 이름이 디두모인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성령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그랬습니다.
10-11절입니다.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그랬습니다.
유대인이면서 거짓 선지자였고 마술적인 힘을 과시했었던 박수 엘루마는 그만 소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준비된 사람 바울, 성령 충만한 사람 바울을 만납니다.
첫 번째 사역지에서 만난 대적 엘루마를 성령 충만함으로 이겼습니다. 담대함으로 넘어섰습니다. 할렐루야!
서기오 바울
두 번째로 바울이 만난 사람은 서기오 바울입니다. 구브로는 로마가 총독을 파견하여 총독 정치를 실시하는 곳입니다. 유대 총독이 빌라도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 사람은 박수 엘루마와 아주 가깝게 지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바울과 바나바를 만나기 전까지는 열렬한 박수의 추종자였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누가는 여기서 그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 있다는 말은 본래 신중하고 지성적이며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말은 총독의 통치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표현입니다. 아마 누가는 총독으로서 서기오 바울이 공명정대하면서 분별력이 있는 정치를 한 것을 이 한 단어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얼마나 바울과 바나바에게 청량감을 주고 새 힘을 얻게 하는 역할을 했을까요. 그리고 종래 이 사람은 박수 엘루마가 얼마동안 소경이 되는 것을 보면서, 또한 바울을 통해서 증거 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믿게 되었습니다. 대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씀을 갈급해 하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관찰하면서 이것을 보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마술적이고 매혹적이고 열정적인 것들, 우리를 미혹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진리를 대적하는 세상이며 사탄의 하수인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있는 종교성과 죄성은 교묘하게 조합되어서 그러한 것들로 위로를 삼고자 합니다.
이것을 바르게 보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세상, 그러한 사탄의 하수인인 박수에게 사도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궤계라는 말은 사기군, 협잡꾼이라는 말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를 미혹하는 마술적인 힘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유사한 것들입니다. 진리를 가리우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바로 이러한 세상을 성령 충만함으로 이겨야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서 출발했던 최초의 선교사들의 빛나는 승리를 바라보시면서 어떤 다짐을 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바로 세상을 향해서 파송된 선교사들입니다. 우리 각자가 섬기는 교회가 세상으로 파송한 선교사들이 바로 여러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앞에는 박수와 같이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각종 사탄의 하수인들과 우리의 육신적인 본성을 부추기면서 열광하게 하는 문화와 매체들이 놓여 있습니다.
각종 신기한 성경공부가 있고, 신비한 현상들이 있습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이 시대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대로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까?
그 방법! 그 유일한 방법은 성령 충만 밖에는 없습니다.
이 성령 충만은 마술적인 힘이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에 충실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리에 충실한 삶입니다.
요사이 말하고 있는 기본에 충실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식 표현으로 전에 행하던 대로입니다.
우리 교회의 표현으로 바꾸면 기본에 충실한 생활입니다.
나는 기본기를 끝냈다고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아무리 훌륭한 선수도 기본기는 매일 갈고 닦는 것입니다.
처음 워밍업을 할 때는 반드시 기본기로 하는 것입니다.
기본기는 그래서 훌륭한 선수나 기초를 배우는 사람이나 다 같이 매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는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을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교회로 성장하게하신 것입니다. 그 다양성이 교회를 해친 것이 아니라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후원하는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을 전도하는 일에 쓰임 받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헌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우기 사는 삶의 현장에는 수많은 박수 엘루마와 같은 마술적인 힘으로 무장한 유사 기독교 이단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신들,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참된 복음을 증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미혹되어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어린 신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을 올바르게 잘 배우고 묵상하고 훈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이 통렬한 사도 바울의 호통이 얼마나 가슴 시원 합니까?
우리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이렇게 호통치며 올바른 예수를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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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사도행전 13장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일차 선교여행을 떠나 구보로 섬에서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대적하자 바울은 이방인 전도로 방향을 잡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
1절을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고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교사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안디옥에는 많은 성경 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양하였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의 유대인입니다. 중류 이상의 재산이 있었습니다.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은 니게르가 검다는 뜻으로 아프리카 사람입니다. 루기오는 구레네 사람입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중요 도시이며. 헬라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서 B.C. 5세기 이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집단 거주했습니다. 루기오는 헬라화된 유대인입니다. 마나엔은 교회를 핍박하고 야고보를 죽였던 헤롯왕의 젖동생입니다. 그는 권력자의 측근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소 출신으로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그는 과거에 예수님을 핍박한 자로서 지식을 많이 가진 자입니다. 이들은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열린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 있는 곳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성경선생들입니다. 우리가 복음역사를 섬기는데 성경지식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교사님은 형형색색의 펜으로 성경에 줄을 치며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쓴 페이지수 무게 글자수를 가지고 점수를 메겼습니다. 오늘날 정보혁명 시대입니다. 새로운 지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성경 연구를 해야합니다. 모든 스텝이 성경을 연구하여 성경 공부 자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죄사함의 복음, 은혜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금식기도하는 안디옥 교회)
2절을 보십시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섬겼습니다.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금식하였습니다. 그들은 살고자하는 욕망까지 버리면서 금식 기도하였습니다.
대부분 절박함으로 기도할 때 금식합니다.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금식합니다. 대부분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금식합니다 죄를 회개할 때 금식합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단지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금식하였습니다. 그들은 금식하여 주님을 섬기는데 집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금식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였고,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었습니다.
그들이 금식하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친히 사역의 방향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곳에 성령이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교회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셨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성령이 말씀하시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합니다. 전도와 선교의 방향을 주셨습니다. 선교사를 파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세우기 전에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는데 우리가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기도하는 자의 원한을 속히 풀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선교사를 파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세계선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세계선교사 파송을 기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
3절을 보십시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는 즉시 순중하였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교회에 기둥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또 다시 금식하고 기둥 같은 두 사람을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들의 기도 결과가 선교사 파송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활발하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안디옥교회를 떠나 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장 귀한 것을 주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였습니다. 주는 교회였습니다.
(구보로 섬 살라미 선교)
4,5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바나바와 바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갔습니다. 그들을 보내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 섬에 가서 그 섬에 있는 살라미에 이르렀습니다, 구브로 섬은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두 사람은 살라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회당에서 유대인을 중심으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요한 마가를 수행원으로 두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서기오 총독)
6,7절을 보십시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렀습니다. 바예수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예수는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입니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서기오바울을 돕는 전속 마술사인 것 같습니다. 서기오 바울은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서기오바울은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에게 갔을 때 그곳에는 루디아를 예비하였듯이 바보에는 서기오 바울을 예비하였습니다.
(예수를 못 믿게 힘쓰는 바예수)
8절을 보십시오.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바예수는 마술사입니다. 마술은 성령의 역사를 대적합니다. 애굽의 마술사들이 출애굽 역사를 방해하였습니다. 시몬이라는 마술사도 사도베드로에게 성령을 돈주고 사려고 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8:20) 에베소 교회에서는 마술사들이 사도 바울의 흉내를 내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마술사 엘루마도 바나바와 바울을 대적하여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총독이 자신보다 바울의 말을 더 듣자 시기하였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사단도 일합니다. 그는 총독이 바울에게 가자 시기하여 불신을 심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이 세상의 신이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의 빛이 비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세상의 왕은 사단입니다. 사단은 복음 역사를 방해합니다.
(사울에서 바울로)
9절을 보십시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여기서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처음 나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의 왕 사울의 이름을 본따서 지은 것인데 큰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울의 헬라식 이름으로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겸손히 작은 자라고 부르게 한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름을 바꾸어 세계선교를 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는 이름도 세계인이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현지인이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개명해야합니다. 바울은 선교사를 파송하였을 때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바울은 성령 충만하여 박수 바예수를 주목하였습니다. 성령은 악령을 대적합니다.
(바예수가 소경이 됨)
10,11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바울은 바예수를 책망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어둠의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령과의 싸움입니다. 예수님도 복음 역사 초기에 더러운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바예수는 악령에 사로집힌 자입니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입니다. 마귀의 자식입니다. 모든 의의 원수입니다. 주의 바른 길을 곧게 하는 자가 아니라 굽게 하는 자입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주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는 사단의 자식입니다. 주님의 권능의 손이 바예수를 대적하여 함께 있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십니다.
바울은 그는 맹인이 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서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였습니다. 과거 바울이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소경이 된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선교할 때 처음으로 복음의 대적자를 저주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사단과 대적하여 싸웠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성령의 역사만 이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악령의 역사를 대적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풀고 악령의 역사는 묶어야합니다.
엘리사도 처음 기름부음을 받고 성령을 모독하는 어린이들을 징벌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을 때 혈과 육의 싸움을 싸워서는 안 됩니다. 뒤에 보이지 않는 사단과 싸워야합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의 변화)
12절을 보십시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이에 총독이 바예수가 소경이 된 것을 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바예수가 저주 받은 것이 총독이 믿음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총독이 바예수를 의지하던 데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서기오 총독은 주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사단의 역사를 통하여 복음의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총독 한 사람의 변화로 그 섬이 복음화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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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일하게 하라...-
안디옥 교회는 성령께서 이르신대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여 파송합니다.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배타고 구브로라는 섬으로 가서 말씀을 전함으로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를 시작합니다. 바울로 이름이 바뀌면서 선교의 주도권이 바울로 넘어갑니다. 성령이 충만한 바울이 행한 일로 인하여 총독 서기오 예수를 영접하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사역해야 합니다(1~3절).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란 두 직분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이고, 또한 성령을 통해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며,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 다섯 명이 소개됩니다.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 이들은 출신도 사회적 지위도 달랐지만 합심하여 금식과 기도로 모든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사역들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바나바와 사울을 이방인 선교사로 떠나보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
늘 하루의 일정 가운데 성령께서 간섭해 주시기를 기도하셨습니까?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협력해야 합니다(4~5절).
두 사람은 성령에 의해서 보냄을 받아 실루기아로 내려갔고, 그곳에서부터 배를 타고 구브로로 건너갔습니다(4절). ‘성령에 보내심을 받아’... 그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파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파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일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돕는 자로서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훼방꾼이 아닌 기도와 때론 물질의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돕는 조력자(helper)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돕고, 함께 협력할 귀한 사람이 오늘 우리교회에 정말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만나게 하시고, 보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간구합니다.
두 사람은 성령의 보내심에 따라 어느 지역으로 이동을 했습니까?
나는 교회 사역에 훼방꾼입니까? 아니면 조력자입니까?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하고, 성령 충만함으로 승리해야 합니다(6~12절).
그들이 그 섬을 다 돌고 바보에 도착했을 때, 거기서 바예수라고 하는 거짓 예언자인 유대인 마술사를 만납니다. 그는 총독 서기오 바울 곁에 늘 붙어 있었습니다. 서기오 바울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지속적으로 마술을 행하는 거짓 선지자 바예수의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자입니다. 거짓된 마술의 영향을 받고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9절). 누가는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을 시키면서 앞으로의 선교 사역이 바울을 중심으로 진행 되어 갈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바예수라는 거짓 선지자의 악행을 지적하고, 소경이 되게 함으로써 복음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합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총독은 바울이 전한 주의 복음을 영접하게 됩니다(12절).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활할 때, 승리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함을 알기에 날마다 성령 충만하여 주님의 이끄심대로 따라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 바예수에 대해 바울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 자신이 세상에 대하여 무기력하게 넘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도 성령의 하시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주의 뜻을 삶의 자리에서 들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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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위대한 삶의 발걸음을 내딛어라
모든 사람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가치 있게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과 바나바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삶에도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라
안디옥교회에는 선지자와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이 금식하며 주님을 섬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성령이 말씀하신 것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즉각 순종하여 금식하며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서구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예수님을 제외하면 사도바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위대한 사도바울의 발걸음이 시작된 장면입니다. 바울로 말미암아 소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이 복된 땅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놀라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인도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우리도 성령이 인도하시는대로 순종하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바나바의 기여
사도바울이 위대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나바의 협조였습니다. 바울을 안디옥교회로 인도한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동역하며 사울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부터는 바나바보다 바울의 이름이 주도적으로 나옵니다. 이제 선교여행의 주도자가 바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나바는 사울과 호흡을 맞추며 신실하게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성경은 이런 바나바를 착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바나바는 실제 착했습니다. 착한 사람들의 특징은 일을 크게 잘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 일을 잘하도록 돕는 역할은 잘합니다.
바나바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갈라서서 사역을 하지만 바울이 위대한 발걸음을 옮기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바나바는 자기가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바울이 큰 영향력을 미치는데 도움을 줌으로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무디를 전도한 사람이나 조용기 목사를 전도한 여학생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볼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에 민감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됩시다. 또 내가 크게 쓰임받지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크게 쓰임받는데 도움이 됩시다. 우리가 이땅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미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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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스스로 의롭고 지혜 있다고 여겼지만
한 치 앞의 일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여호와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맡겨진 이들을 사랑하며
나아가는 성령의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땀 흘리며 열방 가운데 그 구원의 복된 소식을 외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아름다운 발걸음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자연재해로부터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모든 어리석은 분쟁과 죄악을 버리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다스림 받고 고침 받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