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사심없이 나눠주면 영혼이 맑아진다는데,
“돈에는 돈 이외에는 친구가 없어.” 존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 저기 돈과 화무십일홍이라는 권력 때문에 난리법석이다. 형제간에도 그렇고, 부부간, 부모 자식 간에 그럴진대 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남남들은 말해 무엇하랴.
가난한 사람들은 그나마 덜한 편인데, 돈이 많을수록 그러한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쥘락 펼락하는 재벌 총수들까지도 불법을 저질러 감옥에 가는 것이 흔하디 흔한 일이 되었고, 교육, 군 정치, 어디고 돈 때문에 문제가 안 생기는 곳이 없다.
‘먹는 것 마다 다 내 것’이 되며, ‘모으면 다 내 것이 된다’는 진리가 너무 팽배한 세상이라서 그렇다. 이러한 배금사상이 찌들어 있는 세상에 소설 속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통하기나 할까 싶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 3부, ‘아소 님아’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겨 본다.
“신 새벽에 귀 설은 빗자루 소리 들리면, 오늘은 또 누가 와서 마당을 쓰는 고 싶더니라. 인제 후제 내가 죽더라도 그렇게 이 마당을 찾는 사람을 박대하지는 말아라. 그것이 인심이고 인정이다. 이 마당에 활인活人 복덕福德이 쌓여야 훗날이 좋지. 태장笞杖 낭자하면 안택安宅 굿도 소용이 없어. 집안이 조용하지를 못한 법이다.“
청암부인은 이기채에게 이렇게 이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젊어서는 혼자 몸으로 눈앞에 캄캄하여 살림을 이루노라고, 남한테 모질고 독한 소리도 많이 들었다마는, 종내 그렇게 모으기만 한다면 그것이 도척이지 사람이겠느냐.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만하게 되었으니
나눌 줄도 알아야지 싶어지고, 또 내 앞에 모이고 쌓인 재물이 다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 눈물나게 억지로 빼앗은 것도 있지 싶어져서, 하늘이 무섭고 사람이 가여워 무엇이로든가 갚아야 가벼이 될 것만 같았더리라. 이제는 전답이 무거워 눈물이 무겁다.....굳이 좋게 생각허자면, 내가 남보다 좀 치부한 것은 하늘이 내 능력을 믿고, 여러 사람 쓸 것을 나한테 한 번 맡기어 심부름 시키는 것이라고, 고지기 시키신 것이라고나 헐까.
나는 그러니 곳간의 쇳대만 책임지고 있을 뿐, 내 한 입에 내 뱃속에 그 곡식, 그 재물을 다 둘러 삼키라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사람의 욕심이지 하늘이 그리허라고 그대로 두시지도 않어. 그것을 혼자 다 삼키라고 할라치면, 입이 찢어지고 배가 찢어져 살 수가 없게 되느니, 그래서 옛말에도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랬다고, 재물이란 비록 비루하고 독하게 번 것이라 할지라도 쓸 데를 제대로 알아 선하게 써야 한다.
그래야 누에가 고치 벗고, 매미가 허물 벗듯이, 치부할 때의 누추한 부끄러움도 다 벗을 수가 있는 게야. 그러고는 나비 되고, 매미 되어서 훨훨 날어가는 것이지, 가볍게, 홀가분허게, 빚 다 갚고, 이게 내 빚이니라. 내가 세상에 진 빚,”
청암 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거운 열쇠꾸러미를 쩔거덩, 연상硯床위에 올려놓았었다.“
소설 속에서 누구든 곡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게 되면 가난한 가장은 빗자루 하나 들고 청암 부인의 집을 찾아가 마당을 섬심껏 쓴다.
마당쇠는 그것을 본 뒤 청암부인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님 아무 아무가 와서 오늘 아침에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았습니다.”
청남 부인은 광으로 가서, 자루에 쌀이나 보리, 혹은 다른 곡식을 들고 갈 수 있을만큼 담아내어 그가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이면 직접 가지고 가게 주었고, 문중의 일가라면 마당쇠한테 가져다 드리라고 시켰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재미난 광경인가?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누군가에게 아무런 사심없이 자기 것을 나눠주면 영혼이 맑아진다.”고 하였다.
청암부인의 미담과 같은 이러한 일들이 이전 시대가 아니고 여기저기에서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것을 바랄 수 없는 이상세계인 것을,
“마당 쓸 때 집안에 먼지 내지 말아라. 비단 치마 방바닥 스치듯이 가벼웁게 빗자루 다루면서도, 검부라기 티 떨어진 것 까지도 말끔히 쓸어내야 한다.
“마당을 쓸 때는 안에서 바깥쪽으로 빗 자루질 하지 말아라. 복 나간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쓸어 들여라. 그런 것도 다 정성이니,”
“너무 깨끗이 한다고 흙 패이게 쓸지 말아라.” 돌 자갈 드러난다.“
청암 부인의 목소리가 들릴 듯 싶은 그 마당을 두고 사람들은 ‘맨발로 딛기에도 아까운 마당”이라고 했다는데, 마당이 있는 집들을 자꾸 마다하고 자꾸만 아파트로만 몰려들고 있고, 나부터도 오랜 동안을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니, 거실이라도 자꾸 쓸고 닦아야 하겠다.
2025년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