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 권선생님께서 올리신 글인데...
작금의 논의에 필요하다 생각해 다시 펌 합니다.
선조때에 선조의 피란을 도왔던 정곤수의 초상이랍니다.
엑스레이 투시결과...청나라의 복식을 입은 위에...조선&중원식 관복을 덧칠한 그림이라니...
청나라 사람을 조선 정곤수로 위장한 그림인지...?...왜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남의 조상을 내 조상으로 하려면...완벽한 명나라 복장의 작품을 사용하지...왜 덧칠하는 수고를 했는지...?
아님,조선의 원 복장이 저런 것이었는지...미스테리로 남고...
학자란 것들도 슬그머니 꼬랑질 만 작품이랍니다.
선조가 피란한 곳은 서북도이니...전 내몽골 정도가 아니라...외몽골 바이칼까지 갔다 보는 입장입니다.
거기까진 가야..겁만던 선조가 중원에 쫙 깔린 섬 원숭이들을 안심하고 피했을 겁니다.
섬 원셍이들 대부분은...빤쓰도 안 입은 애들이니...여름 잠깐 지나면 ..고초가 다 떨어져 나갔을 테니여...
기마병도 별반 없으니...고비사막서 굶어 뒤졌을 확률도 많고여...
선조는 거기서 외몽골 북부 셀렝게강과 바이칼 호수의 특산품인 머륵을 드신것이고...그게 도루묵이라 전 예상합니다.
그 머륵은...그 지역 수산물의 반수를 차지하는 심해 담수... 냉수호에 잘 자라는 어종으로...
블라디 보스톡라인의 흑룡강 일대 빼곤...바이칼 인근이 대표적 어종이랍니다.
우리가 아는 도루묵이 선조가 먹다 나중에 맛없다 배신때린 그 도루묵이라면...
그냥 강원도나 함경도에서도 얻어야할 고기를...왜 발해만인 의주에서 먹었는지도 의문인 것이고여...
조선의 함경도는여...여진족들이 대부분이며...
건주여진에 빼앗끼기 전까지는...외몽골까지였던 정황을... 위 정곤수의 미스테리한 초상화가 웅변하고 있는 겁니다.
나중에 청조선(청나라)의 위축을 틈탄 달단(타타르)여진의 진출로 청조선은 장성 안으로 위축돼며...한반도와도 단절됐다 보입니다.
그 때 논하던 만주(滿州)의 滿은...
청나라(청조선)이 아닌...그 외의 몽골&여진&돌궐 제족들...특히 서방의 타타르계 여진인들의 통칭이라 하겠습니다.
그래 구한말기 만주국경선에...
조청국경(朝淸) 조만국경(朝滿)이 따로 표기됐던 걸 겁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구한말기...중원의 태평천국(동학?)을 제압키 위해... 양이들과 함께 중원 서남부에서 올라온 학살자들인 터번을 쓴 상승군애들도...
무굴의 잔당이자 滿족들이라 하겠습니다.
태평천국군(동학군?)은...청조가 아닌...무굴과 달단을 滿이라 배척했던 것일수 있고여...
원세계,이홍장...장제스...대원군&고종...적든 만든 다 이들과 관계있다 예상해 봅니다.
조선 사행사들이 증언했던...
청나라 최고관리의 방석인...머리와 발톱이 달린 호랑이 가죽...
고 호랑이 머리까지 명나라식 관복두루마기에 가려져 그 정체가 가려질 뻔 했지만...엑스레이 투시가 큰 역할을 했군여...
금나라(키타이)의 시조 아골타 초상에도...저 머리와 발톱이 달린 호랑이가죽이 나오더군여...
키타이는 타타르(달단)완 큰 개념에선 같은 여진 제족들이겠으나...정확하겐 발원지와 문물이 다른 나라였다 전 예상합니다.
카라키타이는...
동북아의 원조 키타이들이 정복한 서방 속지의 타타르족들이지...
거기를 키타이의 원조로 봄은...미국 코리아타운을 고려의 발원지라 보는 실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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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대宣祖代(1567~1608)의 관리 정곤수(鄭崑壽, 1538~1602)의 초상화이다.
뒤에 호피를 깐 의자위에 관복을 입은 멋진 풍채를 가진 분위기가 그림에서 물씬 나온다.
하지만 최근 초상화를 X-ray로 쏴서 검색한 결과 아주 재미있는 점이 발견되었다.

바로 관복밑에 청나라의 복식을 한 원본이 나타난것이다.
지금 학계에서는 청나라 복식 때문에 이 초상화가 누구의 초상화인지 오리무중에 빠졌고
그림의 이름 또한 누구의 초상화인지 알 수 없어서 전 정곤수 초상 이라고 칭하고 있다.
조선관리라면 무조건 조선관복을 입어야 했을것인데 청나라 복식의 옷을 입은것을 후세에 꼭 알리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을것인가?
만약 이 초상화가 정곤수의 초상화가 맞다면 청나라가 생기기 이전(선조때)에 그려졌다는 얘기인데 우리가 알고있는 청나라 복식은
청나라꺼로만 한정할 수 있을까?
의복이 바뀐다는 건 엄청난 문화혁명을 수반하게 되는데 청나라 복식이란게 그럼 어디서 내려온 의복 양식이었을까?
금나라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여진족 고유의 양식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또한 중요한 점은 어느 누가 초상화를 손대서 청나라 복식이란걸 가렸던것일까?
참고로 이런 고미술 초상화에 덧칠하여 가리는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가가 작업해야할 일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 초상화에는 아주 커다란 비밀을 간직했음에도 언론에서는 단발성 기사중에 한 꼭지로 나왔을 뿐이다.
본인도 작년 중앙박물관에서 진행했던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전에서 이 초상화를 보고 처음 알게되었다.
http://www.icultur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54
기사 내용 중
이번 '조선시대 초상화Ⅱ' 발간을 위해 정밀 조사와 과학적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16세기 말의 초상화로 추정되었던 조선 선조대宣祖代(1567~1608)의 관리 정곤수(鄭崑壽, 1538~1602)의 초상화의 채색 상태를 보여주는 X-ray 사진을 통해 육안으로 보이는 초상화 밑에 청대 의복을 입고 있는 또 다른 초상화가 발견 됐다.
이를 통해 이 초상화의 제작 시기를 적어도 청 왕조가 건립된 1616년 이후로 내려 보아야 할 필요성과,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온 정곤수와 그 제작 배경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요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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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놀라운 접근입니다. 초상화를 x-ray 분석법으로 살펴볼 수 있다니.... 더 놀라운 것은 덧칠을 하여 의복의 양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죠... 명과 청의 갈등기이니 손익분기를 계산하여 또 후대의 명망과 가문의 번영 생각하여 여러각도에서 접근된 시도가 아닐까요?... 분명한 것은 아래의 검은색 배경의 그림을 보면 만주족 양식의 문양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만주족의 세력권에서 관직을 얻었던 분이 아닐까 일단 생각을 해 봅니다만...
그런데, 그것을 후대에게는 숨겨야 했을 이유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아무도 모르게...그런데, x-ray가 그것을 잡아내었군요...
이러한 놀라운 자료는 어디서 찾아내시는 것일까요?... 존경스럽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만, 홍선생님의 창조적 접근은 제가 따라가기에도 벅찬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x-ray 현대의 기술로 역사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홍진영님 주장은 물증이 많이 부족해 거의 안 보지만 이 글은 남의 글이라도 참 재미있는 자료입니다
재미있으신 정도면...제 역할 한 겁니다...과분하신 칭찬이십니다...이선생님...
하나라도 제가 원본을 발견했거나 해석한 자료는 없습니다...다 나도는 자료들을 제 맘대로 취사선택해 제 맘대로 조합해...
제 맘대로 역사를 3류도 않돼는 조잡한 얘기책 쓰듣 엉성하게 엮어 본 수준입니다.
그 얘기책 와중에...뭔가 역사의 진실찾기에 도움일 됄 만헌 쪼가리 단서 하나라도 건진다면...
그걸로 제 주재는 챙겼다 만족할 인간입니다.
계속 5류 역사소설책을 쓰고...저 같은 류의 여타 소설 대륙조선 쓰시는 작가분들 시나리오의 모순점을 짚다보면...
나름 조그마한 성과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로 오늘도 이 연구회 싸이트를 쭈삣대는...
시간이 좀 많은 자일 뿐임을 저도 인정합니다.
위 본문에 명기한데로...
금년 1월달에 권경열 선생님께서 ...당 연구회 자유게시판에 올리신 글을 재 펌 한 글이지...제가 발굴한 기사가 아닙니다.
저도 저 글을 보고...입장을 수정해 청과 달단은 구체적인 근본이 다르단 예상을 굳히게 되는 것이였고여...
예전에 언급된 내용이군요... 홍진영 선생님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하는데... 더 검토해봅시다.
위 본문에 따르면, "지금 학계에서는 청나라 복식 때문에 이 초상화가 누구의 초상화인지 오리무중에 빠졌고 그림의 이름 또한 누구의 초상화인지 알 수 없어서 전(傳) 정곤수 초상 이라고 칭하고 있다"고 하네요...
현재, 누구의 초상화인지 모른다는 말이고요... 한마디로 "정체불명"이라는 말이죠.....
이 분이 그 분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서에도 정곤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한자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서 역시 동일인물로 생각되는데, 이 분은 특색은 임진왜란시대에 활약을 하셨다는 것이죠... 즉, 선조의 명을 받들어 구원병을 요청하러 사방을 뛰어 다니신 것 같은데, 명에도 다녀오셨고, 북경에도 다녀왔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뛰어난 전문성이 하나있었는데, 그것은 족보에 정통하였다라는 특이한 기록이죠...임하필기(林下筆記) 제18권_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_씨족보(氏族譜)를 밝게 분변하다..
서천부원군(西川府院君) 정곤수(鄭崑壽)는 성씨의 보첩(譜牒)에 뛰어나 서울과 지방 사족(士族)의 역대 이름자와 출처(出處)의 사적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혹 와서 그 세계(世系)의 내력을 물으면 반드시 하나하나 짚어 가며 상세히 설명해 주기를, ‘그대의 선대는 아무개에서 일어났고 아무개 아무개를 거쳤으며 몇 대가 현달하고 몇 대가 벼슬하지 않았다’ 하여 마치 직접 눈으로 보고 말하는 것처럼 하였다.
그렇게 접근해 본다면, 구원병의 요청에 이 분이 중용된 것은, 서울과 지방에 흩어져 있던 주요 가문의 후예들을 족보학적으로 찾아내 지금 사변이 났으니 좀 와서 도와달라라는 구원의 요청을 족보와 가문의 뿌리에 근거하여 설득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카라-키타이"는 "키타이"의 원조(元祖)라고 말할 수 없어요... 당연하죠... 도대체 누가 그런 주장을 합니까???
다음에는 "타타르"(달단)와 "키타이"(거란)를 비교해봅시다.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타타르"는 동-유럽에서 북-아시아의 몽골고원 지역까지 매우 넓게 분포하였던 종족이었다고 합니다.
"타타르"라는 용어 자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종족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용어 파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타타르"(달단)라는 명칭은 원래 "타칭적 총칭"이라고 하며, 넓은 지역에 분포하며 몇 개의 집단으로 구별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집단은 "카잔 타타르인"(Kazan Tatars)인데, 총칭은 "볼가 타타르인"(Volga Tatars)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현재 "타타르스탄 공화국"(Republic of Tatarstan)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출처=위키백과(일본어)]
"타타르"라는 이름은 원래 "킵챠크 한국" 지배기의 러시아인들이 동방-남방의 초원 지대에 사는 몽골 제국의 몽골계-투르크계의 사람들을 막연히 가리키는 종족 명칭이었지만, 러시아 제국의 확대와 함께 러시아 지배하의 옛 "킵챠크 한국"계의 투르크계 이슬람교도들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고, 결국 그들의 자칭(自稱)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출처=위키백과(일본어)]
따라서... "키타이"는 동-아시아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종족이므로, "타타르"와 비교하면 차이가 납니다.
<위키백과>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타타르"(달단)라는 용어가 시대에 따라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키타이"(거란)에 관하여 추가로 언급하면...
<위서(魏書)> 곧 <북위서(北魏書)>에 따르면 거란(契丹), 고구려(高句麗), 실위(室韋), 고막해(庫莫奚), 두막루(豆莫婁)=부여(扶余)의 후계국가(後継国家)의 언어(言語)는 같다고 합니다. 종족(種族)에 관해서는 제설(諸説)이 있는데, 정설(定説)로는 몽골계라고 합니다. 혹은 퉁구스-투르크에 가까운 종족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출처=위키백과(일본어)]
앗 !!!
위키백과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