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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새로운 닋네임
출처: 여성시대 (새로운닋네임)
https://www.washingtonpost.com/sports/2025/10/12/south-korea-expat-athletes/
발번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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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에서 ‘제2의 고향’을 찾는 미국인 선수들
These American athletes are finding a second home in South Korean sports
미국인 오스틴 딘, 자밀 워니, 더스틴 니퍼트는 한국으로 프로 스포츠 경력을 옮기는 도전을 감행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서울
본국에서 더스틴 니퍼트는 강속구를 던지는 유망한 투수였지만,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지는 못했다. 외야수였던 오스틴 딘은 마이너리그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를 오르내렸다. 자밀 워니는 탄탄한 포스트 무브를 가진 센터였지만 NBA에는 잘 맞지 않았다.
세 선수 모두 프로 생활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왔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여러 시즌 동안 성공을 거두었고, 챔피언십 우승과 수상을 했다.
KBO리그 LG 트윈스의 1루수인 딘은 "제 아내와 아들, 우리 모두 이곳을 사랑해요. 서울을 정말 좋아합니다. 미국에서의 삶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정말 놀라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해외 생활이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글로벌 스포츠, 팬 그리고 유명인에 대해 폭넓게 연구해 온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학과 조영한 교수는 말했다.
“외국인 선수들은 종종 용병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즉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부상을 당하면 곧바로 방출될 수 있다는 압박을 받게 되죠.” 조 교수는 이메일로 이렇게 답변했다. 해외 선수들은 고국과의 지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인종적, 문화적 차이도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니퍼트, 딘, 그리고 워니는 약간의 열린 마음과 문화에 대한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외국인 선수로서의 삶도 충분히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투수의 신
한국 팬들은 그를 "니느님"이라 불렀다. "니퍼트 하느님 (Nippert God)"의 한국어 줄임말이다. 그럴 만도 한 게, 44세의 그는 KBO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다.
니퍼트는 한국에서 8시즌을 뛰었고, 그 중 한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산 베어스 소속이었다. 그는 통산 102승 51패의 기록을 남기고 2018년에 은퇴했다. 그는 KBO에서 100승을 달성한 최초의 외국인 투수였다. 6피트 8인치(약 203cm)의 강속구 우완 투수인 그는 2015년에 베어스가 한국의 월드 시리즈에 해당하는 한국시리즈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2016년에 KBO MVP를 수상한 역대 네 번째 외국인 선수가 됐다.
니퍼트는 자신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빌스빌을 “신호등 하나 있는 마을이 아니라, 정지 표지판 하나 있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그가 처음 아시아에 왔을 때는 젓가락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다. 다른 선수들은 그를 놀리며 포크 필요하냐고 묻곤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우선 팀 동료들 덕분으로, 그리고 문화와 해외 생활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문화를 받아들인 태도 덕분으로 돌렸다. 니퍼트는 해외에서 온 여러 외국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이유로 특별 대우를 기대하며 아시아에 오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런 선수들은 몇 달 안에 나가요.” 그가 말했다. “성공하는 선수들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죠. 그들은 이곳에 맞게 스스로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요.”
리그 규정상 외국인 선수가 팀 내에 세 명만 허용된다는 점도 큰 압박이었다. 니퍼트는 팀이 즉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영입되었다. “잘 던지면, 구단은 당신을 확실히 챙겨줘요.” 니퍼트는 말했다.
그는 큰 성공을 거두어 인기 넷플릭스 시리즈 "피지컬: 100"과 같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한국 문화 속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TV에서 본 적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한때 야구 선수였다고 말해준다.
이 모든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어쩌면 그 성공 때문에라도, 니퍼트는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더 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가 말했다. 그는 메릴 켈리, 에릭 페디 같은, KBO에서 뛰다가 MLB로 돌아가 성공한 다른 투수들을 예로 들며 생각을 밝혔다.
그를 한국에 남게 한 건 ‘의리’였다. “제 생각에, 팀이 나를 잘 대해줬다면, 나도 그 팀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그는 근교에서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6살 이상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한국인인 두 번째 아내 사이에서, 두 아들 리바이와 오웬을 두고 있다. 종종 아빠의 통역사 역할을 하는 아들들은, 뜬공을 잡는 것만큼이나 잠자리나 메뚜기를 잡는 데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니퍼트는 켄터키와 오하이오에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곳에 소 농장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의 목표는 한국에서의 사업을 유지하면서 가족이 자신이 어린 시절 보냈던 시골 생활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는 아들들이 양 쪽 대륙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계 미국인이에요.” 니퍼트는 말했다. “저는 항상 아이들이 여기가 자기들의 뿌리이자, 삶의 일부라는 걸 항상 이해해하기를 바랍니다.”
한국은 그에게 좋은 곳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자신과 가족을 위한 삶을 일궜다. "만약 한국에 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냥 오세요" 니퍼트는 말했다.
“선수로서 여기서 뛰는 것을 생각하거나 가족과 함께 오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오세요. 정말 멋진 경험이에요.”
한국의 스타
휴스턴 지역에서 자란 31세의 딘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 그는 2012년 마이애미 말린스에 4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했으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도 뛰었다. 그러나 그의 미국 내 커리어는 완전히 불붙지 못했고, 늘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를 오르내렸다. LG 트윈스와 계약한 뒤 그는 이제 팀과 세 번째 연간 계약을 맺고 있으며, 계약금은 매번 100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
한국에 오기 전, 그의 에이전트는 "일생에 한 번뿐인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싫으면 다시 안 하면 되잖아’라고 그가 말했죠.” 딘은 말했다. “결국 그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가 됐어요. 야구와 다시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거든요."
그는 KBO 리그에서 뛰는 것이 자신에게는 곧 빅 리그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보낸 모든 순간을 사랑합니다.”
다부진 체격의 6피트(약 183cm) 키를 가진 딘은 2023년에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고,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올스타 팀에도 선정됐다. 작년에 그는 132타점으로 팀 신기록을 세우고, 또 한 번 글러브를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올스타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 트윈스는 KBO 리그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메이저리그 내야수로서는 다소 작은 체격의 딘은 한국에 오기 전까지 외야수로 뛰었다. 한국의 감독은 곧 그의 체격과 기술이 번트와 도루가 많고 페이스가 느린 KBO의 스몰볼 스타일에 맞춰 1루수가 잘 어울린다는 점을 알아챘다.
“여기서 뛰는게 정말 좋아요.” 딘은 말했다. “모든 플레이에 집중해야 하죠.”
전반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도 그를 놀라게 했다. “처음엔 우리가 어떤 나라로 오는 건지도 몰랐어요.”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휴스턴 지역과 비교했을 때, 그는 가족과 함께 훨씬 더 안전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밤늦게 아내, 아들과 함께 외출 할 수 있고, 뒤를 신경 쓰며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슬프지만, 안전하다는 점 만큼은 우리 본토(미국)와 바교할 수가 없어요.” 딘은 말했다.
삶의 유대
지난 몇 년간 한국 농구 리그에서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고 한다면 단연 서울 SK 나이츠의 센터, 자밀 워니다.
31세의 이 빅맨은 한국에서의 6년 커리어 동안 외국인 선수 MVP를 네 번이나 수상했다.
6피트 8인치 (약 203cm)에 뉴저지주 플레인필드 출신인 그는 NBA에서 센터로 뛰기에는 너무 작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KBL에서는 그가 압도적인 존재다. 워니는 2022년에 나이츠를 챔피언십으로 이끌었다. 올해 그는 리그 득점 1위를 기록하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7차전 시리즈에서 창원 LG 세이커스에 패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음 단계로 진출하려고 노력하고, 팀 케미스트리가 거의 없는 NBA G리그 (NBA의 하부 리그)에서의 경험과 비교할 때, 그는 나이츠에서 뛰는 것을 즐겼다.
“이곳에 오는 선수들은 모두 챔피언십 우승을 하고 싶어 해요.” 그가 말했다. “그게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워니는 G리그 경기에는 가끔 300명 정도만 오는 반면, 나이츠 경기는 8,000명 이상의 팬 앞에서 열린다고 회상했다.
“우리는 그들의 선수예요. 우리는 그들의 슈퍼스타에요.” 그가 말했다.
또한, 연봉도 좋다. 워니는 2024-25 시즌 후 은퇴를 발표했지만,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은 뒤 2025-26 시즌을 위해 나이츠와 70만 달러 계약으로 재계약했다. 이로써 그는 리그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받았어요.” 워니는 말했다.
코트 밖에서 그는, 외국인으로서 처음 겪는 외로움과 고립의 시기를 잘 견뎌냈다고 말했다. 그의 첫 시즌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시작될 때였고, 그는 격리되어야 했다. 그 후 한국은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시행했고, 술집과 식당은 밤 9시에 문을 닫았다.
워니는 한국에서 오래 지낼수록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신에게 점점 더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와 단골 장소들을 찾았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국제적인 분위기로 유명한 서울의 이태원과, 수도 외곽 용인에 있는 집 근처 놀이공원 에버랜드다.
놀이기구를 타기엔 키가 너무 큰 건 아니지만, 가끔은 덩치가 커서 벤치 하나를 혼자 써야 할 때도 있다.
그는 포드 토러스 차량을 구입했고, 한국은 대중교통이 효율적이긴 하지만 운전을 하면서 생활반경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여기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워니는 말했다. “이곳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들이 뭔지 알게 됐죠. 여기가 저의 새로운 집, 혹은 제2의 고향이라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한국인들은 ‘정’이라는 개념을 믿는다. 이는 함께한 경험 속에 생겨나는 유대감을 의미한다. 워니는 한국에서 친구들과 그런 '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는 많은 관계를 쌓았어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당신을 좋아하고 고마움을 느끼면, 무엇이든 해주려 해요.”
팬들도 마찬가지다. “팬들은 매일 ‘사랑한다, 힘내서 경기해달라’는 메시지를 매일 보내요.” 워니는 말했다.
“팬들은 항상 당신 편이에요. 그 메시지들은 힘든 순간이나 고향이 그리울 때 정말 큰 힘이 돼요. 그걸 보며 깨닫죠. 이곳에도 나를 응원해주는 작은 가족 같은 존재들이 있다는 걸요.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이요.”
*서울에서 앤드류 정 기자가 이 기사 작성에 참여했다.
첫댓글 오스틴딘 영원히 한국에 있거라... 우리나라에서 타국으로 이주하는 한국인들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