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가 먼지도 모르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칭의라고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합니다.
칭의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의로 여겨주신다고 해서 칭의 . 여겨주신다는 말이 칭
마태복음 27장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아미라대나. 요셉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53장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이것은 예언의 성취이며 부자 요셉은 그 예언에 쓰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부자 요셉이 한 것은 칭의가 아니고 행위로 한 의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고 도와주고 하는 것의 행위입니다.
이 행위는 율법의 십계명으로는 행위의 의이고
새 계명으로 보면 믿음의 행위의 의입니다.
칭의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김을 받는 겁니다.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이것이 칭의입니다.
요셉은 칭의가 아니고 행위의 의.
예수님도. 율법 아래 나신 분이죠..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행위의 의입니다.
그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는 믿음이 믿음의 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 즉 의로운 일을 하신 일을 믿는 믿음이죠
칭의가 먼지 모르니까. 제목이 < 칭의 > 아리마대 사람 요셉
율법주의자의 성향이.
먼가 해야 의로운 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저는 매일을 글을 올리는 것이 의라고 생각할 겁니다.
문제는 매일 올리는 것이 거짓 교리이면.
이자는 매일 죄를 짖는 것이죠..
거짓 선생이 되는 겁니다.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남의 글을 올리는 것은 무서운 짓일수 있어요
남의 글이 이단교리라면 .
내가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첫댓글 먼지====> 청소를 안하고 돌아다니니 방구석에 먼지가 수북히 쌓였네.
뭔지=====> 무언지의 준말. 의문의 뜻이 있음.
천년왕국에 왕들은 소개해 주었는데 백성 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설명이 없었음.
막13:27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 살아남은 사람들이 천년왕국에 백성으로 들어가는 걸까.
백성이 어디서 나오야 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