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물내린 가지 위에’
‘사람을 좋아하고, 책을 즐기며/외길 걸어온 한 인생
어느덧 물내린 가지 위에도/화사한 꽃, 열매 영글다.
이것은 이제 아홉 번 째 기일이었던 나의 아버지 故 장왕록 박사의 묘비에 적힌 말이이다.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떠나가셨을 때 우리는 정말이지 너무나 황망했다. 통일이 되면 고향에 묻혀시겠다고 묘지를 준비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천안에 모시고 생전에 못한 효가 억울해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묘비문을 새겨드리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문재(文才)를 물려받지 못한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버지께서 환갑기념논문집에 직접 쓰신 글을 새기는 것뿐이었다.
외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외국에 나갔을 때 자신이 전공하는 작가들의 묘지를 찾아 사진을 찍고 하셨고, 지금도 아버지의 방에는 세익스피어 묘비의 탁본이 걸려있다. (누구든지 이 돌을 건드리지 않는 자는 축복받으리요/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받으리라.고 적혀 있는데, 세익스피어 글치고는 너무 졸시라 실제 그가 썼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비록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일지라도 자신이 직접 묘비문을 써서 남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서머셋 모옴은 신문사에 부탁해서 인쇄하기 전에 자신의 사망 기사를 교정했다고 한다. (보고 난 후, 의미는 명확하나 내가 생각한 절반맘큼도 따뜻하지 못한 부음 기사라고 평했다.)
자기 스스로 쓴 묘비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보물섬‘의 작가 ’스티븐슨‘의 시다. 말년에 사모아 섬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미국에 가서 유럽의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웠던 그가 죽자 원주민들은 베아산 기슭을 따라 길을 닦고 스티븐슨을 하늘에 가까운 산마루에 안장했다. 그리고 묘비에 다음과 같은 그의 시를 새겼다.
“드넓은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무덤 하나 파고 나를 눕게 하소서.
바다에서 고향 찾은 선원처럼, 산에서 고향 찾은 사냥군처럼
우리나라에서 ’괴상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의 작가 사우드 앤더슨도 ’죽음이 아니라 삶이야말로 위대한 모험이다.‘라는 자신의 말을 묘비명으로 남겼다
문인들의 묘비는 사후에 그들이 생전에 남긴 작품에서 발췌해서 쓰는 영우가 많다. 예이츠의 묘비에는
”삶에 그리고 죽음에 차가운 시선을 던져라.
마부여 지나가거라!“ 라고 쓰고 있다
에밀리 디킨슨의 모비에는 아주 짧게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자 인상깊게 읽은 묘비문은 언젠가 아버지가 쪽지에 적어 놓으셨던, 웨스트민스트 사원에 묻힌 어느 성공회 주교의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마지막 시도로,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하지만 이 세상을, 이 나라를, 아니 가족조차 변화시키려는 야심이 없는 아버지는 늘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하고 책을 즐기는 학자의 외길 인생을 기쁘게 살다 가셨다.
어느덧 내 인생도 이제는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미몽에서 못 깨어난 나는 아버지 본을 받지 못한 채 오늘도 이런저런 부질없는 욕심으로 잠을 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