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씨 덕분에 - 박대성
한 사람의 생애를 반백 년 넘도록 중계한 예는 없었다
그럴만한 사람도 드물고
그럴만한 생애도 드물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복희라는 이름 덕일까
바람 받지 않을 작달막한 몸피 덕이었을까
일요일의 남자 송해 씨가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며
삼천리 방방곡곡을 불러내면
우리는 모두 우수상 최우수상 후보가 되곤 하는데
무대에 오른
이모 고모 삼촌 조카 당숙이 춤추고
돌 백일 집들이 시집 장가가 춤추고
오대양 육대주 잔치가 되는데
송해 씨보다 젊다
송해 씨보다 목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며
일주일에 한 번 운수 좋으면
우리들의 생애도 인기상 장려상쯤은 될 거라는
딩동댕딩동
그런 꿈을
송해 씨 덕분에 꾸는 것이다
*시집/ 아버지, 액자는 따스한가요/ 황금알/ 2018
내가 사는 신촌의 헌책방에서 우연한 인연으로 구입해 읽게 된 시다. 이 시를 쓴 박대성은 강릉 출신의 무명 시인이다. 헌책방을 다니다 보면 숨어 있는 시집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시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송해 선생이 살아 계실 때 발표한 작품인데 평범한 어휘로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유쾌하고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다.
오늘이 영원한 국민 MC 송해 선생의 49재라고 한다. 며칠 전 낙원동 송해거리를 갔을 때 아직도 분향소가 있는 걸 봤는데 추모객들이 여전히 많았다.
얼마전 누이집에 갔다가 무슨 대화 끝에 전국노래자랑 얘기가 나왔다. 누이는 전국노래자랑 열렬한 팬이다. 누이는 송해 없는 요즘 전국노래자랑은 재미가 덜하다고 했다.
오늘 송해 선생님을 내 마음에서 떠나 보낸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 내가 불교인은 아니지만 49재는 불교 의식이라 이 글이 다소 불편한 기독교인도 있을 수 있겠다.
불교에서는 49재에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로 여긴다고 한다. 나는 이 심판의 의미를 무우 자르듯 엄격하게 심판하는 쪽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한다.
나는 49재를 세상을 뜬 고인이 이승의 미련을 완전히 떨쳐내고 저승에 잘 안착했으니 이제는 남은 사람이 슬픔을 훌훌 털고 잊어달라는 선언으로 생각한다.
밑에다 송해 선생이 부른 노래 <유랑청춘>을 올리려고 한다. 이곳 삶방이 글 위주의 게시물이기에 밑도 끝도 없이 노래를 올리고 싶지는 않다.
삶방 규정에 약간 어긋나더라도 올린 이유에 대한 첨부 글이 있다면 방장님도 용인할 것으로 믿는다. 나는 유랑청춘이라는 이 노래 제목부터 참 마음에 든다.
이 노래 제목 또한 송해 선생이 젊을 적에 몸을 담았던 유랑극단의 경험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그는 생전에 자신을 딴따라로 불렀다.
이 곡은 일종의 사모곡이다. 젊은 날 선생이 집을 떠날 때 영영 어머니를 못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랑청춘은 이미 돌아가셨을 어머니를 향한 헌정곡이다.
내 어렸을 적에 가끔 동네에 유랑극단과 천막극장이 들어왔다. 오일장이 열리곤 했던 면소재지 공터 한쪽에 가설 극장이 들어서면 동네 조무래기들까지 10리 길을 걸어 극장 주변을 맴돌았다.
부잣집 애들이야 부모 따라 당당히 입장을 했지만 나한테는 그림의 떡, 천막 밖을 서성이며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듣는 것으로 안타까운 위안을 삼았다.
어쩌면 워낙 여행을 좋아했던 내가 살면서 많은 곳을 떠돌았고 평생 어디론가 떠나는 나그네를 꿈꿔 왔던 것도 이 유랑이라는 단어가 내 DNA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노래 유랑청춘은 한참 전에 송해 선생을 위해 만든 곡이지만 내가 안 것은 얼마 안 된다. 송해가 정통 가수도 아니고 희극인 출신 사회자이기에 가창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나는 이 노래를 가사에 더 의미를 둔다. 때론 어떤 노래가 선율보다 가사에 꽂혀 좋아지기도 하지 않던가. 이 노래는 황해도 실향민 출신인 송해 선생과도 잘 어울린다.
들으면 알겠지만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머니란 가사에서 울컥해진다. 어머니가 표준어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엄마, 엄니, 어매, 어멍, 어마이 등 어떤 것으로 부르든 가슴 끝이 시려오는 이름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엄니라고 불렀던 탓에 어머니라고 부를 때보다 엄니라는 단어가 훨씬 사무치게 들린다.
그래서였을까. 송해 선생도 1절 끝부분에서 엄마로 불렀다가 2절에서는 어머니로 부른다. 기막힌 가사 배치다. 이제 선생의 음정을 따라 가면서 가사를 한번 음미하며 들어 보자.
눈물 어린 툇마루에 손 흔들던 어머니
하늘마저 어두워진 나무리 벌판아
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
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70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여
재 넘어 길 떠나는 유랑 청춘아
어디 가면 그리운 님 다시 만날까
정 주면 이별인데 그 어디 머물까
그 세월 아득하니 벌써 70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
누구든지 어머니란 호칭 앞에서는 자신이 50살이 되었건 80살이 넘었건 간에 영원히 엄마의 아기다. 송해 선생의 49재도 지났으니 이제는 잊어 드리자.
살다가 이따금 생각나거나 전국노래자랑을 볼 때 당신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면 선생도 고마워할 것이다. 노래 잘 들었어요. 전국노래자랑 덕분에 행복했어요. 잘 가요, 송해 선생님,,
첫댓글 멀리 살았서 전국노래자랑 프로는 접하지 못했지만
송해 선생님의 삶을 되집어 보면, 어머니 부분에서는
가없이 애절하면서도 건강한 삶은 부럽기도 합니다.
49재 날 인가요 벌써
세월이 잘도 흐릅니다
하늘나라에서 그리고 다시 윤회 하신다며 분명히 예술인으로 태어나실거에요
49재 송해 선생님
이승에 대한 미련을
잊어시구 천국 하늘나라
에서 마나님 과 행복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어쩜 고인을 기리는 글도 이리 일목요연 하실까
그 분이 금강산 관광 시행때 평양에선가 노래자랑 공연 하지 않았나요? 그때 울먹이시며 저 노래를 하셨는가 여튼 그날 많이 우셨어요 감사합니다 현덕님.
6.25한국전쟁으로
어머니와 생이별한 후
끝내 어머니를 한 번도 못 만나고
눈을 감은 송해 오빠!
사랑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어머니를
만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