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는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하고 이번이 두 번째로 읽는 것이다. 학생 때는 그냥 무시무시한 미래에 대한 경고 정도로 받아들였던 책이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는 우리의 교육체계에 대해 비판적 생각을 하게되어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멋진 신세계’에서의 사람들은 수많은 쌍둥이들 중에 하나로 태어나 자아가 없는 상태로 길러진다는 것을 읽으면서 나는 묘하게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이 생각났다. 각자 개성있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12년 동안의 한국의 교육체계를 거치고 나면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기 매우 어려워지는 현상, 분명 다른 존재들로 세상에 나왔지만 마치 처음에 쌍둥이로 태어났었던 것처럼 정형화된 모습으로 변질되는 모습 등이 떠올랐다.
소설 속 세계에서 뇌에 산소 공급을 적게 하는 모습은 우리 세계에서 어른들이 필요하다고 정해놓은 지식만을 아이들의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시키는 모습과 같아 보였고, 책 속 세계에서 책과 꽃을 멀리하도록 전기충격을 가하는 모습은 우리 세계에서 입시지옥을 뚫고 나가기 위해 중학교 이후에는 책과 시를 멀리하여 감성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모습과 같아보였다. 책 속 세계에서 소비를 위해 사람을 부품처럼 양산하였던 것과 우리 세계에서 산업사회의 노동자 양산을 목적으로 아이들을 구시대 교육체계에서 양육하는 것이 유사해 보였고, 우리 아이들이 ‘멋진 신세계’속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또한 책 속 세계의 사람들은 철저한 교육으로 인해 국가의 지시에 순종적이고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에도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생각을 단순화하고 다른 생각을 가졌을 때 성적을 깎아버리는 방식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하는 등 갈등 발생의 소지를 차단하고 순종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였다.
멋진 신세계를 지금의 현실과 대비한 것이 심한 비약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나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너무도 유사하게 느껴졌다. 4차 산업혁명, 코로나, 비대면의 확산, 전통적 근로자의 소멸 등 격랑의 한가운데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이미 지나가버린 산업화시대의 교육체계를 단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강요하고 있는 교육당국의 모습이 ‘멋진 신세계’의 오만한 모습과 진하게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책 속 세계처럼 우리의 세계가 비극적인 결말로 종결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씁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다.
첫댓글 심한 비약같지 않아요. 이 책처럼 놀랍게 지금 현재를 예견한 책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어른의 한 사람으로 정말 미안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