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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변화를 가로막는 12가지 장벽 지금 당장, 나의 변화를 가로막는 12가지 장벽을 깨뜨려라. 1. 남을 탓하기 - 잘못된 것을 고치는 힘은 내 안에 있다 2. 좌절 - 엉뚱한 곳에서 기죽지 말고 다른 데로 눈을 돌려라 3. 걱정 - 해결되지 않는 과거를 치유하라 4. 무관심 - 기적은 열정 속에서 피어난다 5. 편견과 비난 - 편견과 비난은 부메랑처럼 내게 되쏘아진다 6. 우유부단 - 먼저 실천하라. 답은 저절로 찾아온다 7. 망설임 - 생각은 필요 없다. 일단 시작하라 8. 완벽주의 - 바로 지금의 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 9. 원망 - 원망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다 10. 자기연민 - 속으로만 불평하지 말고 내 마음을 털어놓아라 11. 혼란 - 시련에 당황하지 말라. 그것이야 말로 지혜의 원천이다 12. 죄의식 - 나를 용서하라. 그리고 나의 가치를 인정하라 - 존 그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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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대표 장수마을 바마현 암환자 등 260만 명 몰려 '몸살', 썩은 하천 물이 장수샘물 둔갑 돼지고기 삶아먹던 日 오키나와 햄버거에 40代남성 절반 비만 불가리쿠스로 유명한 스몰리얀 간편식 유행에 장수 인구 줄어 중국 남부 광시(廣西)좡족자치구에 있는 바마(巴馬)현은 중국의 대표적인 '장수마을'이다. 인구 27만명 가운데 100세 이상 인구가 82명이다. 세계 대다수 장수마을이 온대에 있지만 바마현은 아열대 기후에 속해 장수(長壽) 전문가들의 연구 대상이 됐다. 바마현이 장수마을이 된 자연조건은 산소이온 농도가 짙은 공기, 미네랄이 풍부한 물, 충분한 햇빛, 다른 지역보다 강한 지구 자력(磁力) 등이 꼽힌다. 마을 주민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단조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2006년부터 이곳에 외지인이 몰려들면서 장수마을의 조건이 하나 둘씩 망가지고 있다. 연조도시보(燕趙都市報) 등의 보도로는 지난 2006년 11만명이던 관광객은 지난해 11월까지 259만명으로 늘었다. '철새'로 불리는 방문객의 90% 이상은 각종 암과 고혈압·당뇨병 등을 앓는 환자다. 2006년 이곳에 한 달 이상 체류한 사람은 60여명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10만여명이 됐다. 한적했던 시골마을엔 여관과 식당 등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바마현을 흐르는 판양(盤陽) 하천은 몇 년 전만 해도 그냥 마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식수로 쓰기 어려운 하천이 됐다. 마을 간부 황다상(黃大尙)은 "판양천은 눈으로 봐도 기름이 둥둥 떠다녀 마실 수가 없다"고 말했다. 판양천은 또 환자들이 버린 약품으로도 몸살을 앓고 있지만 '장수 샘물'로 둔갑해 1t당 1800위안에 팔린다고 한다. 사람과 건물이 몰리면서 공기 중의 산소이온 농도는 20년 전의 6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몰락한 세계의 장수촌. 주민들의 생활 리듬도 바빠졌다. 바비큐를 파는 황청은 차이나데일리에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매일 12시간씩 일한다"며 "아마 (조상처럼) 100살까지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바마현 황옌페이(黃燕飛) 관광국장은 "장수마을에 특별한 비결은 없다. 깨끗한 자연과 느긋한 생활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장수를 꿈꾸는 인간의 욕심이 천혜의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마을 주민의 '장수 생활 습관'까지 망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장수마을이 외부의 손을 타며 망가진 경우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본 오키나와현은 1995년까지 일본에서 평균 수명이 가장 길었다. 기름을 뺀 돼지고기와 채소 위주의 식단이 비결로 꼽혔다. 그러나 패스트푸드점이 파고들면서 지금은 40대 남성의 절반이 비만과 당뇨의 위험에 처한 것으로 조사됐다. 불가리아의 스몰리얀 마을은 유산균 '불가리쿠스'로 만든 전통 요구르트가 유명한 장수마을이었다. 그러나 공장에서 만든 유제품과 간편식이 식탁을 점령하면서 장수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동유럽 몰락 이후 의사들이 돈을 좇아 떠나며 의료 상황이 열악해진 것도 타격을 줬다. 이탈리아의 장수마을 사르데냐의 옛날 목동들은 하루 20㎞ 이상 걸으며 건강을 유지했지만 현대의 목동은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수명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
"의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다. 잘 하면 온 세상이 칭송해주고(extol their virtues), 잘못한 것은 모두 땅이 묻어주니까(bury all their faults)." 이런 질시 어린 농담의 대상이 되기도(be the object of such a jealous joke) 하지만, 의사는 누가 뭐래도 목숨을 살리는 '성직(聖職·a sacred profession that spares life)'이다. 다른 사람들을 죽음에서 지켜주는(fend off the deaths of others) 의사들, 그렇다면 본인의 죽음은 어떻게 맞이할까. 그들도 죽는다. 다만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사뭇 다르다. 대단히 차분하다(be fairly serene). 자신에게 어떤 선택이 남아있으며, 무슨 일이 진행될 지 뻔히 알기(see it through a ladder) 때문이다. 현대의학의 한계를 익히 안다(know enough the limits of modern medicine). 가장 두려운 건 고통 속에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난다는(pass away in pain solitarily by themselves) 것임을 수없이 목도했다. 세상 마지막 순간에 직면한(be on the brink of last moments on earth) 환자들에게 행해지는 '헛된 치료'('futile care' being performed on patients)의 부질없음을 본인 스스로 잘 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최첨단 기술을 집중하는(bring the cutting edge of technology to bear on a grievously ill person) 허망함을 안다. 몸이 절개되고, 구멍을 뚫어 튜브를 꽂고, 생명유지장치에 연결되는(get cut open, perforated with tubes, hooked up to life-support machine) 고통을 겪다 끝내 세상 떠나는 모습들을 지켜봤다. 의사들은 무의미하거나 해로운(be pointless or harmful) 줄 알면서도, 모든 치료방법을 고집하는(insist on all sorts of possible treatments) 환자 가족의 요구를 묵살하지 못한다. 소송이 두려워서다(be fearful of litigation). 고통만 더할 뿐 소용없는 줄 알지만 곤란에 휘말리는 걸 피하려고(avoid getting in trouble) 약을 쓰고 수술을 한다. 책임은 면할(shuffle off the responsibility) 요량이다. 충격과 겁에 질린(be shocked and scared) 가족은 의사가 추가 치료에 회의적인 충고를 하면 돈·시간·노력을 벌려는 비열한 동기에서 그러는(act out of base motives)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의사들의 알코올 남용과 우울증 비율이 높은(have high rates of alcohol abuse and depression)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be not irrelevant) 한다. 원하는 대로 해주고 돈이나 더 받으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이들도 있다. 그래서 의사들은 본인의 죽음을 앞두고 가족과 동료 의사들에게 미리 당부한다. 화학요법, 방사선, 외과치료(chemotherapy, radiation, surgical treatment) 등을 받지 않고 가족 곁에서 편안히 생을 마감하게(end their lives in peace) 해달라고 말해놓는다. 화분이 죽어있는 진료실의 의사는 다시 찾지 말라고 했다. 십중팔구(ten to one) 환자 생명은 귀히 여기지 않고 온갖 필요 없는 처치를 해놓고 돈만 챙기는 의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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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해리포터를 읽고 반해버린 나는 훗날 한국의 조앤 롤링이 되겠노라고 야심 찬 선언을 했었다. 그리고 그날로 연습장을 사서 엉터리 판타지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게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비록 조앤 롤링이 되기 위한 여정은 험난했고 어느새 무수히 잊혀진 꿈들 중 하나가 되고 말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수많은 생각을 연습장에 빼곡히 적어 넣었다. 그런 나에게 글을 대체 왜 쓰는 거냐고 묻던 사람들이 참 많았다. 어설프고 유치한 글을 비웃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썼다. 그래야 행복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는 나의 ‘취미’였다. 하지만 점점 더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글쓰기는 ‘그냥 취미’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면을 빌려 여러분에게도 전하고 싶다. 삶을 바꾸는 글쓰기를 함께 하자고. 우리는 영화를 보며 그 속의 주인공들에게 몰입한다. 늘 새로운 일들이 가득한 그들의 삶을 보며 대리만족한다. 그러나 진짜 현실에서는, 우리는 종종 삶의 변두리에 머무를 뿐이다. 세상은 나 하나쯤 없어도 잘 돌아갈 거라는 생각, 나는 이 세계의 주변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우리를 짓누른다. 송강호는 영화 속에서 서울을 위협하는 괴물을 결국 물리쳤지만, 만약 내가 그 세계 속에 있었다면 아마 영화 초반부에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불쌍한 행인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는 그런 생각 말이다. 우리의 현실은 지루함 투성이다. 그 누구도 겪지 못했을 세기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들 하는 비슷한 연애였고, 왜 나에게는 이런 시련이 일어나는지 하늘을 원망했는데 지나고 보니 옆의 친구도 똑같이 겪고 있던 시련이었다. 어릴 적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뭔가 멋진 일을 할 줄 알았는데 실은, 그냥 수많은 군중 속의 한 명이었던 거다. 하지만 잠깐 시간을 돌려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 보자. 우리 대부분은 초등학생 때 밀린 방학 일기를 꾸역꾸역 쓰면서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학을 뗐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매일 똑같은 생각을 하는데 그렇다고 매일 똑같은 일기를 쓸 수는 없는 딜레마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똑같은 하루는 사실 똑같은 하루가 아니었다. 어제의 햇살과 오늘의 햇살이 다르듯이. 일 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조금 달라졌듯이. 그 변화 사이에는 무수히 다른 내가 있고, 그렇게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도 다르다. 그냥 지나치기에 미처 느끼지 못할 뿐이다. 글쓰기는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우리의 흔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백지 위에 주워담는다. 우리가 무시하고 지나쳐버렸던 일상의 ‘사소한 다름’은 글쓰기를 통해서 ‘진짜 다름’이 된다. 글쓰기가 우리의 삶에 생소함을 선물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 속의 사소한 세부 사항들을 쉽게 무시해버린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오늘은 과제를 했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했다. 일주일 전에도 똑같았는데. 끝.”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소함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당신의 어제와 오늘이 어떻게 달랐는지부터 시작하자. 예컨대 이런 건 어떨까. “오늘 풀었던 과제는 저번의 과제와는 조금 달랐다. 교수님은 원래 책에는 없는 문제를 자주 내시는데 이번에는 책에 있는 문제들이 많이 나와서 풀기가 더 쉬웠다. 아무래도 학기말이 되어 가니 교수님도 새로운 문제를 생각해서 내기엔 바빠지신 걸까? 학생들만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수업을 준비하는 교수님들도 전혀 쉽지는 않으시겠지.“ 금세 흩어져버리는 의식의 흐름과는 달리, 글로 남긴 생각은 흔적이 된다. 그 흔적을 곱씹다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꼬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모여서 정말로 어제와는 다른 나를 만들어낸다. 당신은 오늘 새로운 생각을 하나 남겼다. 물밀 듯이 밀어닥치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 멋진 일이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생각들을 발견해가면서 우리는 시간의 파도에 휩쓸리는 삶의 주변인이 아닌 파도 위에 선 삶의 주인공이 된다. 때로는 비참한 일들을 기록하면서도 당신은 그것이 그냥 흔해빠진 불행 중 하나가 아니라 또 다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단지 남들에게 멋진 문장을 보여주며 뿌듯함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글쓰기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때로는 울게도 할 것이다. 그게 글쓰기가 ‘삶의 방식’인 이유이다. 그러니 문득 당신의 오늘에서 사소한 다름을 발견하는 새벽이 온다면, 언제건 늦지 않았다. 늘 수식만 끄적이던 공책에 낯간지러운 표현들을 적어 내려가는 건 영 어색하겠지만 어쩌면 그게 당신의 삶을 바꿀지도 모르는 법. 흰 종이를 펼치고 연필을 들어보자. 이제 우리 삶이 한 편의 소설이 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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