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zAvRKQWjBVQ?feature=share
구약성경의 부활 예언 13:32~37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믿음을 촉구하는 바울 13:38~41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 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전합니다. 시편 말씀대로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님은 썩음을 당하지 않으시며, 우리는 예수님에 힘입어 죄 사함을 받습니다. 모세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의롭게 됩니다. 이를 멸시하는 사람은 멸망합니다.
------------
구약성경의 부활 예언 13:32~37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것입니다. 바울은 청중인 유대인들에게 구약성경을 인용해 부활의 확실성을 증명합니다. 먼저 제왕시인 시편 2편 7절을 인용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33절)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이 왕이심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34절; 사 55:3)와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35절; 시 16:10)라며 구약성경의 말씀을 인용해 다윗의 나라가 예수님을 통해 영원하리라는 것과, 부활하신 예수님은 결코 썩지 않으심을 알려 줍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난 바울은 담대히 부활을 증언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 인용한 구약성경은 무엇인가요?
내게 부활을 확신시켜 준 성경 말씀은 무엇인가요?
-----------------
믿음을 촉구하는 바울 13:38~41
죄 사함은 예수님을 통해 얻는 선물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청중은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모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은 모두 구원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들은 말씀에 대한 바른 응답을 촉구합니다. 그는 혹시라도 불신앙으로 반응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박국의 예언으로 경고합니다(41절; 합 1:5).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경고를 믿지 않아서 바벨론의 공격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받습니다. 구원의 복음에는 순전한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복음을 들은 이들에게 촉구한 것은 무엇인가요?
말씀을 들을 때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
정통 신학, 정통 실천
건강한 신앙생활의 기반으로 ‘정통 신학’(orthodox theology)과 ‘정통 실천’(orthodox praxis)이 꼭 필요하다. 올바른 신앙생활은 이 두 가지가 전제될 때 가능하다. 두 가지 중 하나만 흔들려도 믿음과 행위가 분리되고 삶의 균형이 흔들린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믿음의 순도가 낮아질 때마다 둘 중 하나만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기조가 유행하며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교인 가운데도 이 두 가지 중 하나에 치우쳐 우려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머리에 든 것은 많은데 행동은 약한 ‘E.T. 크리스천’과, 이들과 반대로
저돌적으로 행동에 나서지만 말씀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 ‘공룡 크리스천’이 있다.
E.T.는 오래전 공상 과학 영화의 캐릭터인데, 머리가 크고 팔다리가 얇은 특징을 갖고 있다.
믿음을 머릿속 지식으로만 아는 이들은 신앙을 교리 공부 정도로 생각한다.
교제도 하지 않고 전도도 하지 않는다.
공룡 크리스천은
모임에 열심히 나오고 각종 활동에 꼬박꼬박 참석하지만 성경을 읽지 않는다.
자칫 반지성주의나 신비주의로 빠지기 쉽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셔서 주신 구원은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 가치를 알려 하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도 하지 않는 안일한 태도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않는 연약한 믿음을 양산한다. 정통 신학과 정통 실천으로 무장한 생명력 있는 성도가 되자.
풀타임 크리스천 / 김상수_ 두란노
==============
한절묵상:사도행전 13장 38~39절
유대인들은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율법으로는 죄인이 의롭게 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선언합니다. 스스로 의로움을 증명하려 선행을 자기 삶에 열심히 채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의로움은 예수님이 주신다."라고 말합니다. 의로움은 스스로 어떤 조건을 갖춰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가장 풍성한 은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찬양하는 성도의 삶에 임한다. - 옥한흠
오늘의 기도
하나님, 신약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성경에 담아 놓으신 하나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은혜를 주소서. 성경 전체의 모든 말씀이 이 땅에 실현됨을 믿고, 말씀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임박한 심판 앞에 놓인 사람들에게 생명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87 예수 앞에 나오면)
-------------------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사함과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회개와 믿음의 촉구(38~41)입니다.
이 설교는 구약 예언을 통해(시 2:7; 사 55:3; 시 16:10)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와 주되심을 증거하며 이신칭의의 복음을 잘 드러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스데반과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는 모두 구약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가 선포되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 주님께서 우리를 이 땅으로 보내신 이유를 잊지 말고, 주님을 그들에게 더 잘 전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도록 하자
-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부터 시작해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그들의 말로 전하기 위해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을 암기하고, 그들에게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전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 나가도록 하자
-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이 되도록 하고, 늘 겸손함을 잃지 말고,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고, 주님만을 높여 드리며,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와 결실에 감사하도록 하자
--------------------
바울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우리의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율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유대인 회당에 모인 자)들에게 바울은 도전적으로 율법은 결코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이기에, 예수를 핍박하던 자에서 예수를 따르는 자로 바꾸었기에 우리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능력을 발견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나를 변화시키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가진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
사도행전 13:32 – 13:41 부활의 예수님을 확신하고 전하는 성도
오늘 말씀은 어제 설교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한다고 말하면서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절대 우연이 아닌 철저한 언약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정점에 누가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은 모두 성경에 예언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32-37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 설교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당신들 앞에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전하는 죄 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38-39절을 보십시오. 내가 전하는 것의 핵심은 이것이다. 내가 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신칭의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고 죄 사함을 받는 이 길은 지금까지 잘못 알아서 범한 잘못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한 길은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미칠까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자는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 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씀했던 선지자의 말씀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도록 삼가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말씀을 줄줄이 암송하기는 하지만
그 뜻을 잘못 알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율법에 매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종국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는 지옥이 준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 믿고 구원받던지 아니면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놀라고 망하던 지의 선택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전해달라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합니다.
두 번째 전도지에서 만난 이 놀라운 반응에 바울과 바나바는 얼마나 격려를 받았을까요.
회당 모임이 끝난 후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습니다.
아마 묻고 답하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세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역사상 최초의 전도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반응입니까?
복음의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오늘 우리에게도 선택의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중생케 하시는 은혜를 입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선택은 다른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주님을 닮은 성품과 윤리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삶으로 드러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느냐 아니냐의 선택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더 풍성해지도록 살아가느냐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모이고 모여서 인생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참 잘했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삶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일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성품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몇 번의 설교, 몇 번의 성경공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일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다보면 작심삼일이 되고 다시 원망에 빠지며, 말씀 묵상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은데, 말을 좀 아끼고 싶은데, 물질과 시간을 좀 잘 쓰고 싶은데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은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노력이 비록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말씀을 듣고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서 있는 선택의 삶을 올바르게 선택하고 살아가는 귀한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사건임을 밝힌 후, 예수님을 믿는 여부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결정된다고 전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2~37절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하나님 약속의 성취임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거룩하고 확실한 복’의 성취이며, 썩지 않을 부활생명을 확증하는 증거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을 심판하실 왕이며,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이 왜곡되고 거짓 복음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 공동체에서는 바른 복음이 선포되고 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8,39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율법의 정죄를 피할 길이 없고 의롭게 될 수 있는 인생도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는 길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도 모두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내 인생의 조력자가 아닙니다. 참 구원의 문을 여시고 날마다 그 구원의 길로 나를 이끄시는 구주요, 주님이십니다.
40,41절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의 영광으로 초대하면서, 동시에 그 복음을 외면한 결과에 대해서도 분명히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던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것처럼(하박국 1장 5절), 예수님을 통해 주신 죄 사함의 은혜를 거절하여 멸망하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합니다. 더 이상 회개의 눈물이 소용없을 때가 오기 전에 복음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42,43절 바울의 설교에 긍정적인 열매가 나타납니다.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성경의 핵심 내용(그리스도의 구속)을 일목요연하게 전한 바울의 강론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바울은 진리를 향한 갈증 속에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은혜 안에 머물라’고 권면합니다. 그들이 자신의 추종자가 되기보다 은혜의 수혜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은혜로 시작하고 은혜로 살고
마지막 날 은혜로 주께 영접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의 바울의 설교는 매우 간결하고 단호한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의 결론이 그리스도이신 것과 모든 언약의 결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행13:33)
바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부활과 영생의 나라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고,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행13:38),
그리스도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13:39)
그런데 여기서 우리말로는 38절과 39절 모두 힘입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각각 다른 전치사를 쓰고 있습니다 38절의
"이 사람을 힘입어"는 "διά"(디아)로 "~통하여"라는 뜻이고,
39절의 "이 사람을 힘입어"는 "εν"(엔)으로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즉, "διά"(디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고,
"εν"(엔)은 그리스도의 성품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먼저는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 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약속을 따라 날마다 죽는 자기 십자가를 통과하여 죄를 그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4:1~2)
또한 그 큰 약속을 따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기를 더욱 힘쓰기 원합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4~7)
-----------
30,3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렸습니다. 변화된 새로운 몸으로 살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간 열두 사도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40일 동안 확실한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승천하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열두 사도와 오백여 형제와 야고보가 백성앞에서 예수님 부활의 증인입니다.
바울 자신도 빛으로 오신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그리스도요 진정한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왕이시오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32,33절을 보십시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다윗의 후손에게서 메시야를 주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을 닮은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야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시편에 기록된 성경 말씀대로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녀에게 자신의 아들을 보내신다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시편 이편에서 메시야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
34,35절을 보십시오.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는 시편 16편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주셨던 거룩하고 확실한 복을 부활의 예수님을 통하여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복은 부활의 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도 부활하게 하십니다. 우리로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의 근원입니다.
또한 시편 16편 8절에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겠다고 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썩지 않는 모습으로 부활하여 시편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썩음을 당하지 않은 예수님)
36,37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여기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고 할 때 주의 거룩한 사람은 다윗이 아닙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가 잠들었습니다.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그 몸은 썩음을 당하였습니다 썩음을 당치 않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신 예수는 부활하여 썩음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썩지 않고 강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다시 오셔서 우리를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죄사함의 복음)
38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피흘려 죽으사 우리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부활하여 그 피가 하나님의 아들의 피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이신칭의의 복음)
“39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우리가 모세의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악하고 약합니다 .죄의 본성이 있습니다.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힘입어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는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스럽다 자랑스럽다 여십니다. 바울은 은혜의 복음, 이신칭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은혜로 주님을 섬길 때 주님은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음)
40,4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우리가 복음을 받기 위해서 한 가지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미칠까 삼가야 합니다.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박국 1장에서 복음을 멸시하는 자들은 놀라고 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 일을 행하십니다. 한 가지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부활의 복음을 전해도 도무지 믿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해도 사람들은 믿지 못합니다.
십자가 부활은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아 멸망합니다. 영원히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불신을 회개하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어야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고 자랑스러운 자가 됩니다. 아멘
“부활의 예수님을 확신하고 전하는 성도” 김승수 목사
사도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구약을 말씀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시편 2편에 기록된 대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서 다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영원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시편 16편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셨다는 말씀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을 자세히 전합니다.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부활하신 분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끊어냅니다.
오직 구원을 통해서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죄의 삵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인정하고 그 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마다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고난과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또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왕이 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며 우리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살아나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산해진미도 죽은 사람이 먹을 수 없듯이 아무리 좋은 소식도 귀를 막은 사람에게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그 구원의 손길을 붙잡는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복음은 세상이 보기에 화려하지도 흠모할 만한 것처럼 비치지 않지만 그 안에 놀라운 생명과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며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오직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보물이 예수 그리스도 그 복된 소식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은 끊임없이 그의 자녀들에게 교만과 불순종의 영을 불어넣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구원의 손길을 거부하고 도리어 조롱하게 만드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오직 그분의 영으로 충만하여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악에 대적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날마다 새롭게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일서 4:2-3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
비시디아 안디옥에 복음이 들어간 것은 그리스도가 승천 하신 후 적어도 20년이 경과한 뒤입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후 약 18년이 지난 뒤 바울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곳은 지중해를 건너 소아시아의 내륙지대입니다.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복음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설령 그곳의 일부 유대인들이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지라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이고, 당시는 교통수단도 좋지 않았고, 매스컴이 없던 관계로 예루살렘의 십자가사건은 잊혔을 것입니다. 그 때 바나바와 바울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간 들어 본적이 없던 소식인지라 그들에게 초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좋은 복음은 메시아일 것입니다. 구약성경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인지라 메시아가 온다는 예언을 많이 읽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기름 부은자, 곧 그리스도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사람입니다. 그 자체가 그들에겐 좋은 소식,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조국이 로마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분을 믿으면 죄 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경이로운 이야기는 그들에겐 정말 쇼킹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바라던 메시아가 오고, 더 감사한 것은 그 분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 율법으로는 의인이 될 수 없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된다는 선언입니다. 곧 칭의를 말합니다. 원래 ‘칭의’라는 말은 유죄인 사람을 무죄라고 선언할 때 쓰이는 법정용어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대가를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 죄인을 대신하여 죄 값을 치르게 합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들 속에는 대속의 보배로운 피가 있으니,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죄 없다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 때 사람은 의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의롭지 않으면 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신 그 나라에 갈수 없기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하여 사는 것은 아니지요. 또한 돈을 벌기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지, 일을 하기 위하여 돈을 버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것은 그 나라에 가기 위한 것이지, 단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함은 아니지요. 아무리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그 나라에 가지 못한다면 헛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게 보십니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결단이고, 조건 없이 사랑하기로 한 의지 덕분입니다.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도무지 자격이 없는 사람을 유자격자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결단해야 할 차례입니다. 은혜 받은 자로서 걸맞게 살기 위함으로, 그 분의 흘리신 그 보혈을 배반할 수 없고 그 분의 기대에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등 비행기 티켓을 얻은 사람은 그것을 잃을 리 없습니다. 무자격자가 천국을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으니, 어떠한 경우라도 그것을 잃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는 땅의 사람으로 살수 없습니다. 칭의! 그 영광스러운 이름을 아는 자라면 결코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보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7..월22일 인천대공원
-------------
1.율법의 성취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에서 계속 말씀하셨던 메시야이며 또한 말씀의 완성자로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구약성경에 대해 무지하였다면 그들은 바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의 완성자로서 오셨기에 말씀을 알아야 그 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행 13:39) 모세의 율법은 미완성입니다.
말씀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님이 오셔야 그 말씀은 완성됩니다.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인 죄사함과 화목과 헌신을 위한 제사는 모두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실제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셔야 그 율법이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율법을 다 지킴으로 사는 것인데 타락으로 인하여 그렇게 다 지키는 사람이 없을뿐만 아니라 혹 다 지켜도 구원함이 없는데 그것은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피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의 피만 대속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완성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그는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는 구약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알아야 말씀의 완성자로 오신 분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아는 것이 예수님을 아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롭다는 것은 항상 어려움을 내포합니다. 이전에 알지 못하였던 것을 아는 것이고, 성취는 또한 변화중에서도 큰 변화이기에 더욱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말씀이라는 기본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말씀에서 이야기하던 바로 그 분이 오늘 지금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어렵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말씀에서 분명히 이야기하던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말씀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2.말씀에의 관심
바울이 설교를 마치고 회당을 나올 떄에 사람들이 뜨겁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행 13:42)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설교해 줄 것을 요쳥하였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각자의 집으로 가지 않고 바울 일행을 따라갔습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행 13:43) 그들이 낯선 이방인을 그렇게 환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번의 설교에 그렇게 환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메시야를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의 설교였지만 그들은 그 설교에 말씀의 완성자로서 오신 분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되었고 그것에 환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환호하고 있는 그들에게 바울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깨달았으면 그 깨달음에 따라 살면서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깨달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은혜 가운데 거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깨달았지만 이내 생활전선은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급한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잊고 은혜를 저버립니다. 오늘날 말씀에 관심갖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일에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얻었다고 말하면서도 집에 가서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이 신앙인의 삶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은혜 안에 거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리 바빠도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이유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더 확장하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주객이 전도되어 사는 것이 더 우선이 되어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성경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받았으면 계속 그 안에 거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세상에 아무리 급한 것이 많이 있고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어도 말씀이 우리의 가장 급한 것이요 재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말씀을 모르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의미를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삶도 의미를 잊어버립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하는지 모르며 가치도 없는 일이 됩니다.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것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어찌하든 말씀을 읽으십시오.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하여 회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예수님에 대해 전한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은 다윗을 통하여 주시겠다고 하신 구주가 바로 예수님이고, 이들을 우리가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사 다시는 썩음을 당하지 않게 되었으니 너희는 이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은, 내가 전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으라는 것이다.
죄 사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전하고 있나?
죄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있나?
나의 이 죄가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엄청난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죄를 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내 죄의 심각함을 알수록, 그리고 이것을 사하기 위해서 얼마나 커다란 대가를 예수님께서 치르셨는지를 알수록 나는 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분을 전하는 것에 더 큰 기쁨이 생길 것이다.
죄 사함의 은혜에 대해 더 깊이 묵상하고 감사하며, 이것을 전하는 삶에 게으르지 말자.
13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앞서 바보에서는 바나바와 바울이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에 바예수라는 마술사가 훼방을 하였으나 성령 충만한 바울의 저주로 그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11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눈앞에 펼쳐진 기적을 통해 총독은 믿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외에도 바보에서 많은 역사가 있었겠지만 누가는 새롭게 바울의 전도여행을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만일 모든 일을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요 21:25). 아무튼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는 바나바가 주도했던 사역이 이제는 바울이 주도하는 사역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2절에서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세웠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 13절에서는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보를 떠나 도착한 밤빌리아 버가라는 곳은 아테네(아데미) 여신을 위해 세워진 신전으로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누가는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는지 않으면 미미했었는지는 모르지만 누가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이곳에서 복음은 충분히 전해지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그만큼 종교심이 강한 도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곳에서는 오래 머물렀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발을 털고 일찍 떠났습니다. 복음은 공평하게 전해지지만 밭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황무지였던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14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비시디아 안디옥은 바울 일행이 처음 출발하였던 수리아의 안디옥과 다른 곳입니다. 이곳은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로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터키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먼저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았습니다. 그때는 안식일이었습니다. 당시 사도들과 회심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켰습니다(행 20:7, 안식일 다음 날, 우리는 주의 만찬을 나누려고 한자리에 모였다. 바울로는 그 이튿날 떠나기로 되어 모인 사람들과 밤이 깊도록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그 주간의 첫날에').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야 했습니다.
죄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사장의 나라에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피의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짐승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써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신 것입니다. 한 번의 제사로써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죄의 권세를 멸하시고 죄로 인해 무질서해졌던 이 땅에 질서를 회복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흑암과 혼돈에 쌓여있던 이 땅의 질서를 세우시고 안식을 취하셨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폐지된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십계명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3: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셨기에 십계명이 폐지되었습니까?
십계명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셨다는 것은 십계명을 갱신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을 하나로 요약하신 것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5~6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
우리의 선택(행 13:32-41절)
오늘 말씀은 어제 설교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한다고 말하면서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절대 우연이 아닌 철저한 언약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정점에 누가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은 모두 성경에 예언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32-37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 설교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당신들 앞에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전하는 죄 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38-39절을 보십시오. 내가 전하는 것의 핵심은 이것이다.
내가 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신칭의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고 죄 사함을 받는 이 길은 지금까지 잘못 알아서 범한 잘못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한 길은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미칠까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자는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 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씀했던 선지자의 말씀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도록 삼가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말씀을 줄줄이 암송하기는 하지만 그 뜻을 잘못 알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율법에 매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종국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는 지옥이 준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 믿고 구원받던지 아니면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놀라고 망하던 지의 선택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전해달라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합니다.
두 번째 전도지에서 만난 이 놀라운 반응에 바울과 바나바는 얼마나 격려를 받았을까요. 회당 모임이 끝난 후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습니다.
아마 묻고 답하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세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역사상 최초의 전도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반응입니까? 복음의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오늘 우리에게도 선택의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중생케 하시는 은혜를 입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선택은 다른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주님을 닮은 성품과 윤리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삶으로 드러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느냐 아니냐의 선택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더 풍성해지도록 살아가느냐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모이고 모여서 인생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참 잘했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삶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일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성품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 몇 번의 설교, 몇 번의 성경공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일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다보면 작심삼일이 되고 다시 원망에 빠지며, 말씀 묵상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은데, 말을 좀 아끼고 싶은데, 물질과 시간을 좀 잘 쓰고 싶은데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은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노력이 비록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말씀을 듣고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서 있는 선택의 삶을 올바르게 선택하고 살아가는 귀한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 아버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날마다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주님의 자녀로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사명을 기쁨과 감사로 넉넉히 감당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구원의 감격과 기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신음하고 고통으로 눈물 흘리는 이들을 찾아가 만나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깊이 깨달아
순종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