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들은 왜 싸울 수밖에 없는가.(3-1)
가자 지구에 본부를 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면서 이지역에
광범위한 혼란과 긴장이 고조되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평온한 휴일은 잔혹한 전쟁으로 급변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쟁으로 선포하면서 하마스 시설을
공습했다.
피해규모는 전쟁이 발발한지 한 달 만에 1만명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피의 보복이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전망은 쉽사리 예단할 수 없으며, 휴전이
성사되더라도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속하는
아랍인 간 오랜 분쟁의 역사 때문이다.
유대교 숙원의 땅, 이스라엘
유대인이 세운 이스라엘은 영욕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셈족에 속하는 유대인들은
성경에 의하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흉년이 들어
아브라함 손자인 야곱의 시절에 이집트로 이주하여
번성하니,
파라오가 위협을 느껴 탄압하자 모세의 인도로
지금의 팔레스타인인 가나안땅에 정착해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기원전 1000년경에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예루살렘 성전을 구축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기원전 931년 북이스라엘과 남유대로
분열되었으며,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히타이트에
이어 그 지역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멸망되었는데, 아시리아는 통혼정책을 써서 동화시켰다.
사마리아인은 이들의 후손이다.
유대왕국은 기원전 587년 무렵, 신바빌로니아제국의
침입으로 멸망하여, 강제이주 억류되어 약 70년간
바빌론유수 시대를 연다.
구약성경은 기원전 1,000년 또는 1,800년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온 장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며,
이 바빌론유수시대에 민족의 흥망을 염려하여 어느정도
정리하여 기초를 만들었다.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바빌론유수로 인하여 이스라엘민족의
과거를 상상을 곁들여서 시적 표헌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신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멸망하자.
페르시아의 키로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니,
자유를 얻어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귀향하게 된다.
그러나 페르시아가 알렉산더 대왕에 망하자,그의 지배하에
있다가. 그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자,
3나라로 갈라진 후 잠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에서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로 들어갔다.
시몬의 하스몬왕조의 유대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에서
자치권을 누렸으나,
셀레우코스 왕조가 기원전 63년에 로마제국에 멸망하자,
당시에 로마의 비호아래 정통 야곱의 후손이 아닌,
유대인에 흡수된 에돔의 헤롯대왕이 유대를 지배하게 되었다.
신약선경에 의하면, 그는 이스라엘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에 유아살해로 유명한 왕인데,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안고 이집트로 피신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에는 유대왕조에 내분이 일어나자,
결국 로마는 직접 총독 빌라도를 파견하여 다스리게
했으나, 유대인 전통 율법학자들은 민족주의와 선민사상에
빠져서,만민의 구원을 주장한 예수를 가짜 메시아라 하여
죽이게 했다.
이런 업보때문인지, 더구나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이 강요하는
황제숭배를, 자기들의 신 야훼만이 진짜 신이라며 거절하고
또한 무거은 세금징수 저항하자,결국 유대왕국은 로마에
의해서 멸망하게 되는데, 서기 73년 마사다 전투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와 그 뒤의 소규모 반항으로
아예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그들의 나라땅에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일년에 한번만,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마지막 남은
성벽에 오는 것을 허용했을 뿐이다.
이때 수십만의 유대인이 학살되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것이 그 유명한 ‘디아스포라’
이다. 유대인은 전 세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됐다.
유대왕국이라는 나라는 약 2,000년간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유대인은 전 세계 각국에서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약속의 땅’에 돌아가겠다는 집념 하나로 버티며 살아왔다.
-옮긴 글-
첫댓글 유대교 이스라엘숙명의 땅
팔레스타인과의. 슬픈역사의. 두나라의
소식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