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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례관련 업체 방문기 [첫째날] 출발 하루전에 짐을 꾸리면서 아주 가볍게 짐을 싸다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막상 꾸리고 보니 딸녀석 배낭으로 한가득이다. 더구나 사진기와 항상 동행하는 나에게는 사진기와 삼각대를 더하면 내 짐이 가장 불편한 짐 같다. 빌어먹을 나는 항상 그랬다. 사진을 담당하다보면 내짐만 항상 가득이다. 다른짐은 먹고마시는 짐이라 여행시간이 지나면 짐의 무게가 줄어드는데 내짐은 집에 돌아올때까지 항상 그대로다. 매번 그랬지만 사진을 안정적으로 찍자면 삼각대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놈의 삼각대가 항상 머피의 법칙에 충실하느라 준비하면 필요없고 준비하지 않으면 필요하게 만든다. 마치 장마철에 생각나는 우산처럼. 여행의 경험에 의하면 어떤 물건이 꼭 필요한 것인지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숙소에 대한 정보가 명확하지 않아 사전에 공동짐을 준비하는 “정호영“ 학우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주먹만한 등산용 버너는 확실하게 챙겼는데 이놈이 여행 내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줄이야. 버너를 챙기기로 한 나의 결정은 여행도중 십분 진가를 발휘하여 우리의 쓰린 뱃속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었다. 출발일 오전 6시 50분까지 동부터미널에 도착하기로 했는데 “최교수님”이 가장 늦게 도착하셨다. 버스는 우리일행이 전세를 낸 것 같은 분위기로 출발을 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좌석을 1/3도 채우지 못한 체 출발을 했다. 공항에는 정확히 3시간 후에 도착하여 별도로 출발한 학우들과 조우하여 인원 점검을 하고 각자 필요한 경비를 환전하니 환율이 매입기준으로 100엔당 850원이다. 나는 3기 선배인 평화원의 이종벽씨가 용돈으로 건내준 5,000엔과 내돈 5,000엔을 합하여 10,000엔을 준비했는데 귀국 후 남은 돈을 계산하니 30엔이다. 발권수속 후 탑승하여 비행기가 안정고도를 유지하자 나누어 주기 시작한 기내식을 먹었는데 그럭저럭 먹을만 한데 식사량이 큰사람에겐 좀 부족할 것 같았다. 기내에 설치된 모니터를 바라보니 비행기는 경기강원 내륙을 관통하여 강원도 동해안을 끼면서 비행한다는 정보를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귀국때는 곧바로 한반도 내륙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정확이 2시간 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니 마중 나온 관광버스가 있어 두 대에 분승하여 공식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동경시를 기준으로 국가 표준시를 삼았기 때문에 시계를 조정할 필요는 없었다. ---- 이러한 점을 한국의 일부 극우파들은 철부지 마냥 문제를 제기하는데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독단적인 표준시를 만들어서 UN등과 같은 국제기구에 통고를 했다고 가정을 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국익에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모든 데이터와 표준자료들을 모두 수정해야 하고 심지어 쏘아올린 무궁화 위성까지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데 말이다. 마치 우리의 철도는 좌측방향으로 운행을 하는데 이것이 일제 잔재물이라고 뜯어 고치기를 원하는 자들과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요꼬하마 시립 공원묘지를 방문하여 마중 나온 공무원의 안내와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곳 일본도 우리처럼 “님비” 현상이 있었을 것을 예상하여 본 필자가 질문을 하니 명쾌한 답변은 회피한 체 90년전에 세워진 공간이라 주변의 주거마을보다 먼저 형성되어 그런 마찰은 없었다고 하는 우회적인 답변을 들었다. 회피성 답변에 전직기자 출신인 필자는 다른 우회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럼 당신은 이 업무를 담당한지 몇년째이며 공무원 경력 몇 년차냐? 라고 물으니 00년 경력에 공원묘지 담당한지는 2년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3년마다 한번씩 순환보직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답은 뻔한 것인데 나머지는 판단은 상상에 맞긴다.
몇 군데 돌아본 공원묘지, 그리고 차창으로 지나가면서 볼 수 있었던 묘지들은 우리와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묘지주변을 수목으로 울창하게 단장을 하여 도심한복판에 묘지들이 있어도 거부감이나 추함이 없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볼 때 약간은 부러움도 느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무덤 옆에 거주지가 들어서 있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주거환경은 아닐 것으로 생각이 들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살다보니 그렇게 정착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나의 짐작으로 결론을 내려본다. 같은 장소에 위치한 납골시설을 견학했는데 우리의 납골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공설쪽의 납골시설은 우리의 창고를 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우리도 이러한 공설에서의 문제점을 보완 한다고 나온 것이 사설납골시설인데 결국 한국사람들은 죽어서도 “부익부 빈익빈” 이라는 사회의 괴리현상에 따라 주검을 마무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 꼴이 되었다. 작년에 일본에서 본교를 방문한 스님을 모시고 대전 유성인근의 사찰에서 운용하는 “구인사” 라는 납골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주지스님의 지론은 이렇다. “사람이 죽어서는 공평하고 평등해야 한다”.
스님은 우리나라의 국립묘지의 계급별 사용면적의 차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구인사에서는 납골당의 시설을 일정하게 규격화하여 층별 차등을 두지 않고 일정한 관리비를 받고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었다. 구인사 처럼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곳도 있다 라는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동행한 사람들 가운데는 두곳의 사설납골당 관계자들이 있어 우리의 납골문화를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본 필자는 학생이라는 신분이기에 결국에는 맨 뒤로 쳐져 있다가 통역을 통하여 그곳 공무원에게 우리의 현실을 통역케 하는 노력도[?] 불사했다. 모든 시설물을 설명하고 난 뒤 그들 공무원들은 우리의 차량이 떠나가지 전까지 우리 옆에 남아 우리의 뒷모습을 지켜봐 주었다. 일본인들의 이런 친절과 손님을 배려하는 모습은 우리가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옆에 항상 가까이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위하여 식당엘 갔는데 “샤브샤브” 식당이었다. 우리가 원했던 샤브샤브는 아니였지만 시장기가 돌아 허겁지겁 먹다보니 느끼한 생각이 들어 김치를 추가로 시킬려고 옆자리의 주문된 김치의 양을 슬쩍 훔쳐보니 기본 반찬 이외 더 주문을 하면 추가요금을 달라고 하는데 그 가격이 살인적인 가격이었다. 옆 사람이 시켜서 나온 김치의 양을 보곤 우리는 기절할 것 같아서 김치를 주문하지 못하고 느끼한 소고기 시체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일본 올때는 반듯히 김치를 싸가지고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대충 설명하자면 전골 냄비에 맹물을 넣고 끓인 후 소고기 시체를 얇게 썬 것을 데쳐서 먹는 것인데 야채는 파, 콩나물, 배추, 당면사리였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얼큰한 “영심이” 샤브샤브를 연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먹고 싶은 소주도 너무 가격이 비싸 구입해 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2홉소주 한병이 현지가격으로 350엔이니 환율 850을 곱하면 약 3000원정도. 출발 하루전에 조선일보를 읽어보니 일본동경 물가보다 서울 물가가 더 비싸다고 하던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물가지수를 잡는 기준은 “멕도널드 햄버거“의 현지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한다는데 내 머릿속에는 필이 꼿히질 않는 것은 내가 숫자 감각이 둔한 탓일까? 그래도 우리민족은 먹고 살겠다는 의지가 강한 민족이며 또한 우리의 학우들도 먹겠다는 의지가 있어 귀국할 때까지도 우리일행은 소주가 “앵꼬” 당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옆방에서 슬쩍 하더라도 우리는 소주를 굶어서는 않된다는 공통적인 사고와 마인드는 함께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거닐다보면 자판기 곳곳에 한글로 이렇게 써놓은 것을 보면 일본을 지배하려는 한국인의 의지가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내용인 즉 “ 감시카메라 작동 중 ” 나는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이렇게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야이 개자식들아 독도에는 감시카메라가 없어서 그렇냐?” 라고. 하지만 이런 소리를 나는 속으로만 아주 크게 말했다. 이젠 숙소를 대략 스케치 해보자면. [사진 참고] 한국교포가 운영하는 3층건물인데 짐작대로 소규모를 지향하는 일본속의 한국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 실체속에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일본문화의 아주 미약한 일부분을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지하층의 샤워실에는 남녀가 함께 통과하는 문을 지나서 빨간색, 파란색을 구분하는 커텐을 걷어내면 곧 바로 샤워실이다. 차라리 남녀 공용으로 사용하게 만들면 한국인이 자주 찾을 수 있는 명물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리적 요구를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차후에 요구해 보기로 하겠다. “야~~~ 한국사람이 한다는데 않되는게 어데있냐? ”
일층 복도에는 컴이 5대가 있고 구동 엔진은 MS 이며 속도역시 “짱” 이었다. 옆에 있는 국제 전화는 공짜폰인지라 마누라와 통화하는 데에는 별도의 비용이 들어가지 않았다. 203호 우리방에 모두 모여 소주를 까는 행사를 치렀는데 맨 처음에는 안주의 문제점을 몰랐는데 어느 정도 술이 취하고 나니 얼큰한 국물 생각이 나서 곧바로 즉석 잡탕을 만들어 먹는 행사도 간단히 진행했다. 물론 본 필자가 준비한 버너가 충실한 역할을 감당했는데 이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멀리 나갈때에는 등산용 가스너버를 반듯이 소지품목에 추가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버너는 “삼겹살용 부르스타”를 지칭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즉석찌개 제조에 들어간 내용물을 설명하자면 먹다가 남은 라면국물, 김치, 고추장, 즉석카레 한봉, 짱아치, 참치 등인데 맛은 그만이다. 단 격식에 맞지 않은 잡다한 것들이 들어가서 “개밥” 같은 분위기였지만 이런 것이 여행의 별미가 아니런가? 술에 만취한 우리 일행은 각자의 방에서 곤한 잠을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살펴보니 모두가 동물적인 감각과 자세로 잠을 자고 있었다. 물론 필자가 이러한 동물적인 자세를 사진에 담지 않는 다는 것은 우리 일행을 무시하는 것 같아 사진에 담아서 올린다.
둘째날 아침에 기상하자 모두가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 샤워실에 들어가니 두분의 교수님들이 샤워를 하시고 있어서 누드의 뒷모습만 감상을 했다. 역시 누드는 보일 듯 말 듯 하는 감질나는 모습이 압권인지라.....[이하생략] 아침은 대략 라면과 잡탕찌개로 해결하고 주변공원을 산책했는데 일본에도 노숙자는 존재하고 있었으며 아침에 출근하는 모습은 우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숙소를 출발하여 요꼬하마 장례박물관에 도착. 입장 후 전시 내용물을 살펴보면 상술과 시설면에서는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고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유족들이나 조문객을 배려하는 부분에서는 우리와 비교할 때 우리도 배울 것은 인정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가 가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독도문제와 역사문제에 대한 감정을 버리고 바라보면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겠고[이해란 말이 더 쉽겠다] 그 감정을 가슴에 품고 바라보니 얕잡아 보이기도 하고. 여행내내 이 두가지 감정이 내 가슴속에서 줄다리기를 했다. 일본이 이렇게 까지 세분화, 상업화가 되기까지는 많은 환경적, 문화적인 마찰과 시행착오가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는데 문화의 발전이 문명을 이끌때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문명이 문화를 선도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명과 과학을 바탕으로 문화가 진화한다면 IT분야에서 많은 소스를 가지고 장례부분으로 접근하여 많은 진화를 거듭할 것 같은 생각을 해 본다. 그렇지만 이런 진화가 이익을 위한 업자들의 단합과 정보차단, 카르텔 등을 형성한다면 아래에 기술한 것처럼 [납골시설]] 국민적, 사회적 합의가 아닌 일방적인 방향으로 흐를 것 같아 걱정도 된다.
작년에 경기도의 유명한 납골시설을 견학적이 있었다. 죽어서도 평등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장례현실과 돈만을 생각하는 업자들의 영업능력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는데 가로*세로 1미터의 납골시설의 사용료를 수천만원씩 받아서 챙긴다는 현실에 국가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들의 폭리에 대한 세금과 사회적인 괴리현상은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무도 관심없는 장례현실과 문화. 관심이 있다고 해봐야 학계, 업계, 그리고 일부 특정 신문사들인데 이런 한정된 집단의 한정된 시선으로 한나라의 장례문화와 정책을 이끈다는 것은 정말로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문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과 각 기자들로부터 송고된 기사를 처리하는 데스크에서는 [편집부] 입맛대로 기사를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장례관련 신문[Paper]은 몇군데 되지 않고 이들마저도 경영난으로 통폐합을 한다면 우리의 장례정책과 정보는 왜곡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각 언론사는 영업이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그 목적을 당성하려면 광고와 독자구독료일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본다면 독자는 한계성를 나타나고 있어 독자라고 해보아야 관련 업체들이기에 결국에는 광고수입 또는 기획보도수입인데...... 마지막에는 돈 많은 업자들을 위한 “나팔수”로 전락해 버릴 것 같은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든다. 너무도 불길한 예감이다. 분명히 가진자를 위한 “나팔수”로 전락할 것이다. 이들 나팔수는 일본에서 상륙한 변형적이고 기형적인 “상조사“를 위하여 나팔수 노릇을 톡톡히 할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우리나라의 지난 정책을 생각해 본다면 개인 납골묘지를 지원한다고 정책을 편 결과가 지금은 야산 곳곳에 너절하게 방치된 돌덩어리 문화인데 처리할 수 없는 아주 고약한 환경문제로 남게 되어 후손들에게 또 다른 숙제를 남겨 주게 되었다. 이러한 졸속 행정을 시행한 공무원들의 탁상행정도 문제이며 “아전인수“격으로 공무원에게 자기들만 유리한 정보를 제공해준 악덕업자들도 후세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둘째날에는 요꼬하마 장례박람회장를 방문하였다. 여러 가지의 장식품과 용품, 아울러 주변의 잡다한 볼거리는 엄청 나게 많았는데 일본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어리둥절했는데 각자의 눈높이를 가름한 정보수집은 각자가 알아서 판단했으리라 믿는다. 본 필자는 음악에 대한 씨디를 두장 구입해서 들어보았는데 한 장은 클레식을 편곡한 것이고 한 장은 일본작가가 창작을 한 것인데 음악 내용이 웃긴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확신과 단언을 한다면 씨디를 제작한 업체, 또는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표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표절이라는 기준을 말할 때 표절부분에서 몇%의 겹치는 것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상당부분의 배경음악이 씨디에 있었고 한국기독교에서 가스펠송[복음성가곡]에 자주 듣는 멜로디가 있어 이 부분은 나의 딸과 함께 들으면서 확인을 했다.
도쿄 센다이 학교를 방문하였는데 우리를 맞이하는 몇몇의 얼굴은 한국 모교방문때 안면이 있는터라 서로 반가이 수인사를 나누었다. 우리가 일본에 가서 삼가 조심일 것 중에 하나가지는 그들 중 대다수는 한국말을 알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혀가 돌아가지 않는 일본말로 아는 척을 하는데 그들 앞에서 그런 아주 짧은 일본언어의 실력을 꼭 보여야만 하는가 하는 자존심을 생각해 본다. 우리를 접대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우리의 언어를 대충 알아듣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그런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모습들이 그들의 수구적인 매력이고 민족적인 자존심 같아 보였다. 세계에서 우뚝서려는 민족임을 짐작케 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우리는 일본을 영원히 이길수 없는 민족이 아닌가 하는 속단을 해본다.
결혼식과 장례를 함께 다룬다는 것이 일본 상조회의 특성이라고 한다면 그런 문화를 그대로 접목시킨 우리의 최근 상조회는 많은 법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를 안고 간다는 사실을 확인 했다. 우리의 각종 법률과 법령이 일본을 따라가고 있지만 장례에서조차도 일본의 영업전략과 수단을 법적인 장치 또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없이 벤치마케팅한다는 것은 앞으로 많은 분쟁을 법적인 차원에서 시비를 가려야 하는 현실이 조만간 닥칠 것으로 짐작이 된다. [상조회에 많은 대기업 보험사들이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다, 약관이나 글자의 크기 등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대형 보험회사들은 법적인 법망은 모두 피해가고 있고 책임은 상조회사에서 떠안게 되어있음] 순다이 학교에는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들 대다수는 한국말을 알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한국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일본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한 뷰페식 음식을 먹으면서 약 1시간의 환담이 있었다. 우리를 배려한다는 생각에 한국교포 또는 유학생을 5명 합석시켜 간단한 통역과 언어소통은 가능했는데 정작 장례, 장묘, 죽음, 이라는 뉘앙스를 서로가 통역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순다이 학교를 방문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원래 계획에는 우리학교학생들만 방문 계획이었는데 동부산대 학생들의 무임승차로 인하여 당초계획이 빛을 잃었다는 점이다. 학생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사장단 모임“ 같은 연령대였고 경상도 특유의 거친 태도에 나와 몇차례 싸움도 할 뻔 했는데 경상도? 정말 시끄럽더라. 식사도중 본 필자는 30대 초반의 아사히 신문기자와 30여분간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내용은 나이, 학과를 지망한 동기, 진학 전 직업, 가족관계, 일본 순다이 학교를 방문하고 느낀 소감, 등이었다. 우리가 넓은 홀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을 때 도중에 일본학교측에서 교수님들을 별도의 방으로 [7층] 모셨는데 그곳에서 환담을 나누시느라 저녁을 쫄쫄히 굶으셨다고 한다. 국제적적인 예절이 필요한 환담에는 어른보다 아래것들이 더 편한 것 같다. 먹고 마실 때 눈치볼 것 없고 넥타이 멜일 없고 양복 입을 일 없어 격식이 필요없으니.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서 우리가 급히 끓인 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하셨다. 우리 학생들은 배터지도록 잘 먹었는데....
삼일째날 동경 우에노 소재의 장송공간을 방문했는데 도심 한복판에 그런 시설이 있다는 것이 놀라왔다. 우리의 경우라면 집값이 하락한다고 주변에서 난리 부르스, 탱고를 출 텐데 역시 일본이 선진국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엠바밍을 하는 시설도 함께 들러 보았는데 이미 학교에서 듣고 배워온 터라 실감이 나기보다는 일본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지만 시간차이로 인하여 자세한 질문은 하지 못했다. 디카로 담아온 자료는 담당 교수님에게 교육자료로 활용하시라고 전량 전해 드릴 것을 약속한다. 궁금한 학생들은 직접 일본에 가서 보시라. 함께 동행한 부산의 동부산대학 일행중에 한명이 “엠바밍“ 시설물을 보면서 아는척을 하며 같은 일행들에게 설명을 하며 잘난척을 했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우리학교 2학년생이면 누구나 아는 척을 할 수 있는데.... 다음에는 사꾸라 수목장을 견학했다. 안내하는 사람은 수목장 대표인데 좌측 손가락 4개가 절단이 된 상태였다. 본 필자가 그 사람에게 내손을 보이면서 나는 엄지 손가락이 없으니 당신 엄지를 나에게 달라고 했더니 박장대소 하면서 절대로 않된다고 하면서 도망간다. 자기는 윈치에 손이 감겨서 절단되었다고 하면서 나는 어떻게 다쳤냐고 묻기에 선반에 다쳤다고 하니 서로 다친 손을 마주 잡고 걸었다. 이들의 수목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목장과는 전혀 거리 먼 잔디밭의 평장 개념으로 본다면 맞는 표현 일 것 같다. 좁은 공간에서 살다 보니 잔디밭을 가꾸어 팔아먹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나의 좁은 편견일까?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한국영천에 있는 은혜사 라는 사찰을 방문하여 그곳의 시설과 환경을 보고 제2의 수목장을 만들려고[확장공사] 계획 중이라고 한다. 브리핑을 마치고 통역을 불러서 “ 한국에서도 아직 수목장에 대한 정책결정이 수립되지 않았고 영천 은혜사 역시 한국에서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라는 말을 하려했는데 동행한 동부산대학의 일행이 중간에 끼어들어 다른 통역을 부탁하기에 화를 내며 약간의 고성이 오갔었다.--그사람 여행내내 큰소리치고 떠들더니 그 시간 이후로 내가 잠재웠다. 같이 동행하신 장만석 교수님에게도 큰소리로 대들었다고하여 내가 별르고 있었던 참이다. 나는 일행들 앞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다. “ 야~~짜식아, 장만석 교수님도 우리학교 강의 나오시는 교수님인데 짜식이~~~” 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도 수목장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확실한 정책결정이 없는바 업자들이나 신문사 또는 학계 등에서 너무 서둘러 앞질러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서울에서 유명세를 타는 교수 몇몇이 언론 플레이를 하여 언론과 밀착하여 엉뚱한 방향을 제시한다면 납골당 석물처럼 이상한 꼬라지로 간다면......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수목장이 갑자기 부각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수목장만이 장법의 대안인가? 하는 의심에는 언론과 몇몇 교수들의 속내를 의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른 한쪽에 조성되어 있는 애완동물시설도 대충 들러 보았는데 본 필자는 이번 방문에서 이부분에 가장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우리는 애완견이 죽으면 땅에 묻어 버리거나 아니면 두루치기 또는 탕으로 끓여서 그들의 흔적을 주인의 몸속에 고이 간직하려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는데 일본에는 그런 아름다운 풍습이 없는가 보다. 얼마나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풍습이란 말인가?
한국에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려는 아주 특별나고 유별난 종교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다름 아닌 한국기독교인데 성경에 기록된 문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동물에게 영혼의 가치와 사후 다른 세계를 말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인데 일본처럼 동물을 위한 시설과 문화는 기독교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이 되는 부분이다. 물질문명이 발달된 나라일수록 동물을 가족으로 취급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이런 풍습은 인간적인 배려보다는 주인을 따르고 순종하는 동물을 좋아하는 인간들의 감정 돌파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데 죽어버린 동물에게까지 애도를 표하고 분향하고 기념하는 것은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나에겐 힘든 부분이었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것들을 소각하고 폐기하는데 소요되는 시설에 대한 경비와 시간을 사회에서 떠 안아야 하는지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소규모를 지향하는 일본의 문화. 그러나 대규모와 시끌시끌한 접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와의 차이점. 유족을 위한 것인지, 망자를 위한 것인지, 조문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심한 표현하자면 장례식장 업자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장례문화. 일본을 본뜨지 말고 다듬어서 우리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람이 한다는데 않되는게 어데있니?”
일본사람이 우리나라를 방문한다면 우리는 가장 좋은 면만을 보여주려 할 것이다. 마찮가지로 일본도 우리에게 그런식으로 보여 주었을 것이다. 이번 방문의 좀 아쉬운 점이라면 일반 서민이나 대중들이 쉽게 이용하고 있는 시설을 많이 보지 못한 점이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학교의 단독계획에 의하여 독단적으로 다시 방문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 장례관련업. 지난날의 석물[납골묘]로 인하여 강산이 오염된 것처럼 졸속행정이나 속전속결로 해결하려는 분위기를 버리고 몇번이고 검토하고 토론하여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옷감을 짜려면 날줄과 씨줄이 서로 엇갈리게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의 장례현실에서도 옷감처럼 날줄, 씨줄이 어우러져 함께 갔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출발 하루 전에 짐을 꾸리면서 통보받은 나의 신상 문제 때문에 아주 불쾌하게 여행을 준비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속에 운명인지 팔자인지 알지 못할 상황을 애써 외면하면서 출발을 했다. 속상해 할 아내에게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못한 체...... 물론 많은 사진을 찍어왔다. 일부는 나의 기록사진이기도 하고 대다수는 자료사진에 치중을 했는데 일행들과의 약속이 있어 모두 공개 하지 못하고 여행후기에 필요한 사진 몇 컷만을 올리게 됨을 용서하시길 바란다. 물론 이글을 읽는 학우들도 궁금하시면 다음기회에 직접 가서 듣고 보시라. 남들이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여 체감한 정보를 무리하게 요구하는 누를 피차에 범하지 않길 이글을 통하여 당부한다. 그런 연고로 이곳에 올릴 수 있는 사진도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실토한다.
우리일행 모두 10명이 출발을 했다. 같은 문물을 보고 왔지만 감상의 각도와 시선의 차이는 각자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년 전에 선조왕은 신하들의 간청에 두명의 사신을 일본에 파견한다. 이유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 같다는 소문인데 그 소문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신은 두 가지의 의견을 말한다. 한사람: 일본에 갔더니 사람들도 키가 작고 먹고사는 것도 우리와 달리 궁핌함이 묻어 나 오고 “풍신수길”이라는 적장을 만났는데 키도 작은 것이 도저히 조선을 넘볼 위인이 되지 못한다.“ 다른 한사람: 적장 “풍신수길”을 만나보았더니 키는 작아도 눈에서 호랑이 같은 광체가 나는 것이 꼭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은 야심에 찬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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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각기 호랑이와 원숭이를 숭배하는 나라, 나홀로 강인함을 자랑하는 깃발을 앞세우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왜넘들, 죽음이라는게 떠나가는 문화인 우리와 돌아오는 문화로 인식되는 일본넘들, 책임지지 않으려는(떠나는) 한국과 책임지려는(돌아오는)여러가지 단상이 있는 나라를 다녀오셨네여... 보다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한 가깝지만 먼 나라넘들입니다. 일본넘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