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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책읽기모임에서 읽었던 장일순선생님에 관한 또 다른 책 '좁쌀 한 알'을 읽고
오솔풀과 히어리가 느낌글을 썼던 내용을 올려 봅니다. 인동초님은 '꿈꾸는 나비' 여행책을
받고 후기를 써 주셨으며, 어흥이 모임 후기를 썼네요. 다시 읽어 보아도 좋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 인동초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는 어디에서 부터 시작이 되는 것 일까?
무위당 장일순의 일화를 보며 내내 생각 한것은 '하느님의 나라'였다.
무위당이 들려주는 생명사상 이야기는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재야의 큰 별이며 사회 운동가로서 교육자로서 고난과
역경의 한 시대의 길을 걸어갔던 무위당은 이 시대의 대안은 한울 섬김과 사람의 모심
이라 얘기한다. 무위당은 밑으로 기어 가자고한다.
아주머니 아저씨를 만나고 길가의 좌판장수를 만나고 체소장수,식당주인,노동자,농민
어민들을 만난다.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울을 공경하고 사람을 섬김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자고 한다.아름다운 '코이노니아' 이다.
나는 미쳐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달이 나이고 해가 나 이거늘 그대는 분명
나일세.-
나가 너이고 너가 나 라는 우리는 하나라는 일치! 곧 화평이다.달이 나이고 해가 나인 한울과
사람과의 일치! 온전한 관계이다.
이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워 지는것은 서로가 다름으로 나눠짐에 있는것이 아니라 온전한
관계에서 이루워 진다는 것을 무위당은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시대가 추구하는 바알의 한 복판엔 하느님의 나라가 없다.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고 물길이
막히고,수많은 시체들이 떠올라 잔인한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 새만금 갯벌에도 하느님의
나라는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비루의 초상은 솔로몬 성전에서 그윽한 향으로 눈물을 흘린다.
참, 어지러운 세상이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람으로 부터 시작 되었으니 진정한 회복의 길은 사람에서 부터 찾아야 되지
않을까!. 하잘것 없는 좁살 한알이 세상을 가르치고있다....
2. 직장인 장일순 - 히어리
‘좁쌀 한알’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 사회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무위당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가이다. 바로 당신이 무위당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아니, 무위당이 지금의 당신과 같은 환경 속에서도 무위당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이다.
나는 한 마디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무위당이 물려받은 재산도 별로 없고 특별한 재주도 없고 교육도 특별히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모두 당장 끼니를 굶어야 할 처지라면 무위당이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특별한 재주도, 물려받은 재산도, 지식도, 인맥도 없는 무위당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결국 평범한 직장을 구해야 한다. 그가 속한 집단의 이익이 다른 집단의 손해에 의한 것이고, 다른 집단의 이익이 그가 속한 집단의 손해를 의미하는 경제 활동 속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는 무위당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인의 생활이란 모든 게 분리되어 있어서 어느 한 부분이 모든 부분을 의미하는 농경생활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가족과 이웃과 농사 등 모든 관계 분리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농사일이 가족의 일이며 이웃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다. 가족, 이웃(취미 모임 등), 일이 분리되어 있어서 일에 열중하면 가족에 소홀해지고 가족에 열중하면 이웃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도 물론 자신을 낮출 수는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나 어린이 앞에서도 당장 땅바닥에 엎드려 절할 수 있고, 오지랖 넓게 여기 저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일까. 며칠을 집을 직장을 비우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알아보러 다닐 수 있을까? 누군가 자신을 찔렀을 때 칼을 닦아주며, 찌르느냐고 수고 많았다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아니 가족을 위해서라도 찔리기 전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찔린 후에도 살아나려고 발버둥 쳐야 하지 않을까.
직장인 장일순이라면 이 시대에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갔을까. 나는 직장인 장일순이 무척 궁금하다. 내가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가 궁금하다. 분명 무위당은 존경받아 마땅한 이 시대의 선생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벽을 느낀다. 평범한 집안과 평범한 능력을 갖고 이 시대의 훌륭한 인격체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미 무위당이 보여준 것을 무지한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완전해 보이는 인격만이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진정한 개혁은 실천에서부터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분리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서로 모순되는 모든 것을 실천할 수 없다. 불완전한 실천으로 우리는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무위당의 반만이라도 닮으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우리는 모순된 현실을 개혁할 수 있지 않을까? 실천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완전한 하나의 실천이 아니라 불완전한 실천들이 모여 완전한 개혁을 이루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인격은 실천이며, 불완전한 것들로 이루어진 완전함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3. <좁쌀 한알> - 오솔풀
전 장일순이 살았던 삶을 모릅니다. 그의 생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치열하고 진실되게 살다가 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 : 너나 나나 거지다. 거지가 뭔가?
최 : 거리에 깡통을 놓고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여 먹고사는 사람들이지요.
장 : 그렇지. 그런데 자네는 제제소라는 깡통을 놓고 앉아 있는 거지라네. 거지는 행인이 있
어 먹고 살고, 자네는 물건을 사가는 손님이 있어 먹고 사네. 서로 겉모양만 다를 뿐
속은 다를게 없지 않은가? (p.44)
거지라야 사람들에게 줄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돈, 옷, 음식을 남에게 주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 주는 것, 그리고 그 주는 것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만이 진실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나 부처, 장일순도 모두 거지여서 지금도 우리가 무언가를 받고 있는게 아닐까요.
기자 : 선생님은 어째서 ‘조 한 알’이라는 그런 가벼운 호를 쓰십니까?
장 :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어. 그럴 때 내 마음 지그
시 눌러주는 화두 같은 거야. 세상에서 제일 하잘것없는 게 좁쌀 아닌가. ‘내가 조한
알이다.’ 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르는 거지. (p.101-2)
정 : 선생님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닦습니까?
장 : 주로 혼자서 걸어요.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돌아올
때는 대개 강가로 난 방축 길을 걸어서 돌아와요. 방축길을 걸으며 ‘오늘 또 내가 허튼
소리를 많이 했구나.’ 하고 반성도 하고, ‘이 못난 사람을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구나.’ 하고 감사도 하고 그럽니다. 또 길가로 풀이 나서 자라는 걸 보는데, 그
풀들이 절 일깨우지요. 풀은 땅에 뿌리를 박고 밤낮으로 해와 달을 의연히 맞고 있단 말
이야.
난 거기에 못 미치지요. 부끄럽지요. 이렇게 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마음을 씻
는 거지요. (p.226-7)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부끄러워 하는 척 하는 사람은 나를 비롯해서 많은 것 같지만 진실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장일순은 자신이 허튼소리 하는 것을 알고 있고, 풀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가벗고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부끄러움이 자신을 자꾸 자꾸 돌아보게 만들고, 깊어지게 하고, 진실로 가벼워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무거운 척 하는 사람들은 위선이며, 사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제도니 윤리니 이런 위선들에 얽매이지 않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게 가벼워지는 것 아닐까요.
장 : (따듯한 어조로) 너 떨거지지?
한살림 운동은 자네 같은 떨거지가 하는 거야. 잘난 사람, 일등만 하던 사람은 못해.
아파 본 사람만이 할 수 있지. (p.163)
아파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진실되게, 치사하지 않게, 거짓말하지 않고 사는 것 아닐까요?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위선들과 싸우는 것 아닐까요? 내가 그 위선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장일순의 이 말은 특히 저 같은, 여러분 같은 떨거지들(물론 따뜻한 어조입니다) 을 향한 다독거림 같네요.
초겨울 저녁, 술 한잔씩 하고서 김영주와 함께걷던 장일순은 군고구마를 파는 포장마차를 바라본다.
김 : 군고구마 자시겠어요?
장 : 아니, 그게 아니고...
저기 군고구마라고 쓰인 글을 보게. 초롱불에 비추게 쓰여진 저 글씨를 보게. 저 글씨
를 보면 고구마가 머리에 떠오르고, 손에는 따신 고구마를 쥐고 싶어지고, 가슴에는 따
뜻한 사람의 정감이 느껴지지 않나. 내가 장난 친 글(당신의 작품. 항상 이렇게 표현하
셨습니다)을 보고서도 무엇인가 연상되고 따뜻함이 가슴에 와닿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거든. 결국 저 글씨는 어설프게 보이지만 저게 진짜고 내가 쓴 것은 죽어 있는 글씨
야. 즉 가짜란 말이야. 그러니까 내 글씨는 장난친 것밖에 안된다는 게야. (p.286-7)
진실을 볼 수 있는 눈. 글씨, 그림, 시, 사진, 영화 같은 예술뿐 아니라 우리 삶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예술이지만)에서 그런 눈을 가질 수 있기를 저는 간절히 소망했었습니다. 장일순의 이 말은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절실히 와 닿았고, ‘멋진 사람이구나...’ 라는 말이 나오도록 만든 구절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모임을 이끌지 생각을 나누는 자리에서
아무개 : 나날의 삶 속에서 깨우친 것을 모여 나누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무개 : 남의 얘기라도 듣고 감동한 것은 전하기로 하자. 그런 얘기는 자기 모습을 비춰보
게 하고 또 희망을 주지 않느냐 ?
아무개 : 지금 우리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도 얘기 했으면 좋겠다. 지역 사회나 나라
에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느냐?
장 : 그런 것들과 아울러 넘어진 얘기를 하기로 하자고. 부끄러운 얘기를 하자는 거
야 실수하고, 또 욕심 부린 얘기. 그래서 감추고 싶은 얘기를 하자는 거야. 고백
을 하며 가자는 거야. (p.144)
4. 어흥의 후기
청산별곡님과 히솝님을 다른 모임에서 몇 번 뵈서 그런지 첫 모임 참여가 낯설지 않았어요.
그날 오신 은종복, 오솔길, 조화로운 풀, 청산별곡, 조상우, 바위단풍, 살구풀 님 모두 반가웠습니다^^
(제가 바르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안그래도 책읽기 모임에 꼭 한 번 참여하고 싶었는데
이번 주제가 장일순 선생님의 '좁쌀 한 알'이라 정말 반가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일순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된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무척 큰 감동을 받고있던 차 였거든요
발제를 맡으신 조상우님, 오솔길님 두분의 글과 은종복님의 자발적인 글로 시작한 모임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상우님의 '직장인 장일순'이란 글에서 실제로 적지않은 재산과 훌륭한 집안환경에서 자란 장일순 선생
이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도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란 의문은 선생에 대해 알게되면 처음에 누구나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생각에는 장일순 선생에 대한 감동적인 일화는 훌륭한 부모님과 스승을 둔 가정환경의 영향이 있
었겠지만 선생이 살림이 넉넉해서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것 같아요. 대부분의 일화가 선생의 자신
을 낮추는 마음됨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 대한 것이듯 말이죠. 어쨌든 훌륭한 가정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던 선생이 부럽기는 하지요^^;
상우님의 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장일순 선생처럼 탁월한 인격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한 명, 한 명의 불완전한 존재가 모여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이었어요.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완전한 인간이 되기위해 힘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연대하고 협동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솔길님의 발제도 재미있었는데요. 특히 발췌한 책 내용을 그날 온 사람들과 연극하듯 읽어보는 것
참신했어요^^ 별안간 제가 장일순 선생님이 되기도 해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장일순 선생이라면 어떤
억양으로 말을 했을까에 많은 고민이 일어나던데요? 선생은 비폭력대화의 달인이셨으니 말이죠. ㅎ
제일 마지막에 인용한 대화 중에서 장일순 선생이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좋은 모임을 만들기 위해 나의 부끄러운 부분, 숨기고픈 부분도 이야기 하자 "
이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비폭력대화를 읽어도 장일순 선생님의 다른 책을 보아도 정말이지 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마음 방향에 서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우리 모두 행복하기 위해, 참으로 소중한 존재로서 타인이기에 존중하고 나를 낮추는 것일 텐데
생활 속에 나는 왜 그것을 자꾸만 잊어버릴까요? ㅜ.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제가 생각치 못했던 것 중에 바위단풍님이 지적하신
사회적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바위단풍님의 고민은 아마도 '좁쌀 한 알'이 장일순 선생에 대한 일화를 엮은 책이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먼저 읽고 보았는데 그 때는 선생이 한 이야기와 행동이 앞뒤가
맞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좁쌀 한 알'에서는 장일순 선생이 너무 '위인'처럼 그려진 면이 없지
않아서 말이죠..
장일순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완벽한 인격을 가진 개인'에 대한 것으로만 합의되버리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이었던가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윤리로서 논의 되어야 할 부분도 개인에게 모두 책임
지워진다는... 뭐 그런 뜻으로 이해했던 것 같은데요.
저는 이 이야기가 나올때 조금은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환경운동에서도 그런 현상을 경험할 때가 있다는 것 말이죠.
채식을 예로들면, 동물을 소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비도덕적인 사육시스템과 과잉생산되는
가축들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 우리의 몸과 땅을 방치는 가공식품 등에 반대해서
채식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죠.
주변사람에게 채식한다는 것을 알리면 마치 '도 닦는 사람'이나 환경운동하는 사람은 그런 '다더라'는
식의 반응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채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인 원인에 대한 논의는 빠져버리고
그 문제를 개인의 취향이나 보통 사람은 '감히' 따라하기 힘든 괴짜들의 행동 등으로 이야기 되곤 하죠.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유를 함께 공유하고
가야 채식이란 형태의 환경운동도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것이 전해질 듯..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문제죠@@(아 끝없는 고민~)
장일순 선생의 일화도 선생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위대한 인격'과 '장일순의 일화'가 좀더 매끄럽게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습니다.
다음 책 '무탄트 메시지' 에 대해서도 좋은 이야기들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5월에 뵈어요~~
첫댓글 나중에 꼭 읽어야지. 어흥 보고 싶다. 어떻게 지내는지.
이제 읽었네요. 어흥, 부산으로 내려갔다는 말 들었어요. 다시 볼 날이 있을까. 그런 바람이 불까.
풀벌레님 안녕하삼. 간만에 카페 들어왔다 반가운 책을 다시 보내요. 벌써 2년 전이라니 놀라워요. 제 글도 있고.. 2년 전 모임이 생각나네요. 생명의 전화에서 모임공간을 빌려줬지요? ^^ 어떻게 지내시나요? 저는 제 꿈 중에 하나였던 서울 탈출을 달성하고 부산에서 잘 살고 있답니다. 책읽기 모임 여러분들 보고 싶네요. 혹시 저번처럼 부산에 내려오시게 되면 저도 꼭 합류하겠습니다. 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