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전망대와 태화루
2026 2. 1.
용금소(龍금沼)의 유래
용금소의 옛 이름은 용연(龍淵)으로 신라시대 고승 자장법사가 중국 태화지(太和地)에서 만난 용의 복을 빌고 신라의 번영을 기원한 곳이어서 그렇게 불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태화사의 용(龍)들을 위한 안식처로 여겨졌고 강물의 깊이는 명주실 한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깊이가 깊고 백양사(白楊寺)의 우물과도 연결된 굴이 있다는 신비를 간작한 곳으로 가뭄이들면 용금소 앞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도 합니다. 이처럼 태화강 용금소는 울산의 역사와 전설이 함께 숨 쉬는 의미있는 공간입니다.
태화루(太和樓)
태화루는 고려 성종(成宗)이 울산에 행차했을 때 이곳에서 잔치를 열었을 정도로 유명한 누각이었다. 태화루의 기원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이 창건한 태화사(太和寺)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태화루는 조선시대에 두 번 고쳐지었는데, 그 때마다 당대 최고 학자였던 권근(權近)과 서거정(徐居正)이 기문(記文)을 썼을 정도로 명성이 있었다. 서거정은 “경치가 내가 전에 보았던 누대(樓臺)들과 엇비슷한데 앞이 멀리까지 넓게 트인 것은 이 곳 태화루가 오히려 더 좋다.”라고 했다.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고려시대부터 “울주팔경”중 하나였으며 정포. 양희지. 김종직. 김시습. 김안국 등 우명한 관리와 학자들이 태화루에 대한 시(時)를 남겼다. 울산을 대표하던 태화루는 주로 공무(公務)를 처리하거나 경치를 감상하는 장소 등으로 활용되었으나, 임진왜란 전.후에 없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태화루는 울산 시민의 염원을 새로 건립되었다. 지역 기업인 S-OIL(주)가 건립비를 지원했으며, 2014년 4월 공사를 마쳤다. 태화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참조하여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주심포 팔작지붕으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