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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춘심이
두엄을 지고 밭으로 가는 길이었다. 하얀 벚꽃 잎이 함박눈처럼 내렸다. 머리위에서 하늘이 우는 것처럼 웅-웅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작은 벌들이 모여서 그렇게 무서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 신통했다.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벚나무 아래에 쉬면서 남산을 바라보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구린 냄새가 날리는 두엄을 내면서도 오지랖 넓게 화가들이 걱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붉은 동백과 고운 진달래가 가슴을 흔들어 놓더니 이제는 화사한 벚꽃이 혼을 쏘옥 빼 놓은 마당에, 감나무, 두릅나무, 상수리나무, 작은 싸리나무의 보드랍고 연한 싹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어제의 색상이 아니었다.
‘저걸 어떻게 그릴까? 하루에 그림을 마치지 않으면?’
불현듯이 일본 나고야에서 도공으로 일하셨다는 아버지의 그림이 보고 싶었다. 흰 눈이 펑펑 날리는 겨울이면 꼬던 새끼 다발을 밀쳐놓고 나의 크레파스로 앞산을 그리셨다. 부 욱 찢은 시멘트 포장지 위에 투박한 손이 움직이면 설산은 조금씩 초가삼간 작은 봉창을 넘어 대나무 배석자리가 깔린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답을 주실 텐데….’
뻐꾹~뻐꾹 뻐꾸기가 머리 위로 넘어가면서 상념을 깨웠다. 집 지을 생각은 않고 빈둥빈둥 종일 울고 다음날 또 울어 제킨다. 남산에서 울던 놈이 물렸는지 샛강을 건너 서당 골로 넘어간다. 뱁새처럼 작은 새집에 탁란 하는 싸가지 없는 것 치고는 목청도 좋다. 일부러 조실부모 자식을 만들면서도 기운차게도 운다. 누천년 흐르는 세월 속에 미천하기는 너나 나나 다를 리 없을 텐데 별 걱정 다 한다는 듯이 나의 머리 위를 오가며 종일 울어 댄다.
처음 져보는 지게질에 지친 나는 화려한 봄도 걱정이고, 이산 저 산 넘나들며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도 귀에 거슬렸다. 마을 회관 앞 아름 들이 벚나무들 하얀 꽃들이 윙윙 울고 있었다. 고개를 들었더니 꿀을 찾아 떼로 몰려온 벌들이 내는 소리였다. 벚꽃 잎이 눈처럼 날리는 회관 마당에 춘심이가 앉아있다. 나는 두엄을 진체로 춘심이에게 다가갔다.
“춘심아! 너 오랜만이구나. 우리가 이웃에 사는 것 맞냐? 그리고 몸은 괜찮은 갚다 이. 멀리 회관까지 마실 나온 것 보니께” 모처럼 만난 춘심이에게 두서없이 뻐꾸기처럼 울어댔다.
“응, 오빠 오늘은 좀 괜찮은 것 같아서…."춘심이의 목소리는 가늘고 힘이 없었다.
“그래! 빨리 나아서 뛰어 댕기 거라 이. 벌써 일 년이냐? 네가 집에 누워만 있었던 거시”
“오빠! 나도 옛날처럼 물고기 잡으러 갔으면 좋겠어. 빨갛게 익은 새우가 제일 맛있었고, 개구리 뒷다리는 좀 징그러워서 그랬지만, 콜록~ 또 콩 서리 보리서리, 참! 좀 있으면 보리는 익을 테지만…. 내가 그것들을 다시 먹을 수 있을는지. 콜록~콜록” ‘아니! 춘심이 저것이 오래 누워 있더니 소설가가 다 되어 뿌렸어야.’
“너 기침을 많이 하는구나. 감기 조심해라 이, 그라고 너는 얼른 낫기만 해. 그러면 이번에는 내가 이 딴만 한 붕어도 잡아 줄께” 양손으로 고기 크기를 늘리는 바람에 들고 있던 작대기가 땅에 툭 떨어져 버렸다. 허둥대는 나를 보고 춘심이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뒷집 춘심 이는 남의 집 아이를 봐주러 간다고 고향을 떠난 뒤 병이 들어서 돌아 왔다. 서 네 해 쯤 못 본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옛날 보다 크지도 않고, 이제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땅을 보며 말을 했다. 왠지 알 수 없지만 두엄을 진 내 그림자가 행여 춘심이 몸 위로 겹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얼른 옆으로 한발 비켜섰다. 어른들 흉내를 내려고 내외하는 것도 아닐 텐데 둘 사이는 큰 누나 결혼식 때 신랑 각시 사이에 잘 차려진 음식상 정도의 간격이 있었다.
“오빠 정말 그렇게 큰 걸 잡을 수 있겠어? 참! 그리고 오빠 은제 서울 가?”
“어! 내가 언제 서울 간다고 했다고? 나 그런 말 한 번도 안 했는디야” 깜짝 놀라서 생각에 잠겼다. ‘거참 이상하네, 금년 가을걷이만 끝나면 서울로 올라가려고 가발공장에 다니는 남식이 형과 편지를 주고받은 걸 춘심이가 어찌 알았을까.’
“오빠가 서울로 가버리면 이제 오빠노래는 다 들었구먼.” 춘심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머라고, 내가 언제 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그래?”
“다 아는 수가 있지. 달이 뜨면 오빠가 부르는 남진의 가슴 아프게도 들었고 쬐그만 놈을 학교는 안 보내주고 맨 날 쟁기질까지 시키면서 꽁보리밥만 준다고 서울로 도망가 버린다는 소리도….”
“아하! 그렇지! 네 방이 우리 장독대 옆이라서 내가 한 소리가 모조리 담장을 넘어 부렀구만 이. 하하하 그럼 춘심이 너, 내가 언제 서울 갈 것인지 그것 확인하러 오늘은 이렇게 멀리까지 나온 것이냐?”
“뭐 꼭….”
“그래, 그럼 춘심아 나 갈란다. 이놈의 두엄이 무거워서 어깨가 아파 죽것다. 그라고, 보리서리, 콩 서리, 또 물고기 잡으러 가게 얼른 나아라 이.” 정말이지 설은 지게질에 어깻죽지가 빠져 나가듯이 아파왔다.
“그래! 오빠 무겁겠다. 얼런가. 오빠는 아버지 돌아가고 지게질 첨 해보잖아.” 춘심이가 물동이를 이고 가다가 깨먹은 동네 아짐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차차 길이 나것지야. 남들이 다 그라더라.” 비틀거리면서 밭으로 가려고 땅에 떨어진 작대기를 주우러 다가갔다. 오늘 두엄 내는 우리 밭은 회관 앞으로 돌아가면 곱절은 시간이 필요한데 다행이 춘심이가 그것은 묻지 않았다.
내가 처음 지게를 지고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뒤뚱거리며 들로 나서면 동네가 웃었다. 내가 요래 가자미눈으로 째려보면 그들은 금방 부처님 같은 소리를 했다. / 처음이라서 그래 / 그람은, 말도 하요. / 누구는 뱃속에서부터 배워 나왔간디 / 길이 나면 지게가 등에 찰싹 달라붙을 날이 오것제. 암 /
뒤뚱거리는 나를 보고 춘심이 같이 걱정해 주는 이는 없었다. 그랬다. 나는 소였다. 처음 길 박는 소처럼 멍에 얹을 자리가 군살이 붙어서 두툼해 지도록 끌고 또 끌어야 하는, 머리가 별 필요 없는 나는 그런 도짓소가 되어야 했다. 열네 해는 소 나이로 치자면 너무 많았고, 인간의 생으로 치자면 지금쯤 친구들과 학교에 가 있던가 아니면 뻐꾸기 새끼 잡겠다고 들로 산으로 쏘다닐 나이였다.
땅에 떨어진 지게 작대기를 집어 나에게 건네려던 춘심이가 휘청거렸다. 나는 뒤로 넘어지려는 춘심이의 손목을 날름 잡아 당겼다. 내손이 이미 작대기를 받으러 나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춘심 이는 잔돌이 굴러다니는 회관 마당에 과당하고 넘어졌을 것이다. 내가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춘심이 머리 너머로 주먹만 한 두엄 몇 개가 회관 마당에 떨어져 깨지며 굴렀다.
'휴! 냄새 나는 두엄을 지고 춘심이 위로 넘어졌다면….' 깊은 숨을 내쉬며 춘심이를 내려다보았다. 집안일도 잘하고 뛰어다니던 춘심이가 작대기 같이 가는 손목을 나에게 잡히고 땅만 보고 있다. 봄볕은 결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따사롭고 향기로웠다. 간지럽고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더니 파도처럼 밀려왔다.
벌들이 떨어뜨린 흰 꽃잎이 춘심이 머리위로 삿분삿분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모든 것이 변했다. 시끄럽던 뻐꾸기 소리도 청아한 독창으로 들렸다. 내가 무거운 두엄을 지고 얼마 동안 서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춘심이가 넘어지려 하는 순간을 못 본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뭔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으나 혼자 내려오지 못하는 고양이와 같았다. 이때 불현듯 주머니 속에든 구슬이 생각나서 얼른 구슬을 꺼내 춘심이 손에 쥐어주었다.
“춘심아! 그 돌멩이보다는 이 구슬이 더 이쁠 것이다.”
“어머! 예쁘기도 해라 고마워 오빠! 절대로 잊어먹지 않을 거야”
‘춘심이 저것이 외지 물을 먹든 마는 말도 영판 이 삐게 잘 해야.’
춘심이에게 구슬을 주고 휘파람을 불며 밭으로 향했다. 내 주머니에 든 구슬이 유년의 나를 어른들 세계와 연결해주는 마지막 끈이었는데 춘심이 때문에 어른들의 세계로 성큼 넘어 와 버렸다. 이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이 조금은 아리고 슬프기도 했다.
슬픈 감정은 이웃집 논갈이 때도 찾아와 점심때 내오는 막걸리를 혼자 홀짝거리기도 했다. 학교 못 간 몽니를 일찍도 술 배우는데 이용한 샘이었다. 지고 간 두엄을 밭에 부리고 집에 왔는데 춘심이네 집이 소란스러웠다. 부엌에서 나오시는 어머님께 물었다.
“아니 엄니, 춘심이 집에 먼 일 있다 요?”
“오냐, 춘심이가 회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일가시던 영암아제가 업어다 놓았다. 안 허냐. 식구들이 들 일 나가고 없는데 혼자서 먼 회관까지는 머더러 갔을 것이냐, 그라고….”
“오 메! 그래라 이, 그라고 또 뭐가 있다 요?” 내가 바투 어머니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그라고 요상한 것이 있는디, 춘심이가 손에 무슨 구슬 같은 것을 쥐고 있는데 얼마나 꽉 잡고 있는지….”아무리 그걸 펴보려 해도 안 돼 내버려 두었단다. 까닥하면 손가락 부러질 까봐.”
“구슬 이라 고라.” (어머! 예쁘기도 해라 고마워 오빠! 절대로 잊어먹지 않을 거야)
가슴이 먹먹하게 꽉 차올랐다. 춘심이 손에든 구슬의 정체는 알고 있지만 미주알고주알 누구에게도 알 릴 수는 없다. 보리밥 한 그릇을 집어넣고 친구 집에 간다며 어스름한 마을 회관 마당으로 나왔다.
춘심이가 앉았던 그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주위의 사물이 눈에 들어오면서 춘심이가 만지던 돌멩이 몇 개와 바지게 너머로 구른 두엄은 누군가의 발에 밟혀 찌그러졌는데 오색 구슬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일어서서 마을 뒤 산사 쪽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처님께 두 손을 모았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춘심이 에게 별일이 없기를 부처님께 비나이다.”
그날 밤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농사에 귀한 봄비였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세다가 얼핏 잠이 들었는데 소란스런 소리에 잠이 깼다. ‘아니! 이 소리는?’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귀를 열었다. 나의 노랫소리가 넘었던 그 길로 이번엔 춘심이 어머님 통곡소리가 장독대를 넘어왔다.
“애야 눈 좀 떠 보그라 이, 말 한마디 없이 가다니 내가 너를 어찌 보낸단 말이냐. 아이고! 아이고!”
“어! 이거 춘심이가….” 나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며 귀를 틀어막고 고슴도치처럼 둥그렇게 말았다. 턱이 덜덜 떨리고 이는 딱딱 부딪쳤다. 낮에 회관에서 만났을 때 피식 웃던 춘심이의 모습과 “그래! 오빠 무겁겠다. 오빠는 아버지 돌아가고 지게질 첨 해보잖아.” 소리가 이명처럼 머리속에서 윙윙거리며 울렸다.
시렁에 올려놓은 베게가 커졌다. 계속 커지는 베게가 나에게 굴러오는 통에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가 방으로 뛰어들어 오셨다.
“엄니 저 베게 치워 주시오. 나를 눌러 죽일락하요.” 어머니가 시렁 위에 베게를 치워버렸다 그런데 이번엔 양쪽 벽에 시렁으로 박아놓은 나무가 전신주처럼 커지더니 굴러왔다. 저건 치울 수 없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주위물건들은 커졌고 또 나에게 날아오기도 하고 굴러오기도 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헛소리를 했다. 어머니가 머리맡에 앉아서 나의 머리에 찬 수건을 올려놓으며 영산아! 영산아! 자꾸만 이름을 불렀다. 어려서 몸이 약했던 나는 열이 높으면 늘 이런 식이었다.
쌀죽 몇 숟갈 뜨고 지게를 지고 나서자 어머님이 깜짝 놀라시며 말리셨다.
“아니, 애야! 몸도 성치 안는디 더 누워있지 않고 어디를 갈라고 지게를 지고 나서냐. 이?”
“엄니 바람이나 쏘이고 올라요. 누워만 있었더니 답답하고 더 나른 한 것 같단 말이요.” 패잔병 모양 힘없는 나의 등 뒤에서 어머님은 한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시박골 보리밭으로 향했다. 새로 쓴 춘심이 무덤은 아버님 묘하고 개울 하나 사이였다. 송사리 몇 마리가 놀라 숨는 실개천을 건넜다.
“춘심아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디, 오늘도 막내딸 찾는 너의 엄니 울음소리가 담을 넘어오더라. 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오빠는 논갈이 밭갈이에 나가떨어져 있고, 너는 차가운 땅속에 누웠구나. 춘심아, 그래! 하늘나라에서는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살거라 이” 주먹으로 눈두덩을 문지르며 월출산을 넘겨보았다. 반짝이는 아지랑이 사이로 나의 기도를 외면한 대밭 속 부처님 거처 용마루가 흔들리는 대나무 가지 사이로 아주 조금씩 보였다.
누가 밟았을까. 꺾인 진달래가 마저 피우지 못한 춘심이 같아서 그 꽃 모아 춘심이 곁에 꽂아주고 돌아서는데 해수가 심한 춘심이 아버지의 거칠고 쉰 목소리가 아지랑이처럼 봄바람에 실려 왔다. 그것은 춘심이 손에서 구슬을 빼내려고 애쓰는 가족들을 타박하는 소리였다.
“애가 가지고 가겠다는 것을 왜 뺏으려고 허냐 들. 필요헝께 가져가겠다는 것 아니 것냐고? 그러니께 그냥 놔 두 랑께~크윽~콜~록~”
큰 형님 병문안으로 찾은 고향 길이었다. 아버님 묘에 성묘하고 분홍 진달래 너머 푸른 하늘에 물었다. “춘심아! 영산이 오빠 왔다. 너 아직도 오색 구슬 가지고 있니?” 역시나 목청 좋고 뻔뻔한 뻐꾸기는 45대째 뱁새 집을 훔쳤을 것이고, 꽃샘바람이 이리저리 불면서 영산이 오빠 흰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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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춘심이~2
논두렁에서 점심으로 조밥 먹고 학교로 냅다 뛸 때.
유산으로 물려받은 무거운 쟁기로 꼬맹이가 우찌 " 순
억지로 농사를 지었다.
어린 자식이 아버지를 잃었건,---그래서 해 보지 않은
농사일로 낙담을 하건,
그래도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온다...무엄하게도...
월출산의 아름다운 단풍과, 흰 구름 몇 점 떠 있는 푸르고
높기 만한 하늘은,
이내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따라 더 높고
아름답기만 하고.
등에 짐 올린 지게는 무겁게 내 어깨를 짓누른다.
가을에는 지팡이만 들고 따라가도 밥을 준다는 계절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파종적기가 짧아 이레 사이라
한다.
베는 것과 거두는 것을 조금이라도 소흘히 했다가는
일년농사 도로아미타불 이 된다.
벼를 베어놓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다.
아랫녘 아무개 네는 한밤중에 어느 놈이 베어놓은 벼를
지고 가 버렸다고 한다.
그럼 우리도 저녁 먹고 벼 지키러 서당 골을 가야한다.
한밤중이면은 하얀 옷을 입은 당산영감 이라는 마을
지기인지, 도깨비인지, 귀신인지
모를 당산 할베가 왔다리 갔다리 한다는. 마을 어귀 5백년
넘은 팽나무와 기목나무
아래를 지나서 가야하는데...묘하게도 그 앞에 으스스한
상엿집이 떠 억 버티고 있다.
"어떻게 논을 사도 저런 곳에 샀을까 이"
그 순간은, 얼굴도 흐릿한 할아버지를 원망도 했다.
서당 골 천수답 가는 길은 꼬불꼬불 산길이고 작년 겨울에
돌아가신
아버님 묘 우측은 공동묘지다. 그 아래 산자락에는 깨진
독들이 많이 널려있다.
아이들이 죽어서 독에 넣고 그 위에 돌멩이로 대충 눌러
논 것이다.
그 주위에는 퉁퉁 부은 젓을 안고 죽은 아이 넋을
달래려는 어미의 마음인지.
빨갛고 맛있는 산딸기가 많이 열린다. 오돌토돌하고
빨갛고 말랑말랑한 산딸기는
색깔만 다를 뿐 크기와 모양이 어머님 젖꼭지와 똑같다.
돌덩어리를 안고 있어도 한참 지나면 뜨거워지는데
하물며 열 달을 당신 뱃속에
함께 하던 아이가 젖도 제대로 물려보지 못하고 죽었을
때는 그 어미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이제 어미젖 대신 빨간 산딸기나 많이 따먹으라고 가지가
휘도록 열리는 것 같다.
그 산딸기는 운 좋게 살아있는 우리 꼬맹이들 몫이다.
그 산딸기는 살짝만 건드려도 떨어지기 때문에 여간
조심해서 따도
절반쯤은 깨진 독 속으로 죽은 아이를 찾아간다.
낯에는 신나게 산딸기 따먹었는데.
한밤중, 눈 섶 달 아래 벼 지키러 그 앞을 지나 갈려니.
꼭 뒤에서 "내 산딸기 내놓고 가라" 고 뒷집 춘심 이가
붙잡는 것 같다.
우리뒷집 춘심 이는 산 벚꽃과 진달래가 한창 필 때
죽었다.
그 전날인가 우연히 마을 회관 앞을 지나다가 봄볓
쬐는 누렇게 뜬 얼굴 의
춘심 이를 만나 주고받는 한마디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춘심아 좀 괜찮냐? 언능 나아라 이.
"응 좀 괜찮은 것 같아" 하며 조그만 돌멩이만 만지고
있더니...
그 다음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새벽 장독 너머 뒷집
춘심이 집 어머님
통곡소리를 이불 속에서 들었다. 나는 그때, 이불 속에서
혼자 소리쳤다 "신은 없다고"
저 작고 순한 춘심 이가 뭔 죄를 그리 많이 지었다고
고시랑, 고시랑 일년간인가를
아프게 하더니. 이제 열살 겨우 넘겨서 벌써 죽어야 하는
거지....
몇 일 후 무시박 골 밭에 밭갈이 갔더니.
옆 공동묘지에 아직 흙이 덜 마른 춘심이 묘가 잇다.
개울건너로 가면서 누군가가 밟아서 꺾인 분홍 진달래가
다 피워 보지 못한 춘심이 같다.
나는 아버지 묘 등지고 앉아서 망연 자실 춘심이 너 묻힌
곳을 보고.
네 무모는 어린 너를 흙에 묻었구나. 부디 다음 생에는 좀
잘사는 집에 태어나
괴기에다 쌀밥도 원 없이 많이 묵고 이. 건강하게 백
살까지 잘 살그라 이. 춘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