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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시인의 견해>
묘사적인 시를 잘 쓰려면
1. 들어가는 말
묘사와 이미지를 알면 시론의 절반은 아는 샘이다. 지난번에는 이미지에 대하여 알아보았고 이번에는 묘사를 알아본다. 문광영 시인은 시의 유형을 설명시, 논증시, 묘사시, 경험시로 구분하였다. 이 중에서 시창작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묘사시 유형이다. 결국 묘사를 잘해야 시를 잘 쓸 수가 있다. 마치 화가가 데생을 수없이 연습해 오듯 묘사는 시 쓰기에서 기초가 된다.
2. 묘사적인 시를 잘 쓰려면,
첫째, 대상에서 가장 지배적이고 강력한 인상을 잡아서 쓰라. 묘사에서 치밀한 관찰은 늘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오관인 모양, 빛깔, 소리, 냄새 등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려내는 것, 그 느낀 감각적인 인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라. 예를 들면, '은행잎이 金貨로 보인다'라고 할 때 은행잎의 구체적 상황이 주관적 해석을 통해 관찰자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은행잎 =金貨’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낳게 한다.
셋째, 자신의 느낌을 창의적으로 명료하고 정확하게 묘사해라. 예를 들면, 「햄릿」의 첫머리에 ‘그날 밤은 매우 조용했다.’ 대신에 ‘쥐가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로 고요함을 명확하게 나타냈다.
넷째, 상투적이고 고정관념에 젖은 표현의 틀을 깨라. 예를 들면, ‘어두운 밤’을 ‘수척한 밤’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뻔하지 않게 표현하라.
그러면 어떻게 써야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내게도 계속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여기서는 기본적이고 최대의 고민인 묘사에 집중하기로 한다. 서정주 시인은 말을 맛깔스럽게 시적 언어를 찾아 적재적소에 자리매김한다. 이근배 시인은 시를 쓸 때마다 「동천冬天」을 읽는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이근배 시인에게 모델 시인과 모델 시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
저문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 「동천冬天」
3. 묘사와 이미지의 관계
장옥관 시인은 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세 가지 레시피는 묘사, 비유, 상징이 있다고 했다. 시인은 이미지를 잘 그려야 한다. 다른 말로 바꾸면, 묘사를 잘해야 하고, 비유(비유하려는 대상을 매개물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법)와 상징(추상적인 관념을 아무 관련 없는 다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잘 사용해야 ‘시를 시답게 한다.’는 말이다.
문광영 시인은 이미지로 의미를 전달한다고 했다. 이미지(心象)란 ‘마음의 그림’으로 ‘외부의 사물이 우리의 마음에 비춰진 그림자’를 말한다. 루이스(C. D. Lewis)는 이를 ‘말로 만들어진 그림’이라고 했다. 이러한 이미지의 역할이 신선감, 강렬성, 환기력을 준다고 했다. 또한 바슐라르(G. Bachelard)는 문학 이미지를 비유적, 환기적, 묘사적 이미지로 나누고, 각각의 이미지에 대해 가치를 부여했다.
일반적으로 이미지(image)라는 말은 심상(心象)이리고 한다. 마음속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다양한 경험은 일차적으로 오관을 통해 지각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의 내용을 감각적 지각(知覺)이라고 한다. 이 감각적 지각은 인간의 머릿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게 되기도 하고 재생되기도 한다. 이미지란 바로 이 감각적 인상을 뜻하는 말이다. 아래 시에서 실제로 청색 노루가 없다. 그러나 시를 읽다 보면 분위기에 취해서 어떤 특정한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 곧 심상이다. 이미지는 명사적인 느낌을 주고, 묘사는 동사적인 느낌을 준다. ― 장옥관 시인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산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 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박목월, 「청노루」
4. 시의 묘사는 무엇인가
묘사(描寫,description)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 현상 따위를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표현한다. 묘사는 필자의 의도를 가리키기도 하고, 작품을 쓰는 방법을 뜻하기도 한다. ‘묘사하다’라는 단어는 본래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었는데, 현재는 ‘모습을 말로 나타낸다’는 의미사 있다. 그러나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낼 수는 있지만 말로 나타낼 수는 없다. ‘모습을 말로 나타낸다’는 것은 필자의 마음에 떠오른 모습과 같은 모습이 독자의 마음에 떠오르도록 말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필자나 독자의 마음에 모습이 떠오르려면, 그것과 같거나 비슷한 모습을 전에 현실 세계에서 본 적이 있어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모습을 보는 것을 ‘관찰하거나 느끼거나 지각한다’라고 말한다.
묘사는 감각적 경험을 상상하도록 표현하는 방법이다.
묘사가 잘된 작품은 생동감을 준다. 생동감이란 상상되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감각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묘사문을 읽을 때 상상되는 감각은 독자의 마음에 감각적인 느낌이나 정서를 일으킨다. ― [네이버 지식백과] 묘사, 2006. 구인환)
그래서 시는 묘사라고 말해도 될 정도이다. 시는 사물의 원리나 이치를 설명함이 아니며 행동이나 상태가 진행되는 시간의 경과를 진술하는 서사가 아니다. 시는 사물의 모습에 대한 주관적 감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묘사이다. 시의 감각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공감각 등이 있다.
5. 묘사와 진술의 차이
‘시는 묘사로 시작해서 진술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묘사와 진술은 중요한 개념이다. 묘사와 진술은 시를 구성하는 방식, 혹은 시의 언술 형식과 관련된 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적 언술의 특성과 구조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는 묘사 혹은 진술로 풀어나갈 수가 있으며, 이들 안에 화자, 비유, 리듬, 어조 등의 모든 하위 시적 언술의 요소들이 들어 있다.
묘사는 사물이나 현상이 지닌 성질, 인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언술 형식이다. 진술은 작가가 심리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하지 않고 직접 토로하는 형식이다. 이는 주로 깨달음의 형태로 제시된다.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 뜨고, 초록 제비 묻혀 오는 하늬바람 위에(객관적 묘사) 혼령 있는 하늘 (주관적 묘사)이여. 피가 잘 돌아 ...... 아무 병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진술) ― 서정주, 「봄」
- 오규원, 장옥관의 설명을 재인용
가. 묘사를 잘 하는 방법
묘사란 언어에 의해 사물의 현상을 전달하고 물체의 독특한 행위와 인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기술적, 의도적으로 그려 나타내는 양식이다. 모든 사물에는 그 사물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 있으므로 그 특징의 인상을 관찰하여 이에 근접하게 표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물의 모양, 환경, 색채, 비교, 위치, 소리, 감촉, 관계 등에 의해 겉으로 드러나는 인상을 기술하고 내면의 변화를 찾아내 감정의 적절한 환경을 그려내는 심리적 양상도 포함될 수 있다.
현대문학에서는 묘사를 가장 적절하게 세분화시킴으로써 섬세하고 강한 인상을 나타내고 세밀한 부분적 묘사와 강한 인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사건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물과 장면이 일치되는 영상적 수법과 구체적이며 정밀한 실감을 강조한다. 시각적, 촉각적, 후각적, 미각적 감각 기능적인 묘사는 중심핵을 이루고 있다.
결국 문학에서 이야기의 전개 과정을 구성하면서 인간의 참된 모습을 다 들추어 표현해내기란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인간 내면의 세계를 구체적이고 미세하게 묘사하는 심리학적 방법,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차원을 추구하는 경향, 영상 방법의 미적 색채적 투사 방법도 새로운 방법으로 응용된다.
이상섭은 묘사를 잘하기 위한 수법으로 다음을 말한다.
1) 가장 중심적인 인상(통일성)을 확정할 것.
2) 가장 적절한 관점(물리적 또는 심리적)을 선택하는 것.
3) 중심적 인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창조할 특징적 세부들을 선택하는 것.
4) 독자의 오감을 되도록 많이 자극하는 것
5) 이 세부들을 공간적, 시간적, 수사학적, 또는 연상적(聯想的) 순서에 따라 연결 시 키는 것.
6) 직접적 진술이나 암시에 의해서 중심적 어조를 띄우도록 전체 문단(하나의 묘사 부분)을 완성하는 것
나. 시의 진술은 무엇인가
관념을 문장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진술에는 인식적 진술과 비인식적 진술이 있다. 인식적 진술은 무엇이 참과 거짓인지 판단을 나타내는 진술이다. '소나무는 잎이 늘 푸르다'는 참이라는 판단을 나타내는 인식적 진술이며, '참나무는 잎이 늘 푸르지 않다'는 거짓이라는 판단을 나타내는 인식적 진술이다. 또한 인식적 진술에는 '한라산은 강원도에 있다'와 같이 잘못된 판단을 나타내는 진술도 있다. 비인식적 진술은 느낌, 물음, 요구, 희망, 가치 판단을 나타내는 진술이다. '꽃은 아름답다'는 느낌을, '이곳에서 빨리 떠나라'는 명령을, '너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바로 비인식적 진술이다.
진술은 구체적 진술과 추상적 진술로 구분할 수도 있다. 구체적 진술은 구체적 존재의 상세한 세부를 주로 구체어로 표현한 진술이다. 추상적 진술은 관찰되지 않는 존재의 질, 상태, 작용, 과정을 추상어로 표현한 진술이다. 그리고 진술을 일반 진술과 특수 진술로 구분할 수도 있다. 일반 진술은 다른 진술들의 관념을 포함하는 진술이고, 특수 진술은 다른 진술의 관념에 포함되는 진술이다
이상을 간단히 하면, 묘사란 말 그대로 ‘어떤 사물을 그림을 그리듯이 표현하는 방법’이고, 진술이란 ‘그 어떤 사물을 설명하는 것 혹은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다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歸天」
전체가 진술(고백적 진술)로 이루어진 이 시는 비유(은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리듬(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등 전체구조), 화자(드러난 화자: 나), 행 구성(각 연의 반복) 등의 시적 언술의 요소로 구성된 것을 볼 수 있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묵화墨畵」
처서 지나고
저녁에 가랑비가 내린다.
태산목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한 번 멎었다가 가랑비는
한밤에 또 내린다.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새로 한 번 젖는다.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
- 김춘수, 「처서處暑 지나고」
전자가 객관적 묘사를, 후자가 주관적 묘사를 위주로 한 시이다. 그러면서도 두 작품 모두 관찰의 섬세성과 그것을 언어로 가시화하는 능력이 놀라울 정도이다. 「묵화墨畵」는 언어로 빚어낸 한 폭의 그림이다. 실제로 시인이 본 광경(혹은 동양화의 한 풍경)을 그린 점에서 객관적 묘사에 속하지만, 힘겹게 하루를 넘긴, 발등이 부은 할머니가 같은 처지에 있는 소잔등에 손을 얹고 있는 세계는 그야말로 삶의 적막과 따스한 사랑이 느껴지게 하면서 성스러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의 절제된 표현을 한번 보라. 제목이 「묵화墨畵」로 되어 있는 이유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야말로 묘사형의 시는 “절제된 감정과 언어가 빚어내는 가시화된 이미지를 생명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시이다.
「처서處暑 지나고」가 주관적 묘사임을 명시하는 구절은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메아리처럼/한 번 멎었다가 가랑비는/한밤에 또 내린다.”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는 구절이다. 메아리처럼 그렇게 한번 멎었다가 내리는 가랑비는 시인의 눈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이다. 특히 그 가랑비에 젖는 ‘귀뚜라미의 무릎’은 시인의 주관적 심리적 세계이다. ― 손진은 시인
시적 진술은 독백적 진술, 권유적 진술, 해석적 진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독백적 진술은 스스로가 시적 대상이 되어 반성하고 기원하는 형태(진술하는 주체 중심의 회고와 반성과 기원이 주), 권유적 진술은 자기의 주장을 불특정 개인 또는 다수에게 적극 동조를 요청하는 형태(타인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주장 중심이 언술), 해석적 진술은 일정한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 나름의 해석과 비판의 형태(객체 중심의 탐구와 비판)를 각각 그 특징으로 한다.
진술의 종류는 고백적 진술, 권유적 진술, 해석적 진술이라 말할 수 있다. 고백적 진술의 예를 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서정주, 「푸르른 날」, 권유적 진술의 예를 들면,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 김수영, 「눈」, 해석적 진술로는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 서정주, 「무등을 보며」
다. 묘사와 진술의 어울림
시에서 묘사만 있는 경우와 진술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묘사와 진술이 어울려서 좋은 시를 만든다. 시적 진술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서경적 요소, 서사적 요소 그리고 심상적 요소가 필요할 때와 대상을 구체적화하여 들려주고 싶을 때 묘사와 진술의 적절한 어울림이 시를 시답게 한다. 엄밀히 말하면, 기본적으로 시에는 묘사와 진술이 어울려 있다.
예를 들면, 이영광의 「직선 위에서 떨다」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고운사 가는 길
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
수 정할 수 없는
직선이다
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
이 먼 곳까지
꼿꼿이 물러나와
물 불어 계곡 험한 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 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
문득, 발 밑의 격량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떨지 않는 직선도 없 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 이영광, 「직선 위에서 떨다」
[단상]
1연은 묘사적 언술을 전제함으로써 이 시는 선명한 이미지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러한 묘사적 속성은 이후에 등장하는 진술 중심의 작품 전반에 감각적 특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직선 위에서 떨다」를 관통하는 진술은 전적으로 직설적인가? 이 시는 삶에 대한 직설적인 진술을 통해 시인의 사유를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때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다. “외나무다리”를 통해 우회적으로 삶을 표현하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나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는 ‘외나무다리’를 통해 나오게 되는 우회적 양상의 시적 진술이다. 즉 이 시는 우회적 진술과 감각화된 묘사적 특성을 잘 버무린 시라 할 수 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곽재구, 「사평역에서」
[단상]
간이역 대합실을 묘사적으로 제시한 시이다. 또한 감각적 이미지로 서정적이고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쓸쓸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시어들을 통해 인물들의 고단한 삶과 내면세계를 형상화한다.
‘사평역에서’는 실제로 없었던 역이지만, 모델역이 ‘남평역’이라는 얘기도 있다. 전라선의 작은 역인 남평역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문화유산 지정 팻말과 나란히 ‘사평역에서 배경역’이란 팻말도 있다. 이는 90년대 중반 <TV문학관>에서 <사평역에서>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때 모델로 촬영한 역이 남평역이었다.
곽재구 시인도 ‘상상력은 현실 속에서 태어나지만 상상력은 강한 현실을 만나면 죽는다.’라고 했다. 만약 사평역 대신 실존하던 남광주 역이란 이름을 썼더라면 이 시가 주는 환기력이 크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라. 묘사와 설명의 차이
시는 묘사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자꾸 설명하려고 하는 게 문제다. 여기서는 묘사와 설명의 차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설명에 치우치면 산문이 된다. 그래서 설명적인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시적 대상은 묘사를 통해 시적 이미지로 재현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적 이미지에 미적 구조를 더하게 되면 감각적인 묘사 유형의 작품이 된다. 이때 시인의 의도와 의미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며, 작품에 표면화되는 것은 단지 묘사된 이미지일 뿐이다. 따라서 묘사는 그 자체로 상징과 비유로 기능하게 된다. 김기택 시인의 시 '호랑이'를 참조하면 더 도움이 된다.
시적 대상 -----(묘사)-----> (시적 이미지), (의도와 의미) -----(미적 구조)-----> 시 작품
- 묘사를 통한 시작을 도식화하면 위와 같다. ― 조동범 시인
묘사할 때 가장 어려운 점 하나는 설명과의 차이를 구분하는 일이다. 실제로 묘사는 시적 대상의 겉모습을 제시하는 점에서 설명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묘사가 구체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는 데 반해 설명은 이미지로 착각하기 쉬운 개괄적인 행위나 모습을 제시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친다.
묘사가 감각화된 장면을 통해 이미지화한 의미와 사유를 내재하는데 반해 설명은 대상의 행위와 모습만 있을 뿐, 감각화된 장면이나 의미, 사유 등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설명을 통해 제시된 장면은 눈 펼쳐진 단편적인 정보만 전달할 뿐, 이미지의 감각과 디테일을 제시할 수 없다.
묘사가 지배적인 인상을 정황을 통해 우리의 미적 인식을 자극하는 반면, 설명은 대상의 인상적이지 않은 모습을 개괄함으로써 미적 인식을 형성하지 못한다. 즉 행동과 모습을 개괄하여 설명한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 시적 묘사는 대상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하는 묘사한다. 예를 들면 ‘도로 위에 송아지 한 마리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어미 소의 울음을 향하여 달려갔다.’ 이것은 설명이기보다는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다.
설명은 인과관계이거나 부연해 설명하려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면 ‘형과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그래서 ‘∼ 때문에’ 라는 단어를 시에 쓰면 묘사라기보다 설명에 가깝다. 또 설명은 다분히 산문적이다. 그리고 주제를 알려주기 위해 설명하는 것이다.
묘사는 그림을 그리듯이 대상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 사실적 묘사는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 문학적 묘사는 자기가 느낀 대로 묘사하는 것. 설명은 대상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 정의, 예시, 비교, 대조, 분류, 분석 등을 이용한 것. 사실, 정보, 지식을 전하는 것.
묘사의 첫걸음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대상의 모양이나 빛깔, 감촉, 냄새, 소리, 맛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독자는 그것을 읽고 상상력을 통해 묘사된 대상을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재생시킨다. 예를 들면 '해가 진다' 라는 표현은 가장 단순한 관찰을 통한 진부한 표현이다. 해가 지는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해가 지는 모습뿐만 아니라 시간이 조금씩 흐름에 따라 하늘과 햇살과 산과 대지 등 대자연의 모습과 관찰자의 느낌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자세히 통찰하고 거기에 걸맞은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예를 들면 '달이 밝다'는 묘사문이고, '달은 밝다'는 설명문이다. '이'와 '은'의 토씨 하나가 다른데도 글의 기능과 그 맛은 전연 달라진다. '달이 밝다'는 것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달이 환히 떠오른 정경을 나타내는 묘사문이다. 그러나 '달은 밝다'는 달의 속성이 밝은 것임을 풀이하고 정의하고 있는 설명문이다. 기행문은 묘사문이지만 여행안내서는 설명문이다. 어느 때 묘사문을 쓰고 어느 때 설명문을 써야 하는지, 그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면 글쓰기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설명문은 여러 가지 사실이나 현상을 알기 쉽게 풀어쓴 글이고 사실 그대로 적은 글이라고 말한다. 설명문의 목적은 지식전달이고 글의 짜임새는 처음-가운데-끝으로 구성한다. 개념 정리하면 설명은 대상의 성질 등을 알기 쉽게 풀이하여 나타내고 읽는 이에게 이해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묘사는 대상의 모양이나 모습을 본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나타내는 것이다.
묘사는 낯익은 사물을 처음 보는 것 같은 신선한 감각을 부여해준다. 묘사를 통해 신선함과 강렬함, 환기력과 낯설음을 제공해 준다. 그것이 시적 묘사의 힘이다. 이렇게 제시된 감각과 상상력은 신선한 시적 감정을 전달한다.
멸치
― 김기택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
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갔던 것이다
모래 더미처럼 길거리에 쌓이고
건어물집의 푸석한 공기에 풀리다가
기름에 튀겨지고 접시에 담겨졌던 것이다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잡히는 이 멸치에는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흘러가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지금도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던 것이다
[단상]
이 시는 멸치볶음을 관찰하면서 멸치가 본래의 생명력을 상실하는 모습을 떠올리고 멸치의 생명력이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파도와 해일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는 고깃배와 그물을 파괴하기도 하였던 멸치는 본래 멸치가 지녔던 거대하고 역동적인 생명력을 환기함으로써, 인간 문명에 의해 파괴된 멸치의 생명력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멸치가 본래 지녔던 강인하고 역동적인 생명력의 회복에 대한 염원, 즉 상실된 생명력 회복에 대한 화자의 의지와 소망을 강렬하게 드러낸다고 본다. 이처럼 묘사는 묘사된 이미지를 통하여 시인의 의도와 의미를 감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의 본질에 가까운 시적 비유와 상징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멸치처럼
― 김명인
멸치 가게 여자가 박스를 열어
몇 묶음째 상품을 보여준다
몸과 몸을 흩어 한 무리임을 확인시키지만
군집을 모르는 손님에겐 못 가본 바다 같다
멸치는 팔려서라도 돌아갈 물길이 없다
있다 해도 짓뭉개진 뒤에야 놓여날
그물망, 어제까지 안 그랬다고 여자가 말했다
은빛 파도에 떠밀려 파닥거리는 멸치를
채반 째 데쳐 비늘이 생생하도록 바람에 널었으니
그물을 싣고 항구를 들락거리는 건 배의 사정,
장마 탓이지만 마침 그 때 일이 떠올랐을 뿐
머리를 떼면 흑연 같은 속셈이 딸려 나와
멸치는 곤곤해진다, 그러니 안주로 부른들 뭐 하랴
촘촘하게 엮인 투망을 덮어쓰는 절기에도
물기 다 거둔 멸치는 건건하다
비쩍 마른 여자가 삐꺽거리는 좌판에서 돌아선다
한 번도 제 영역을 지켜낸 적 없는, 멸치
저걸 덮치려고 고래까지 아가리를 활짝 벌린다
[단상]
이 시는 멸치 박스를 열어 좌판에 깔아 놓고 멸치를 파는 여인은 꼭 멸치처럼 닮았다. 멸치의 신세는 돌아갈 길이 없고 제 영역을 지켜낸 적 없는 멸치의 신세가 좌판을 지키려는 비쩍 마른 여자와 겹쳐진다. 또 멸치를 덮치려고 아가리를 벌리는 고래로 여자를 묘사하고 있다. 이것도 남의 사정을 외면하는 장사의 논리와 권력이 지배하고 있다. 이 시는 멸치를 자세히 바라보고 멸치를 팔려고 좌판에 내 놓은 멸치 박스를 유심히 관찰하고 쓴 시다. 이처럼 자세히 바라보고,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 시적 표현으로 나아가자.
6. 마무리하는 말
시 창작에서 핵심은 묘사를 잘하는 것이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시의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얻는다. 좋은 시는 묘사, 비유, 상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야 좋은 이미지가 나타난다. 좋은 시의 조건에는 시의 별미라고 하는 시의 급소가 있다. 이 급소는 독자에게 참 좋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독자는 그 시를 애송하고 필사한다.
대상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설명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시 창작의 기본이면서 중요한 요소다. 이것에 따라 운문과 산문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사유의 깊이가 있는 시라면 좋은 시가 아닐까. 뒤집고 뒤틀고 상식을 벗어난 방법으로 ... 한 장면의 무대처럼.
시인이 되고자 한다면, 시인은 좋은 시를 쓰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시에서 가슴에 전율을 주는 구절이나 슬프고 아픈 것이 꼭 나의 이야기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독자에게 내 얘기를 대신해 주는 감동 있는 시를 쓸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좋은 시는 프로 정신에서 나온다. 좋은 시는 첫 행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 읽고 싶은 시를 쓸 때까지 ... 계속 쓰는 것이다. 필사적으로...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나희덕, 「푸른 밤」
이 시에는 좋은 표현이 많지만, 내게는 시적 매력이 압도적인 첫 연과 마지막 연을 특히 좋아한다. 멋진 묘사를 하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우리도 좋은 시를 쓰지 않을까. 다만 시인은 시를 쓰고, 독자는 느껴지는 대로 읽고 그냥 감상하면 된다. 좋은 시는 공감하면서 힐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시의 힘이다. 아래 나희덕, 이성선, 정현종, 기형도의 시를 감상으로 글을 마감한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 “나의 생에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나희덕, <푸른 밤>
나뭇잎 하나가 //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 툭 내려 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 이성선, <미시령 노을>
자기를 벗어날 때처럼 / 사람이 아름다운 때는 없다 - 정현종, <사람은 언제 아름다운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