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요한복음2:1-11

오늘은 아가페 찬양단 헌신예배로 봉헌하고 있습니다. 아가페 찬양단을 위해서 수고해 주시는 엄기성 집사님 이하 아가페 찬양단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가페 찬양단이 연습하는 날이면, 교회에 찬양의 소리가 넘쳐납니다. 찬양이 넘쳐나면 교회가 잔칫집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로, 헌신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의 삶에 기쁨이 충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행하신 기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시는 일로 시작됩니다.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그것은 ‘잔치’와 같은 즐거운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의 삶도 잔칫날처럼 흥겹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초점을 두어 말씀을 전합니다.
1. 항아리는 비어있었다.

당시 이스라엘 집의 문 앞에 있는 항아리는 정결 예식에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중동지방은 사막지대로 먼지가 많습니다. 먼지가 많은 곳이다 보니 밖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야 위생적인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종교 규례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삶의 양식, 이런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규례화되고 종교화되는 것입니다.
당시 규례에 따르면, 항아리에는 언제나 물이 채워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항아리가 비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혼인 잔치에는 손님들이 많이 오는데 항아리가 비어있었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평상시에는 지키지 않더라도 손님이 오시거나 특별한 행사가 열리면 물을 채웠을 법도 한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잔치에 참여한 손님들에게도 ‘항아리가 비어있었다는 것’은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항아리가 비어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일상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규례’가 소홀히 여겨지거나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물이 채워져 있어야 할 항아리는 비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심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어쩌면 빈 항아리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그 빈 항아리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항아리에 물이 채워진다는 것은 율법적인 생활에 얽매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상의 회복’입니다. ‘일상’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상,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녹아져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신앙과 삶을 별개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일요일만의 교인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고, 이젠 주일날도 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인 것처럼 살아간다고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2. 물을 채우라

예수님께서는 빈 항아리를 보시고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이 명령은 곧 지켜지지 않고 형식만 남은 규례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현상복귀, 본래대로 회복시키는 것은 정결법을 율법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본래의 취지를 살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도 삶으로 살지 못하면 빈 항아리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 그것은 누가 할 일입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이 구조를 잘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종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물을 채우는 일은 주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까지도 주님의 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헌신은 뒤로하고, 미주알고주알 사사건건 “이것 내놔라, 저것 내놔라!” 기도라는 명목으로 하나님께 떼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올여름 폭염으로 온 세계가 큰 수난을 겪었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가져온 재앙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지구의 수명도 20년 이상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경제성장이라는 미명으로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은 나 몰라라고 계속 그 길을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우리 인간들이 다 망가뜨려 놓고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죽어 피안의 세계에 머물고자 하며, 이 더럽고 죄악 가득한 세상이라며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타락시킨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 세상을 빈 항아리, 물이 말라버린 빈 항아리로 만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을 말씀하십니다.
“물을 채우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물을 채우는 일,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이후 포도주로 만드는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물을 채우는 일도 하지 않고 최상의 포도주를 마시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포도주를 만들겠노라고 호언장담합니다. 독재자들과 강대국이 제시하는 유토피아와 다르지 않습니다.
잔칫집에서는 “물을 채우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거기에서 맹숭맹숭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순종이 기적을 만듭니다.
3. 포도주로 변한 기적의 의미

물을 채우는 일, 그것은 일상적인 삶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맹맹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 그것이 복음입니다. 포도주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잔칫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흥을 돋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없어도 잔치는 될 수 있겠지만, 맨송맨송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참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잦습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여기까지는 어떤 단계냐 하면 ‘물이 채워진 상태’까지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더 우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 그들을 통해서 기적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복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기쁜 소식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니 우리가 알지 못하던 놀랍고 기이한 일들이 우리 삶에 충만하게 되고, 그 덕분에 우리의 모든 삶이 변화되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그 삶이 비로소 잔치하는 삶이 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기적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상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그것은 바로 잔칫집과 같은 기쁨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잔칫집이라는 것입니다.
혼인잔칫집의 기적, 그것은 주님을 만나면 멋진, 최상급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는 혼인 잔치에 참여한 것과도 같은 기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쁜 잔치 와중에도 포도주가 떨어지는 불상사사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는 맨송맨송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잔치의 흥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시는 분,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쁨이 없는 시대를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어떻게 종식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채워야 합니다.” 그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주님을 초청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잔칫집과 같이 흥겨운 삶,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 그것은 우리의 공허한 마음에 주님을 채우는 일과 같습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물 같은 우리가 포도주가 되어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