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죠반니(지오반니; 조반니) 베네데토 카스틸료네(카스틸리오네; Giovanni Benedetto Castiglione, 1609~1664)의 동판화 〈멜랑콜리(Melancholy)〉 또는 〈키르케(Circe)〉이다. ☞ 우울 씨와 아살 씨의 금단밀애는 과연 가능할까?
이토록 암울한 두 씨는, 그러니까, 멜랑콜리아와 루크레티아(Lucretia; 루크레치아; Lucrezia, 서기전?~510년경)는 서로를 극심하게 증오하고 적대하는 듯이 보이면서도 암암리에 상통하여 야합할 기회만 노리지는 않는가? 하여튼, 현실은 대체로 두 씨의 밀애를 금지하면서도 은밀하게 부추기곤 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그런 밀애를 방해할까 부추길까?
프랑스 시인·작가 제라르 드 네르발(Gérard de Nerval, 1808~1855)은 독일 화가·미술이론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1514년작 유명한 동판화 〈멜랑콜리아 제I화(Melancolia-I)〉(☞ 참조)를 오랫동안 응시하다가 전율을 참지 못하고 유고소설 《오렐리아, 몽상과 삶(Aurélia ou le Rêve et la Vie)》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1855년 1월 26일 밤에 파리의 지저분하고 비좁은 비에유-랑테른 골목길(La Rue de la Vieille-Lanterne)에서 어느 반지하방 창문 비녀장에 목을 매고 살기(殺己; 살자; 殺自)해버린 그의 외투 주머니 속에는 《오렐리아, 몽상과 삶》의 후반부 원고가 들어있었다.
어쩌면, 설마, 혹여, 예술은 현실에서 두 씨의 금지된 밀애와 살기를 조장하고 부추기기보다는 오히려 우울의 매력과 쾌락을, 멜랑콜리아의 마력(魔力)과 쾌감을, 기묘하리만치 얄망궂은 쾌락과 쾌감을 데우고 우려내는 ‘마녀 약탕기(가마솥; 냄비) 가열용 불·연료(火·燃料)의 사연(死煙)’ 같은 것은 아닐까?
아래왼쪽사진은 프랑스 사진작가·소설가 펠릭스 나다르(Félix Nadar; 가스파르-펠릭스 투르나숑; Gaspard-Félix Tournachon, 1820~1910)가 촬영한 〈제라르 드 네르발〉이고, 아래오른쪽그림은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1883)의 1855년작 석판화 〈비에유-랑테른 골목길: 제라르 드 네르발의 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