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3. 마흔네번째주 .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
신앙고백
찬송 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여
기도 염성섭 장로,이원준 장로,하경숙 권사,조용림 권사,
성경말씀 빌립보서 2:25~30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가을편지
찬송 364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광고 시립 전환을 위해 기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배 후 팀장 회의
(인권문제, 김장12/4~6,준비위원장- 하경숙 권사, 권선희 권사, 박희순 집사)
찬송 376 내 평생소원 이것뿐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 주님도 아프고 , 나도 아프잖아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사람이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사람이
아름다워요 , ♬
그렇습니다.
가을에는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우리 배유경 주임이 요즘 청바지에 가죽자켓을 자주 입고 다닙니다.
그런데 어제는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오셨기에
무슨 일이냐고?
가을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손자를 둔 할머니인데도 이렇게 멋있습니다.
우리 장로님들도 가죽자켓 입어보시면 10년은 젊어 보일 겁니다.
25절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26절,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절,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절,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29절,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절,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아름답습니다.
사도바울과 에바브로디도처럼
이런 동역자들이 있다면 지금 죽더라도 원이 없겠습니다.
사도바울이 영웅이 되고
에베소 감옥일지라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에바브로디도같은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고독감을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목사인 저도 가을을 많이 탑니다.
곱게 물든 단풍잎만 보더라도 가슴이 콩당콩당 뜁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가을날엔 사도바울이 부럽습니다.
목숨까지도 전혀 아끼지 않고
옥중에 있는 사도바울을 돌보기 위해서
빌립보에서 에베소?까지 그 머나먼 길을 갈 수 있었던
동역자 에바브로디도의 우정이 아름답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친구가 있겠습니까?
전, 법무부장관 조국 교수가
검찰 개혁을 위해서 총대를 메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검찰의 무자비한 사찰에 가족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란 사람들이 투덜투덜하는 말은
언제까지 우리가 조국을 지켜야겠느냐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을 때뿐 인 것입니다.
이럴 때 의리하면 떠오르는 배우 김보성씨가 생각이 납니다.
의리!
어쩜 사랑도 의리입니다.
그리고 믿음도 의리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엊그제 뉴스에
러시아에서 친구 3명을 살해하고 친구의 시신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하룻밤 사이
여성을 세 명씩이나 성폭행했습니다.
그리고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옥살이를 20년간 했는데
이제야 진범이 잡힌 것입니다.
경찰, 검찰의 공권력이 이렇게 무참합니다.
죄 없는 한 인생이 20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보낸 억울함을
누구에게 보상을 받겠습니까?
이러한 일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도 빠삐용처럼
공권력에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일들이 다반사茶飯事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온 국민이 검찰 개혁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정한 세상, 진실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죽음 앞에서 진실해진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인생을 진실하게 산 두 분이 주인공입니다.
사도바울과 에바브로디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천천히 다시 읽어 드립니다.
25절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26절,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절,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절,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29절,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절,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지금 제가 읽어 드린 말씀이 성경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사도바울과 에바브로디도의 우정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빌립보에서 에베소 옥중에 있는 사도바울을 돕기 위해서
에바브로디도는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감옥에 있는 사도바울에게 영치금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면서 사식을 넣어 드렸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친구가 어려울 때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
소소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25)
바로 이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의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설교의 주제를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로 소소하게 꾸며 갑니다.
우리 교회는 1주일 동안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항상 저의 설교의 테마theme입니다.
어제가 11월 2일, 토요일 함열 장날입니다.
우리 요양원 앞에 튀밥 장사가 있어서 고소한 냄새가 펑펑 스며들고
뻥뻥 튀밥 튀는 소리에
성경을 읽다가 깜짝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아침 출근하자
우리 석 권사님께서 밤새 뜬 눈으로 지셌다기에
너무나 맘이 아파서 우리 염 장로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영양제에 섞어서 잠을 푹 자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사를 맞는 시간에도 얼마나 보채시는지
우리 배 주임, 조 권사님, 강 간호사, 저까지
석 권사께서 주사를 다 맞으실 때까지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극정성 모시고 사는 우리들의 소소한 사랑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이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 석 권사님을 지극정성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치매가 극히 심하신 우리 석 권사님이 지금까지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석 권사님 자녀들이 알아주기나 합니까?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겁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이것이 사랑이고
이것이 우리들의 소명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용림 권사님이 무릎 관절을 수술하게 생겼습니다.
우리 조 권사님께서 목사님 오른발 무릎이 아파서 걷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만져 보았더니 꿈틀꿈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직감적으로 무릎관절 수술을 해야 된다고 말씀드리고
이제부터는 휠체어에 앉아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엑스레이를 찍어 봤습니다.
제 말이 100% 맞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어쩔 도리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슬프지 않겠습니까?
똑똑하기만 우리 조용림 권사님이 휠체어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차
점심을 사드리고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할열장 구경을 시켜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최연희 권사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권사님, 어찌해서 집으로 가시려고 합니까?
깜짝 놀라시며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되묻습니다.
그래서 아드님과 전화 연결을 해 드렸습니다.
아드님과 어쩌고저쩌고 하시더니
목사님께서 두 번씩이나 살려 주셨는데
내가 왜 집에 가느냐고 하시며
죽더라도 목사님 곁에서 죽겠다고
아드님께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기가 천국 아니겠습니까?
우리 유유순 집사님께서 불과 한 달여 전에
엔젤요양병원에서 오시지 않았습니까?
휠체어에 파묻힌체 잠에 취해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등에는 욕창에 괴사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매일같이 밥도 드시지 않고 죽겠다고 노래 부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 요양원에 오신지 한 달여만에 천사가 되었습니다.
식사도 얼마나 잘하시는지 감사하기만 합니다.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가 천국이다!
그렇습니다.
여기가 천국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천사입니다.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천사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천사입니다.
26절입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향수병)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래서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27)
에바브로디도가 고향을 떠나서
멀리 에베소까지 가서 옥살이를 하는 사도바울과 함께
동고동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사도바울을 돕다가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겠다가 향수병까지 도진 것입니다.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객지에서 홀아비로 살면서
사도바울 옥바라지를 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얼마나 원망스럽겠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원망스럽겠습니까?
그렇지만 에바브로다도는 누구도 전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에바브로디도처럼 성숙한 성도는 투덜투덜 원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신학 공부를 할때에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TV에서 강연을 하는 연세대 권수영 교수님의
목회실습시간이었습니다.
논제가 목회란? 무엇인가?
가난한 성도가 소낙비를 맞으며 너무나 초라하게
콜록콜록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목사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모른 척 외면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비를 맞고 있는 가난한 성도님께 그냥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비를 맞으며 걷는 것입니다.
우산이 없을지라도
돈이 없을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비를 맞으며 걷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복음입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25)
저도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습니다.
우리 권사님들이 아프면 제일 먼저 달려갔습니다.
말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으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제 작은 손과 제 작은 발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하는 우리 권사님을 꼭 안아드렸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오늘 말씀의 영웅인 것은
죽을 고비에 빠진 사도바울에게 맨 먼저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정말 필요로 한 것들을 채워주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강순옥 집사님께서 저에게
목사님이 명의이십니다. 칭찬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염성섭 장로님이 명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강순옥 간호사께서
아들 둘이 모두 의사인 윌 강순옥 집사께서
1년이 넘도록 저를 지켜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목사님이 명의이십니다.
맞습니다.
목사님 영적인 명의입니다.
목사인 저는
우리 권사님들이 아프면
제가 아픈 것처럼 함께 아파합니다.
그래서 제 가슴이 짠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진정한 명의는 하나님이십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죽을병에 끙끙 앓고 있었는데
완치되었습니다.
27절입니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아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전지전능하십니다.
에바브로디도의 죽을병까지도 고쳐 주셨습니다.
목사인 제가 왜? 어떻게 명의가 되겠습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내 몸처럼 진심으로
죽기까지 사랑하는 겁니다.
30절입니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에바브로디도는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왜?
이런 믿음이 없습니까?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김경옥 권사님처럼
작심하고 천일기도를 한다면,
이렇게 죽기 살기로 기도한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좋은 가을날에
더 늙기 전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보시기 바랍니다.
행복할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