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렌트는 사용하는 것이다.
연중 제 21주간(목) 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일
(마태 25,14-30)
예수님께서는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에서
각자가 받은 탈렌트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얼마나 충실히 일했는지를 물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받은 탈렌트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 탈렌트로 얻은 삶의 결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신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탈렌트는 글자 그대로 각자의 능력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입니다.
험난한 현실에서 기쁨을 만들며 살라는 창조주의 배려입니다.
그러니 누구든 하나 이상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기쁘게 사는 능력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요?
진정 기쁘게 살고 있는지요?
아니면 그냥 썩히고 있는지요?
구원을 결정짓는 날 주님께서 질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누군가 인생을 카드 게임에 비유하였습니다.
게임에서는 누구나 패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패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어진 패를 보며 불평하고,
‘받았어야 할 패’를 주장한다면 실패자입니다.
‘받았어야 할 패’, 곧 ‘나’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받아야 할 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9월이 되면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주님,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일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그러합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갑자기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천 길 높은 둑은 개미나 땅강아지의 구멍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백 척 높이의 으리으리한 집도 아궁이 틈에서 나온
조그마한 불씨 때문에 타 버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일이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작고 사소한 것 때문에
일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에 성실할 때
우리의 신앙도 점점 성숙해질 것입니다.
이 가을은 우리 신앙의 성숙을 위해
이렇게 또다시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공부했는데
16세 때 한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고는
이를 계기로 신앙을 포기하고 철학에 심취하면서
마니교에 빠져들었습니다.
그후 384년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오의 영향을 받고,
로마서 12장 12-14절에서 영향을 받아
친구와 아들(아데오다루스)과 함께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크리스챤 교회사상 가장 위대한 주교 중의 한 분으로
무려 33년이나 봉직하였습니다.
그의 위대한 저서 중에 ‘고백록’ ‘신국론’ ‘삼위일체에 대하여’등의 대작이 있으며,
흔히 ‘은총의 박사’라고 불립니다.
오늘 아침 미사 후(2002. 8.28)
심용섭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선물을 받았다.
원장 수녀님이 건네준 것을 뜯어보니
기도서, 성가가 같이 있는 성서책이었다.
오늘이 신부님 영명축일로 축하도 못해 드렸는데
오히려 선물을 받고 왜 이것을 주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세 가지(기도서, 성가책, 성서)를 모두 갖고 다니는 것을 보시고
합본을 주신 것이라 생각도 해 보지만
더욱 열심히 하느님 말씀을 공부하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고 싶다.
오늘부터 휴가를 떠나신다면서
당신도 위선적인 삶을 살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휴가 잘 다녀오시고 사제생활 잘 하시도록
심신부님을 위해 자주 기도드려야겠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