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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가 나의 왕을 세웠다(이기쁨)
시편:
다윗이 새롭게 왕을 세우는데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어요. 일반인들은 왕의 대한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이 왕의 자리는 너무 너무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하나님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우셨다는 거슨 슬퍼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고 그냥 덤덤하게 지나가는데 누구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냐면? 군인이 되겠다고 야심을 품은 자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반역을 일으켰던 자들에게 있어서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 첫 번째는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는 말씀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왕은 우리의 육신의 눈에 보이는 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왕은 너희 왕이 아니라 나의 왕을 세웠다고 하신다. 즉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다스리는 왕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이방인들은 내가 누구냐? 세상의 군왕들은 누구냐? 할 때 이방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내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방인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를 대적하여 그를 죽인자들이 누구냐? 유대인들이라는 것이다. 이 유대인들이 이방인이라는 말과 같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입맞추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말을 맞춘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이 하나가 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날 목사님의 입에서로부터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과 말씀과 예수님이 말씀과 똑같아서 그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에 환난과 큰 위험들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되어서 그분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그 분이 나의 바위가 되시고 나의 안식처가 되어주실 때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서 건지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하고 은혜가 넘치는 모든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의지하고 나의 모든 것을 맡길수 있는 피난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날마다 말씀으로 나를 다듬고, 말씀으로 깨질 때 나는 낮아 질지라도 나를 인도하시는 그 분은 영원하시고 전능하심으로 높아지는 분도, 들어나시는 분도 오직 그 분이심으로 깨닫는다.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고 나를 향하신 그 분의 뜻과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지금 학업과 훈련받는 모든 가정들을 포기하지 않고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귀한 시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6. (요한복음 3:16)의 신 비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아멘
복음서에서 다 중요하고 은혜가 되는 말씀이지만 특별히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과 사랑이 들어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선한일을 많이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켜 행해라 그러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 구약의 전체 내용이라면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서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너희에게 주시겠다는 것이다. 즉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으 버리셨고, 우리가 그 사랑을 알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이 사랑을 마음에 깊이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 이성으로,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소의 사랑 안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절과 요한일서 3:16절 말씀이 짝을 이루는데 먼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 말씀인데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것이라는 말씀이 앞부분인데 세가지의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첫째 하늘이 열리고 둘째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임하시고, 셋째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음성이 들여왔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3:16절에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핵시은 성령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성경의 전체적으로 3:16절을 보면 참으로 은혜의 말씀들이 많이 나온다. 구약에서도 창세기 3:16절에는 “너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원수가 되겠고 그 뱀의 후손은 너의 후손에 발꿈치를 상하게 할것이요”라는 말씀이 나온다. 성령 충만함은 날마다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매일 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 충만함으로 구하지 않으면 마귀의 노예로 넘어지고, 두려워하고, 교만과, 불평과, 불만들이 가득함이 나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 날마다 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말씀 안에 내가 속했을 때이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은 성경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이고, 전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7. 가인과 아벨의 추수 감사절
창세기 1절-8절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아멘!!!
가인과 아벤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신 것은 아벤의 제사를 받으셨다.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니 아벨을 쳐죽였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를 보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많은 기도와 찬양과 예배를 통해 감사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인지? 형식인지를 보아야 한다. 즉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감사는 받으시고 어떤 사람의 감사는 받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이 안 받으시면 우리는 가인처럼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는지? 아니면 동생을 죽이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는지를 생각해 보자!!!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타락한 다음 가인과 아벨을 낳은 자녀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가인의 후손이 되어야 하는지? 아벨의 후손이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둘로 갈라진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낳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이 찾으시는 제사는 과연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성경과 진리로 예배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제물인데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다. 즉 불이 있느냐? 재물이 있느냐? 믿음이 있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아벨은 짐승을 잡아서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릴때에 자기의 죄를 피로 씻어 생명이기 때문에 내 생명을 주님께 드렸다. 이 피를 드린다는 것은 나의 진정한 회개를 드리는 것이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인을 책망하실 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라”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가인은 죄의 종 노릇하고 죄로 말미암아 끌려서 살았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 헌신하는 제사, 자기를 바치는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려내신 그 보혈을 가지고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인간의 열심히의 불이 아니라 성경의 불을 받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어떤 마음과 자세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모든 것에 형식은 아닌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지? 정말 하나님 앞에서 내가 드려지는 모든 제사가 하나님이 기뻐 받아주실지?에 대한 나의 신앙과 믿음을 정검하게 된다. 날만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가 되길 소망합니다.
8. 신령한 사람
고전2:11-16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아멘!!!
오늘 등장하는 사람 신령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먼저 신령한 사람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 즉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선지자들을 말할 수가 있다.) 이들을 참선지자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은 마귀의 가르침을 받아서 마귀가 시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세 번째 사람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거듭하기는 거듭났는데 아직 육신의 소욕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육신에 매어서 살아가는 사람들 말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 말씀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것인지 마귀의 영으로 하는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경고하신 것이 마지막 때에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냐면 신령한 사람,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육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척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말씀 가운데 신령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에 차이점에 대해 깨닫게 된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질 때 진정으로 기도하고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다. 거짓은 진리를 들어낼 수 없고, 나타낼 수 없고 진리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샘물처럼 퐁퐁 솟아올라 날마나 나를 새롭게하고 깨끗하게 함으로 거짓이 아니라 생명으로 나타나 이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부어진다. 성령 충만으로 부어지는 나의 은혜와 감사가 가득하길 소망한다.
또 우리를 신령한 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거는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그럴듯하게 겉으로는 하나님 말씀 같은데, 실상은 거짓말이잖아요. 살짝 비틀어서 이렇게 우리에게 속아 넘어가도록 만들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신령한 사람이 될 수가 있을까?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설명하시는데 두 가지로 설명하셨어요. 첫째는 안다 그겁니다. 목자가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안다는 말을 또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다. 그래서 목자가 부르면 따라가지만 목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르면 절대로 안 따라간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목소리를 다 분별할까요? 또 목자도 마찬가지로 양의 울음소리가 다 똑같은 거 같은데, 음메 하고 우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 놈이 하는 소리인지 목자가 당장에 안다 말이죠. 우리가 전화로 이렇게 전화를 받을 때 상대방이 전화한 목소리만 듣고도 아무개로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친밀한 관계, 목소리로 알 수 있는 이 관계를 가리켜서 우리는 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목자와 양과의 관계가 바르게 맺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고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내가 정말 하나님을 아는가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가 이거를 자신에게 늘 물어봐야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관계를 이루지 못해요. 왜 이루지 못하느냐? 교제가 적기 때문에 그럽니다. 내가 전화를 받아도 상대방이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들었는데 누구 소린지 도무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누구시죠 하고 물으면 목사님 나를 모르세요. 나 아무개입니다. 목소리만 들어가지고 잘 몰라요. 내가 목소리를 들어서 아는 사람은 금방 알아요. 그렇지만 목소리를 들어도 이 사람이 누굴까 하고 한참을 생각해야 된단 말이죠. 왜? 전화도 자주 하지 않으면 또는 자주 만나서 대화를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나를 아무리 잘 안다고 하고 또 나도 그 사람을 잘 안다고 할지라도 목소리만 들어가지고는 우리가 분별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과 자주 만나야 돼요.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가 있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너 아무개로구나 음성만 들어봐도 금방 아신단 말이에요. 이 관계가 이루어져야 심판 날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겠죠. 내가 너를 아노라 이런 말씀을 우리가 심판날 들을 수 있어야지 하겠습니다. 자 첫째는 이런 관계가 돼야 되고요. 둘째는 그래서 우리가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자기를 죽이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살아나시는 거잖아요. 우리가 이런 관계를 아름답게 맺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날의 이 신학교들을 보면서 이 신학교가 뭐하는 기관이냐 현대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을 길러내는 그런 학교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를 가지고 참 마음의 섭섭함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기르시고 예수님이 자기를 나타내실 때에는 제일 먼저 기사 이적을 많이 행하셨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고 그래서 와 모여들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오게 될 때에도 먼저 애국 땅에 열 가지 무시무시한 재앙을 쏟아내렸습니다. 그다음에 홍해를 가르고 백성들이 건넜습니다. 뒤쫓아오던 애굽 군대는 물속에 다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다음에 광야에서도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켜 주시기도 하고,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시고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반석을 쳐서 생수가 터져 나오게 하시고 하나님은 이런 기적을 수도 없이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는 이런 기적을 체험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유대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그런 많은 기적을 행하실 때에 그것을 기적 차원에서만 보고 끝나고 깜짝 놀란 데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6장 26절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나를 따라오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오. 떡 얻어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이렇게 단정해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기적은 보았는데 표적은 보지 못했다. 뭐가 다릅니까? 기적을 보고 깜짝 놀라기는 하고 야 하나님 두렵다 하고 하나님 계시구나 이런 거 까지는 알았는데 그 의미를 알아야 돼요. 표적, 그것을 행하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돼요. 이것을 우리가 표적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미라클, 이 기적에서 끝나지 말고 싸인! 표적이에요.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정말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사는 사람이 돼야 하겠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미라클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싸인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정말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믿고 따르고 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열두 제자들 군중들은 기적을 체험한 거기서 끝나고 말았지만 예수님의 참 제자들은 표적을 맛보면서 예수님을 따르고 마음으로부터 예수님을 존경하고 숭배하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아간 그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되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에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참 선지자가 되고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새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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