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의 주얼리 브랜드 기행 57. 줄라(DJULA)
줄라는 디자이너 알렉산드르 코로(Alexandre Corrot)의 파인 주얼리 브랜드다. 1994년 파리의 패션 중심부인 생제르맹에 첫 스토어를 연 이후 시대를 꿰뚫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히브리어로 ‘대리석 세트’라는 뜻의 줄라는 ‘주얼리’와 비슷한 발음도 흥미롭지만, 유대인인 코로에게 히브리어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줄라는 전통적인 고급 소재인 다이아몬드와 18k 골드로 구성된 ‘레이스’ 디자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치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를 연상케 하는 정교한 순백의 레이스 패턴이지만, 놀랍게도 현대적인 세련미와 펑키 스타일이 공존한다. 현대적인 것과 옛 것의 접목을 즐기는 코로는 20년대 아르데코나 70년대 글램록(glam rock)에서도 디자인 모티브를 따오곤 한다.
그의 손을 거쳐 재해석된 기하학적인 디테일에서는 관능미까지 느껴진다. 딱딱함 속에는 유려한 반전의 묘미가 있고, 화이트 골드 못지 않게 즐겨 사용하는 블랙 골드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시계와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한 그는 예술가와의 교류나 여행, 패션 트렌드에서도 남다른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코로는 디자인을 처음 시작하면서 동시에 첫 컬렉션을 발표했지만 사실 전문적인 주얼리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실제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 고객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트렌드를 공부하면서 주얼리와 패션의 경계를 무너뜨렸을 뿐이다. 그 결과 파인 주얼리 내에서도 틈새 시장을 공략, Djula라는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었다. 이는 그가 실버 주얼리에서 다이아몬드와 18k 골드 주얼리로 전환한 시점과 맞물린다.
파인 주얼리 안에서도 최고급 소재와 패션성을 아우르는 소위 ‘스윗 스팟(sweet spot)’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줄라는 값비싼 소재와 화려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데일리용 주얼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현재 줄라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도시에 입점되어 있으며 파리뿐 아니라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도 단독 부티크가 있다. 미분쟁 다이아몬드만을 선별적으로 사용하며, 마이크로 파베 세팅용은 SI 등급, 페어 쉐이프와 마퀴즈 컷은 VS2로 투명도에 제한을 두고 있다.
주얼리를 또 하나의 피부라고 생각하는 코로에게 팔찌와 반지는 깃털처럼 가벼워야 하고, 섬세한 레이스 패턴은 피부에 그림을 그린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만 한다. 손에 착 감기는 다이아몬드 핸드 주얼리, 펑키하지만 귓불에서 차르륵 흘러내리는 이어 커프, 조각적인 디자인의 팔찌와 반지만 봐도 그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줄라의 주얼리는 하이 주얼리와 스테이트먼트 주얼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이는 중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로서 코로가 가장 좋아하는 제품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다이아몬드가 빼곡히 세팅된 가시철사 뱅글을 꼽는다. 보호나 저항의 상징인 가시를 통해 그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에게 주얼리는 볼거리 위주의 허망한 트렌드가 아닌 이질적인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오늘날 줄라는 파리지엔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필수 주얼리이자 유럽을 대표하는 세련된 감각과 소장가치 높은 브랜드라는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더불어 “럭셔리는 독립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매년 200여 점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통적인 파인 주얼리의 울타리를 벗어나 궁극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줄라는 그 독특한 매력으로 도시 속 현대 여성들의 정숙과 일탈을 모두 만족시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