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군복합형 기지 건설’을 내걸고 진행돼 왔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삐걱대고 있다. 정부가 내세웠던 ‘관광 미항’, ‘민군복합형 기지’ 등의 수식어는 결국 실현되지 못한 채, 해군의 ‘군사기지’ 건설로 일방통행하고 있는 모양새다.
예산 집행과 공사 시행과정, 그리고 이중협약서 폭로 등을 통해 제주 민군복합형 기지 건설이 사실상 해군기지 건설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야5당은 공사 중단과 사업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애초 기획했던 ‘관광미항’이 사실상 해군이 주도하는 해군기지 건설로 강행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기지 건설 전면 백지화를 주장해왔던 주민들과 시민사회는 ‘민군복합형 기지’의 허구성을 여러 차례 지적해 왔다. 일방적 해군 기지든, 민군복합 기지든 동북아 평화문제, 환경문제, 지역 환경 변화 등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며, 정부가 내세우는 지역경제 발전 역시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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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군기지사업단] |
민군복합형 기지에 대한 동상이몽,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
관리권 두고 국방부와 제주시 힘겨루기까지
지난 2008년 9월 11일, 정부는 제주해군기지를 세계적인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방부와 정부, 제주도는 ‘민군복합형 기지’에 대한 동상이몽 상태로 각자 입맛에 맞춰 사업을 추진해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 4월, 국방부와 국토해양부, 제주도가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체결한 기본협약서가 ‘이중협약서’의혹으로 드러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부대의견에서 명시된 ‘민군복합형 기항지’는 그 용도와 기능에 대해 처음부터 확실히 논의되지 않았다. ‘기항지’의 정의는 ‘배가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르는 항구’로, ‘해군기지’와는 다른 개념인데도, 확실한 전망 없이 무리하게 복합형 기항지로 내세워왔던 것이다.
또한 예산안 통과 직후, 원혜영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민군복합형 기항지의 성격은 크루즈 선박이 이용할 수 있는 민항을 기본으로 하고 해군이 필요한 경우 일시정박해 주유나 물자 등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정부와 국무총리실 등은 “기항지 성격은 현재 진행 중인 크루즈 선박 공동 활용 예비타당성 조사가 마무리된 후 결정될 사안”이라는 등 유보적이거나 해군기지 중심의 사업추진을 시사하고 나섰다.
결국 현재 정부의 투자계획에 따르면, 크루즈항이 534억 원, 해군기지가 9,770억 원으로 군항 예산의 규모가 민항 예산의 18배에 달하는 군항 중심의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공사 과정 역시, 인허가 절차를 마친 후 공사가 14%가량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크루즈항은 설계용역조차 마무리되지 않을 정도로 편차가 심각한 실정이다.
특히 크루즈항 관리권을 두고 국방부와 제주시는 아직까지 힘겨루기 중이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제주도 측은 “제주특별법 144조(해양수산사무의 이관에 따른 특례)와 제주특별법 214조의 2(항만의 관리운영에 관한 특례)에 따라 항만시설관리권은 도지사로 이양됐기 때문에 크루즈항도 도지사가 하는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은국 제주해군기지사업단장은 제주CBS라디오 [브라보 마이 제주]에서 “특별법 어디에도 도지사가 크루즈항을 관리한다는 말은 없으며, 앞으로 협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국회 해군기지 예결특위에서조차 결론을 내기 못하고 있다. 민주당 위원들은 민항을 위주로 하고 해군함정이 기항하는 용도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한나라당 위원들은 ‘민군복합형 기항지는 해군기지에 크루즈를 추가 수용토록 한 것’이라며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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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이 공사를 강행하면서 구럼비를 깨고 있다. [출처: 자료사진] |
민군복합형 기지 “애초부터 정부가 만들어낸 포장”
결국 ‘해군 기지’와 다를 바 없어
현재 관계부처와 여야당은 해군기지의 용도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상 사업초기 예산을 승인하고 사업을 추진했던 과정에는 야당의 동의가 있었다. 반면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시민사회진영은 사업 초기부터 기지 건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견해 왔다.
2007년 7월, 해군은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제주해군기지 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해군은 기지의 용도와 기능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보상계획과 해군기지 건설 효과 등만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기지 건설시 6년간 연평균 230억 원의 소득이 증대하고, 1,700여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조경, 시설관리, 청소 등 용역사업에서 주민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며, 군장병 면회 등의 가족방문으로 7만 명의 관광객 유치, 인구유입으로 초등학교 학급수 증가와 교육의 질 향상 등의 이점을 내걸었다.
하지만 민군복합형 기지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용도 등이 배제된 해군의 일방적인 유치 설명으로, 주민들은 여론조사와 주민투표 등의 의견수렴과 구체적인 사업 설명을 요구해왔다. 또한 시민사회는 기지 건설로 인한 지역경제발전에 대한 의구심을 표했다.
실제로 일본 오키나와의 경우, 경제적 효과는 1960년 50%에서 현재 전체 GDP의 5.5%에 불과하다. 기지가 들어서면서 지역 관광산업으로의 전환이 어려워지면서, 자립경제구조의 확립에 타격을 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오키나와는 매춘이나 군사문화, 폭력 등의 문제점을 낳게 됐으며, 중금속에 의한 환경오염의 광범위한 확대와 환경회복의 천문학적 비용에 시달리고 있다.
때문에 고창훈 제주대교수는 지난 2006년, 제주 해군기지 입지선정 논란 당시부터 “해군기지 유치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단기적으로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반짝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그 후 관광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며 “사회적 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부담, 환경과 해양오염의 방대한 확산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평화적 이미지의 훼손으로 인한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지역경제에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는 해석도 타당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민군복합형 기지라도 결국 ‘해군기지’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어, ‘평화의 섬’이라 불리던 제주가 군사기지화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해군은 기지에 이지스함과 잠수함, 군수지원함 등으로 구성된 기동전단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주변국들이 항공모함, 잠수함 건조 등 군비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양분쟁시 신속대응이 가능한 기동부대를 수용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군이 내세우는 도서영유권, 해양관할권 등의 분쟁요인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일각에서는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관계가 국지적 혹은 본토방위를 위협하는 무장 갈등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이를 군비 확충의 이유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해군의 남방해역 보호 목적 자체가 잠재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어 동북아 평화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기동전단이 미군의 전략함대가 공동으로 기항하는 동북아 대중국 전초기지로 인식됨으로써, 동북아 전체에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유영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 팀장은 “민군복합형 기지 건설은 애초부터 정부가 만들어낸 포장에 불과하며, 기본적으로 국방부는 해군기지 건설 입장이 확고한 상황이라 제주해군기지는 민군복합형과는 상관없이 분명 군사기지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서 유 팀장은 “또한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한 미군 함정이 들어올 것은 확실하고, 만약 국회 부대의견대로 애초의 민군복합형 기항지로 건설된다고 해도 미 함정의 사용과 이에 따른 동북아 평화에 대한 우려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측이 중국과 대만해협에서 가깝고 규모가 큰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하겠다고 나설 경우,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SOFA,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 등으로 한국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배기철 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는 “민군복합형 해군기지가 건설역시, 환경문제와 평화문제, 주민 삶의 문제 등 여러 갈래의 문제점이 드러난다”며 “만약 해군기지가 전면 재검토되어 단순 기항지로 건설된다 하더라도, 화순항에 이미 기항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태파괴와 주민반대여론을 묵살하면서까지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미디어충청, 참세상 합동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