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커피가 먹고 싶다는데
아빠에게는 아빠 엄마, 그러니까 너들은 보지도 못한 친할머니에 대해 아픈 사연이 있다. 아빠가 엄마에게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지 사주려고 하는데 커피도 그 중 하나다. 아래 오후부터 엄마 몸이 안 좋은데 어제는 더 안 좋아서 혼자서 자리에 잘 일어나지도 못 해 족욕하는 것도 힘들어해서 이틀 두 번 하지 못했다.
어젯밤 자기 전 21시 뭔가 말을 하는데 말이 잘 안 나와 커피 하니까 응. 하기에 일으켜 앉혀서 커피를 주니까 반만 마시고 내려놓기에 다 마셔도 돼 했더니 -다 먹어도 돼 되물어서 먹고 싶으면 다 먹으라고 했더니 아, 맛있다 하면서 한 병을 달게 마시고 잤다.
그리고 밤 12시 반에 깨서 한 번 소변을 보고 잤는데 몇 시인지 모르나 자다가 또 오줌 하기에 자기야, 오줌 눈 지 얼마 안 됐어 참아 봐 했더니 조금 있다가 또 오줌을 눠야겠다고 해서 화장실 갔다 와서 시계를 보니 두 시 반이다.
잠에 취해 비몽사몽 다시 누워 잠이 들까 하는데 -자기야, 나 커피 좀 주면 안 돼- 한다. 가뜩이나 몸이 안 좋아져 아빠가 음식을 잘못 먹여서 그런가 하는 생각 중에 커피도 있는데 그래도 먹고 싶어하는데 안 줄 수가 없어서 하나 갖다 주니까 반을 마시고 뚜껑을 닫는다. 요즘 커피를 보통 2개 많이 먹을 때는 3개씩 먹는데 너무 많이 마시는 거 같아 당기면 다 먹으라고 말하려다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은 게 음식 탓인가 싶기도 하고 무엇을 해서 먹였나 생각해 보니 부쩍 많이 마시는 커피도 그 중 하나다.
지금 시간 새벽 3시 반이 넘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못 자고 있다. 너들은 아빠 힘들어 하지 말고 재활병원에 보내라고 말을 하는데 솔직히 아빠도 그러고 싶다. 급하면 변도 옷에 보는데 그 뒤치닥꺼리가 정말 만만치 않다. 지난번에는 배탈이 나서 두 번 그런 적이 있어서 갑자기 밀려 나오는데 어떡하겠냐며 괜찮다고는 했는데 어제는 아빠도 하도 화가 나서 병원 입원 요양원 말까지 꺼냈다.
울면서 간다고 하더라.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못 하니까 엄마도 답답한지 보내주라고 하는데 그러나 아빠는 그 말이 엄마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어젯밤 커피를 마실 때 바로 앉지도 잘 못해 아빠가 엄마 등뒤에 앉아서 의자 등받이처럼 기대게 해서 커피를 마시는데 슬쩍 다시 정말 병원에 갈 거야 물어보니까 -나도 안 가고 싶지- 하더라. 이게 엄마의 속마음이고 진심이다
엄마가 수술하고 재활하려고 작은 병원으로 옮겼을 때 한 달 보름 동안 재활은 커녕 거의 반 죽음이었다. 말도 안 나오고 걸음도 떼지 못해 질질 끌고 정신 이상 증세까지 보여 너무 놀라 다시 수술한 큰 병원 옮기기까지 또 보름이 걸리고 치료비보다 간병비가 더 많이 나오는 병원 생활 보름 동안 엄마는 입원하기 전부터 그냥 이대로 집에 가고 싶어 했고 보름에 한 번 주말에 집에 왔다가 하룻밤 자고 병원 가기 싫다고 하는데도 강제로 보낼 때 정말 마음이 안 좋았다.
작은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바로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상태가 워낙 안 좋아 큰 병원에 입원시키면서 그때 아빠는 엄마에게 아니 아빠 스스로에게 다시는 엄마를 병원에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빠가 힘들어도 이게 바로 다시 병원 입원을 망서리리는 가장 큰 이유다. 솔직히 엄마는 수술했기에 더 치료할 것도 또 재활이라는 것도 작은병원에서 경험했듯이 엄마의 의지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종일 침대에 누워 있다가 30분 재활 치료하러 간병인 손에 휠체어를 타고 가서 하는둥 마는등 집에서도 힘들다고 보행기 앞에 서는 것도 힘들어해서 못 시키고 있는데 병원에 입원한다고 해서 재활 치료를 제대로 받을까.
의구심이 들고 그나마 집에서 부축해주면 화장실이라도 가는데 병윈에서 어느 간병인이 두 시간마다 오줌누는 환자를 케어할까? 아마도 바로 기저귀를 채우고 지난번 작은 병원에서처럼 병원 침대에 화석이 되어 누워 있을 거다. 그때도 간병인에게 힘들어도 움직이게 화장실 좀 뎌려다 주라고 부탁했더니 허리 나간다고 하면서 차라리 대변이고 소변이든 기저귀 채우고 그냥 치우는 게 낫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빠는 병원을 못 믿는다. 아빠만 못 믿는 게 아니고 엄마도 병원을 불신하더라. 큰 병원 다시 입원할 때 하도 집으로 가자고 하기에 왜 집으로 그렇게 가려고 하냐고 물으니까 잘 나오지도 않는 말로 병원도 의사도 안 믿는다고 하더라. 걷게 해 준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그냥 집에 가서 이대로 살겠다고.
큰 병원 보름 동안 매일, 이틀에 한 번 꼴로 찾아갈 때마다 잠이 와서 눈이 감기면서도 아빠 손목과 옷을 꽉 잡고 놓지 않을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잘 때 슬그머니 나왔으니까 눈 뜨면 아빠가 안 보이니까 꽉 잡고 안 놔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전철 타고 돌아오면서 속으로 울었고 이번에 퇴원하면 다시는 벙원 안 보내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 상태가 나빠진다고 해서 다시 병원에 보내야 할까. 병원에 입원해서 나아진다고 하면 보내겠는데 아빠가 옆에 붙어서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간병인에게 맡겨야 하는데 지난 번 작은 병원에 입원할 때와 뭐가 달라질까. 그때도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좀 더 빨리 큰 병원에 옮겨서 치료를 받게 했더라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후회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힘들다고 해서 바로 엄마를 병원에 입월시킬까.
아빠는 아빠 엄마에게 미안한 것이 많듯이 아내에게도 미안한 게 많다. 지금 아빠가 엄마가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자꾸 물어보는 것은 할머니가 위암으로 거의 돌아가시기 전에 야크르트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사 드린 적이 있었다. 당시 야크르트 값이 얼만지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은 흔해빠지 음식이 그때는 상당히 귀했는데 할머니까 위암으로 음식을 못 삼켜 야크르트로 목을 축일 때 할아버지가 옆에서 집안 다 말아먹는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빠는 당시 할아버지를 상당히 미워했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굿을 하고 싶다고 해서 굿을 해드렸는데 굿 중간에 할아버지가 내 집에서 굿을 하면 안 된다고 굿판을 뒤집어 엎었을 때 할머니가 서럽게 울던 생각을 하면 아빠는 할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를 두고 아빠는 객지로 서울로 무작정 떠나왔다. 살면서 아빠는 그렇게 돌아가신 할머니가 불쌍했고 아픈 자기 아내를 그렇게 대하는 할아버지가 싫어서 명절 외에는 할아버지 생일 때도 한번도 고향을 찾은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모임을 나갔는데 어떤 분이 자기는 명절에 안 가더라도 부모님 생일 때 꼭 찾아뵙는다는 말에 깜짝 놀아서 그동안 아, 죽은 엄마에 사로 잡혀서 살아 있는 아버지를 외면했구나 싶어서 다음해부터는 명절에 못 가더라도 아버지 생일 때 한번 찾아뵈야지 술을 좋아하셨는데 청주 한 병이라도 사가야지 했는데 그 한 해를 못 기다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더라.
정말 많이 울었다. 아버지에게 미안해서...부부 사이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 아픈 엄마를 아버지가 머리 감겨주시는 걸 보고서 아버지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싶기도 했는데 아파서 스스로 머리고 못 감아서 얼마나 근지러웠을까 그러면서도 자식들은 그걸 모른다. 아니 아빠는 몰랐다.
지금 엄마가 먹는 커피가 엄마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른다. 몸이 나빠지면 당장 주지 말아야 하는데 저렇게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안 줄 수가 없어서 박스로 사다 놓고 하나씩 주는데 어떤 때는 두 개 주고 가라고 하는데 다 먹으면 또 줄게 하면서 하나 주고 출근하는데 이것도 잘못 하는 건지도 모르겟다.
그런데 살면서 이런 것은 있더라. 첫째가 어렸을 때 치킨, 케익을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케익이 먹고 싶다고 해서 안 사주면 꼭 병이 나더라. 그래서 병원가면 케익값보다 치킨값보다 더 들고 너들 고생만 시키고 했지. 그 뒤부터는 먹고 싶다는 것은 웬만하면 다 먹이면서 너들을 키은 것 같은데 엄마가 입에 당긴다고 해서 마시는 커피가 몸에 해로울까. 아빠는 지금도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