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토요漫筆/ 모멸감에 대하여 /김용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관에서 흉악하기로 이름난 도적 일당을 사로잡았다. 세 녀석이었다. 한 녀석은 무술에 뛰어나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너댓은 쉽게 자빠뜨리거나 죽일 수 있었다. 하나는 체구는 작지만 날렵하기가 날다람쥐 뺨치는 자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곱추에다 키도 작고 심한 안짱다리였다.
무술에 뛰어난 자는 관원을 때려눕혀 공무방해를 했음은 물론 상해를 입히고 살인까지 한 게 드러나 참수형이 명해졌다. 다른 하나는 담을 훌쩍훌쩍 넘어 날렵하게 도둑질은 했지만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기로 곤장 50대에 감옥살이를 하게 됐다.
이제 곱추에 안짱다리인 잘달막한 자만 남았다. 수령이 유심히 살펴보고는 말했다.
“이 자는 살려줘봤자 혼자서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겨우 망이나 보고 엽전 몇 개 쥐어주는 것만으로 족하는 조무래기니 그대로 내보내거라.”
그리하여 망만 본 자는 방면되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그 녀석은 관청 가까운 느티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자살한 그 자는 유서를 남겼다. 유서의 내용인즉, 비록 내 몸이 성치는 않으나 장안에 파자하게 이름을 얻도록 명도적들로 이름난 한패에서 당연히 나도 한 패거리로 도둑질을 하였거늘 누구는 벌을 주고 나는 몸이 실하지 못하다고 방면하다니 자존심이 상해서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여 목을 매다노라.
그렇다. 살아오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모멸감이지 싶다. 가난하다고, 전문가집단에서 뒤쳐진다고, 계급이 낮다고, 가방끈이 짧다고, 못생겼다고 표나게 차별을 받으면 당사자는 결코 그때를 잊을 수가 없고, 언젠가는 보복을 하고 싶은 충동을 받게 마련이다. 끝내 보복할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상대가 곤경에 빠지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환호하며 그 불행을 즐겨서라도 맺힌 한을 풀게 된다.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그 적대자를 이기는 길은 그 사람보다 오래 사는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권력을 가졌다고, 가진 게 조금 더 많다고, 위계가 조금 앞섰다고, 조금 더 잘났다고 뒤쳐진 자를 괴롭히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톡톡히 받기 마련이다. 특히 제 직분이나 권력을 악용하여 누군가를 패가망신시키려 했다면 결코 그 죄업의 결과는 대충 끝날 일이 못될 것이다. 그가 저지른 악행들이 암암리에 차곡차곡 쌓여 어느 순간 하이리히법칙의 결과처럼 크게 폭발하기 때문이다. 현 정세에서 나대는 자들 가운데에 ‘똥 친 막대기’꼴로 추락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한풀이 대상으로 씹힐 인물이 엿보여 안타까운 마음에서 몇 자 적어봤다. ♣
/어슬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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