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 망중한 자전거기행
자유인 조동화는
세월앞에 장사없다는 격언처럼 가는 세월 막을수 없어 오늘도 세월과 씨름하며 두발자가용으로 자전거페달을 굴리며 표정 송병우 묘역과 석불사를 답사하였다.
현영동을 지나 황등천을 거쳐 석기마을 삼기석재공장 송병우묘역 연안이씨문적박물관 석불사거리 석불사를 자전거로 30km 달리면서 망중한을 보내였다.
망중한은 앞으로의 계획보다는 흘러보낸 시간들의 생각에 젓어보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이란 필요없는 일이지만 인생은 추억을 먹고 사는것이기에 종종 과거를 회상해 본다.
송병우(1874.5.23.-1942.12.19. 69졸)는 어떤인물이냐면 만석군의 손자로 태어나 일제하 왕궁수리조합장을 하면서 왕궁저수지를 축조하는데 공이 컷고, 참봉으로 근무했으며 왕궁저수지위에 함벽정(涵碧亭)"을 지었다.
1937년 김녕한(金寗漢)이 쓴 함벽정기 현판에 의하면 ‘재물을 바치고 정력을 기울여 제방을 쌓아 엄청난 물을 호수에 채워 가뭄을 해결한 공로자’라고 쓰여 있어 왕궁저수지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함벽정(涵碧亭)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왕궁저수지(王宮貯水地)의 제방이 완성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고장의 대부호 였던 송병우(宋炳雨)가 주변의 빼어난 경치를 즐기기 위해 건립(建立) 누각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송병우의 묘역은 삼기석재공장 부근 석기마을 도로를 지나다보면 솔찬히 잘 단장된 묘역이 있는곳이 송병우묘역인데 조선시대 큰 벼슬이 아니어서 신도비는 아니나 상당히 크게 망부석과 석등이 있었다.
송병우는 일제하 왕궁초등학교, 삼기초등학교, 전주인후초등학교를 설립한 공로가 있으며 그 외에도 왕궁과 삼례가는 도로를 건설하는 등 지역사회에 이바지하였음으로 왕궁면사무소앞에는 참봉 송병우 적덕비(1929년)가 세워져 있다.
왕궁교회 아래 송병우 선생이 살던 고택은 1000여평의 부지에 송병우 증손녀가 늘푸른 수목원과 왕궁다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제하 왕궁면의 인물 진천송씨 송병우(1874.5.23.-1942.12.19. 69졸)는 표옹 송영구 (1556~1620 65졸) 우산종중의 후손으로 송병우 일생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초여름의 6월을 맞이하여 푸른 녹음의 자연을 맛보며 망중한(忙中閑)의 시간 나만의 작은행복 망중한으로 즐거움을 찾아가자.
그냥 그려려니 세상이 좋으니 그냥 열심히 사는것이지.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이런 명언을 했지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일에 열중하라. 이것이야말로 이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약보다도 강력한 효력을 지닌 영약인 것이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감사합니다.
행복합시다.
석불사(石佛寺)
위치 :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273
【석불사(石佛寺)】는 본래 대한불교화엄종에 소속된 사찰이었으나 1994년 정운이 주지로 부임한 뒤 한국불교화엄종으로 소속을 바꾸었다. 현재 한국불교화엄종의 본산이다. 발굴된 유물로 보아 백제 무왕(재위:600∼641)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3년에 폐사로 남아 있던 절터에서 석불이 발굴되어 이를 보호하기 위해 미륵전을 짓고 사찰 이름을 석불사라 했으며,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 때의 기와도 많이 발굴되었다. 1976년 휴암(休巖)이 주지로 부임하여 10여년 동안 대웅전과 요사·산신각·일주문 등을 세우는 등 크게 중창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종각·요사채·일주문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1990년에 새로 지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에 석불좌상을 비롯하여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지장보살의 삼존불과 지장보살·신중·독성·산신·제석천룡의 탱화가 있으며, 괘불함과 소종·법고 등도 놓여 있다. 1908년에 제작된 제석천룡탱화 이외에는 모두 최근에 만든 것들이다. 1992년에 세운 일주문에는 서경보가 쓴 '미륵산석물사(彌勒山石佛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유물로는 보물 제45호로 지정된 익산연동리석불좌상이 전한다. 1963년에 이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관음전을 지었으며, 1990년에 대웅전의 주불로 모셔졌다. 이 석불좌상은 얼굴 부분이 파손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칼로 얼굴을 내리쳤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출처; 두산백과>
**더 늦기전에**
이제는 늦기 전에 인생을 즐겨라
되게 오래 살 것 처럼 행동하면 어리석다.
걷지도 못 할 때 까지 기다리다가
인생을 후회하지 말고
몸이 허락하는 한, 가보고 싶은 곳
여행할 곳은 가보라
질병을 기쁨으로 대하라
가난하건 부자건, 권력이 있건 없건
모든 사람은 생로병사의 길을
갈수 밖에 없다.
혹시 병들더라도 겁먹거나
걱정하지 마라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아닌가?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목숨은 하늘에게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기회있을때마다 옛동창, 옛동료, 옛친구들을
만나라.
그 회동의 중심은 단지 모여서 먹는데
있는게 아니라
인생의 남은 날이 얼마되지 않은데 있다.
돈!
은행에 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돈은 쓸 때에 비로서 돈이 되며
죽기전에 쓸 수 있는 돈만이 내 돈이다.
나이들어 쓰는 돈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돈과 사랑이 남아 있다면 얍삽하게
아끼지 말고 베풀어라
늙어가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사고 싶은 것 있으면 꼭 사고 즐길거리
있으면 꼭 즐겨라.
아껴야 할 것은 노년의 시간이고
노년의 생각이고 노년의 건강이다
자신이 자신을 진정한 최고로 대접하며 살자.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