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자 부대 내무반 페치카 앞에서
(만24세 때인 1979년 12월 말)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명월리 79연대 3대대 12중대 4소대
이기자 부대 31개월 군복무
1978년 7월 군입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명월리 27사단 79연대 3대대 12중대 4소대, 이기자 부대, 최강의 교육사단, 병장제대!
명월리, 사창리, 광덕리, 실내고개, 도마치고개, 사방거리, 다목리, 화악산, 대성산!
죽을 것만 같았던 행군, 또 야간행군, 야간매복, 영하20도 혹한기 훈련, 산악구보, 사역동원, 벙커․화목․제설작업, 10분간 휴식!
나의 존재를 시험한 2년 7개월 군복무를 하면서, 육군 정량도 못 찾아먹은 총30일 휴가, 무척 귀했던 거북선 담배, 훈련 중 텐트 안에서 싸리나무로 끓인 라면과 경월소주, 겨울철 불청객 옴!
여의도 국군의 날 행사에 차출되면 엄청 특혜를 받았다고 여기던 명월리 군생활! 부대의 훈련이 3박 4일 유격훈련보다 더 힘들었고, 훈련양과 강도면에서 육군 중 최고로 평가 받았던 27사단!
10일 간의 말년휴가를 마치고 귀대할 때 소대원들에게 주려고 어머니가 해주신 떡 2말을 합천에서 부대까지 들고 갔던 기억들…
내 철모 앞쪽에 ‘超人(초인)’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57㎜ 무반동총(20.38㎏)을 매고는 중대․대대 훈련, 연대 RCT, 사단 FTX, Team Sprit 훈련, 100㎞ 행군을 무지막지하게 했다.
야간행군 중 산골 민가에서 새어나오는 흐릿한 불빛을 부러운 눈으로 보면서 나의 가족과 고향을 한없이 떠올리며 걷고 걸었고, 일병이 될 때까지 가해진 구타. 하지만 나는 후배들에게 손찌검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제대 7일 전까지 내 식기는 내가 닦았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군대와 같은 특수조직에서도, 군기잡기와 전투력 증강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구타와 모욕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31개월 말단 소대원 생활을 통해 처절하게 체험했다.
지휘관이나 고참(선임병)이 부하 및 후임병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솔선수범해야만 전투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경험했다. 규정을 위반한 병사에게는 상응한 얼차려를 시키면 되는 것이다. 따스한 인간애와 전우애가 없는 병영생활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당시에는 의례적으로 소대원들이 십시일반 갹출해서 제대하는 고참에게 해 주었던 ‘군대 재직기념패’가 나에게는 없다. 5천 원 하던 재직기념패를 내가 사양했고, 대신 그 돈으로 맛동산․라면땅.환타 등 과자와 음료수를 사다 놓고 소대원들과 함께 회식을 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개혁(?) 한답시고 그렇게 실천한 것이다.
지금도 가끔 소대원들과 함께 만든 빛바랜 추억록(追憶錄: 노트) 속에 거칠게 보낸 나의 군생활을 떠올린다.
잔설(殘雪)이 남아 있던 1990년 2월에 홍은동 집을 출발하여 일동, 이동, 캬라멜고개를 넘어 내 청춘을 보낸 79연대 12중대 4소대에 가 보았다. 내 전우가 군기위반 벌칙으로 팠던 우물이 전설로 남아, 후배 부대원들에게 맑은 물을 제공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은 국방의 의무를 100% 다 수행했다. 대판(大阪) 제일관서공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부터 7년여 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하시면서 지리산 지구대 전투에 참여하신 아버지, ROTC 8기로 1970년 홍천 야전수송교육대에서 교관으로 군복무를 했던 형, 그리고 학사장교로 1983년 경산에서 201특공여단 소대장으로 군대생활을 한 동생, 모두 군복무를 마쳤다. 아버지의 사위 3명과 외손자 4명 등 모든 남자들이 현역으로 입대하여 장교 또는 병장으로 군복무를 완수했다.
내 아들은 직계가족병 제도가 있어 자원 입대하여, 내가 근무한 이기자 부대 79연대 12중대에서 전투병으로 군복무 중이다. 대견스럽다.
아들아! 지금의 힘들고 빡빡한 군복무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인생의 고비마다 큰 용기와 힘이 될 게다. 즐기며 인내하면서 젊음을 시험해 보려무나.
대한민국 국무위원 중에 제대로 군복무를 한 사람이 국방장관 밖에 없는 한심한 나라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일 것이다.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우리는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런지.
http://blog.naver.com/antlsguraud
첫댓글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네들은 의무를 다하는 그런 국민들이죠.. 그것 원칙입니다. 원칙대로 살아도 손해없는 그런 나라 만들자구여~
군 복무 당시를 추억할 수 있는 좋은글을 만나 반갑습니다
이곳 이기자전우회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정회원 이상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회원 가입을 부탁합니다 규칙은 규칙이니만큼 서로 지켜가야 되지않겠는지요~~
5분대기조 운전병하느라 잠 안자본 소대가 없습니다..
용섭 선배님 잘 지내죠
두식아 반갑다...
넌 82년 2월 군번이였지...
대 고참님이시네요 57mm? 90mm 무반동총 소대가 4소대
선배님 시절에 일병달고 내무반 페치카 앞에서 여유로운 자세로 책을볼수가 있었나요..?? 궁금허네요..
제가 일병 달고 나서는 우리 소대만은 구타가 없었답니다.
엄청 고된 훈련속에 상당히 자유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나름대로 책도 많이 보았죠. 31개월 동안 휴가를 30일밖에 찾아 먹지 못했지만...
몸으로 때우고 제대했답니다.
하여간 이기자 군 생활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2달여 정도 복무 혜택을 봤군요~~~
고생많으셨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매일밤 계속되는 매타작에 ...군 1년 지나는 동안 탈영 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걱정할까봐 그 어려운 고초를 견뎌 냈던때가 엇그제 같습니다
지난 날 군 생활이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힘겨웠던 군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아련한 추억과 시절이 그리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