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제가 법원소식지 7월호에 게제한 글입니다. 일독하시고 애향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
내 고향 상주이야기
내가 태어났고 내가 살다가 내가 묻힐 땅 상주 !
뒤로는 국토의 허리인 백두대간이 뻗어있고, 앞으로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아름다운 삼백의 고장 상주 !
이곳 상주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내 고향 상주이야기를 해 보겠다.
내 고향 상주의 유래
우리 상주는 삼한시대인 B·C 58년에 진한의 영토로 사벌면 금흔리에 사벌왕국이 있었고 현재도 이곳에 사벌왕릉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5주의 하나로 사벌주라 하였고, 757년 경덕왕 16년에 상주로 개칭하여 10군 30현을 관할하였는데 그 영역으로는 현재의 안동 청송 예천 영주 풍기와 영동 이남의 의성 군위 선산 문경 김천이었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년) 사벌주가 상주로 개칭되어 그 명칭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995년(성종14년) 전국을 10도 128주 449현 7진으로 나눌 때 상주는 12주 48현을 관할하는 큰 주가 되었으며 경상도를 영남도(상주) 영동도(경주) 산남도(진주)로 나뉘었다.
조선시대인 1392년 태조원년에 경상감영(현, 도청소재지)을 경주에서 상주로 옮겨와 200여 년간 경상감영이 있어 상주가 경상도의 중심지였다는 기록이 대동지지 증보문헌비고 한국지명총람 한국지명연혁고에 있다.
근세인 1914년 상주군과 함창군이 통합하였고, 1986년 상주시․군이 분리되었다가 1995년 도농복합도시의 통합에 따라 상주시로 개편이 되어 현재 1읍 17면 6동의 행정구역이 있다.
면적은 1,254.82제곱킬로미터, 가구 수는 43,000가구에 인구 106,000명의 중소도시 형태이다.
사실 600여 년 전에 경상도의 중심으로서 200년간 도청소재지였고 인구가 가장 많을 때인 1970년대에는 260,000명이였던 것을 생각을 할 때 지금은 많이 왜소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 고향 상주는 경상도의 뿌리이자 교통의 중심지이다.
전국을 여러 지방으로 나눌 때 상주가 국토의 중심으로 그 중앙에 위치해 경상도의 뿌리가 된 것이다.
상주가 1012년(현종 3년) 전국의 8목 중의 하나로 상주목이 설치되어 이때부터 경주와 상주를 합쳐 경상도가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지지 고려사에 실려 있다.
우리 상주가 경상도의 뿌리가 된 것은 지형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이고 뒤로는 백두대간이 앞으로는 낙동강의 본류가 시작되어 평야가 넓고 땅이 기름져 풍요로워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상주는 경상북도 서북쪽의 내륙에 위치한 도농복합형 도시로서 동쪽으로 구미시와 의성군, 서쪽으로 충북의 보은군, 옥천군, 괴산군, 남쪽으로 김천시와 충북의 영동군, 북쪽으로는 문경시와 예천군으로 접해 있는 북부지역의 교통요충지이다.
한반도 지도를 놓고 좌우상하로 나누어 볼 때 우리 상주가 그 중심에 있다.
이런 관계로
4개의 고속도로(I.C = 6개, J.C = 2개)중 중부내륙고속도로(마산 - 상주 - 여주) 청원간고속도로(상주 - 청원) 2개가 개통이 되었고, 영천간고속도로(상주 - 영천, 2013년 개통예정) 동서6축간고속도로(상주 - 영덕, 2015년 개통) 2개가 개통을 앞두고 있다.
국도3호선(상주 - 김천) 국도25호선(상주 - 낙동 - 가산 - 대구) 국도34호선(상주 - 문경 - 예천 - 안동) 국도36호선(상주 - 예천 - 영주 - 봉화) 국도59호선(상주 낙동 - 의성)의 5개의 국도가 있어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의 중심이다.
4개의 고속도로와 5개의 국도로 서울까지 90분, 부산까지 100분, 대구까지 60분, 김천 구미 KTX역사까지 20분, 포항까지 70분, 대전까지 50분에 도착할 수 있어 상주가 명실상부한 교통 중심도시이다. 따라서 앞으로 많은 공장과 물류단지의 유치로 산업도시로의 발전이 크게 기대된다.
내 고향 상주는 낙동강의 본류이다.
강원도 황지에서 발원해 영남의 내륙을 관통하여 부산 앞바다에 이르는 낙동강은 그 길이가 1300리 이다.
그러나 낙동강의 본류를 이야기 한다면 안동에서부터 상주 사벌 퇴강까지 흐르는 반변천과 봉화에서 오는 내성천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영강이 합쳐 비로소 강다운 강이 된다고 하여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부터 부산 앞바다까지의 700리를 낙동강의 본류라고 한다.
이 낙동강 본류 700리 중에서도 사벌면 퇴강리에서 낙동강의 나루터가 있던 현재의 낙단교까지를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이 구간에 광활한 이안들 신흥들 사벌들이 있고, 곳곳에 층암절벽을 이루어 중국의 적벽을 연상케 한다는 국수방산(비봉산)의 기암절벽이 있으며 낙동강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경천대가 있다.
낙동강(洛東江)의 이름은 삼국시대부터 불리었는데 그 유래를 보면 원래 상주를 상산 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중국의 산동성의 상산의 4호의 고장을 비유해 지은 이름이며, 낙수(洛水)는 중국 하남성의 낙하(江)로서 낙서가 출현한 내라는 뜻인데 낙서란 물길을 다스리는 신령한 거북을 뜻하는데 이 낙(洛)자와 낙동강이 상락의 동쪽에 와 강다운 강이 되었다고 하여 이 동(東)자를 따 낙동강이라고 하였으며, 황지에서 출발한 물길이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서 합쳐져 이곳에서 강다운 강이 되었다는 지점이 지금의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이다. 이렇게 본다면 낙동강의 본류가 상주인 것이다.
정부의 4대강 유역의 개발에 따라 앞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된다.
내 고향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다.
상주하면 삼백의 고장으로 삼백의 고장 하면 상주로 널리 알려졌다. 최근에 고교생들의 골든벨을 울리자의 퀴즈 프로그램에 “삼백의 고장인 상주의 삼백에 들어가지 않는 것”의 문제가 출제 되기고 했다. 삼백이란 세 가지의 흰색을 말하는데 쌀, 곶감, 누에고치가 상주에서 많이 생산이 된다고 해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첫째 쌀의 생산이 많은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낙동강을 배경으로 풍부한 농업용수를 바탕으로 사벌들, 이안들, 함창들, 낙동들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이 1985년도 기준으로 강원도에서 생산되는 양의 두 배가 되었다. 또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공검지를 중심으로 굴사지, 불암지, 대제지, 기지 등의 관개시설이 일찍부터 발달이 되어 상주가 고대시대부터 곡창시대라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둘째 곶감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곶감을 희다고 분류할 수 있느냐를 놓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감의 껍질을 벗겨 말리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당분인 하얀 가루가 생기는데 이를 한자로 시설(柿雪)이라고 한다. 건조된 감에서 이 시설이 생긴 것을 곶감이라고 한다. 감의 원산지는 한국 중국 일본이며 현재 한국의 주된 최고의 품종은 “상주둥시곶감”이다. 상주에서 생산되는 곶감이 전국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품질에 있어서도 단연 최고의 명성을 날리고 있고 명절 때마다 우체국 택배 1위를 상주 곶감이 차지하는 것만 보아도 그 명성을 알 수가 있다. 곶감은 술로 인해 부족해 질 수 있는 비타민 B군의 일종인 엽산(葉酸)의 함량이 높아 애주가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고, 감식초 또한 천연 음료로 인기가 좋다.
현재 상주시 외남면에 1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상주 곶감 테마도시 숲 조성”의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셋째 상주는 양잠의 고장이다. 누에는 뽕나무 잎을 먹고 자라서 하얀 집을 짓는데 그 집에서 명주를 생산해 의복을 만든다. 그 결이 너무 좋아 비단이라고 한다. 상주가 명주로 유명하다는 것은 고려시대에 이색이 쓴 육익정에 기록이 되어있다. 그 명맥을 이으려는 듯 오래전부터 잠종장이 상주에 있고 전국적으로 함창 명주가 유명하고 현재 함창에 명주박물관이 있다. 또 누에가 고치를 만들기 전에 누에를 급속하게 건조시켜 당뇨병 치료제와 균을 뿌려 발효시킨 동충하초를 만들고 있다. 30년 전만 하여도 이때쯤에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와 뽕따는 처녀들로 들판이 아름다웠으나 지금은 중국산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또 다시 시간이 지나면 상주 명주의 옛 명성을 다시 찾을 날이 꼭 올 것이다.
내 고향 상주는 선비의 고장이자 충절의 고장이다.
예로부터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다고 했듯이 상주 또한 현존하는 서원의 수가 15곳이나 되고 없어진 서원을 합치면 그 숫자가 20곳을 넘고 있다.
또 한국의 예학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우복 정경세를 비롯한 많은 선비가 배출된 것을 보면, 전래를 답습하는 조선조 선비의 전형으로서가 아니라 독창적인 학문세계를 개척해 간 선비들이 상주에 있다는 것은 상주가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현존하는 서원으로는 상주향교를 중심으로 도남, 흥암, 옥동, 옥성, 효곡, 봉산, 임호, 속수, 연악, 청암, 낙암, 근암, 서산, 봉강, 도안 서원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원이 상주시 도남동 175번지에 위치한 도남서원이다. 그 유래는 1605년에 세워졌고 도정사, 내삼문, 일관당, 정허루, 사행당, 손학재, 민구재, 전사청, 외삼문, 장판각, 관리사, 풍우단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는 포은 정몽주, 한원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회재 이언적, 소재 노수신, 서애 류성룡,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상주는 고대 때부터 군사의 요충지 역할을 해 왔는데 그 유래를 보면 신라 통일기에 이 땅이 백제와의 전투에 전초가 된 점, 몽고란을 대첩으로 이끈 점 등과 상주는 상주 사람이 지킨다는 자립투지로 상주인은 단 한사람도 적에게 부화굴종한 자가 없어 선조대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상주 전역에 조세와 부역을 감면한 역사를 보면 상주가 충절의 고장임에 틀림이 없다. 또 임란 때에 의병으로 뭉쳐 결사 항전한 역사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임란전적기념관이 있다.
내 고향 상주는 자전거의 도시다.
지금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여러 가지의 방안들이 국가 정책으로 마련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이 자전거 문화이다.
상주하면 삼백의 도시와 동시에 자전거의 도시로 유명하다 우선 그 보유대수를 보면 인구 106,000명에 자전거가 85,000대 로서 상주의 가구 수 43,000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한 가구당 2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다. 사실 상주의 아파트를 돌아보면 자전거 천지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전거를 즐겨 타 자전거 타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상주의 지형이 평지가 넓고 산이 적어 자전거 타기에 적합한 도시형태여서 일찍 자전거 문화가 발달된 것으로 추측되며, 상주시 남장동 소재에 자전거 박물관이 있어 자전거의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상주의 자전거 문화를 100년 전으로 올라가 보면 당시 토지를 많이 보유한 대소 지주들과 상인들이 자전거를 구입 교통수단으로 사용을 하였는데 그 가격이 자그마치 쌀 10가마였다고 한다. 현재의 쌀 한가마를 200,000원으로 볼 경우 자전거 한대에 2,000,000원 이 된다. 현재 자전거 한 대에 100,000원 정도 하는 것을 보면 물질문명이 얼마나 발달이 되었나를 알 수가 있다. 1960년대에는 자전거 교습소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양쪽으로 둑을 쌓아두고 그 중간에 길을 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배웠는데 한쪽으로 넘어지면 발이 둑에 닿을 수 있도록 해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자전거를 타면 몸의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어 늙어서는 풍을 예방할 수 있고 다리의 근육이 단단해 져 무병장수 할 수가 있다. 상주의 노인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도 젊을 때부터 자전거 타기로 몸의 균형이 잘 이루어졌고 하체의 단단한 근육으로 인해 잔병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노인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많이 볼 수가 있다.
또 재미있는 것은 1925년도 지금부터 80년 전에 상주역 앞에서 전국자전거타기대회가 열렸는데 상주출신의 박상헌(당시 17세) 선수가 우승을 했다.(현재 상주역 대합실에 사진이 걸려있다) 이 박상헌 선수가 우승을 하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연습을 하였는가 하면 새벽에 집을 나서 자전거로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에 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식으로 연습을 하였고, 모래주머니를 차거나 나무로 된 술통 10개를 싣고 훈련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MTB(산악자전거대회)가 상주에서 열리고 있어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내 고향 상주의 가볼 만한 곳
낙단교일원
먼저, 낙단교 주변을 소개하고 싶다. 이곳은 대구에서 50분, 구미에서 15분, 김천에서 20분 거리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어 좋고 느낄 거리가 있어 더 좋다.
혼자서나 부부나 연인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으면 낙동강의 본류가 흐르는 낙단교를 권하고 싶다. 다리 위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만감에 젖을 수 있다. 강류석불전(江流石不轉)이라고 했든가 “강물은 흘러가도 밑에 있는 바윗돌은 그대로 있다”는 뜻으로 언젠가는 우리들이 사라져가도 저 강은 그대로 변함이 없이 흐르고 있을 것을 생각을 해 보면서 ‘백 년 전에 저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본 사람은 어디로 갔으며, 다시 백 년 후에 저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볼 사람은 어디에서 올까’라고 생각해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흐르는 저 강물과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인생이 더없이 허망 해 진다. 좀 더 낙동강의 운치를 느껴보고 싶으면 비가 오는 날 낙단교 강둑을 우산을 쓰고 걸어보는 것도 별미가 있다. 낙단교가 서기 전에는 이곳을 건너려면 차도 사람도 소도 모두 뗏목으로 만든 배를 타야했다.
이곳에 한우축산 농가들이 조합을 만들어 경영하는 한우고기 전문점이 많이 생겨 아주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한우고기를 맛볼 수 있다. 가족 친지들과 한번 찾아보시면 볼거리 먹을거리 느낄거리로 후회 하지 않을 것이다.
찾아가는 길은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가산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와 국도 25호선을 이용 상주쪽으로 오다가 낙단교를 지나자마자 낙동분기점으로 나오면 바로 그곳이다.
경천대 일원
낙동강은 영남의 젖줄이라고 한다.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서 시작된 낙동강 본류는 상주 선산 구미 달성 고령을 거쳐 부산까지 700리길을 수많은 애환을 낳으며 흘러간다. 영남인에게 낙동강은 온유하고 넉넉한 어머니의 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먼 옛날부터 낙동강 물을 끌어당겨 농사를 지었으며, 산업화가 시작되자 강물을 퍼올려 공장을 돌렸다. 언제나 한가롭게 굽이치며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던 낙동강. 그러나 낙동강도 상주에서만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동쪽 면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룬 천주봉과 만나 부딪히며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이 아찔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노라면 여기서만은 생활 속의 낙동강이 아니라 환상 속의 물줄기라는 느낌이 든다. 이처럼 낙동강의 아름다운 전경은 끊어질 듯 말 듯 하며 계속 이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경천대이다.
경천대에는 하늘로 우뚝 솟아오른 절벽 위로 송림이 우거져 있고, 반대편에는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그 사이로 푸르디푸른 강이 흐른다. 이 눈부신 절경을 경천대에서 내려다보면 이곳의 빼어난 경관에 대한 찬양과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수영장을 비롯한 전망대, 어린이 놀이시설, 야영장 등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기 좋다.
그뿐만 아니라 경천대에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젊었을 때 이곳에서 용마와 더불어 수련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때 장군이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먹이 통이 남아 있다. 또 병자호란으로 인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로 끌려갈 때 따라가 함께 고생했던 우담 채득기 선생이 후일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했다는 무우정이 있다.
인근인 사벌면 화달리에 상주가 자랑하는 사벌 왕릉이 있다. 옛날 이 일대를 지배하던 부족국가 사벌국의 왕릉이라 전해지고 있다. 능 아래에 사벌국왕릉사적비와 사벌국 왕 신도비가 있고, 근처에는 화달리 3층석탑(보물 제117호)도 있다.
함창읍 증촌리에는 전고령가야왕릉이 있는데, 1592년 선조 25년 경상도 관찰사 김쉬와 함창 현감 이국필에 의해 묘비가 발견되어 가야왕릉임이 확인되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벌면 삼덕리에는 '육지의 이순신'이라 불리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 장군의 유적지인 충의사가 있다. 공검면 오태리에는 오태저수지가 있으며, 사벌면 삼덕리에는 경천대관광농원이 있고, 주변에 상주박물관과 사벌왕릉이 있다. 약간 벗어나면 공검면 소재의 삼한시대 축조한 저수지인 공갈못 옛터도 있다.
경천대에는 야영장과 취사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입장요금은 무료이다.
찾아가는 길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인터체인지로 빠져나온 부근에 안내 표지판이 있어 찾기가 쉽고 상주시내에서 15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문장대 일원
속리산은 경북 상주시와 충북 보은군의 경계지점에 자리하는데 국립공원이며 그 면적의 약 1.8할이 경북 상주이고 약 8.2할이 충북 보은인데 속리산 최고의 자랑은 문장대이다. 이 문장대는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 역시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에 자리 잡고 있다. 속리산은 동식물의 보고이기도 하여 동물 580종이 살고 식물 672종이 생장하고 있다. 동물 중에는 조류 160종, 수류 240종, 곤충류 180종이 있고 특색 있는 것으로는 큰갓새, 붉은가슴갓새, 사향노루, 날다람쥐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 중에는 천연기념물인 망개나무, 고산 식물인 등대미호, 희귀식물인 백색 진달래와 주목 및 금낭화 등이 있다.
우리나라 중심부에 우뚝 솟은 속리산은 하나의 정기로 뭉쳐진 느낌을 준다. 험준하면서도 수려하고 유수하면서도 명결함이 곧 그것을 상징한다. 쌓아올린 듯한 기암괴석이 구름위에 높이 솟아 있는가 하면 길게 뻗어 내려 계곡을 이루고 적고 큰 봉만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고 바위의 우뚝우뚝 선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봉마다 각기 특징이 있고 계곡마다 느낌이 각각 다르며, 오르면 오를수록 더 오르고 싶고 걸음을 멈추면 떠나고 싶지 않은 곳이 속리산이다. 속리산의 그 장관을 바라보노라면 도취되어 호연한 남아의 기개를 용솟음치게 하고 대자연의 포근한 가슴에 묻혀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곳이 또한 속리산이다.
백두대간의 정점에 있으며 문장대에서 밤티재까지의 바위구간이 백두대간 중 가장 험난한 코스이고 이곳에 개구멍이 두개가 있는데 암석이 험해 우회할 수 없어 바위에 구멍을 파놓아 그 구멍속으로 배를 깔고 기어서 통과해야 한다고 해 일명 개구멍이라고 한다.
속리산은 낙동강, 한강 그리고 금강 삼파의 분수령이다. 산은 석산이요 계곡 또한 석천이라 물은 거울처럼 맑고 그 소리는 금곡처럼 아름답다. 천왕봉의 원출은 장각폭포를 이룬 다음 갈령과 피홧재에서 흐르는 물과 합류하여 옥녀봉의 허리를 안고 돌며 문장대의 원출은 오송폭포의 장관을 자랑하면서 승무산 기슭에 이르러는 늘티물과 합하고 강선대에서는 천왕봉 물과 모두 만나서 도장산과 청화산 사이로 용유와 병천의 절경을 이루면서 쌍룡 30리 곡구를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백악산 보굴 원출은 옥량폭포를 날으듯 떨어져 늘티 서북쪽 원출과 갓티재 원출 삼파수가 합하여 절승 선유동 물을 흡수 화양구곡의 절경을 이루면서 유유히 흐르면 문장대 관음봉의 원출과 궁티와 용화온천물이 합류하여 한강 상류를 형성한다. 천왕봉과 형제봉의 서북쪽 원출은 삼가 저수지로 모여 묘막 원출과 더불어 금강의 연원이 된다. 이와 같이 산과 물이 서로 상부하여 조화를 이루니 가는 곳마다 명소요, 보는 것마다 절경이다..
대체로 속리산의 전면 상주지역은 자연이 스스로 절경을 이룬 보고로 천왕봉 입석대, 신선대, 문장대, 관음봉, 형제봉, 도장산, 청화산, 강선대, 사모봉 등의 봉만과 오송, 장각, 복호, 옥량, 쌍룡 등의 폭포가 절승을 이루는 반면 배면의 충북지역은 법주사를 비롯하여 복천암, 중사자암, 상환암, 상고암 등 사찰에 국보와 보물이 보존되어 있어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써 예술의 극치를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속리산은 말이나 글이나 그림 그 어느 것으로도 형용을 불허하는 절묘와 신비의 영산이다.
이 산에 들어가면 누구나 권력욕이나 물욕이 없어지고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꺾거나 짐승 한 마리를 잡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고 대자연의 장엄과 신비 앞에 숙연해짐을 느낄 수가 있다. 이 산은 신령하고 웅장하고 정기가 있어 인간의 세속으로는 따를 수도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예로부터 세속을 떠난 산, 즉 속리산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찾아가는 길은 상주-청원간 고속도로에서 화서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와 괴산쪽으로 30분정도를 달리면 화북쪽에서 속리산쪽으로 올라가는 국립공원 화북사무소와 주차장이 나온다.
성주봉 자연휴양림
상주시 은척면 남곡리 성주봉(해발606m)기슭에 200ha규모의 성주봉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림내 휴양과 휴식에 필요한 시설만을 설치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으며, 깊은 계곡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휴식을 할 수 있는 숲속의집 6동과 단체용 산림휴양관 11실이 숲속에 숨기듯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고, 단체행사가 가능한 수련관 8실 및 세미나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59여개의 야영데크와 텐트장 5개소, 캠프화이어장 1개소, 산림교육장 1개소가 있어 다양한 숲속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이밖에도 편안한 정자와 취사장, 구름다리, 물놀이장, 분수시설등도 마련되어 있다. 성주봉 천혜의 150m 암벽등반코스와 잘 정비된 산책로, 독특한 산행코스 5개소를 마련하여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였으며 금불초 외 15종의 야생화 18,000본 및 감초 등 100여종의 약초를 관찰할 수 있는 약초동산(5,490평)과 약초길(1.2Km)도 볼 수가 있다.
찾아가는 길은 상주시내에서 문경방향으로 가다가 외서방면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있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상주시내에서 약 30분 거리이다.
상주의 축제
상주에는 자전거축제와 곶감축제가 있었다. 현재는 동화축제가 개최되는데 그 시기는 10월 말경에 개최하고 있으며, 금년도 개최는 2009년 10월 8일부터 10월 11일까지 4일간 상주 북천 고수부지 일원에서 “어린이에겐 꿈을, 어른에겐 추억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가 담긴 빛깔, 소리, 움직임 그리고 체험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누구나 참여하고 체험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동화축제로 개최된다.
상주 동화나라축제에 참가하면 누구나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황금들녘의 허수아비처럼, 가을의 전령 고추잠자리처럼 이야기가 있고, 주제가 있고 꿈과 희망을 가져갈 수 있는 축제의 공간이 동화도시 상주에서 펼쳐진다.
축제의 프로그램은 동화나라카니발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인형극이 한자리에 모인 동화나라 인형극축제, 해외초청 돈키호테 공연, 해설이 있는 음악공연, 국내 최초의 뉴에이지 음악 페스티벌, 별하늘 총총 영화제가 있으며, 우당탕탕 체험마을에서는 소곤소곤 이야기마을, 두근두근 마법의 책마을, 알록달록 그림 이야기마을, 꼬물꼬물 흙 이야기마을, 흥얼흥얼 노래이야기마을, 꿈틀꿈틀 애니메이션마을, 시끌벅적 놀이마을이 재미있게 전개되고, 곶감 만들기, 밤·고구마 구워먹기, 국화 및 산내들 전시회 등 이 있어 누구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우리 어릴적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접해 볼 수 있는 전시 공간과 시식 코너도 마련되어 있어 건강의 중요성과 동심을 일깨울 수 있다.
찾아오는 길은 상주지원 바로 앞 북천고수부지일원에서 행사가 있어 상주지원을 찾아오면 편리할 것이고 주차는 상주지원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마치면서
지금까지 내 고향 상주이야기를 해 보았다. 처음에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를 두고 몇 날을 고심했다. 그러나 내가 느낀 대로 이야기 하면 되겠지 하는 자신감을 얻어 자료를 수집 하면서 상주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어 아주 유익한 기회가 되었다.
처음에 다섯 페이지도 쓰지 못할 거 같았는데 아직 이야기 하지 못한 견훤산성, 동학교당, 풍산류씨수암종택, 우복정경세 종가집, 상주예술촌, 효자정재수기념관, 임란전적기념관, 백두대간의 주봉들인 백학산, 봉황산, 구병산, 청화산 등과 백두대간 주봉은 아니지만 상주의 명산인 노악산, 갑장산, 천봉산들과 남장사, 북장사, 갑장사 등 13개의 사찰들, 화북면상오리 7층석탑 증촌리석불좌상을 비롯한 14점이 넘는 보물들하며, 천년기념물인 화서반송과 운평리 구상화강암, 오송폭포와 장각폭포, 임진왜란 때 궁핍과 질병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지역의 13개 문중이 사재를 내어 만든 존애원 등의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지면의 한계상 사진을 한 장도 싣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상주를 한번 찾아오셔서 직접 보는 것으로 사진을 대신 하였으면 한다.
고향을 그려보면 누구나 다 이런 느낌이 들 것이다. 늘 포근했던 엄마의 모습, 동네 곳곳을 함께 누비며 뛰어놀던 친구들 그러나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는 시구가 말해 주듯 6월의 푸르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향의 들녘과 산천을 휘 덮고 있는데, 앞 냇가에서 송사리를 잡고, 뒤 산골에서 가재를 잡던 친구들은 보이질 않고 먼 산의 뻐꾸기 소리만 무심히 들려오니 옛 시절이 더 그리워진다.
첫댓글 상주에 대하여 여러가지 자료를 찾아 올리는라 고생이 많으셨어요. 몰란것도 많았은데 배울점이 너무 많네요 .
상주에서 나고자라도 자세히 몰랐던 부분을 상세히 적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좋은 자료많이 올려주세요 화이팅 !
좋은 자료 생산에 고생하셨네요. 잘 보았습니다.
글솜씨 잇는줄은 알앗지만....이렇게 재주가 잇다니...내 고향 상주 많이 알려 주심에 감사~~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