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김애리샤
사실 그녀는 따뜻해요
무엇이든 오래 지켜내기 위한 수를 쓰죠
밤낮없이 온 힘을 다해 엔진을 돌려요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운명이라 받아들이죠
심지어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불면증 환자처럼
웅웅웅 주문을 외워요
그녀는 당신을 위로하고 싶어해요 보세요
그녀를 열 때마다 아직까지 당신을 지탱하게 해 준
어머니 미소같은 은은한 빛을 보이자나요
지난 여름 이별하고 온 당신이
마시다 남긴 소주 반 병
네 번째 내민 이력서마저도 쓰레기가 된 날
쓰레기 같은 인생 자축하며 폭식하던
편의점표 오뎅 국물과 막걸리
한 때 코까지 처박고 파먹던 9급 공무원시험 기출문제집
기약 없이 시들어간 당신의 희망 첮던 날들을
싱싱하게 지켜주고 싶어해요 일종의 보호본능이죠
러시아에서 온 절단 동태 위로 아련한 향수병 같은 성애가 쌓였어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차가운 바닷속 어딘가를
꿈꾸듯 앓고 있는 것 같아요 희미하게
생태지와의 거리가 멀수록 추억들은 두껍게 쌓이죠
검은 비닐봉투 속에 갇혀버린 당신의 꿈은
몇도씨 쯤에서 폭설을 견디며 냉각되어지고 있는 걸까요
창작21 이천십팔년 제15권3호 042 가을호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노꼬메오름 외4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