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국토를 지키는 외로운 섬, 서해 최북단 ‘말도’를 가다
바다 위 철조망, 아무나 갈 수 없는 금단의 땅
해안둘레길 5.91km, 약 2시간 소요
말도(唜島)는 북방한계선(NLL) 남쪽 끝단에 위치한 조그마한 섬이다. 북한 연백평야와는 불과 5km 거리. 시야로도 북한 땅과 집들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리에 속한 섬이다. 민통선 내에 위치해 있고 군사목적상 특별지역이라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다.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45km. 주민들이 몇 명 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정기여객선이 다니지않으며, 군부대 및 행정당국의 특별허가를 받아 행정선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2021년 12월 21일(화). 광운대 섬해양정보연구소 이재언 소장과 함께 말도에 들어가기로 서도면의 허가를 받았다. 필자는 말도 방문이 처음이지만 이재언 소장은 이미 두 번이나 말도를 가본 적이 있다. 때문에 말도 입도 허가절차나 말도 주민 전화번호 등 섬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다.
말도는 강화군 선수선착장에서 먼저 여객선을 타고 볼음도에 간 후 볼음도에서 다시 허가받은 사람 만 행정선으로 갈아타고 들어간다. 볼음도 자체도 민통선 내에 있기 때문에 여객선 승선시 선착장 주둔 해병대 초병에게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주소, 방문목적 등 승선신고를 하고 검문을 받아야 한다. 강화 선수선착장에서 볼음도까지 소요시간은 55분-1시간, 볼음도에서 말도까지는 다시 35분-4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볼음도에서 말도까지 직선거리는 그리 멀지않은데 중간 바다 위에 뻘이 있어 배가 돌아간다. 말도 가는 행정선은 12월-2월 동계에는 월, 수, 금 3회 운항한다. 3월-11월에는 주 4회 운항한다.
벼르고 별러 말도 입도허가까지 받았는데, 아뿔사 12월 21일에는 날씨 때문에 볼음도 가는 여객선이 뜨지않는다고 한다. 9시 20분 출항시간에 맞춰 선수선착장에 가보니 안개가 너무 짙어 수십미터 앞도 거의 보이지않는다. 필자는 섬 여행을 많이 해봐서 안개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안다. 바다에서 안개는 태풍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정도이다. 수년 전 외연도에 갈 때도 안개가 짙어 출항을 2일이나 늦췄고 외연도에서 돌아올 때도 안개로 인해 여객선이 오지않았던 기억이 있다.
할 수 없이 강화도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여객선을 타기로 했다. 강화도에서는 그동안 못가봤던 최북단 평화전망대 및 월곶돈대 등을 돌아봤다. 민통선 내에 위치한 제적봉평화전망대는 남한에서 가장 가깝게(북한 개풍군 해장포와 최단거리 1.8km) 북한과 마주 한 곳이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말도에 들어간다 해도 숙소가 마땅하지않은 것이다. 말도 주민집에서 비공식적으로 하루이틀밤 신세를 지거나, (이재언 소장이 목사 신분이기 때문에) 말도 교회에서 묵을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두가지 모두 여의치않게 된 것이다. 행정선이 월,수,금 3회 만 다니므로 일단 말도에 들어가면 다음 행정선이 들어오는 이틀 간은 꼬박 말도에 머물러야 한다.
이런 사정으로 어렵게 허가받은 말도는 일단 포기하고, 기왕 강화도까지 왔으니 볼음도 및 주문도라도 돌아볼 생각으로 무작정 여객선을 탔다. 필자는 볼음도는 전에 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주문도 트레킹 만 기대를 걸어본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볼음도에 도착하기 직전 이재언 소장으로부터 급히 연락이 왔다. 말도 가는 행정선이 22일(수)에 가는데, 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어 말도에서 배가 40분 정도 머무를 예정이라 한다. 그럼 가보자. 기회가 생겼을 때 40분 정도라도 말도를 돌아보자.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서도면 재허가를 받고 말도를 갈 수 있게 됐다.
볼음도 선착장에서 말도행 행정선에 오르니 여러명의 승객이 보인다. 말도에 사는 주민들인지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특히 이들 중에는 임호운(73) 말도 이장도 계신다. 반갑다.
임호운 이장에게 우선 궁금사항 몇가지를 물어봤다. 말도 주민은 15명, 16가구. 임호운 이장은 고향이 황해도 연백 출신이다. 섬 면적은 0.5헥타, 섬이기 때문에 당연히 생업이 어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말도에는 배가 한 척도 없으며, 어업도 제약이 심하다. 군사분계선과 맞닿아 있어서 고기잡이를 나갈 수 없다. 고기잡이를 하다가 자칫 안개라도 끼고 바람을 만나면 북한 쪽으로 떠밀려 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는 왠일인지 그물도 못치게 한다고 걱정한다.
말도의 논 면적은 3만 5천평 정도. 결국 논 농사가 주업이 될 수 밖에 없다. 해안선 길이 5.91km, 한바퀴 도는데 정상적인 걸음으로 1시간 반-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꽤 넓다. 서도면에서는 주문도, 볼음도에 이어 세 번째 큰 섬이다. 아차도 보다도 크다.
교회는 있지만 은행, 구멍가게 등 편의시설은 전혀 없다. 교회는 현재 전도사 한 분이 있는데 보통 2년 정도 근무하면 목사가 돼서 나가고 다시 다른 전도사가 들어온다고 한다. 목사가 되기 전 벽지 근무인 셈이다. 먹을 꺼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말도에 들어올 때는 배낭에 먹을 것, 마실 것 등은 가지고 오고 잠자리만 주민들에게 부탁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행정선을 탄지 약 30여 분 후 드디어 말도에 도착했다. 군부대가 주둔하는 섬이라 선착장 시설은 잘 되어 있다. 마을까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도로도 깔끔하다.
좌측으로 멀리 함박도가 보인다. 2019년 9월에 함박도에 북한군 막사 및 인공기가 보인다고 하여 국회 및 언론에서 떠들썩했던 섬이다. 함박도의 주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번지. 행정구역상 주소가 말도의 부속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함박도는 NLL남쪽에 있는 남한의 섬이 아니냐는 논쟁이 있었지만 UN군사령부 및 국방부가 함박도는 NLL이북에 위치하고 있다는 공식적인 발표로 이후 이에 대한 논쟁이 잠잠해졌다.
이러한 상황과는 별도로, 함박도는 오랫동안 강화군 어민들이 이용하던 섬이었다. 이는 휴전 직후에도 계속되었는데, 1954년에는 강화도 어민들이 함박도 인근에서 새우잡이를 하다 난파하여 납북되었다 돌아온 적이 있으며, 1965년에는 인근 말도 어민들이 함박도와 은전도 근처에서 조개를 캐는 도중 갑자기 북한군이 나타나 112명이 납북되었다 8명을 제외한 104명이 송환된 사건도 있었다.
말도선착장에서 군부대 트럭에 편승을 부탁하니 마을까지 친절하게 태워다 준다. 말도 부락은 일반 어촌마을과 다름없이 평범하고 한적하다. 마을 입구에는 주민들이 쉴 수 있도록 정자도 세워져 있다.
마을 앞뒤로 논과 밭도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 게시판도 만나고 닭장도 눈에 띈다. 이 섬이 그렇게 오기 힘든 말도인가 의아할 정도이다.
임호운 이장은 마을 길에서 조병윤(82)이라는 분을 소개한다. 말도에서 출생한 유일한 토박이라고 한다. 젊었을 때 한동안 육지에서 살다가 나이 들어 다시 들어왔다. 볼음도에 사시는 Singalong의 전설 전석환 작곡가가 소개해준 홍덕기(70)씨도 만났다.
조병윤 씨는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이것저것 말도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군부대에 직접 전화하여 산정상 전망대에 가볼 수 있는지 문의하니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 말도를 떠날 시간이 가까워온다.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40분이 너무너무 짧다. 군부대 정상 전망대는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조병윤 씨는 어릴 적 함박도의 기억을 떠올린다. 군대 가기 전 20살 전후 때는 함박도가 행정구역상 말도리 산 97번지이니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 생각했었다. 함박도 옆에 작은 섬이 두 개 있는데 텐트치기 좋은 섬이었다. 함박도 해안에는 굴, 조개 등이 지천이었다. 작은 섬에 움막을 치고 일주일씩 묵으면서 굴, 조개 등을 채취한 기억도 소개한다. 그는 함박도가 언제부터 왜 북한 땅이 됐는지 궁금해 한다. 또, 함박도에서 가까운 우도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준다. 우도는 현재도 서해5도 중 하나인 남한 땅이다. 해병대가 주둔해 있는 무인도이다. 조병윤 씨가 어릴 적에는 우도에 8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볼음도 주민인 강덕신 씨의 할아버지 무덤이 지금도 우도에 있다고 알려준다.
이제 말도를 떠날 시간이다. 마치 이산가족을 만난 후 다시 헤여지는 기분이다. 일반인 방문이 힘든 금단의 섬 ' 말도'. ‘은둔의 섬’, ‘숨겨진 비경의 섬’을 제대로 보지못한채 떠나는 마음이 아쉽기 그지없다. 이번 방문이 불과 40분 이내의 짧은 시간이니 필자가 본 말도는 이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2박 3일 정도는 머물면서 해안길 트레킹도 해보고 별도허락을 받아 산 정상에 위치한 군부대 전망대에도 올라가 보면 섬과 마을 전경, 바다 건너 북한 땅 조망 등도 색다를 수 있다. 마을주민들로부터 말도의 역사와 살아온 이야기 등을 더 들어보면 보다 의미 있고 흥미로운 말도를 알게 될 것이다. 함박도, 용매도 등 NLL이북에 있는 인근 섬들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용매도에 관해서는 볼음도에 사시는 전석환 작곡가(87)를 만나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석환 선생님은 고향이 북한 땅 용매도 출신이다. 고향인 용매도가 그리워 용매도가 보이는 볼음도로 이사온 분이다. 용매도에 관해 글도 많이 쓰셨다.
전석환 선생님 댁에는 지금도 응접실 벽에 자세한 지명이 적혀 있는 용매도 위성지도 사진이 걸려 있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