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國境) 아가씨(복부일랑 작곡/김안라 노래) 1939년 발표
1. 임 실은 호로 마차 떠나갑니다. / 새파란 버들가지 그늘 밑으로
<馬車が 行く 行く 夕風に / 靑い 柳が ささや いて>
손수건 펄렁펄렁 마지막 작별 / 웃으며 보낼 적에 목이 멥니다.
<いとしこの 身は どこまでも / きめた 心は かわりや せね>
2. 앵무새 울어 울어 눈을 뜨면은 / 해 저문 창문 위엔 아라사 별빛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하소. / 편지를 쓰다 마다 다시 웁니다
3. 저 언덕 넘어갔던 호로 마차는 / 오늘도 깜박이는 등불을 달고
쓸쓸히 흔들흔들 돌아오건만 / 그대는 국경 넘어 무엇을 하오
4. 창문에 기대서면 가등 밑으로 / 비슷한 사나이가 지나갑니다.
말없이 바라보는 추억의 마음 / 이 몸은 한숨 많은 국경 아가씨
♧복부일랑(服部逸郞/핫토리 이치히로)-일본 작곡가
♧호로 마차(幌<ほろ> 馬車<ばしゃ>- 마을을 다니는 포장마차
♧역마차(駅<えき> 馬車<ばしゃ>)-먼 길을 가는 마차(馬車)
♧아라사(俄羅斯)-러시아 ♧하소-하소연 ♧가등(街燈)-가로등 ※호로(幌)-휘장(포장/덮개)
일제에 항거하는 조선족 군사들 / 일제(日帝) 때 한국가수 김안라(金安蘿) / 국경 아가씨 레코드판 표지
♧ 조선족 군사들 입에 긴 담뱃대(長竹)를 문 것으로 보아 평민(平民)이 아니고 양반(兩班)이다.
국경(압록강과 두만강) / 호로(胡虜/幌) 마차 / 역(駅)마차(미국 텍사스)
신기한 가족 이야기
나는 8남매의 막내로 강릉(江陵) 안땔(內月/현 강남동)에서 태어났는데 2살(1948년)때 학산(鶴山) 3리 금광평(金光坪)으로 이사와 고등학교(江陵高)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고교를 졸업하던 해 서울 영등포구(永登浦區) 오류동(梧柳洞)으로 이사하여 인천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도 가평(加平)으로 초임발령을 받았다.
1973년 인천으로 전근했는데 몇 년 후 경기도 소속이었던 인천(仁川)이 인천광역시로 특별자치시가 되면서 2009년, 인천에서 평생 근무하다가 연수(延壽區) 청량초(淸凉初)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우리 어머니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오셨는데 딸만 내리 여섯을 낳으니 종가(宗家)에서 당장 첩(妾)을 들여 아들을 낳으라고 난리법석이 났었다는데 우리 아버지는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고집을 꺾지 않으셨던 분이시라니 어찌보면 신기하다. 하느님의 은혜인지, 조상의 복인지 어머니는 일곱 번째와 막내인 8번째를 아들로 낳으셨는데 8남매의 막내가 바로 나로, 우리 어머니가 43세에 낳으셨다.
수원 백(白)씨인 아버지 가계(家系)를 보면 대부분 단명(短命)으로 생을 마감하셨다는데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내 바로 위 형님도 모두 49세에 임종하셨으니 장수(長壽) 집안은 아니다.
그런데 원주 원씨(元氏)인 어머니는 장수(長壽) 집안이었는지 이모님들 4명이 모두 90수(壽)를 넘기셨고 우리 어머니도 93세를 일기로 막내인 내가 모시다가 임종(臨終)하셨다.
우리 아버님은 6.25 사변이 끝나고 내가 7세(1953년)이던 해에 학산(鶴山)에서 임종하셨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한학(漢學)에 능통하셨고, 몹시 엄격하셨던 분이라고 기억된다.
그 귀한 막내아들인 나에게도 자상하신 어머니에게 떼를 쓴다고 회초리고 내 등짝을 후려 갈기셨고, 농사일에 익숙지 못하시어 고생하셨다고 한다. 양갓집에 대가 끊기자 5촌 종손댁 양자로 오셔서 오로지 한학(漢學)에만 매달리셨다는데 재산(財産)이 따르는 운은 없었는지 몇 번의 화재와 곧이어 북한의 남침(6.25)으로 모든 재산을 날려버리고 가난에 허덕이시다가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우리 아버지 사진 중에 두루마기에 갓을 쓰시고 금강산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던 것으로 보면, 그 예전인데도 여행(旅行)과 관광(觀光)에는 흥미가 많으셨던 모양이다.
우리 아버님 유전인지 우리 백씨(白氏) 종가(宗家)의 유전(遺傳)인지 나도 여행(旅行)과 관광(觀光), 그리고 세계 명산(名山)을 골고루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과 경비를 쏟아부었으니 신기하다.
대부분은 혼자 배낭 메고, 몇 번은 친구 두서너 명을 데리고 세계 수많은 나라를 골고루 둘러 보았는데 친구들이 붙여준 내 별호(別號)가 여랑(旅浪/여행의 낭만)이다.
위에 올린 가요(歌謠) 국경(國境) 아가씨는 우리나라가 겪었던 암울한 암흑시기(暗黑時期), 일제시기(日帝時期)에 일본의 작곡가(핫토리 이치히로)가 작곡, 우리나라 가수 김안라(金安羅)가 일본어로 불렀던 옛날 가요(歌謠)인데 1939년에 발표되었던 곡이다.
우리 8남매 중 현재 살아계신 분은 5째 누님(92세)과 나 뿐인데 누님은 현재 강원도 간성(杆城)에 사시며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여 요양원에 계시지만 아직도 정신은 너무나 또렷하셔서 놀랍다.
작년에 요양원을 방문했는데 당시 누님이 부르시던 위 노래가 기억나서 일본어로 첫 소절을 불렀더니 누워계시면서도 너무나 고운 소리로 뒷 소절을 이어 부르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인터넷으로 들어보니 노랫말(가사)은 한자도 틀림이 없고 멜로디 흐름은 조금 차이가 나지만 너무나 기억에 남아서 놀랍다. 한국어 가사는 당시 부르지 않았고, 훗날 후배 가수들이 한국어로 번역하여 불렀던 모양이다.
누님은 내가 9살 때인 1955년인가 결혼하셨는데 그때 들은 일본어 노래가 아직도 기억이 나다니 이것 또한 나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서도 깜짝 놀랐었다.
누님이 가르쳐주신 일본노래 덕분인지 나는 도쿄(東京) 학국인학교 교사로 갈까하고 열심히 일본어를 익혔는데 어머님이 너무 연로하시던 시기라 결국 포기하였지만, 일본어 회화도 가능하게 되었다.
나는 세계 여행 중 친구 3명을 인솔하고 2009년 9월, 일본 도쿄(東京)와 교토(京都) 나라(奈良)와 오사카(大阪) 등을 중심으로 10일간 여행하면서 일본어 통역을 하였으니 누님의 은혜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 덧붙이면 영어도 익혀서 2016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영어통역사로 근무하며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니 조상님 덕인가, 하느님 복이라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