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처럼 작게 꿈꾸는 인생
민들레국수집은 제가 마흔아홉에 시작했습니다. 은총의 세월이었습니다.
어느새 예순여섯의 나이입니다. 늙은 나이가 되어서도 꿈을 꿉니다.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의 꿈을 흉내냅니다.
1933년 5월에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은 가톨릭 일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도로시 데이의 빈 주머니를 턴 단돈 57달러, 그 상황에서 그들이 만들어 낸 건 작은 여덟 쪽 짜리 신문. 한 부에 한 페니를 받고 팔았습니다. 그리고 "환대의 집"을 함께 설립했습니다. 환대의 집은 호스피스라는 오래된 개념을 피터 모린이 20세기식으로 구현해 낸 것이었습니다. 환대의 집은 복지 국가라는 익명의 관료적 체제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즉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식으로 자선행위가 이루어지고 인정되는 곳이었습니다. 그 비전을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는 공유했습니다. 그들은 창고 하나와 아파트 하나를 빌리고, 빵과 버터를 사고 커피를 만들고 스프를 준비하고 노숙자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옷가지를 구해 주고, 가능하다면 잠잘 곳을 마련해 주고, 가장 중요하게는 어떻게든 그들에게 우정과 애정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들과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눔으로써 그 비전을 현실화 시키는 일을 함께 시작했습니다. 돕고자 합류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머지않아 전국에 걸쳐 서른 곳이 넘는 환대의 집이 생겨났습니다. 이후 더 많은 곳이 시작했다 실패하고 때로 다시 문을 열고는 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1980년 11월 2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두가 '부랑자' '노숙자''술주정뱅이'라 부르는 사람들과 만나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도로시 데이처럼 환대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2003년에 조그만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내일에 대한 준비도 없이 하느님의 섭리에 기대어서 빈손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슬아슬
손님들이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이 기적이었습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참 착합니다.
자기 배를 채우려고 더 배고픈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십시일반으로 많은 분들이 조금씩 나눠주셨고, 또 어떤 분은 언제나 손님들에게 마스크를 나눠 줄 수 있을 만큼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나누면서 사는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마태오 복음 6,3-4). |